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5화 (5/170)

<5>

성진은 마을의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플레이어들은 모두 미남미녀뿐인 요정들과 어울려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5층의 스테이지는 기본적으로 이차원 용병으로서 요정마을에 갑작스럽게 늘어난 몬스터 문제를 해결하는 것.

몬스터로 우글거리는 산을 몇 개나 돌파해 보스를 찾아내 사냥해야만 했다.

이에 따라 보통은 파티 플레이가 권장되기에 우선은 마을에서 다른 플레이어들과 파티를 짜는 게 먼저였다.

뿐만 아니라 공략 기간이 며칠씩 걸리다 보니 여관에서 거처를 확보하고, 식사나 빨래 등 그간의 생활도 준비해야 했다.

모험가로서의 생활은 그만큼 번거로운 것.

다만 이곳은 튜토리얼에 해당하는 저층인 만큼 이곳의 요정 NPC들은 플레이어들에게 이유 없이 호의를 보이며 무상으로 모든 것을 제공했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은 순수하게 공략만을 준비하는 대신 그 호의를 이용해 이 스테이지에서의 생활을 즐겼다.

그 꼴이 마음에 들지 않은 플레이어도 소수 있는 듯했지만, 탑 내에서는 법이 없다.

다수가 눈이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자제하자는 소수의 목소리는 힘을 낼 수 없는 법이었다.

이러한 모습에 성진과 함께하던 요정의 영혼이 분노했다.

-저, 저……!

아내의 영혼이 들어간 NPC는 속옷이나 다름없는 차림으로 남자들의 술시중을 들고 있었으며, 딸의 영혼이 들어간 NPC는 플레이어에게 가슴을 주물러지고 있었다.

더더욱 끔찍한 것은 그 와중에도 NPC로서 프로그래밍 된 그들의 육체는 기쁘다는 듯 애교를 부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NPC의 몸속에 갇힌 영혼들은 더 이상 절규할 힘도 남지 않았다는 듯 흐느끼고 있었으나, 플레이어들은 좋다고 이러한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 성진과 영혼에게는 보였다.

덕분에 그들의 눈에 비친 마을의 모습은 뭐라 형용하기 힘든 인권유린의 현장이었다.

“이래서 마을에는 먼저 갈 수 없었다.”

-네?

“아군 NPC를 먼저 해쳐 버리면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수가 없으니까.”

성진은 자신을 맞이하러 나온 요정 NPC에게 다가가 손날치기로 단번에 목을 부러뜨렸다.

털썩!

“이제 바로 클리어가 가능하니 이들도 해방시켜 주마.”

쓰러진 NPC에게서 나온 영혼이 성진에게로 들어왔다.

그 뒤로 일어난 일은 간단했다.

-아…….

성진은 마을 안에서 보이는 족족 요정들을 잡아 그 영혼을 해방시켰다.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않게 일격으로.

<영혼 해방자(희귀)>

현재 당신을 지지하는 영혼: 32

실상은 분명 구원이었으나,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묻지 마 살인이나 다름없는 행동.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정 NPC들은 플레이어인 성진에게 저항하지 않았다.

1,200번의 회차 속에서, 앞서 지나간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도 그랬으리라.

무조건적인 호의를 보내는 미남미녀종족.

그동안 이들이 플레이어들에게 어떤 취급을 받았을지, 성진은 굳이 상상하지 않았다.

그는 상상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뭐야 이 자식!”

성진이 그렇게 나오자 당황한 것은 오히려 1,201회차의 플레이어들이었다.

“이 아저씨가 진짜 미쳤나!”

“덤빌 텐가?”

“……!”

그들은 무기를 꺼내 들었지만,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5층의 플레이어로서는 상상도 못 할 속도로 NPC의 목을 따고 다니는 성진의 모습은 자연재해에 가까운 것이었으니까.

맹수쯤으로 보인다면 겁이 나더라도 덤벼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태풍을 쓰러뜨리기 위해 뛰어드는 사람은 없다.

그건 그냥 자살행위니까.

마찬가지의 이유로 플레이어들은 무기를 꺼내 들고도 차마 성진에게 덤벼들지 못했다.

애초에 정의감 따위로 일어선 게 아니었으니, 바보짓인 걸 알고도 뛰어들 이유는 없었다.

반면 그런 성진을 막아서는 이도 존재했다.

“뭐 하는 짓이에요!”

세계정부에서 도전자를 선별하는 이 시대에, 유별나게 앳된 외모의 여성.

다나는 어린 요정 NPC의 시체를 부여잡고 성진을 노려보았다.

“얘한테 보고만 하면 퀘스트 끝나는 거였는데!”

기껏 어렵게 퀘스트를 깨고 돌아왔더니 보상을 줘야 할 NPC가 사라져버린 상황.

눈앞에서 보상이 날아갔으니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고 일어난 것이었다.

다만 다나가 화를 내는 것은 마냥 그간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무리 NPC라고 해도 이렇게 마구잡이로 죽이고 다니다니, 미쳤어요? 당신이 살인마랑 다를 게 뭐야!”

“그럼 저놈들이 하던 건 괜찮고?”

성진은 다나의 말에 NPC를 끼고 술을 마시던 플레이어들을 가리켰다.

“저 꼴은 저도 보기 싫어요! 그래서 혼자서라도 빨리 모든 퀘스트를 클리어해버리려던 건데…….”

5층처럼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스테이지는 누구 한 명만 미션을 클리어하면 같이 진행한 모든 플레이어가 클리어 판정을 받았다.

‘NPC에게 인권은 없다.’

다나로서는 다른 플레이어들을 말릴 힘도 명분도 없었으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조금이라도 빨리 5층을 클리어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 노력이 눈앞에서, 그것도 원래 막으려던 일보다 더 끔찍한 방식으로 물거품이 되었으니 화를 참지 못한 것.

“요정들도 원하던 일이다.”

‘진짜 미친놈이잖아, 이거?’

성진은 NPC의 몸에 갇힌 영혼을 보고 하는 말이었으나, 다나의 눈에는 완전히 미친놈처럼 보일 뿐이었다.

“당신 같은 정신병자가 탑에서 힘을 얻어 나가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난 그런 꼴은 절대 못 봐!”

다나는 그렇게 말하며 칼을 뽑아 들었다.

성진은 무심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의기는 가상하나 일일이 설명하고 설득할 이유가 없다.

성진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여 다나의 팔을 꺾고 무기를 빼앗았다.

이어서 그녀의 멱살을 잡고 메치듯이 저 멀리 던져 버렸다.

사람의 몸이 야구공마냥 훨훨 날았다.

일반인이라면 반드시 사망할 높이였으나, 성진의 눈에 보인 다나는 바깥에서부터 열심히 공략 준비를 해온 플레이어였다.

‘낙법을 펼치면 죽지는 않겠지.’

죽지만 않으면 자신이 스테이지를 클리어함에 따라 그녀도 회복되리라.

성진은 이어서 남은 요정들의 목을 부러뜨렸다.

<영혼 해방자(희귀)>

현재 당신을 지지하는 영혼: 54

-감사합니다.

“인사는 됐다.”

성진은 벽이나 문짝을 뜯고 들어가 건물 안에 숨은 요정들도 모두 죽였다.

남길 것은 퀘스트 클리어를 확인해 줄 한 명으로 충분했다.

성진은 홀로 남은 요정에게 보스를 잡고 나온 아이템을 던져주었다.

“이게 몬스터가 준동한 원인이다. 네가 정화해라.”

“알겠습니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성진의 손에 죽었음에도 NPC는 사무적으로 그를 대했다.

성진에 의해 던져졌다가 황급히 돌아온 다나는 요정들의 시체가 널브러진 마을의 모습을 발견했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저 끔찍한 학살의 현장일 뿐인 광경.

다나는 눈이 돌아가서 인벤토리에서 다른 검을 뽑아 들었다.

“이 자식!!!”

“5층인데 벌써 포션도 있었나? 상처가 나아도 고통은 있을 텐데. 생각보다 훨씬 터프하군.”

“NPC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성진은 다나가 휘두르는 검을 맨손으로 붙잡았다.

“큿!”

“그래. 이들은 잘못이 없지.”

“그럼 왜!”

“잘못은 네가 하고 있다.”

성진은 다시 검을 빼앗고, 그녀의 멱살을 잡았다.

“이 세상에선 모르는 것도 죄다.”

그와 동시에 스테이지가 클리어됐다.

[스테이지 클리어.]

[퍼펙트 클리어!]

[기여도 순위]

- 98%

- 2%

(소수점 이하의 기여도는 표기되지 않습니다.)

[기여도 보상을 추가 지급합니다.]

[스킬 포인트를 추가 지급합니다.]

“클리어가 확인됐으니 너도 해방시켜주마.”

“안 돼!”

성진의 손이 마지막 남은 요정의 목을 부러뜨렸다.

그것으로 5층에 등장한 모든 영혼이 탑에서 해방되었다.

* * *

성진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남태수는 몸이 굳어졌다.

“이제 바로 클리어가 가능하니 이들도 해방시켜 주마.”

이어서 그가 해방시켜 주겠다는 말과 함께 요정들을 학살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입을 떡 벌렸다.

‘미쳤어. 진짜 미친놈이었잖아?’

성진이 하는 행동은 그가 보기에 미친 테러리스트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남태수는 머릿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할 뿐 아무런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의 눈에는 성진이 번쩍이면 요정들이 죽어 나가는 걸로만 보였으니까.

때문에 누군가가 성진을 막아섰을 때는, 걱정부터 들었다.

‘아, 안 돼!’

저 남자는 불과 광채의 사도인 리처드 카이만조차 막지 못한 테러리스트였다.

고작 5층 플레이어에 불과한 그들이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성진을 막기 위해 나선 플레이어, 다나 또한 성진이 자기보다 강하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이 자식!!!”

그녀는 진심으로 요정들을 위해 분노했다.

영혼을 보지 못하는 그녀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그저 미치광이의 학살로만 보일 뿐이었다.

상대가 강력하다는 걸 알아도 그녀는 이 모든 걸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스테이지 클리어!]

결국 성진은 목적을 이뤘고, 마지막 남은 요정조차 죽이고 다음 층으로 사라졌다.

남겨진 다나는 허망하게 죽은 요정들의 시체를 바라볼 뿐이었다.

다만 남태수가 정말로 놀란 것은 그다음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가씨, 뭐 하는 짓이야!”

상황을 멀뚱히 지켜보고 있던 다른 플레이어들이 다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예?”

“아니, 저 남자가 바로 클리어를 해버릴 것 같았으면 붙잡았어야지! 거기다 시비를 걸어서 진짜로 클리어를 하게 해버리면 어떡해?”

“무슨 소리예요. 그놈이 사람을 죽이고 있었는데!”

“NPC가 NPC지 사람은 무슨.”

그녀를 비난하는 건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5층처럼 편하게 지내면서 연습도 하고 그럴 수 있는 층이 어디 흔한 줄 알아? 여기서 최대한 성장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아가씨 때문에 우리 다 6층 가게 됐잖아!”

“그 와중에 지는 몰래 기여도 쌓아놨네. 2등 보상 달달하겠어 아주?”

“아니, 기여도는…… 그보다는 요정들이…….”

“요정들을 구하려고 그러셨다? 그래서 구하긴 하셨고?”

순수하게 지하철에 떨어진 사람을 보고 반사적으로 몸을 던지듯 나섰던 다나는 갑작스러운 비난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너 때문에 다친 사람도 있어!”

“다친 건 어떻게 보상할 건데?”

다나가 던져진 곳에 서 있다가 깔려서 다리를 다친 플레이어도 있었다.

“다친 건 클리어하고 넘어가면 낫는…….”

“아 상처는 남아도! 정신적인 고통이 남잖아!”

플레이어들은 진심으로 다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다나는 그 사실이 너무 기가 차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 방금 그걸 그냥 내버려 뒀어야 한다고요?”

“그 양반 더럽게 세던데 아가씨가 나섰다가 우리한테도 불똥이 튀었으면?”

“탑 안은 무법지대인 거 몰라? 죽으려면 혼자 죽지 왜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이려고 하는데?”

“하.”

어이가 없어서 한숨도 안 나왔다.

그러나 이게 현실이었다.

쾅!

다나의 발구름에 지면이 쩍 하고 갈라졌다.

“…… 댁들 말대로 탑 안은 무법지대인데. 어떻게 배상할까요?”

탑의 초반부에는 바깥에서부터 영약을 먹거나 값비싼 장비를 입고 온 이들이 섞여 있어 힘의 편차가 컸다.

다나의 능력은 평균적인 1,201회차 플레이어들의 실력을 가뿐히 상회하는 수준.

방금까지 신나게 떠들던 이들은 그녀의 실력행사에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망할 놈의 세상. 저딴 기여도 보상은 받을 생각도 없으니 너네나 처먹어.”

다나는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나직하게 내뱉고는 대기실로 사라졌다.

조용히 숨어있던 남태수는 이번 일에서 마을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또 그 얼굴과 이름들을 최대한 머릿속에 새기고 다음 층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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