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3화 (3/170)

<3>

대형 행사 도중 습격 받은 세계정부는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그리하여 안보국 내부에서는 벌써 성진에 대한 브리핑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위성 촬영으로 확인된 테러리스트의 얼굴입니다. 이름은 주성진. 세계정부 수립 이전 대한민국 출신으로, 30년 전 행방불명된 인물입니다.”

“타인의 얼굴을 도용한 건가? 인공섬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았으니 마법을 이용한 변신은 아니겠군.”

“군 내부에 내통자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는 와중,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정보국 국장 제임스 영이 입을 열었다.

“세계정부 수립 이전에 행방불명된 사람의 정보를 용케 찾았군.”

“네. 30년이 지난 지금도 사망이 아니라 행방불명 처리가 되어 있던 덕분입니다.”

“사망 선고가 안 됐다?”

“그는 대한민국의 특별법 대상자였습니다.”

남자의 손짓에 스크린의 위성사진이 어떠한 명단으로 바뀌었다.

그중 주성진의 이름이 들어간 부분만 강조되어 있었다.

“태평양 항공 337편 실종 당시 승객 명단입니다.”

“337편이라면…….”

“탑이 나타나던 당시 그곳을 비행 중이었던 비행기가 통째로 사라진 사건이군.”

그 말에 브리핑실 내부의 말소리가 일제히 잦아들었다.

세계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의 사건.

태평양 상공을 비행 중이던 여객기가 탑이 등장한 그 순간, 마침 그곳을 지나다 통째로 사라진 사건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태평양 항공 337편.

당시 해당 기체는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분해되었다는 결론이 나오며 여론이 들끓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탑 때문에 가족을, 친지를 잃었으니 탑이 좋게 보일 리가 없는 것.

이는 탑이 나타난 초창기에 반탑정서를 이끈 대표적인 사건으로, 성좌의 빛 아래 세계정부를 이룩한 지금은 금기나 다름없는 사건이었다.

“30년 전의 망자가 복수라도 하려고 돌아왔다?”

제임스 영이 농담처럼 던진 그 말은, 우연히도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아무튼 다음 회차에 바로 조사팀 들여보내고, 도전 끝내고 나오는 사람들한테도 탑 내부 커뮤니티 정보를 확인하도록. 최대한 빨리 1,201회차의 상황을 알아내야 한다.”

탑의 내부는 바깥에서 보이는 것과 상관없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덕분에 탑의 외부에선 탑 내부의 상황을 알 수 없었다.

이는 탑의 내부에서도 마찬가지.

탑의 내부 또한 층별로 완전히 별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있었다.

내부에는 서로 다른 층의 플레이어들끼리 소통이 가능한 커뮤니티가 존재했지만, 그건 튜토리얼에 해당하는 10층 이후에나 해금된다.

방금 탑에 들어간 사람을 추적하려면 새롭게 사람을 들여보내 내부의 상황을 확인하고, 곧장 탑의 도전을 포기시켜 정보를 가지고 나오는 수밖에.

결국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는 정보 수집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이것도 세계정부가 권력을 꽉 쥐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플레이어로서 레벨을 쌓을 기회를 정보수집 따위의 이유로 포기하고 싶은 사람 따윈 없을 테니까.’

탑에 도전할 수 있는 건 누구나 한 번뿐.

정부의 요청 때문에 자신의 기회를 사용해버릴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정부가 아무리 보상하려 해봐야 성좌들이 내려주는 초인적인 힘에 비할 바는 못 되었으니까.

그러나 사도들이 이끄는 세계정부는 전 세계를 꽉 쥐고 있었기에 탑 내부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망했군.’

제임스 영은 이 전대미문의 사건에 내심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당장 이 안건을 사도들에게 보고하러 가야 하는 입장으로서 다 때려치우고 사표라도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 초법적인 괴물들이 자신의 사표를 받아주기나 하겠는가?

“인생이란.”

참으로 엿 같았다.

그는 30년 전 세상이 뒤바뀌던 시절에 CIA의 요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 여론과 달리 탑과 성좌에 대해 반대하지 않은 덕에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으나, 그렇다고 사도까지 긍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잘 싸운다는 이유로 신에게 선택받아 사회 꼭대기에 틀어 앉은 놈들.’

그가 보기에 무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권력을 쥐어주는 건 천 년 전에나 먹히던 원시적인 방식이었다.

이는 성좌라는 족속들이 딱히 인간 사회에는 관심이 없다는 증거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 때문에 탑을 보내며 인류에게 접촉해 온 것일까.

이에 대해 떠들던 음모론자들은 모두 안보국의 손에 처리되었으니 이제는 추측해 볼거리도 없었다.

‘신경 쓰지 말자. 나는 내 가족만 지키면 된다.’

결국 평범한 사람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 * *

탑의 1층이 시험의 장이라면 2층부터 9층까지는 일종의 튜토리얼이었다.

성좌들은 탑을 대량으로 제작하여 온갖 차원에 뿌렸다.

당연하게도 탑은 딱히 인간이라는 종족에 맞춰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어떠한 종족이든 최소한의 능력을 갖출 수 있게 준비해 둔 것이 바로 튜토리얼 층들.

그 2층은 바로 살생의 층이었다.

[이번 스테이지는 개인별로 진행됩니다.]

[스테이지 내에 등장하는 모든 몬스터를 제거하십시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닭이었다.

“다시 봐도 불쾌한 스테이지군.”

성좌들이 탑에서 길러내는 건 병사다.

때문에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적을 죽일 수 없는 사람은 필요가 없었다.

우드득!

닭은 아무런 저항 없이 성진의 손에 목이 꺾여 죽었다.

그와 동시에 닭의 몸속에 갇혀 있던 영혼 또한 성진에게로 흡수되었다.

[당신의 행동이 영혼의 업(業)으로 쌓입니다!]

[희귀 등급의 카르마를 획득합니다.]

[<영혼 해방자(희귀)>를 획득하셨습니다.]

<영혼 해방자(희귀)>

당신이 해방시킨 영혼들이 당신의 힘이 되어줍니다.

현재 당신을 지지하는 영혼: 1

딱히 중요한 역할의 NPC가 아닌 만큼 들어 있던 건 다 죽어가는 짐승의 영혼이었다.

다음으로 소환된 것은 늑대였다.

늑대는 평범한 사람이 쉽게 때려잡을 수 있는 생물이 아니었으나, 2층에서 소환된 늑대에게는 목줄이 걸려 있었다.

게다가 성진은 인벤토리를 사용할 수 없었으나, 다른 플레이어들은 탑의 입장과 동시에 인벤토리에 기본 무기가 지급된다.

죽이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은, 단순히 죽일 수 있냐 없냐를 보는 스테이지.

콱!

성진이 손을 쓰자 늑대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즉사했다.

소환은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끔찍하게 생긴 생물, 귀엽게 생긴 생물, 말을 할 줄 아는 생물.

그리고 인간과 비슷한 생물.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비무장 상태의 고블린이었다.

고블린은 소환되자마자 눈앞의 성진을 적대했으나, 성진은 그 눈동자 속에서 고블린의 몸에 갇혀 비명을 지르고 있는 영혼을 보았다.

“요정의 영혼을 고블린에 처박아뒀나. 악취미로군.”

“주거어어어!!!”

성진에게 달려든 고블린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지도 못하고 머리가 부서져 죽었다.

[스테이지 클리어.]

[퍼펙트 클리어!]

[스킬 포인트를 추가 지급합니다.]

잡혀온 자들을 때려죽였을 뿐인데 잘했다고 보상을 준다.

“웃기지도 않아.”

어차피 탑이 부여하는 스킬 포인트 따윈 성진에게 쓸모없는 것이었다.

<영혼 해방자(희귀)>

현재 당신을 지지하는 영혼: 11

그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것은 이쪽.

남이 부여해준 힘이 아닌, 스스로의 행동으로 쌓아 올린 카르마만이 진정한 성진의 힘이었다.

성진이 가슴속 고요한 불길에 장작을 더하는 동안 고블린에게서 나온 요정족 영혼은 그에게 감사를 표해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직도 자아가 남아 있었나.”

탑에서 NPC로 부려지는 영혼들은 죽음을 거듭하며 영혼이 마모되어간다.

이번이 1,201회차라고 하니 이 요정은 붙잡힌 이후 최소 1,200번은 고쳐 죽은 영혼이었다.

생전에 나름대로 강인한 영혼의 소유자였다는 뜻이리라.

“내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말해다오. 탑의 정보를 원한다.”

-튜토리얼에만 있던 제가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만…….

“다만?”

-이후 요정들이 등장하는 층이 있습니다. 그곳에 제 가족들을 비롯해 부족 사람들이 다수 붙잡혀 있습니다. 그들의 영혼도 구해주십시오……!

“걱정 마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성진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탑에서 나갈 때까지 내게 힘을 빌려다오.”

-제 영혼을 모두 불태워서라도 당신을 돕겠습니다!

“그럴 필요까진 없고. 일단은 안에서 놀고 있어라.”

-예?

“들어가 보면 안다.”

* * *

-당장 절 해방하세요!

-지금이라도 풀어준다면 죄는 10번만 묻겠어요!

-10번의 죽음으로 죄를 사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자비로운 일이라구요!

성진에게 봉인된 아자키엘은 그의 내면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끊임없이 떠들어댔다.

한평생 탑에서만 살아 현실감각이 부족한 아자키엘은 붙잡힌 상황에서도 시종일관 고자세를 유지했다.

성진은 놈이 뭐라 떠들든 관심도 주지 않고 방치했다.

어차피 천상의 전쟁과도 동떨어져 탑에 처박혀 있는 천사는 뻔했으니까.

필요에 의해 탑의 톱니바퀴로 만들어져 정신연령마저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는 놈들이었다.

도구에 불과한 놈들에겐 일일이 복수를 할 것도 없었다.

다만 그것은 성진의 입장.

아자키엘에게 직접적으로 고통받아온 요정 영혼에게는 사정이 달랐다.

-처, 천사?

-노예 영혼? 잘됐네요. 명령이에요! 어서 이 사슬을 푸세요!

-마을의 원수……!

-꺄아아악!

성진은 아자키엘의 비명을 무시했다.

적당히 시간이 지난 뒤에 확인해 보면, 그때는 말 잘 듣는 천사가 되어 있을 테니까.

* * *

[다음 층으로 진행이 가능합니다.]

[미선택 시 30초 후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다음 층…… 아니. 오류로 시스템이 일부 막혔으니 대기실은 어떤지 확인해 두도록 하지.”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다음 순간 성진은 1층의 스테이지와 비슷한 새하얀 공간에 나타났다.

“입장은 가능하군.”

각 층의 스테이지는 입장과 동시에 과제가 시작된다.

때문에 플레이어들에게는 따로 대기실이라는 휴식공간이 주어졌다.

한 층을 깰 때마다 들어올 수 있는 이곳에서는 상점이나 커뮤니티 등을 이용하거나, 다음 도전을 포기하고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선택할 수 있었다.

[현재 대부분의 기능이 잠금 상태입니다.]

[기능을 해금하기 위해 10층에 도달하십시오.]

“상점이나 커뮤니티는 일단 튜토리얼에 해당하는 스테이지를 끝내야 확인이 가능하겠군.”

성진은 우선 마력을 옅게 퍼뜨려 주위를 확인했다.

대기실은 바닥과 벽, 천장의 구분이 보이지 않는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

덕분에 그 끝이 무한히 이어져 있는 것처럼도 보였으나 사실 공간에 한계가 있었다.

“가로, 세로, 높이가 3미터인 주사위 꼴인가.”

크기 확장도 별매품이었지만, 상점이 열린다고 해도 시스템에 오류가 난 성진으로서는 이용이 불가능하리라.

“내게는 그냥 창고로써의 역할밖에 안 되겠군.”

탑에서는 스테이지 내에서 얻은 것을 다음 층으로 가져갈 수 없었다.

가져갈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시스템이 보상으로 부여하거나, 상점에서 판매한 물건뿐.

따라서 상점이 막힌 성진은 경우에 따라 식량 수급 등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나 대신 상점을 이용할 인간이 필요한가. 스테이지 중에는 혼자서 깰 수 없는 협동 스테이지도 존재했지. 협력자를 하나 구해놓는 편이 좋겠군.”

적당히 진행하다가 만난 플레이어와 그때그때 파티를 맺어도 되겠지만, 시스템이 막혀 있다면 일찌감치 협력자를 구해 보상을 몰아줘서 용병처럼 키워 써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차피 탑이 보상으로 주는 스킬 포인트 따위는 성진에게 아무런 도움도 안 됐으니까.

성진은 성좌가 내려준 힘으로 성좌와 싸우겠다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다음에 다른 플레이어들을 만나면 말이나 걸어볼까.”

그렇다곤 해도 튜토리얼은 대체로 개별 진행이다.

결국 지금 성진이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그럼 바로 다음 층으로 진행하도록 하지.”

쾌진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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