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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커피는 나랑 마셔 (2/129)


2화. 커피는 나랑 마셔
2022.06.07.


출근 첫날부터 도혁은 일에 한 맺혀 죽은 귀신이 붙은 건지, 업무 파악이라는 명목하에 팀원들을 한 명 한 명 불러 자존감을 패대기쳤다.

하루 만에 직원 모두에게 퇴사 충동을 느끼게 했으니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강렬한 첫인상 덕분에, 환영 회식은커녕 일 외에는 절대 말을 섞지 않는 도혁이 팀원들은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었다.

아무튼, 그날 이후 상품기획 1팀에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특히 재인은 도혁이 하도 일을 많이 던져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데도 일이 점점 더 쌓여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제가 저지른 일도 있는 데다 도혁은 더 늦은 시간까지 일에 몰두하기에 깨끗이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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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주임, 혹시 팀장님께 뭐 원한 산 일이라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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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런 거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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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네. 원래 집요한 사람이지만 서 주임한테는 왠지 더 심하게 구는 것 같단 말이지.”

눈치 없는 박 과장이 재인의 아픈 부분을 박박 긁어댔다.

이유라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수습이 안 된다는 게 문제일 뿐.

재인은 말실수에 대해 곧장 사과하고 보란 듯이 열심히 일을 했지만, 도혁은 계속 못마땅한 눈치였다.

예를 들어, 지난주 재인이 탄 버스가 접촉사고가 나서 지각했을 때.

도혁은 정확히 11분 지각한 그녀에게 목소리까지 높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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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서 주임이 탄 버스에만 사고가 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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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 갈아타려던 버스가 늦게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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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황에서 또 버스라니, 택시 타고 올 생각은 안 했습니까?”

솔직히 안 했다. 택시비가 얼만데.

문제는 뒤따라 들어온 강나희 대리가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늦었다고 했을 때 도혁이 보인 반응이었다.

도혁은 아무 말 없이 나희를 쓱 지나쳐 팀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순간 잔뜩 긴장하고 있던 나희의 얼굴에 안도와 승리의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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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팀장님이 강 대리한테는 엄청 관대하시네? 서 주임 서글프게.”

굳이 확인사살까지 하는 박 과장의 몹쓸 오지랖 때문에 재인은 더 서러웠었다.

그렇게 도혁에게 시달린 지도 벌써 백 일이 훌쩍 넘었다. 그러는 동안 꿋꿋하게 버텨온 재인에게 남은 것은 영광스러운 만성피로와 화병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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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주임, 혹시 지금 딴생각하고 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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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 죄송합니다!”

재인은 한심하게 쳐다보는 도혁의 눈빛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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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시간에 딴생각할 여유가 있으면 일에 좀 더 집중하세요.”

뭐, 여유? 그걸 말이라고.

재인은 울컥 화가 치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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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는 개뿔! 너한테 혹사당하느라 숨만 겨우 쉬고 사는 거 안 보여? 인간적으로 일 좀 그만 줘! 매일 야근해도 시간이 모자라! 이러다 과로사로 죽으면 책임질 거니, 이 나쁜 놈아!’

속 시원하게 퍼붓고 때려치우고 싶지만, 월급날이 코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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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한 번만 더 참는다.’

하지만 재인의 분통 터지는 마음을 알 리 없고, 알아도 전혀 개의치 않을 게 뻔한 도혁이 마지막으로 폭탄을 투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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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제품은 윗선에서도 관심이 많은 거 모릅니까? 안 되겠군요. 내가 진행 상황을 점검해야겠으니 이번 주 토요일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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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이요?”

재인은 제 귀를 의심했다.

그날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여름휴가도 반납했던 재인이 오랜만에 친구 유라와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약속은 둘째치고 황금 같은 주말에, 그것도 꿈에서 볼까 무서운 팀장과 살벌하게 업무 미팅을 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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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농담이라고 해줘!’

안쓰러워하는 팀원들의 눈빛에 재인은 울컥 설움이 올라왔다.

이대로 속수무책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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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토요일은 안 되는…….”

그 순간 도혁의 얼음장 같은 눈빛이 날아와 재인에게 꽂혔다.

흡! 온몸의 털이 쭈뼛 선 재인은 미처 나오지 못한 말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마지못해 개미 새끼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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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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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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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겠습니다.”

탁. 도혁이 서류철을 덮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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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끝내기로 하죠. 회의를 더 하는 의미가 없네요. 모두 오늘 문제 제기된 부분 수정해서 내일까지 제출하세요.”

내일까지, 라는 말에 다들 죽상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인은 한시라도 빨리 도혁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에 잽싸게 회의실 문을 열었다.

그때, 착 가라앉은 음성이 재인의 발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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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주임은 잠깐 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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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또 무슨 일인데?

팀원들은 이제 대놓고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 재인 덕분에 덜 주목받게 되어 다행이라는 안도의 눈빛도 섞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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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주임, 어떡해요. 힘내요.”

나희가 등 뒤로 지나가며 살며시 속삭였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재인은 보고야 말았다. 나희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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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진짜!’

입사 동기인 동갑내기 강나희는 원래도 은근슬쩍 재인의 신경을 건드렸지만, 올해 초 승진을 한 뒤부터는 대놓고 티를 냈다.

업무 능력은 재인이 월등히 좋았는데도 나희가 먼저 대리를 단 데에는, 지방으로 좌천된 전임 팀장과 박 과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 돌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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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팀장 본인도 잊고 있던 결혼기념일까지 챙기면서 잘 보이느라 애쓰긴 했지. 대단하다, 강나희.’

그러든가 말든가. 지금 한가하게 나희를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회의실 문이 닫히고 둘만 남자 도혁이 재인에게 손짓을 했다.

가까이 오라고?

재인이 머뭇머뭇 다가가자, 도혁은 몸을 숙이라는 듯 아래로 손짓을 했다.

왜 평소에 안 하던 짓까지?

어찌 됐든, 숙이라고 하니 숙였다.

그러자 도혁은 고개를 기울여 재인의 귓가에 나직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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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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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피부에 닿자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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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팀장님이 이름으로 부른 적은 처음인데…….’

공포심이 극에 달해서일까?

낯선 도혁의 행동에 재인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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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팀장님.”

새어 나오는 목소리가 절로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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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그렇게 좋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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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갑자기 웬 커피 타령?

영문을 몰라 고개를 돌린 재인은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하마터면 도혁과 코가 스칠 뻔했기 때문이다.

쿵쾅쿵쾅. 심장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세차게 뛰었다.

도혁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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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커피를 달고 살면서 밤늦게 또 카페에 들르다니, 그 정도면 카페인 중독 아닙니까?”

와, 이건 진짜 억울하다.

요즘 누구 덕분에 야근하느라 회사, 집, 회사, 집, 쳇바퀴처럼 돌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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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저 요새 퇴근하고 카페 근처에 간 적도 없는…… 아!”

순간 재인의 머릿속에 어떤 장면이 스치듯 지나갔다.

어제 퇴근길에 재인은 대학 선배인 상품기획 2팀 나민우 팀장과 카페에 들렀었다.

나민우 팀장과 창가에 자리를 잡고 나란히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셨을 때 차를 타고 지나가는 도혁을 봤던 게 기억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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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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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커피가 좋으면 얼마든지 사 줄 테니 나랑 마셔요. 버젓이 회사 앞 카페에서 다른 팀 팀장이랑, 그것도 업무 시간 외에 만나면 좋지 않은 소문이 돌 거라는 생각 안 해봤습니까?”

갑자기 불거진 도혁의 목소리에 재인은 머리가 멍해졌다.

좋지 않은 소문이라고?

민우가 긴히 상의할 게 있다고 해서 30분 정도 앉아 있었던 게 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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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 선배 아니, 나 팀장님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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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연애 잘못해서 구설수에 오르다 헤어지기라도 하면 프로젝트에 지장이 생길 거 아닙니까! 도대체 생각이란 건 하고 삽니까?”

잠깐. 왜 얘기가 그렇게 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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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에 민폐 끼치지 않도록 프로답게 행동하세요, 이제부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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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제 말 좀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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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지 의문이지만.”

그 순간, 재인은 들었다.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툭 끊기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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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아들었으리라 믿고, 그럼 이만.”

속사포처럼 제 말만 쏟아낸 도혁은 벌떡 일어나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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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망할 자식!’

믿긴 뭘 믿어. 멋대로 엄한 사람을 연애시켰다 이별까지 시키고, 무책임한 인간으로 매도해놓고는.

관자놀이에 핏대가 불거진 재인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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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거…… 선을 넘은 거 맞지?’

그것도 아주 많이.

* * *

지난밤, 재인은 머릿속이 복잡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동안 아무리 일이 많아도, 지겹게 야근을 시켜도 어떻게든 견뎌냈다.

하지만 어제처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생트집을 잡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다.

내 인권은 소중하니까.

악덕 팀장 때문에 계획보다 3개월 빨라졌지만, 어차피 던질 사표였다.

재인은 내년 4월부터 학기가 시작되는 일본제과제빵학교에 합격한 상태였다. 일본에 미리 넘어가 준비해둘 것도 있기에 회사는 2월 말까지만 다닐 생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손재주와 미적 감각을 자랑했던 재인은 장차 저만의 베이커리 브랜드를 만드는 게 꿈이었다.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아 몇 년간 허리띠를 졸라매 간신히 학비 오천만 원을 모았다.

아직 유학 생활비가 모자라지만, 손가락을 빨지언정 팀장 얼굴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사표야 진즉 써서 가슴에 품고 다녔던 터라 그냥 집어던지기만 하면 된다.

완벽한 순간을 연출하기 위해 재인은 가장 화사한 옷을 꺼내 입고 안 하던 풀 메이크업까지 했다.

차도혁 얼굴에 사표를 던지고 당당하게 한마디 해주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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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그만둡니다. 인생 그렇게 살지 말고, 다시는 마주치지 맙시다!”

머릿속으로 수십 번도 더 시뮬레이션을 한 장면이라 실전에서도 능숙하게 해낼 자신이 있었다.

자, 결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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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 씨, 팀장님 계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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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늘 제일 먼저 출근하시잖아요.”

좋았어.

재인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사뿐사뿐 가벼웠다.

똑똑.

재인은 호기롭게 팀장실 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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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차도혁은 원래 집중하면 귀가 막히는 사람이지.’

다시 한 번 세게 노크를 했지만 역시나 묵묵부답이었다. 재인은 할 수 없이 조심스레 팀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일에 몰두해 그런 줄 알았는데 웬걸, 안이 텅 비어 있었다.

한창 일을 하던 중이었는지 책상에는 펼쳐진 서류 위에 만년필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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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예상치 못했던 상황인데…….’

김이 팍 새어버린 재인은 잠시 고민했다.

일단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것인가, 아니면 들어온 김에 그냥 지를 것인가.

불현듯 도혁의 날카롭다 못해 살벌하기까지 한 눈빛이 떠올랐다.

그러자 갑자기 심장이 벌렁거리면서 준비한 멘트를 버벅거리지 않고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작전 변경.

일단 사직서를 책상에 올려놓자. 그냥 나갔다가 그사이에 마음이 약해져서 사직서를 무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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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사직서를 읽고 나면 부르겠지, 뭐.’

재인은 도혁이 보던 서류 위에 사직서를 내려놓았다.

그때. 반동을 받아 탁, 하고 튕긴 만년필이 떼구루루 구르더니 그만 책상 밑으로 떨어져버렸다.

이젠 하다 하다 만년필까지 태클을 거는구나.

재인은 황급히 책상 아래로 들어가 만년필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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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디 있는 거야!’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서랍장 밑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다급히 손을 밀어 넣고 여기저기 더듬어봤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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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참, 팀장님 돌아오기 전에 나가야 하는데…….’

대차게 사표를 집어던지려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귀신에게 쫓기듯 초조해진 재인이었다.

좀 더 깊숙이 팔을 밀어 넣자, 드디어 손끝에 딱딱한 물체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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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재인은 안도하며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았다.

문제의 만년필을 손에 넣었으니 이제 올려놓고 나가기만 하면 끝이다.

그때였다.

끼익. 쾅.

갑자기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나더니 도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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