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저길 봐라(10)
양키스의 포수인 호세 트레비뇨는 베테랑이었다.
마이너에서 4년을 뛰었고 빅리그에서는 11년째 뛰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춰봤던 투수는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그 경험으로 단언하건대 지금 마운드에 선 투수는 그가 경험해본 어떤 빅리그의 투수와도 달랐다.
뭐라고 해야할까?
그러니까······.
‘아직 마이너리그에서 멘탈리티에 담금질을 좀 해야 할 애송이?’
아, 물론 던지는 공만 따진다면 충분히 빅리그에서 뛸만하다. 아무리 빅리그의 평균 구속이 올라왔다고 해도 103마일짜리 속구가 컨트롤이 되면 그것만으로도 빅리그 불펜 투수 한 자리 정도는 너끈하다.
하지만 그런 투수라고 해도 빅리그에서 뛰는 투수라면 최소 마이너에서 한 시즌 정도는 구르고 온다. 그리고 고교리그건 대학리그건 혹은 남미의 어느 리그건 간에 어디선가 왕 노릇을 했던 그 선수들은 루키부터 AAA까지를 거치는 과정에서 재능만으로 넘어설 수 없는 ‘좌절’이라는 것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물론 선발이라는 놈 중에는 에고 덩어리들이 워낙에 많아서 자신이 그런 걸 경험해본 적 없다고 박박 우기는 놈들투성이긴 하다. 하지만 진짜 위기에 몰렸을 때를 보면 알 수 있다. 그 녀석이 절망 앞에 마주 해본 녀석인지 아닌지.
넘어설 수 없는 재능의 벽을 경험해본 적 없는 모르는 메이저리그 투수라니.
그래서 지금 마운드에 선 최수원이 더 언밸런스 하게 느껴진다. 정작 본인은 타석에서 무수한 투수들에게 그러한 절망을 안겨줬을 녀석이 말이다.
마이너에서 4년을 구르던 당시에는 지금 마운드의 최수원과 같은 표정을 짓는 투수들을 정말 많이 봤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녀석들이 보여주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도망을 치거나.
맞붙는다.
어느 것이 꼭 올바른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전자를 택하건 후자를 택하건 그 나름의 다음이 있으니까. 하지만 확률로 따지자면 전자를 택하는 놈들이 다음 단계로 건너가는 경우가 더 많다. 호세 트레비뇨가 생각할 때 상위리그에서 뛰기 위해서는 ‘포기 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마이너리그의 ‘선발 투수’라는 놈들 가운데는 후자를 택하는 놈들이 더 많다. 지금 마운드에 선 저 애송이처럼.
스텝 업을 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자신의 재능 너머로 손을 뻗는다. 녀석들은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일본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정신으로 달려든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뚝
부러진다.
마운드에 선 최수원의 얼굴에 분노가 엿보였다.
저것은 정말 분노일까? 아니면 겁에 질린 짐승이 보여주는 거짓된 분노일까?
그는 여기서 한 번 더 달려들까?
아니면 도망을 칠까?
호세는 생각했다.
아마 최수원이라면 여기서 한 번 더 달려드는 타입일 거라고.
그는 타자로서 너무 위대했기 때문이다.
타자 최수원은 메이저 레벨에서조차 좌절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재능의 소유자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투수로서의 실력과 재능은 설사 타자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 태도는 달라질 수 없다.
마운드의 최수원이 자신의 의사를 피력했다.
‘몸쪽.’
역시.
호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도망가지 않는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선택이다.
물론 성공의 확률만 따진다면 도망치는 것은 종종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
고작 스무 살짜리 투타 겸업의 역대급 천재와 역사상 가장 빠른 홈런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는 스무 살의 홈런왕이 벌이는 맞대결에 도망은 어울리지 않았다.
이 자리에 어울리는 것은 대부분의 –뚝 하고 부러지는 그 선택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길은 단순히 메이저리그에 살아남는 선수를 넘어서 150년 역사를 통틀어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은 141명의 선수. 그러니까 저기 뉴욕시 쿠퍼스타운에 있는 박물관에 자기 얼굴이 새겨진 동판을 전시해둔 선수들 대부분이 선택했던 길일 것이다.
이제 은퇴를 얼마 남기지 않은 양키스의 베테랑 포수는 지금 이 순간이 자신이 평생을 몸담아온 야구라는 종목에서 몹시 중요한 한 페이지가 될 것이라는 사실에 몹시 고양됐다.
그리고 마운드에 선 투수가 생각했다.
‘아, Fxxx. 이거 어차피 또 같은 건 던져 봐야 처맞을 것 같은데?’
호세 트레비뇨는 최수원이 압도적인 재능의 벽 앞에 좌절을 해본 적이 없음을 알아챘다. 하지만 나이를 뛰어넘는 그의 경험. 그리고 어깨 부상이라는 절망적인 순간에 되지도 않을 투수에 집착하는 대신 빠르게 타자로 전향하여 성공을 경험했던 그의 유연한 사고방식을 짐작할 수는 없었다.
최수원이 선택했다.
몸쪽 높은 코스.
알렉산더 맥도웰이 타격을 준비했다.
‘미······, 미친?’
그것은 마치 머리로 날아오는 것 같은 공이었다.
앞서 마치 어깨를 박살낼 것 같이 날아왔던 공을 한 차례 목격했기에 조금은 예민해진 상황. 그것이 알렉산더 맥도웰을 황급히 뒤로 빠지게 했다.
-뻐엉!!!!
메츠의 선수들은 이미 뛰쳐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방금 어깨를 맞출뻔한 공 직후에 또 빈볼성 공이 들어온다면. 그것도 팀의 가장 중요한 타자에게 그런 공이 들어온다면 이건 모두가 달려나가 상대 투수를 패대기 쳐야 마땅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배터박스에서 크게 물러난 알렉산더 맥도웰의 모습에도 메츠의 선수들은 아무도 달려나갈 수 없었다.
“스트라잌!!!!”
최수원의 공은 분명 존을 지나갔으니까.
[몸쪽 높은 코스!! 이거 커브였죠?]
[네, 방금 구속이 89.7마일!! 와, 상당히 빠른 커브였습니다. 게다가 횡무브먼트도 상당하네요.]
수원이 회전축을 일부러 기울인 건 아니었다. 그냥 쓰리쿼터의 특성상 팔꿈치와 손목을 편하게 두면 자연스럽게 회전축이 수평을 조금 벗어난다. 그저 그 상태에서 그가 던질 수 있는 가장 빠른 커브를 던졌을 뿐이다.
다만 만약 생각만큼 스핀이 걸리지 않았더라면 또 빈볼이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지금 수원이 보여준 똥배짱은 분명 칭찬할만한 구석이 있었다.
‘좋았어. 1-1. 나쁘지 않아.’
그가 스스로를 독려했다. 사실 이것은 오늘 타석의 알렉산더 맥도웰이 보여주는 모습에 마음이 꺾이지 않기 위한 일종의 자기 최면에 가까웠다.
알렉산더 맥도웰이 다시 타석에 섰다.
화가 난 표정이 아니었다. 뜻밖의 기습에 분한 표정도 아니었다. 그냥 제법이네? 라고 말을 거는 것 같은 표정이다.
그리고 그 표정을 보는 순간 수원은 어째서인지 3년 전의 백하민이 생각났다.
그래, 돌이켜보면 좀 미안한 일이기는 했다.
회귀라는 사기적인 능력으로 비리비리한 고등학생 몸에 돌아갔다고는 하지만 무려 빅리그의 MVP급 타자였던 자신이 초고교급 소리를 듣는다고는 하지만 아무튼 고작 고3에 불과했던 녀석을 자비 없이 두들겨 팼었으니까.
물론 절대치로 따지자면 지금 알렉산더 맥도웰은 3년 전. 80kg도 안 나가던 자신보다 훨씬 강력한 타자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알렉산더 맥도웰이 보여주는 포스는 전성기 자신과 비교해도 크게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상대치로 본다면?
고등학교 3학년 투수에게 당시 자신은 지금 알렉산더 맥도웰 이상으로 압도적이었을 것이다.
‘그때 하민이 형이 울었던가?’
그래, 울었었다.
솔직히 그 인간이 워낙에 잘생겼으니 그 울음도 그림이 좋았던 것이지, 안병영처럼 평범하게 여드름 빡빡한 고등학생이었다면 평생의 흑역사로 남을만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엉엉 울던 백하민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최수원이 공을 쥐었다.
자신에게 연타석 홈런을 그렇게 두들겨 맞고 마지막에 외야 플라이 하나 잡았다고 양손을 번쩍 들던 백하민을 떠올렸다.
세 번째.
머리 쪽으로 날아오는 공을 두 번이나 봤음에도 알렉스는 여전히 타석에 바짝 붙어 있었다.
[투수 와인드업!!]
몸쪽 높은 코스.
가장 빠른 공.
이것을 고집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최수원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지금의 알렉스가 원하는 것은 바깥쪽으로 달아나는 공이라고. 그리고 만약 그런 공이라면 저 녀석은 무조건 담장을 넘겨버릴 것이라고.
-뻐엉!!!!
“스트라잌!!!”
수원의 생각이 옳았다.
알렉산더 맥도웰이 방망이를 돌리지 않았다.
전광판에 찍힌 숫자는 102.9.
어깨로 날아왔던 초구와 달리 보더 라인에 정교하게 스치는 완벽한 몸쪽 높은 코스 공이었다. 건드릴 수야 있었겠지만 건드려봤자 좋은 타구는 절대 못 만들 것 같았던 공이다.
[최수원 선수!! 완벽하게 제구된 165.6km/h의 속구!! 와, 이런 공은 아무리 최정상급 메이저리그 타자라고 해도 쉽게 공략하기 힘든 공이거든요. 볼카운트 2-1. 훌륭합니다!! 앞선 타석에서 연타석 홈런을 쳤던 알렉산더 맥도웰 선수를 훌륭하게 몰아붙이고 있어요.]
이 정도면 알렉산더 맥도웰도 최수원의 도망치지 않는 마음을 읽었을까?
호세 트레비뇨가 침을 꼴깍 삼켰다.
네 번째.
바깥쪽.
알렉산더 맥도웰이 그토록 기다리던 바깥쪽 공이었다.
‘커브?’
괜찮다.
쳐낼 수 있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그 어떤 공이라도 멀리 날려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알렉산더 맥도웰의 방망이가 따라 나왔다.
바깥 쪽 꽉 찬 코스.
하지만 더 빠져나가지 않았다.
그 대신 그 낙폭이 엄청났다.
‘요령을 좀 알 것 같아.’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커브는 선수의 감각에 의지하는 변화구라고.
이번 경기를 통해 최수원은 커브의 횡적 움직임을 조금씩 강화해나갔다. 조금 전 알렉산더 맥도웰을 상대로 첫 번째 스트라이크를 뺏었던 커브는 그 횡적 움직임의 극한이었다.
그리고 지금.
팔꿈치의 각도를 미세하게 좁혔다.
최대한 수평에 가까운 회전축.
최수원의 커브가 마치 땅바닥을 찍을 것처럼 수직으로 급락했다.
“미친 괴물 새낀가?”
그리고 그런 최수원의 커브를 알렉산더 맥도웰의 방망이가 끝끝내 따라붙었다.
-딱!
터무니없는 순발력과 협응력. 그리고 균형감각.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는 역대 가장 빠른 페이스로 홈런을 적립 중인 20살의 유망주였지만 결코 배리 본즈와 같은 괴물은 아니었다.
“아웃!!!”
내야 땅볼 아웃.
최수원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치 옛날. 백하민이 최수원에게 외야 플라이 하나를 잡아내고 양팔을 하늘 높이 번쩍 들었던 것처럼.
6회 말 원아웃.
그렇게 알렉산더 맥도웰과의 승부에 모든 힘을 쏟은 최수원은 뜬금포를 하나 허용하며 추가 1실점으로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아······. 설마 여기서 산왕전 엔딩을 간다고?”
마운드에서 내려온 최수원이 불안감을 표출했다. 타당한 불안감이었다. 실제로 마린스였다면 충분히 역전을 허용할 만도 했을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양키스는 달랐다.
그들이 시리즈 첫 번째 경기를 가져왔다.
***
[양키스 시리즈 1차전 연장 11회 승부치기 12:11 승리!!]
[10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홈런으로 이어가는 최수원!!]
[시즌 9, 10, 11호 홈런!! 알렉산더 맥도웰의 역대 가장 빠른 홈런 페이스를 알아보자!!]
[최수원 6이닝 4실점!! 데뷔 첫 멀티 홈런까지!!]
[대체 언제까지 그에게 억지로 휴식일을 부여할 생각인 걸까? 양키스 제프 클라크 감독의 이해할 수 없는 결정!! 최수원 2차전 제외]
[ESPN 실시간 시청자 420만!! 월드시리즈 제외 2020년대 최고 기록 경신!!]
“뭐? 일본 반응이 좋다고? 대체 왜? 한국이랑 일본 사이는 인도랑 파키스탄 관계 비슷한 거 아니야?”
“아, 그게. 아무래도 야구 쪽은 메이저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나오면 그게 좀 덜해지는 경향이 있기도 하고 그 라울 히메네즈 때문도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아······. 작년까지 NPB에서 뛰었던 용병이 활약을 했다. 뭐 그런 거야?”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