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285화 (285/305)

285화. 승리요정(2)

탬파베이와의 3연전 이후에 이어진 시리즈는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3연전이었다. 얘들은 아메리칸리그가 아니라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소속인데 1년에 13경기씩 붙는 탬파베이나 보스턴과 같은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팀들과 달리 얘들이랑은 1년에 딱 3경기밖에 붙지 않는다.

이걸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 양대 리그의 역사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게 뭐냐면······(중략)······해서 NL에 지명타자 제도가 도입된 지난 22년 룰이 개정되면서 2023년부터 동일리그 동일지구와는 52경기. 동일리그의 타지구와는 64경기. 그리고 다른 리그 14개 팀과 모두 홈, 혹은 원정에서 3경기씩을 치른다. 아, 왜 15개 팀 가운데 14개 팀이랑만 3경기씩을 치르냐고? 그야 인터리그 지역라이벌전이라고 따로 한 팀을 뽑아서 홈과 원정 2경기씩을 치르기 때문이다.

우리 양키스 같은 경우 메츠와 경기를 치르는데 이렇게 해서 총 162경기. 1년의 일정이 완성된다.

아무튼, 이 긴 이야기의 결론이 뭐냐 하면 지난 보스턴과의 홈 3연전 이후 휴식일 없이 탬파베이로 이동해서 3연전을 치렀던 것과 마찬가지로 워싱턴 역시 리그는 다르지만, 동부지구인 건 마찬가지라서 휴식일 없이 곧바로 3연전을 치르게 됐다는 뜻이다.

“하하하, 최수원 선수. 요즘 우리 교민들 사이에서 아주 인기가 대단합니다. 실물로 이렇게 뵈니까 정말 훤칠하네요.”

“아, 네. 감사합니다. 레베카 의원님.”

“어휴, 레베카 의원님은 무슨. 그냥 베키라고 불러줘요.”

레베카 김 의원.

캘리포니아 LA 한인타운 근처를 지역구로 하는 3선 하원 의원인데 워싱턴 경기라고 또 이렇게 직접 찾아왔다. 무려 캘리포니아 쪽 지역 기자들까지 서넛이나 데리고.

뭐, 정치인들이 이렇게 나타나서 사진 찍고 사라지는 게 주 업무인 건 미국도 한국이랑 큰 차이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적당히 안면 익혀두면 여러모로 편리한 것도 사실이고.

“참 아쉬워요. 아무래도 미국에서 한인이 가장 많은 지역은 로스앤젤레스인데 뉴욕은 너무 멀거든요. 만약 최수원 선수가 LA를 홈으로 했더라면 마치 한국에서 뛰는 것처럼 든든한 응원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하하, 감사합니다. 하지만 스포츠라는 게 그냥 잘 하기만 하면 국가, 혹은 인종까지도 초월을 하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양키스에서 정말 잘 해서 아주 든든한 응원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어쩌면 LA에 원정을 갔을 때는 다저스를 응원하는 한인 분들께 조금 미움을 살 수도 있겠지만요.”

“아, 그러고 보니 뉴욕에서 다저스로 원정 경기를 나오기도 하지요? 만약 그렇다면 저도 꼭 직관을 가도록 해야겠네요. 그때는 당연히 홈팀인 다저스를 응원하겠지만 동시에 우리 최수원 선수의 활약도 함께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아쉽게도 올해는 다저스와의 경기가 홈에서 있을 예정이지만 내년에는 원정 경기도 있으니 그때는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저도 베키 의원님의 성공적인 의정활동 응원하겠습니다.”

서로서로 적당히 덕담을 주고받고 기자들 앞에서 사진까지 크게 한 방 찍었다.

“혹시라도 어려운 일 생기면 주저 없이 이 번호로 연락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

워싱턴 내셔널스는 지난 2019년에 한 차례 우승했던 팀이다. 마켓의 규모도 상당해서 메가마켓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빅마켓 마지노선 정도에는 들어갈 만했다.

하지만 지난 2020년 이후 성적은 실로 처참했는데, 이는 팀의 고액 연봉자가 하나도 아니고 무려 둘이나 드러누운 덕분이었다. 그래도 얘들이 좀 영리했던 부분은 굉장히 빠른 타이밍에 윈나우를 포기하고 탱킹으로 돌아섰다는 부분이었는데 2021년 중반에 진짜 기둥뿌리 하나 빼놓고 죄다 유망주로 팔아먹는 선택은 이왕 탱킹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아주 제대로 보여준 선택이었다.

심지어 거기서 끝도 아니었던 게 2022년에는 마침내 그 하나 남은 기둥뿌리마저도 아주 제대로 팔아먹었는데 그 결과 2019년 우승 시점만 하더라도 거의 2억에 가깝던 페이롤을 2023년 시점에서 8천만 달러 아래로까지 줄여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2019년 당시 우승 멤버가 부상자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팀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그 터무니 없는 수준의 리빌딩이 과연 성공이었나를 묻는다면 글쎄?

결국 ‘탱킹’이니 ‘리빌딩’이니, 혹은 ‘윈나우’니 하는 모든 것들의 목표는 ‘우승’이다. 만약 그렇게 긁어모은 유망주들을 데리고 두 번째 우승을 달성한다면 그들의 리빌딩은 성공으로 남을 것이며 그렇지 못한다면 팀의 최초 우승 멤버를 모조리 잘라버림으로써 충성 팬들을 만들어내지 못한 형편없는 리빌딩으로 남을 것이다.

워싱턴의 마운드에 스탠 오웬스가 올라왔다.

[자, 마운드의 스탠 오웬스. 스탠 오웬스 선수가 올라옵니다. 이 선수 작년 겨울에 6년 1억 7천만 달러의 계약에 사인을 했죠? 특별히 인상적인 공은 없지만, 굉장히 단단하고 까다로운 투수라는 느낌입니다.]

[맞습니다. 이 선수 같은 경우도 유망주 시절에는 ‘포스트 클레이튼 커쇼’ 소리 듣던 선수거든요. 물론 그 당시 기대치를 충족할 만큼 포텐을 터트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속구,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모두 20-80 스케일 기준으로 55점에서 60점을 받을 만큼 훌륭합니다.]

[4가지 공이 모두 플러스피치에 근접했다는 건데. 확실히 까다로운 투수겠군요.]

앤서니 볼피가 타석에 들어섰다.

비록 지난 경기에서 탬파베이의 에이스인 숀 카펜터를 상대로 조금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양키스의 차기 프랜차이즈라는 이름처럼 이번 시즌 전체적으로 상당히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타자다.

하지만 현장의 카메라 가운데 상당수가 향한 곳은 마운드의 스탠 오웬스나 타석의 앤서니 볼피가 아니었다.

[그리고 오늘 경기. 드디어 제가 그렇게 이야기하던 타순의 조정이 이뤄졌습니다. 최수원 선수가 2번으로 애런 저지 선수가 3번으로 조정된 것인데요. 두 사람의 주루 능력을 생각하면 이건 너무 당연한 일일 겁니다.]

YES 네트워크의 해설자인 존 스털링의 말처럼 두 사람의 주루를 생각하면 수원이 애런 저지의 앞에 서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디 세상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합리적으로만 돌아간다던가. 지금 당장 은퇴해도 명예의 전당 첫 턴이자 영구결번 후보인 애런 저지는 아주 오랜 시간 양키스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는 꾸준히 2번 타자로 출장해왔다.

아무리 제프 클라크 감독이 존중할만한 현역 커리어를 보유한 감독이라고 해도 애런 저지만 한 선수는 조금 부담스럽다.

[네, 안 그래도 제프 클라크 감독 말이 애런 저지 선수 본인이 자신의 발목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는 최수원 선수를 앞에 배치해달라고 직접 요청했다고 하더군요.]

[뭐, 사실 애런 저지 선수에게도 나쁜 일은 아닐 겁니다. 이걸로 이제 홈런을 한 방 치면 2타점이 아니라 3타점짜리 홈런이 될 확률이 그만큼 올라간 셈이니까요.]

그렇기에 어느 정도 애런 저지가 이해할만한 충분한 시간. 그리고 그의 체면을 살려줄 만한 요식행위가 필요했다. 별 것 아닌 사소한 일 같았지만, 이런 사소한 감정들이 결국 팀의 최종 순위를 결정짓는 법이었으니까.

-딱!!!

4구 째.

앤서니 볼피의 초구가 우익수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갔다.

“아웃!!”

원아웃 주자 없는 상황.

어제 충분한 휴식을 취했던 최수원이 타석으로 걸어갔다.

“포심이랑 슬라이더는 확실히 좋더라. 나머지는 잘 모르겠고.”

“오케이.”

스탠 오웬스가 구사하는 네 가지 구종은 모두 above average pitch와 plus pitch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 거의 모든 투수들이 그렇듯 그 역시 모든 날에 그 네 가지 구종이 다 제대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더라면 그는 6년 1억 7천만 달러가 아니라 10년 3억 달러짜리 계약을 체결했을 테니까.

타석에 최수원이 올라왔다.

스탠 오웬스가 허리를 굽혀 마운드의 로진백을 한 차례 매만졌다.

최수원.

이제 고작 빅리그에서 네 경기밖에 출장하지 않은 신인.

하지만 결코 방심할 수는 없었다.

세상에 대체 어느 신인이 4경기에 출장하여 13타수 8안타 3홈런. 0.615/0.615/1.385의 터무니 없는 기록을 세운단 말인가.

홈플레이트 너머의 동갑내기 포수 빅터 크루즈가 보내온 사인에 스탠 오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

“루키, 반가워. 빅리그에 온 걸 환영하는 의미에서 내가 선물 하나 줄까?”

“한가운데 속구?”

“오우, 어떻게 알았어?”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워싱턴의 포수인 빅터 크루즈가 말을 걸어왔다. 아니, 이건 말을 걸었다기보다는 입을 털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앞선 보스턴이랑 탬파베이 선수들도 다들 나에게 선물을 너무 주고 싶어 하더라고. 내가 또 그런 거 거절하는 성미는 아니라서 넙죽넙죽 다 받았거든.”

“어쩐지. 그래서 타격 성적이 그렇게 좋은 거구나?”

“그렇지. 원래 타자는 주는 것만 잘 받아먹어도 이 정도 성적은 나오는 법이잖아.”

가벼운 심리전.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심리전이라 표현하기도 부끄럽다. 한가운데 속구고 뭐고 그냥 내 머릿속을 조금이라도 흔들기 위한 시도들이니까.

초구.

살짝 높은 코스.

내가 움직이던 방망이를 멈춰 세웠다.

-뻐엉!!

배트 끝도 그렇고 손목도 그렇고 진짜 완벽한 체크 스윙이었다. 근데 빅터 크루즈 녀석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1루심에게 체크스윙 여부를 묻는다. 당연히 심판의 판정은 체크 스윙. 녀석이 투덜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아, 까비······. 돌아간 것 같았는데.”

“글쎄. 그보다 한가운데 속구 준다더니 초구부터 원 바운드 되는 커브를 던져 버리네?”

“그게 스탠이 가끔 손에서 공이 빠질 때가 있거든.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진짜 한복판에 속구 하나 줄 테니까 잘 받아먹어야 한다?”

“그보다 조심해야 할 거야. 그렇게 원바운드되는 공 던지다가 뒤로 빠지면 내가 그대로 2루까지 달릴 수도 있거든.”

“오우, 너 모르는구나. 내가 또 철벽 그 자체거든. 절대 공이 뒤로 흐를 일이 없지.”

확실히 앞선 커브는 좀 별로였다. 손을 떠나는 순간 손에서 튀는 것이 눈에 확 들어왔다. 조심해야 할 건 체인지업인가?

두 번째.

몸쪽 높은 코스 빠른 공.

회귀하기 전을 기준으로도 절대 쉬운 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딱!!!

타구가 담장을 두들겼다.

[최수원!! 1루 지나 2루까지!!! 2루에서!!]

“세이프!!”

[세입입니다!! 최수원!! 담장을 직격하는 2루타!! 1회 초 원아웃. 양키스가 벌써 득점권에 주자를 만들어 냅니다.]

***

[뉴욕 양키스와 워싱턴 내셔널스의 1차전!! 뉴욕 양키스 6:2 승리!!]

[4타수 2안타 1볼넷!! 슈퍼 루키의 미친 질주!!]

[최수원!! 데뷔 타석 이후 5경기 연속 안타!! 양키스 팀내 기록까지 이제 2경기!!]

[시리즈 2차전 시즌 4호 홈런포를 기록하는 최수원!! 그야말로 압도적 활약!!]

[4타수 1안타 1볼넷!! 슈퍼루키의 질주는 과연 어디까지?]

[최수원 시리즈 3차전 결장? 제프 클라크 감독의 결정은 과연 올바를까?]

[익명의 관계자 ‘이것은 제프 클라크 감독의 기우에 불과하다. 최수원은 한국에서 이미 결장 없는 루틴을 완성했다.’]

[제프 클라크 ‘최수원은 아직 스무살의 어린 선수. 그의 재능은 무한하며 우리에게는 그 무한한 재능이 무사히 꽃필 수 있도록 지켜줄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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