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화. 선발의 품격(6)
[최수원 선수의 경우 속구와 커브 투 피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버핸드에 가까운 스리쿼터로 커브가 좌타자 기준으로는 몸쪽, 우타자 기준으로는 바깥으로 빠지는 만큼 우타자에게 조금 더 까다로운 투수거든요. 그런데 우타석이라니. 이건 상당히 좀 의아한 선택입니다.]
완더 프랑코는 많은 스위치히터, 혹은 좌타자들이 그렇듯 본래 오른손잡이였다.
오른손잡이가 좌타석에서 설경우 보는 이득은 대각선에서 출발하는 우투수의 공을 아주 미세하게나마 더 오래 지켜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오른손이 방망이 아래에 위치함으로써 배트 컨트롤이 조금 더 좋아진다는 점이다. 방망이 위를 잡는 손이 파워, 아래를 잡는 손이 핸들링을 주로 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오른손잡이인 그가 좌타석에 섰을 때는 파워에서는 손해를 본다는 뜻이기도 했다.
‘저 녀석 디셉션이 이상해서 좌타석이라고 딱히 잘 보이는 느낌도 아니야. 차라리 힘으로 잡아 당기는 편이 더 낫겠어.’
완더 프랑코는 그렇게 판단했다. 단순히 자신의 타석만을 보고 내린 결정이 아닌 앞선 다른 타자들의 타석까지 두루 지켜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완더 프랑코 선수 같은 경우 작년에도 우투수를 상대로 우타석에 섰던 경기가 두 경기 정도 있습니다. 사실 이 선수도 많은 스위치히터들이 그렇듯이 우타석에서 성적이 0.389/0.431/0.577이고 좌타석 성적이 0.288/0.346/0.427로 차이가 조금 나는 편이거든요.]
[그 정도 차이면 우타자로 전향을 진지하게 고려해봐도 될만한 수치 아닌가요?]
[아뇨, 또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실제로 우투수를 상대로는 왼쪽 타석에서 성적이 눈에 띄게 좋은 편이거든요.]
보통 좌상바. 그러니까 좌완 상대 바보라는 말은 많이 쓰인다. 좌완을 상대로 바보가 되는 타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상바라는 말은 드문데 애초에 리그의 7할 이상. 어쩌면 8할에 육박하는 숫자가 우완인 상황에서 우완을 상대로 바보인 타자는 주전을 차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완더 프랑코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완을 상대로 비교적 성적이 부족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쳐 날뛰는 좌완 상대 성적에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고 좌타석에서 우완을 상대로 보여준 성적 역시 wRC+로 환산했을 때 무려 113으로 리그 평균을 웃도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유격수 내에서는 탑급의 성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투아웃에 주자 없는 상황!! 최수원 와인드업!!]
초구.
몸쪽 깊숙한 속구.
-부웅!!
“스트라잌!!”
두 번째
바깥쪽으로 살살 유인하는 유인구.
-뻐엉!!
그리고 세 번째.
낮은 코스 빠른 공.
-뻐엉!!
“스트라잌!!!”
[3구째!! 스트라이크!! 이걸로 볼 카운트는 1-2. 완더 프랑코 선수. 잠시 타임을 요청하네요.]
[최수원 선수. 아주 유리하게 승부를 잘 가져가고 있습니다. 커맨드가 아주 훌륭해요. 아, 그리고 잠깐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자면 완더 프랑코 선수. 우투수를 상대로는 왼쪽 타석에서의 성적이 눈에 띄게 좋다고 말씀드렸었는데요. 그게 어느 정도나면 작년 우투수를 상대로 우타석에 섰던 두 경기 아홉 타석에서 9타수 1안타 1홈런 6삼진으로 0.111/0.111/0.444의 성적이었습니다.]
[아······. 어째서 저런 성적임에도 여전히 스위치히터로 뛰는지 확 이해가 되는 성적이군요.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는 대체 어째서 지금 우타석에 섰는지를 묻고 싶어지는 성적입니다.]
그래, 완더 프랑코는 분명 우완을 상대로도 113의 wRC+를 리그 탑급의 유격수였다.
‘단’ 좌타석에서 우타자를 상대한다고 이야기 했을 때.
네 번째.
바깥쪽 높은 코스.
-부웅!!!
뚝 떨어지면서 바깥으로 완전히 빠져나가는 커브볼.
“스트라잌!! 아웃!!”
[스트라잌!! 아웃!! 삼진입니다!! 방망이를 끌어내는 아주 훌륭한 커브볼!! 최수원이 완더 프랑코에게 또 한 번 삼진을 뽑아내며 3회 말 탬파베이의 공격을 1실점으로 마무리 짓습니다.]
[마지막 위닝샷이 아주 제대로 들어갔네요. 최수원 선수 노아웃 1, 3루의 위기를 정말 침착하게 잘 막아냈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대량실점의 위기였는데 말이죠.]
[양키스 덕아웃의 움직임도 아주 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분위기를 잘 끊어줬어요. 보시면 해롤드 코치가 마운드를 방문하기 전과 후의 커맨드가 확실히 다르거든요. 아직 젊은 선수인 만큼 저런 식의 적절한 멘탈케어는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최수원 선수는 마이너도 제대로 거쳐오지 않은 선수니까요. 그의 재능이 메이저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재능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보너스 베이비들도 모두가 메이저를 씹어먹을 재능들이었다는 점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겁니다.]
[맙소사. 스털링. 보너스 베이비라니. 대체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우리 아버지가 올해로 여든이신데 우리 아버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이야기잖아요.]
점수는 여전히 8:1.
노아웃 주자 1, 3루일 때만 하더라도 조금 뜨거워졌던 탬파베이 레이스의 관중석에서 한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올해 우승 못 하면 당분간 희망 없는 거 맞지? 진짜 영혼까지 끌어 모은 거잖아.”
“아니, 그래도 1년 정도는 더 달려볼 수 있지 않을까? 완더 프랑코 계약 32년까지에 팁옵션 포함하면 33년까지잖아.”
“그건 그런데······. 완더 프랑코 연봉을 우리 팀이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니까.”
“하여간 이 거지 같은 팀은 진짜······. 구장 위치만 좀 옮기면 훨씬 괜찮을 텐데. 대체 왜 신구장을 또 여기다기 짓는다는 건지. 어휴······.”
양키스의 네 번째 공격.
탬파베이의 24살 우완 투수인 제이콥 카터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앞선 2회 초에 1.1이닝만에 8실점을 하고 강판당한 메이슨 몽고메리를 대신하여 마운드에 올라온 이 젊은 투수는 작년 8월에 콜업되어 17.2이닝 평자책 4.36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번 스프링 트레이닝에서도 마지막까지 5선발 자리를 두고 메이슨 몽고메리와 경쟁했던 투수로 그가 5선발 경쟁에서 밀린 이유는 메이슨 몽고메리가 좌완이라는 이유밖에 없다는 평가를 듣는 남자였다.
***
메이저리그의 스피드업 규정에 따르면 공수교대는 2분 15초의 시간제한이 따른다.
수비하다가 타석에 들어가려면 모자랑 글러브도 내려놓고 헬멧 쓰고 보호장구 착용하고 방망이 들고 나가야 한다. 게다가 수비 하면서 몸이 좀 굳었을 수도 있으니 방망이도 몇 번은 휘둘러 봐야 하는데 덕분에 덕아웃 반대편 코너 외야수. 그러니까 오늘 같은 경우 우익수가 선두 타자일 경우 100미터를 설렁설렁 걸어오면 시간이 좀 촉박한 느낌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경우는 시간 적으로 따지자면 우익수에 비해 상당히 널널했다. 덕아웃 돌아오는 시간으로 따지면 한 10초 남짓이었지만 2분 15초에서 10초는 분명 큰 차이였으니까.
근데 뭐랄까? 좀 빡빡했다.
3회 말에 던진 공의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상황이 터프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완더 프랑코라는 타자를 상대로 내가 진짜 심혈을 기울여 승부를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상당히 힘든 승부를 하고 돌아왔는데 잠깐 숨 돌릴 시간도 없이 바로 타석에 들어간다는 느낌이었다.
마운드에 투수는 제이콥 카터.
24살밖에 안 됐고 오늘 던지는 걸 보니 공도 상당히 괜찮은데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 하는 투수였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뭐, 저렇게 잘 던졌지만 롱런하지 못하고 스러지는 투수 유망주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심지어 고작 25살의 나이에 사이 영을 두 번이나 받았던 투수도 28살에 꺾이고 32살에 은퇴하는 게 이 바닥이다.
앞서 2이닝 정도를 지켜본 결과 녀석이 주로 던지는 공은 속구, 슬라이더. 그리고 특이하게 스플리터를 던진다. 물론 스플리터는 완성도가 좀 낮은지 우타자 상대로는 속구랑 슬라이더 위주의 볼배합을 가져가긴 했지만 그래도 머리 한구석에 새겨둘 만한 가치는 있는 공이었다.
초구.
빠른 공.
살짝 몰린 공이다.
초구부터 거의 서비스에 가까운 공.
이런 공을 놓치면 전직 홈런왕 타이틀이 아깝······.
-부웅!!
“스트라잌!!!”
아, 속구인 줄 알았는데 슬라이더였다.
저 녀석 터널링이 상당히 좋다. 게다가 구속도 상당하다. 전광판을 바라보니 구속이 무려 93.2마일이 찍혔다. 전형적인 하드 슬라이더다.
나도 피칭 레파토리에 좀 추가하면 참 좋을 텐데. 내 피칭 인스트럭터인 윌리엄 말이 아직 뼈대도 다 완성이 안 됐고 팔에 근육도 덜 붙은 상태라서 부상 위험이 너무 높다고 해서 일단 제쳐둔 구종이다.
두 번째.
마찬가지로 빠른 공.
살짝 바깥쪽 코스에 많이 높았다. 과장 조금 보태서 거의 눈높이로 날아오는 공이다. 완벽하게 손에서 빠진 공.
-뻐엉!!!
당연히 심판의 손이 올라오지 않았다.
이왕 빠질 거면 복판에 하나 들어왔으면 참 좋았을 것을.
세 번째.
복판.
하지만 궤적이 조금 달랐다.
스플리터.
유인구다.
-뻐엉!!!
[원바운드 되는 공!! 볼카운트 이제 2-1. 제이콥 카터 선수. 지금 최수원 선수를 상당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지금 12타석 12타수 7안타에 2루타 하나. 홈런 하나. 0.583/0.583/1.167을 기록하고 있는 타자 아닙니까. 이대로라면 이달의 신인은 물론이거니와 이달의 선수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워워. 진정해요. 스털링. 이제 고작 다섯 경기째고 이번 달 경기는 아직 23경기나 남았어요.]
[아 물론 저도 당연히 이 미친 성적을 한 달 내내 유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1, 2주만 더 유지하고 완만하게 떨어져 준다고 해도 충분히······.]
그리고 네 번째.
슬라이더를 던지려던 공일 수도 있고.
그냥 속구가 손에서 빠진 걸 수도 있다.
근데 그게 뭐 중요할까.
중요한 것은 그 공이 밋밋하게 복판으로 들어왔다는 점이다.
아무리 투수로 출장했어도 이런 공을 놓치면 전직 홈런왕 타이틀이 아깝다.
-딱!!!!
[······으아아아아!!! 쳤습니다!! 최수원!! 빠른 타구!! 쭉쭉 뻗어 나갑니다!! 좌중간!! 좌중간!!]
[중견수 에반 머피!! 빠르게 공을 쫓습니다!! 수비 위치도 좋았고 스타트도 아주 빠릅니다!!]
[넘어가느냐!! 넘어가느냐!! 넘어!!!! 갔습니다!!! 홈런!! 홈런입니다!!! Fxxking 시프트!! 하하, 백날천날 해보라고 하세요. 테드 윌리엄스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결국 잡아당겨서 넘기면 그만이거든요.]
[어? 스털링. 분명 테드 윌리엄스가 아니라 조 디마지오의 팬이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아니,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우리 양키스의 이번 겨울이 완벽했다는 것을 저 스무살짜리 선수가 지금 증명하고 있는데요. 지금 뉴욕 사무실에 있는 캐시먼은 이 홈런을 리플레이로라도 봤다면 하던 일 다 멈추고 당장 최수원에게 건낼 장기계약서 초안을 작성해야 할 겁니다. 지금 양키스의 미래가!! 마지막 한 자릿수 백넘버가 자신의 데뷔시즌. 첫 번째 등판 경기를 완벽하게 치러내고 있으니까요.]
아슬아슬하게 담장을 넘어간 타구.
확실히 전력으로 피칭을 끝낸 직후라 힘이 조금 딸리기는 했다. 타구가 잘 뻗는 탬파베이 구장이 아니었다면 담장 바로 앞에서 잡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뭐 어쨌거나 홈런은 홈런이다.
9:1.
홈런을 한 방 쳐서일까?
느낌이 정말 좋았다. 어쩌면 오늘 경기 남은 이닝에서 정말 완벽한 모습을 보여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최수원 5.1이닝 4실점. 3타수 2안타 1홈런 그리고 시즌 첫 번째 승리!! 완벽한 데뷔전!!]
[5회 말. 승계 주자를 모조리 불러들이는 조쉬 클린턴.]
[최수원 ‘오늘 수비를 탓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5회의 피칭이 조금 아쉬웠다. 땅볼로 병살을 노렸는데 공이 좀 덜떨어졌고 완더 프랑코가 거기서 공을 아주 잘 퍼 올렸다. 만족할만한 데뷔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에러? 안타? 석연찮았던 두 번의 판정. 과연 최수원의 4자책은 2자책으로 정정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