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화. 선발의 품격(3)
탬파베이의 1번 타자는 에반 머피.
스몰마켓팀의 많은 유망주가 그렇듯 슈퍼2 조항을 피하기 위해서 2026년 7월 중순에 콜업된 중견수였다. 어제 경기 성적은 무려 4타석 3타수 2안타 1볼넷. 그야말로 타격감이 절정으로 올라온 상황.
[자, 지난 보스턴과의 지난 시리즈에서 타자로서 자신의 역량을 완벽하게 증명했던 최수원 선수!! 오늘은 드디어 투수로서의 역량을 증명할 차례입니다.]
[이 선수 시범 경기에서는 총 14.1이닝 8자책으로 5.0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만 주목할만한 점은 후반으로 갈수록 더 좋은 피칭을 보여줬다는 점일 겁니다.]
[그렇죠. 아무래도 아시아에서 온 선수는 메이저리그의 공인구나 마운드에 적응하는 데 제법 애를 먹는 편이니까요.]
[과연 양키스의 이 슈퍼루키는 피칭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투수 와인드업!!]
마운드의 최수원이 크게 와인드업했다.
그리 특별하지 않은 부드러운 폼.
하지만 머리 뒤쪽으로 숨긴 손이 튀어나오는 타이밍이 조금 애매했으며 좌타자인 에반 머피에게는 우완인 최수원의 손이 그의 머리 뒤에 가려진 시간이 미세하게 더 길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결국 팔은 뻗을 수 밖에 없고 사람의 구조상 좌타자에게 우투수의 피칭은 더 관찰하기 쉬운 법이었으니까.
‘어?’
머리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팔.
그 타이밍이 너무나도 미묘했다. 그래서였을까? 손에서 공이 뽑혀 나오는 순간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어차피 최수원이 구사하는 공은 두 가지.
속구와 커브뿐이다.
빠르게 날아오는 공.
바깥쪽에서 몸쪽을 향해 날아오는 그 궤적은 좌타자인 에반 머피에게는 조금 유리한 궤적이었다.
그래, 본질적으로 좌타자는 우투수에게 더 유리한 법이다.
타이밍은 살짝 뺏겼지만, 에반 머피의 방망이가 매섭게 움직였다.
-딱!!!
그 결과 몸쪽 높은 코스로 들어오는 속구를 받아쳤다.
‘아······.’
하지만 타이밍이 살짝 밀렸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들어오는 공.
3루 파울라인을 살짝 넘어 날아간 타구를 양키스의 3루수 오스틴 배틀이 가볍게 받아냈다.
“아웃!!”
[초구!! 3루 파울 플라이 아웃!! 최수원의 아주 깔끔한 스타트!!]
[와, 1회, 선두 타자에게 던진 초구의 구속이 지금 97마일이 나왔습니다. 공이 정말 빠르네요.]
[많은 스카우트들이 포심만 따진다면 메이저에서도 충분히 상위권에 랭크될만한 포심이라고 평가했던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거든요. 저 선수 작년 KBO에서 시즌 평속이 거의 96마일. 최고 구속은 101마일까지 기록했어요.]
“디셉션이 좀 까다로워. 보통 우투수는 좀 디셉션이 까다로워도 릴리스 포인트 놓치는 일이 거의 없는데 어렵더라고. 그리고 표기되는 것보다 공도 좀 빠르게 들어오는 느낌이고.”
“표기되는 것보다 더 빠른 느낌이라고? 공이 97마일이었는데?”
“어. 나도 저 녀석 강속구 투수인 건 알고 있었으니 그에 어울리는 속도로 방망이 휘둘렀는데 좀 밀렸거든.”
타석에서 물러난 에반 머피가 대기 타석의 3번 타자 조쉬 윌콕스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타석에 2번 타자인 완더 프랑코가 올라왔다.
완더 프랑코.
그는 01년생의 스위치 히터로 지난 2017년에 불과 16세의 나이에 탬파베이가 무려 382만달러의 국제유망주 계약금을 쏟아부어 영입한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내야수였다.
2021년 6월 21일 만 20세의 나이에 빅리그에 콜업된 이후 무려 43경기 연속 출루. 0.288/0.347/0.463에 OPS+ 127. bwar기준으로 3.4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며 자신의 실링이 진짜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 결과 탬파베이는 스몰마켓에 어울리는 과감한 행보를 보여줬는데 이제 고작 반년을 소화한 선수에게 무려 12년 2억2천3백만 달러라는 계약을 건넨 것이다.
아, 물론 트레이드에 제한이 없는 상당히 노골적인 계약으로 많은 이들은 그의 연봉이 2천만 달러를 넘어서는 2027년 즈음에는 탬파베이가 그를 매물로 올려둘 것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2028년인 지금. 탬파베이는 놀랍게도 그를 그대로 안고 가는 것을 선택했으며 그 결과 그들의 페이롤은 창단 이후 최대인 9,200만 달러. 메이저 30개 구단 가운데서도 무려 21번째로 높은 페이롤을 기록하고 있었다.
홀로 템파베이 레이스 총 페이롤의 27%를 차지하는 사나이 완더 프랑코.
최수원 역시 당연히 그를 잘 알고 있었다.
‘역사에 남을 호구 계약.’
사실 이 호구 계약이라는 말은 상당히 중의적인 표현이었는데 첫 번째 호구 계약은 그가 맺었던 12년짜리 223M의 장기계약이었다. 여기서 호구는 완더 프랑코로 그는 그 12년의 기간 동안 평균적인 가격으로 환산할 경우 약 430M에 해당하는 활약을 보여줬다. 그리고 두 번째 호구 계약은 그가 2034년에 뉴욕 메츠와 체결했던 33세 시즌부터 41세 시즌까지의 8년 290M짜리 계약이었다. 여기서 호구는 당연히 뉴욕 메츠로 그는 그 8년 동안 고작 7WAR의 누적을 기록했다.
그래, 분명히 34세 이후의 완더 프랑코는 폐급이었다.
하지만 33세까지의 완더 프랑코는 33세부터 41세라는 상당한 나이에도 연평균 3,625만 달러의 계약을 받아낼만큼 압도적인 타자였다.
회귀하기 전 2034년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최수원은 그 전성기의 완더 프랑코를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회귀하기 직전 34세 시즌을 보냈던 최수원은 33세 타자가 8년 290M이라는 계약을 받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우투수인 최수원을 상대하기 위해 완더 프랑코가 자연스럽게 좌타석에 들어왔다.
초구.
몸쪽 아주 깊숙하게 파고 들어가는 공.
앞선 에반 한센과 마찬가지였다.
완더 프랑코가 최수원의 릴리스 포인트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다.
-뻐엉!!!
“스트라잌!!!”
초구 몸쪽 빠른 공 스트라이크.
‘흐음······. 제법 날카로운데?’
21세기 이후 가장 위대한 타자인 마이크 트라웃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첫 타석에서는 최대한 공을 많이 보려고 노력한다. 경기의 나머지 타석을 위해서이다.’
‘스트라이크 존을 유동적이며 첫 타석에서 존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큰 도움이 된다.’
물론 그 역시 커리어 후반기로 갈수록 초구에 대한 스윙을 적극적으로 늘려나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확실한 공에 대한 스윙이었지 초구에 대한 신중한 접근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완더 프랑코 역시 트라웃의 그런 접근에 동의했다.
‘역시 우완이라서 그런가? 몸쪽으로는 상당히 깊숙한 곳까지 스트라이크 콜이 나오네. 게다가 디셉션이 좀 이상한 편이야. 이거 차라리 우타석에 서는 게 더 나을지도?’
두 번째.
최수원이 또 한 번 크게 와인드업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미묘한 릴리스 포인트.
-딱!!!
하지만 완더 프랑코의 압도적인 타격감이 그 미묘한 타이밍을 무시하고 존 안쪽으로 파고드는 속구를 두들겼다.
[높게 뜬 타구!! 3루 내야 관중석 깊숙한 곳을 직격하네요.]
[역시 완더 프랑코. 스윙이 상당히 매섭습니다.]
[자, 하지만 볼카운트는 0-2로 이제 최수원 선수에게 상당히 유리한 볼카운트예요.]
최수원이 잠시 허리를 굽혀 로진백을 툭툭 두들겼다.
역시 살짝 늦게까지 잠을 푹 잔 덕분일까? 최수원은 오늘따라 몸이 정말 가볍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었다.
피칭이란 원래 아주 미세한 변화만으로도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이다.
데뷔전. 뻗치는 힘. 그리고 미세한 팔각도.
본래 최수원의 폼은 부상의 위험을 아주 철저하게 제거한 가장 안전하면서 무난한 폼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최수원의 팔꿈치 각도는 본래보다 약 0.7도 정도 높았는데 이 미세한 차이는 구위나 구속에 커다란 영향을 주지는 못 했지만, 좌타자가 바라보는 시야각에 미묘한 영향을 주고 있었다. 또한, 팔을 휘두르는 속도 역시도 최수원 본인은 느끼지 못할 만큼 아주 미묘하게 틀어져 있었는데 이 역시 투수 데뷔전이 주는 긴장감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세 번째.
완더 프랑코는 생각했다.
여기서 하나 빠지는 공이 들어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니면 그냥 삼구삼진을 잡으러 들어올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높은 코스.
완더 프랑코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리다?’
83.7마일의 커브.
방금 전까지 97마일짜리 속구가 나오던 타이밍에 고작 83.7마일짜리 커브는 대부분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기 충분한 공이었다.
하지만 완더 프랑코는 결코 ‘대부분’의 타자가 아니었다. 최수원이 기억하지 못하는 그가 개입하지 않았던 회귀 전의 2028시즌. 완더 프랑코는 무려 9.9의 WAR을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의 MVP를 차지하는 타자였으니까.
그의 방망이가 완벽하게 멈춰섰다.
-뻐엉!!!
그리고 잠깐의 정적.
“스트라잌!!! 아웃!!!”
구심의 단호한 스트라이크콜.
[놀랍습니다! 스트라이크 존 하단을 공략하는 최수원 선수의 83마일 커브!! 완더 프랑코의 타이밍을 완벽하게 뺏었습니다.]
[여기서는 보통 공 하나 정도는 뺄 법도 합니다만 최수원 선수 굉장히 공격적으로 삼진을 가져오네요.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듭니다. 투수라면 무릇 이런 두둑한 배짱이 있어야죠.]
[하하, 스털링 해설위원은 아무래도 최수원 선수와 사랑에 빠진 모양입니다. 이제 최수원 선수가 나오면 칭찬밖에 할 말이 없는 것 같은데요?]
[마이크 끄면 저보다 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늘어놓는 마이클이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요. 아무튼 고작 공 네 개로 벌써 투아웃. 우리 양키스의 슈퍼루키가 정말 환상적인 투수 데뷔전을 치러내고 있습니다. 자, 타석에 3번 타자 조쉬 윌콕스 선수가 올라옵니다.]
최수원이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운이 좋았다.
역시 힘이 좀 뻗쳐서 그런가? 원래 원바운드 되는 공으로 하나 빼려고 했는데 팔을 휘두르는 속도가 평소보다 좀 좋아서 그랬는지 공에 스핀이 완벽하게 먹히질 못했다.
하지만 완벽하게 공을 던진다고 다 스트라이크가 되는 게 아닌 것처럼 실투가 나왔다고 다 두들겨 맞는 것이 아니다. 야구란 원래 그런 종목이니까.
타석에 적발의 커다란 덩치가 올라왔다.
조쉬 윌콕스. 누가 봐도 아일랜드 계의 피가 진하게 흐르는 이 녀석은 2할 7푼의 타율에 매년 20-20을 기대 가능한 호타준족의 타자였다. 그리고 오늘 경기 최수원이 상대하는 첫 번째 우타자이기도 했다.
앞서 에반 머피에게 들었던 충고를 바탕으로 조쉬 윌콕스는 대기 타석에서 완더 프랑코를 상대하는 최수원의 공을 살폈다. 하지만 충분하지 못했다. 고작해야 공 세 개. 그 결과 완더 프랑코의 타석에서 얻을 수 있었던 교훈은 오늘 심판이 몸쪽 공에 좀 후하다는 점뿐이었다.
‘저 녀석 앞서 삼구삼진도 그렇고, 굉장히 공격적인 녀석이야.’
존 안쪽으로 들어오는 공이라면 무조건 휘두르겠다.
마운드의 최수원이 첫 번째 공을 뿌렸다.
높은 코스!!
그가 좋아하는 공이다.
조쉬 윌콕스가 힘차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부웅!!!
“스트라잌!!”
82.9마일의 뚝 떨어지는 커브가 그의 헛스윙을 끌어냈다.
타이밍도 놓쳤고 코스도 놓쳤다.
단순히 공격적인 투수라고 생각했는데 일단 초구를 빼버리다니.
조쉬 월콕스의 마음이 살짝 복잡해졌다.
‘역시 오늘은 이 정도로 힘을 줘야 공이 제대로 떨어지네.’
별다른 생각 없이 앞서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던 커브의 감각을 재정비한 최수원이 두 번째 공을 준비했다.
현대 야구답게 볼배합은 덕아웃이 판단에 맡겼다.
물론 앞서 완더 프랑코에게 던진 세 번째 공이 원바운드 되는 대신 존 안에 들어갔던 것처럼 그들이 요청한 대로 공이 들어가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두 번째.
무릎 높이로 들어가는 몸쪽 빠른 속구.
무려 97.8마일의 강속구가 정확하게 수원이 원하든 그곳으로 빨려들어갔다.
-딱!!!
그리고 조쉬 윌콕스가 그 공을 아주 제대로 잡아당겼다.
쭉쭉 뻗어나가는 공.
양키스의 좌익수인 앙헬 카브레라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메이저리그의 코너 외야수였지만 마린스의 이주혁만큼 빠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와 비교되는 것이 미안할 만큼 정확한 타구 판단과 순발력이 그 쓸데없이 빠르기만한 주력보다 훨씬 유용했다.
[앙헬 카브레라의 깔끔한 수비!! 1회 말 탬파베이 레이스의 공격이 이렇게 끝이 납니다. 삼자범퇴!! 최수원이 고작 공 여섯 개로 레이스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냅어요. 스털링 위원 어떻게 보셨습니까?]
[정말 완벽한 데뷔전 첫 번째 이닝이었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네요. 아, 그리고 양키스는 방금 최수원 선수가 완더 프랑코 선수를 상대로 삼진을 잡아냈던 공을 꼭 보관해놔야 할 겁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저 공. 아마 나중에 스타디움에 양키스 박물관에 꼭 전시될 것 같거든요.]
그리고 2회 초.
글러브 대신 방망이를 쥔 최수원의 차례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