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지나간 시대의 전설?(7)
[3타수 2안타 1홈런. 태평양을 건너 온 20살 유망주의 압도적 기량!!]
[우리가 기대했던 모습 그 이상을 보여준 한국의 유망주!!]
[유망주? No!! 스완 그는 이미 메이저 정상급의 기량을 갖춘 타자.]
[타격에 대한 입증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이제 남은 것은 피칭에 관한 의문 부호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시범 경기가 끝난 이후 올라온 기사들은 놀라울 정도로 칭찬 일색이었다. 아, 물론 한국의 기사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한국 쪽 기사는 이미 칭찬을 넘어 찬양의 범주에 들어설 지경이었으니까. 놀랍게도 이 칭찬들은 매일 나에 대한 혹평만 늘어놓던 뉴욕 쪽 기자들이 작성한 기사였다.
“아무래도 상대가 맥스 프리드였으니까.”
“맞아. 내가 알기론 작년에 맥스 프리드 피홈런이 한 자릿수라고 알고 있거든.”
“맞아. 163.1이닝에 피홈런 9개.”
나에게 굳이 나에 관한 기사를 보여준 조쉬와 도널드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둘 다 오늘 경기 없어?”
“스완, 아무리 네가 먼저 할 거 다 하고 퇴근한다고 해도 우리한테 너무 관심 없는 거아니야?”
“맞아. 우리 바로 어제 등판했었잖아. 난 삼진 하나 잡았고. 도널드는 0.2이닝 무실점으로 잘 막았고.”
어쩐지, 오늘 원정 경기 버스가 곧 출발할 예정인데 둘 다 느긋하다 싶더니 이미 홈에서 던진 이후였다. 나도 사실 타석에 한 번 선 김에 감각 좀 이어갔으면 했다. 하지만 코치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근데 그러면 스완 너 내일 쉬고 모레 다시 등판하는 거야? 아니면 내일 타자로 뛰고 모레 투수로 등판?”
“글쎄. 이따가 감독님이랑 이야기하기로 했어. 몸 상태 보고 결정하자고 하시더라고.”
“역시······. 특급 유망주답게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는 거네. 이번 시즌 이닝 수 제한도 걸리지 않았어?”
“아니, 그건 아직 이야기 안 했지. 애초에 선발로 뛸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지금까지 한 거 보면······. 도밍고랑 콜 씨. 그리고 딜런 정도가 1, 2, 3선발 확정이고. 나머지 두 자리 경쟁에서는 스완 네가 제법 앞서가는 상황 아닌가?”
“너희가 보기엔 그래 보여?”
“어, 내가 봐도 도널드 말처럼 스완 네가 상당히 앞서 있는 것 같아. 뭐 순수하게 성적만 보면 좀 애매한 구석이 있기는 한데······. 일단 26인 액티브 로스터의 한자리는 무조건 네 꺼고. 화제성도 있고. 나이도 아직 스무 살밖에 안 됐으니까.”
사실 나도 조쉬의 말에 공감했다.
순수하게 실력만 따지자면 내가 무조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고 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본래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하지 않던가. 게다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꼭 안 들어가더라도 나이나 기타 등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게 이 바닥이다.
스물일곱 살에 간신히 5선발급 기량을 보여주는 선수와 그보다 살짝 못하지만 나이가 스무 살인 선수가 있다면 보통은 후자가 선발로 뛰기 마련이다. 지금 당장에야 전자가 조금 나을 수 있지만 장래의 성장 가능성을 보면 후자 쪽이 훨씬 높고, 심지어 그 성장이 시즌 중에 이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감하는 건 공감하는 거고······.
솔직히 좀 갑갑했다.
겨우내 피칭에 집중했고 어느 정도 성과도 얻었다.
속구는 빠르고 커브도 진짜 괜찮다. 컨트롤도 이만하면 됐고 그런데 여전히 에이스급이라고 불리는 투수들과의 격차는 크다.
‘내 재능이 그냥 여기까지인 건가?’
야구에서 재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타자로 명예의 전당급까지 찍어봤기에 잘 알고 있다. 이게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더 어처구니없는 부분은 재능이 있더라도 안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그건 회귀 이전의 쪼유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피지컬적으로 재능이 저렇게 대단한데 프로 1군 무대도 제대로 못 뛰고 막창 가게 사장님으로 전직을 했다.
물론 102마일짜리 공을 스트라이크 존 안에 던질 수 있으면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문제는 내 목표가 단순히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정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투타겸업은 결국 내가 더 위대한 선수로 남고 싶다는 욕심의 발로다. 그런데 지금 이 정도 피칭이면 이건 차라리 전업 타자를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은 수준이다.
‘몸은 젊어지고 기술은 그대로라서일까? 어째 돌아오기 전보다 타격이 더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KBO에서 뛸 때는 좀 긴가민가 했는데 메이저리그의 에이스급 투수까지 두들겨 보니 살짝 확신이 든다. 심지어 이건 내 타자로 최적의 몸 상태에서 아직 20kg이나 모자란 상황인데도 그렇다.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워어, 스완. 그런 표정 짓지 마. 뭐라고 하는 거 아니니까. 애초에 그런 모든 요소들이 다 빅리거의 조건이라고.”
“맞아. 솔직히 네 인기도 그렇고 스무살에 빅리그에 올라온 것도 그렇고. 누군가는 국내 드래프트 선수들이 오히려 역차별받는 거 아니냐고 그러지만, 해외유망주자격이라는 게 사실 너 정도 되는 선수에게는 오히려 굴레잖아. 당장 메츠에 알렉산더 맥도웰만 하더라도 너랑 동갑인데 벌써 재작년에 데뷔해서 작년에 신인왕까지 받았고 말이야.”
내가 잠시 침묵했던 것이 자신의 이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조쉬가 나에게 위로아닌 위로를 건넸다.
“고마워. 그런 의미에서 내가 좀 보답을 해야겠네.”
“보답이라니. 에이, 우리가 어디 그런 사이야? 물론 네가 또 고기를 사주겠다면 사양은 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그러면 우리 오늘 훈련 끝나고 또 고기 먹으러 가는 거야?”
“아니, 고기도 좋지만. 오늘은 내가 훈련 좀 도와줄게.”
“훈련을?”
“어, 피칭이야 내가 뭐 알려줄 수 없지만. 타자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이야기해줄 수 있으니까. 둘 다 라이브 피칭 한 세션씩 해줄게. 가자.”
***
조지 M. 스타인 브레너 필드.
적당히 배가 나온 중년의 남자가 한창 훈련에 열중하는 선수들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흐음······.’
2미터에 육박하는 키에 그에 어울리지 않는 얇은 몸의 투수가 공을 뿌렸다. 마치 채찍처럼 유연한 팔에서 뽑혀 나오는 공은 그 부드러운 폼과는 달리 상당히 위력적이었다.
96마일? 혹은 97마일?
그의 시대를 기준으로 한다면 리그 최정상급의 구속이었다. 아니, 지금이 3월 초임을 고려한다면 지금 시대를 기준으로도 매우 빠른 공이다.
-딱!!!
하지만 상대가 좋지 못했다.
타석에 선 타자는 정말 배팅볼이라도 치듯이 그 공을 두들겼는데 지금까지 던졌던 총 20개의 공 가운데 무려 11개가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로 외야 먼 곳까지, 혹은 담장 너머로까지 뻗어나갔다.
이어지는 투수는 180초반 정도의 키로 평범했지만, 앞선 녀석이 너무 길고 얇았던 탓인지 상대적으로 짧고 단단해 보이는 체구였다.
‘아니, 아니다. 저 녀석은 키에 비해 팔이 좀 짧은 편이구나.’
투수에게는 상당한 악조건.
실제로 앞선 투수에 비해 굉장히 역동적인 폼이었음에도 그 구속은 매우 부족했다. 하지만 그런 몸으로 메이저 스프링 트레이닝까지 남았다는 건 그 부족한 구속을 메울만한 다른 기량이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저 팔이 짧은 녀석은 길쭉이에 비하여 구속이 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오히려 더 나아서 20개의 공 가운데 땅볼이 10개에 가까웠고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는 고작 7개에 불과했다.
‘그런데 20개 중에 7개나 되는데 고작이라는 수식어가 맞나?’
물론 보통이라면 35%의 라인드라이브 앞에 ‘고작’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타자가 그 유명한 ‘아시아의 홈런왕’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최수원이 방금 라이브 배팅을 진행했던 두 투수에게 다가가서 뭐라 이야기를 나눴다. 통역을 굳이 데리고 가지 않는 것이 회화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좋은 일이다.
대화를 나누는데 통역을 사이에 두는 건 뭔가 좀 민망한 부분이 있으니까.
그가 최수원에게 걸어갔다.
“어?”
가장 먼저 그를 알아본 것은 선수가 아니었다.
닉 마셋이라고 했던가?
현재 양키스의 투수 코치를 하고 있는 저 남자는 20년 전쯤에 그와 같은 지구에서 뛴 적이 있었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가끔 양키스 행사가 있을 때 오가며 얼굴을 마주했으니 자신을 알아보는 것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닉 마셋이 그를 알아본 탓일까?
선수들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대체 저 중년의 남자는 누구지?’
‘닉 코치의 지인인가?’
‘아니 근데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리고 그렇게 그를 바라보는 선수들 가운데는 최수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 최수원.
저 투타겸업의 천재야말로 바로 오늘 그가 굳이 여기를 찾은 이유였다. 다만 뜻밖이었던 부분은 그 최수원이 그를 곧바로 알아봤다는 점이었다.
“구로다 히로키?”
“오우, 너 나를 알고 있었어? 내가 그렇게까지 유명한 선수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이거 뭔가 좀 뿌듯한데?”
“맙소사······.”
구로다 히로키.
그는 절대 시대를 지배한 에이스가 아니었다.
굳이 그의 실력을 따지자면 잘 쳐준다고 해도 수원이 어제 상대했던 맥스 프리즈 정도? 아니, 냉정하게 말해 전성기의 구로다 히로키는 맥스 프리즈보다 명백히 반 수는 낮은 투수였으리라.
하지만 만약 야구에 ‘로망’이라는 단어를 상징하는 선수가 존재한다면 수원은 주저 없이 그 자리에 저 배 나온 중년의 사내를 집어넣을 것이다.
“잠깐 이야기나 좀 할 수 있을까?”
구로다 히로키의 요청에 최수원이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
미리 말해두지만 난 일본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싫어하는 편이다. 솔직히 말해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한국인이라면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아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감정이 일본인 개개인에게까지 연결이 되느냐를 묻는다면 그건 또 그렇지가않다. 당장 내가 회귀하기 전 메이저에서 뛰던 당시에는 오히려 일본인이라서 더 친해진 녀석이 있을 정도다. 뭐랄까? 일본에 대한 불호보다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공감대가 더 강해진달까?
구로다 히로키는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존경할만한 업계의 선배라고 볼 수 있었다. 실력만 따지자면 그럭저럭 약팀의 에이스, 혹은 컨텐더 팀의 2선발급 정도 되던 투수였지만 그 행적 하나하나가 워낙에 로망이 가득하다.
굳이 나로 비유하자면 우승 못 하는 마린스에서 심지어 연봉까지 우승권 팀의 30%만 받아가며 FA잔류. 이후 30대 중반에 접어들어서야 ‘나의 기량을 시험해보고 싶다.’라는 이유를 들며 메이저에 진출한다.
그리고 30대 중반부터 마흔 직전까지 2선발급 기량을 뽐내주고는 메이저리그의 2천만 달러 제안 따위 걷어차고 그대로 400만 달러에 마린스로 복귀. 은퇴 직전에 마침내 25년만의 정규시즌 우승까지 해내는 그런 캐릭터다.
솔직히 이 정도면 국적을 떠나서 업계의 후배로써 이 배 나온 중년의 남자가 로망 그 자체인걸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08년생이면 나를 알아볼 수 없는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얼굴만 보고 알아봐 주니 영광이군.”
아, 물론 내가 구로다 히로키를 알아본 건 그런 로망과 별개로 회귀 전 메이저에서 뛰던 당시 메이저에서 뛰었던 아시아인 특집 방송으로 몇 차례 얼굴을 마주 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저런 일화들도 그 당시에 알게 됐던 사실들이고.
“워낙에 유명하시니까요. 그보다 여긴 어쩐 일로?”
“이번에 양키스의 어드바이저 제안을 받았거든.”
“아, 그러면 앞으로 구단의 어드바이저로 활동하시는 건가요?”
“아니, 그건 거절할 생각이야. 솔직히 내가 양키스의 어드바이저를 하기에는 고작 3년밖에 안 뛴 팀이라서 좀······. 게다가 생활도 뉴욕 쪽도 아니고 말이지.”
“그러면 왜?”
“그냥 우연한 기회에 네 경기를 봤는데 관심이 생겨서 말이야.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