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269화 (269/305)

269화. 지나간 시대의 전설?(5)

“어? 뭐야? 맥스가 왜?”

보통 스프링트레이닝에서 원정 경기는 조금 부족한 선수가. 그리고 홈경기는 이름값이 있는 선수가 뛰기 마련이다. 물론 경기가 계속되고 옥석 가리기가 어느 정도 진행된 후반이면 또 달라지긴 하지만 아직은 스프링 트레이닝의 1/3밖에 진행이 되지 않았다. 당장 양키스의 라커룸만 하더라도 아직 둘이서 라커 하나 쓰는 사람들도 남아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건 다른 구단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조지 M. 스타인 브레너 필드를 방문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선수단에는 제법 유명한 선수가 하나 끼어 있었다.

“맥스? 그게 누군데?”

“뭐야? 스완. 너 맥스를 모르는 거야?”

“그러니까 그게 누구냐니까?”

맥스 프리드.

2012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7번.

그는 최근 10년을 통틀어 리그에서 열 손가락 근처 정도에는 꼽을만한 투수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현재의 메이저리그가 아닌 2034년 이후의 메이저리그만 알고 있던 최수원에게는 조금 생소한 얼굴이기도 했다. 애당초 시간을 뛰어넘어 모두가 기억하는 선수란 최소 ‘시대의 지배자’라는 평가를 받는 수준은 돼야 한다. 당장 2027년인 지금 시점에서 2010년대 메이저리그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혔던 지오 곤잘레스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드문 것처럼 말이다.

그날 라커룸에서의 인연 이후 수원과 제법 가깝게 지내는 도널드 해리슨과 조쉬 클린턴이 맥스 프리드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어느 유명한 평론가가 말하기를 건강하다는 전제하에 가장 강력한 사이 영 컨텐더라고 그랬는데. 틀린 말이었지.”

“맞아. 맥스 프리드는 건강하지 않아도 가장 강력한 사이 영 컨텐더였거든.”

그는 1라운드 투수치고는 매우 늦은 6년 차. 2017년에 처음 빅리그에 데뷔했다. 14년에 토미존 서저리를 받고 15년까지 재활에 전념한 덕분이었다.

그렇게 2017년에 빅리그에 데뷔하여 27시즌까지 총 11시즌. 그가 150이닝 이상을 소화한 시즌은 그 절반인 여섯 시즌에 불과했다. 심지어 부상도 매우 다양했다. 손가락, 햄스트링, 등, 허리, 발목.

“아니, 잠깐만. 그 정도면 그냥 사람 자체가 약하게 태어난 거 아니야? 대체 야구 선수. 그것도 선발 투수는 어떻게 하는 거야? 게다가 그런 몸으로 작년에는 사이 영 3위를 했다고?”

조쉬 클린턴이 수원의 질문에 답했다.

“그 정도가 아니야. 지난 10년 동안 사이 영 최종 후보에만 세 번을 들어갔고. 5위 안에 들어간 건 다섯 번이야. 특히 작년에는 중간에 발가락 부상만 없었어도 사이 영 상은 무조건 맥스 몫이었을걸?”

“발가락 부상을 당했다고? 어떻게?”

야구 선수에게 절대 흔하지 않은 부상이었다.

도널드가 수원의 궁금증에 답했다.

“어, 식탁 다리에 부딪혀서 전치 4주 판정 나왔다더라.”

“······.”

94년생으로 올해 나이 34세.

맥스 프리드는 그야말로 종합병동과 같은 사나이였다.

그리고 그것은 2028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본래라면 그는 어제 홈경기에서 몸을 풀었어야 했다. 하지만 항상 들고 다니던 베개의 베갯잇이 헤져서 찢어지는 바람에 새 베갯잇을 낀 탓일까? 목에 그만 담이 와버렸다.

트레이너들의 극진한 관리 아래 간신히 컨디션을 되찾은 그는 하루를 더 쉬는 대신 그리 멀지 않았던 양키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몸을 풀기로 결정을 내렸다.

양키스의 라커룸이 북적거렸다.

스프링트레이닝 초반에 비하면 선수들이 제법 빠지긴 했지만, 오늘은 원정 경기 자체가 없었던 터라 모든 선수가 홈에 모인 탓이었다.

“아니, 왜 하필 오늘 맥스 프리드가······.”

“운이 없다. 운이 없어.”

“야야, 어차피 감독도 다 감안해서 볼거야. 그리고 솔직히 맥스 프리드면 공략 해볼 만하잖아.”

“맥스 프리드가 공략 해볼 만하다고? 제정신이냐?”

“아니, 물론 어렵지. 근데 다른 사이 영 컨텐더들과는 좀 스타일이 다르잖아. 저기 보면 투수만 맥스 프리드고. 오스틴 라일리나 이그나시오 알바레즈가 같이 온 것도 아니잖아.”

그들 역시 오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투수로 출장할 맥스 프리드에 관하여 떠들어댔다. 특히 마이너 계약이나 스플릿 계약으로 캠프에 합류한 선수들은 한 타석 한 타석 결과에 따라 짐을 뺄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에이스급 투수와의 갑작스러운 대결이 꺼림칙할 수밖에 없었다.

“스완, 이번 시즌 첫 타석부터 꽤 어려운 투수가 상대로 낙점됐네?”

“그러게. 혹시 뭐 팁 같은 건 없어?”

“팁이라······. 속구가 좀 별로이긴 별로인데. 그렇다고 커브랑 체인지업을 신경 쓰다 보면 그 별로인 속구가 좀 지랄맞게 느껴진단 말이지. 일단 방망이를 공에 가져다 대는 건 어려운 느낌이 아닌데 정타는 진짜 잘 안 나오고. 그러니까 최대한 강하게 친다는 느낌으로? 땅볼이 나오더라도 내야 라인 뚫을 수 있게? 아, 근데 또 투수강습 타구 나오면 진짜 기가 막히게 잡으니까 그것도 조심하고. 솔직히 알바레즈는 몰라도 라일리보다는 오히려 수비 더 잘하는 것 같아.”

바로 옆 라커를 사용하는 앤서니 볼피의 이야기에 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볼피의 말에 따르자면 맥스 프리드는 전형적인 땅볼 유도 투수. 심지어 본인의 수비까지도 리그 최상급인 조금 골치 아픈 타입의 투수라는 말이었다.

“앤서니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거 보면 수비를 굉장히 잘하는가 보네?”

“너 몰랐구나? 맥스 프리드 2020년부터 해서 골드글러브만 다섯 개잖아. 150이닝 이상 뛰면 그 해에 골드 글러브는 무조건이라고 봐야지.”

그 순간 수원이 리그 최상급의 수비를 갖춘 조금 골치 아픈 투수에서 리그 최고의 수비를 보여주는 상당히 골치 아픈 투수로 맥스 프리드에 대한 평가를 정정했다.

***

“형님들!! 뽕하!!”

BJ봉민.

그는 마린스의 편파 중계 BJ로 과거 수원이 아직 고등학생, 그것도 고작 2학년이던 시절에 찍었던 전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게 그렇게까지 화제가 되지 않았지만 정말 수원이 마린스에 입단하고 그야말로 리그를 때려 부숴버리는 활약을 보이기 시작하며 떡상을 시작. 현재는 너튜브에 무려 19.8만이라는 구독자를 보유한 편파중계의 탑급 BJ였다.

─again2027: 우리 뽕민이는 이제 마린스는 포기한거야? 아직도 미국이네?

─거포이주혁: 이주혁 오늘 4타석 4타수 4홈런 장전 중

─오늘부턴양키스팬: 뽕민이 옷 보면 모르냐? 양키스로 진작에 갈아 탔지.

“아, 형님들. 팀을 갈아타긴 누가 갈아탔다는 거야. 난 그냥 어? 어차피 마린스 시범 경기는 다른 애들도 다 방송하는 거. 나라도 책임감 있게 우리 수원이 방송을 해주려는 진정한 방송인의 마음. 뭐 그런 거잖아.”

─again2027: 뽕민이 이거 최수원코인으로 한 번 떡상하더니 아주 놓지를 못하네.

─뉴욕마린스: 좀 냅둬라. 뽕민이도 먹고 살아야지.

─최강수원: 최수원 전 타석 홈런 기원 숨 참는 중.

“아무튼 오늘 어? 우리 수원이가 드디어 타자로도 경기 출장하는 역사적인 날이잖아. 내가 그래서 오늘 수원이 상대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투수들을 쫙 조사를 해왔단 말이지. 근데 형님들 그거 알아? 오늘 수원이 상대 투수. 맥스 프리드다?”

─마린스최수원: 맥스 프리드? 그게 누군데? 유명해?

─0결가즈아: 응 관심 없어.

─Mr.양키스: 무식한 놈들. 맥스 프리드면 작년에 사이 영 3위한 투수잖아. 근데 걔가 왜 벌써 원정을 뛰는 거지?

“그래, 무려 작년 사이 영 3위. 진짜 빅리그 진출해서 첫 타석에 만나는 투수로는 완전 거물 중의 거물인 거지. 나 지금 그래서 너무너무 기대되잖아. 솔직히 우리 수원이가 KBO 박살낸 건 사실인데. 그게 메이저 탑급 투수한테도 통하느냐 안 통하느냐 말 엄청나게 많았었잖아. 근데 그걸 대뜸 이렇게 첫 번째 경기에서 보여줄 줄 누가 알았겠어. 안 그래?”

─최강수원: 5타수 5안타 5홈런 예상한다.

─최수원영결: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라. 시범 경기에 5타수는 무슨.

1회 초.

게릿 콜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특유의 투박한 폼.

그리고 그런 폼에서 나오는 상대 타자들을 압도하는 위력의 속구가 애틀랜타 타자들의 헛스윙을 끌어냈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세 명의 타자들을 상대로 삼진 두 개와 내야 땅볼 하나.

“와, 진짜 미쳤네. 지금 영상으로 이 현장감이 다 전달이 될지 모르겠는데. 내가 야구 직관 진짜 엄청 다니잖아. 근데 진짜 완전 느낌이 다르다. 보면 지금 구속이 94마일이니까 151.4정도 되는 거잖아? 근데 KBO에 151이랑은 느낌이 달라. 뭔가 막 미트를 폭발시킬 것 같은 그런 느낌?”

─again2027: 뽕민이 사대주의 폼 미쳤네.

─최강수원: 설레발 ㄴㄴ. 150이 다 똑같은 150이지.

─뉴욕마린스: 뽕민이가 그러는데 미국 투수는 150에 예술점수 추가해준답니다.

“아니, 진짜라니까? 와, 형님들도 여기 와서 직접 봐야 하는 건데. 아!! 맥스 프리드 나온다. 맥스 프리드.”

─홈런왕최수원: 뭐야? 저게 사이 영 3위? 엄청 비리비리해보이는데?

시청자들의 말처럼 맥스 프리드는 매우 왜소했다. 조금 전까지 마운드에 섰던 게릿 콜이 건장했기 때문일까?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좀 비리비리했다.

193cm에 86kg.

본래 길이가 2배로 길어지면 표면적은 4배. 부피는 8배로 커져야 한다. 더 큰 키에 더 많은 체중이 필요한 이유다.

심지어 수원이 처음 회귀했을 때 키가 189.7에 체중이 82kg이었음을 생각해보면 193cm에 86kg이라는 체중이 얼마나 날씬한 것인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마운드에 올라온 그가 가볍게 공 세 개를 던졌다.

-뻐엉!!!

정말 가볍게 던진 탓일까?

조금 전 게릿 콜이 던지던 공과는 그 압도적인 체격만큼이나 크게 차이가 났다.

“90.3마일?”

145.4km/h

전광판에 찍힌 숫자에 BJ봉민을 비롯한 그의 시청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작년에 사이 영 3위를 한 투수인데 생긴 것도 그렇고 구속까지 어째 좀 이상했다.

몸이 많이 안 좋기라도 한 것일까?

타석에 앤서니 볼피가 올라왔다.

등번호 11번.

그는 현재 양키스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앤서니 볼피는 무려 그 No.2 데릭 지터의 후계자다. 메이저리그를 잘 모르던 한국팬들조차도 최수원의 양키스 행에 관련된 특집 기사에서 워낙에 자주 소개된 터라 그 이름이 익숙할 지경이다.

초구.

-부웅!!!

“스트라잌!!”

대뜸 뚝 떨어지는 커브가 앤서니 볼피의 방망이를 끌어냈다.

그리고 두 번째.

-딱!!!

90.7마일의 속구가 큼지막한 파울로 이어졌다.

볼카운트 0-2.

세 번째.

또다시 커브. 앤서니 볼피가 그 공을 침착하게 걸러냈다.

볼카운트는 이제 1-2.

가볍게 공을 움켜쥔 맥스 프리드가 네 번째 공을 뿌렸다.

존을 살짝 빠져나가는 슬라이더.

앤서니 볼피의 방망이가 그 공을 따라 나왔다.

‘젠장.’

속았다.

하지만 고작 79마일짜리 슬라이더다. 리그 최정상급의 타자가 그 슬라이더를 끝까지 따라가 아무튼 방망이를 공에 가져다 댔다.

3루 쪽으로 날아가는 타구.

앤서니 볼피가 달리기를 멈췄다.

“아웃!!”

선두 타자 땅볼 아웃.

맥스 프리드가 표정의 변화 없이 다음 타자를 기다렸다.

“자!! 형님들!! 드디어!! 드디어 우리 수원이 메이저 데뷔 타석입니다.”

마린스 시절과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은 표정.

하지만 0번이 새겨진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에 가려진 몸은 그때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두터웠다.

최수원.

KBO를 박살냈던 투타겸업의 천재.

맥스 프리드가 크게 와인드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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