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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259화 (259/305)

259화. 애리조나(2)

KBO와 다르게 메이저리그의 스프링 트레이닝이 열리는 시기는 2월 중순이다. 물론 그렇다고 2월 중순까지 펑펑 놀다가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몸을 만들기 시작하는 선수들은 드물다. KBO가 1월 말부터 1차 스프링캠프를 열어서 다 같이 몸을 만들고 2차와 3차 스프링캠프를 거치는 것을 MLB는 알아서 어느 정도 몸 만들어 오고 바로 진짜 스프링트레이닝에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였을까?

문 앞을 나서는 데 땀에 흠뻑 젖은 옆집 남자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

“오늘도 일찍 달렸네?”

“말했잖아. 난 조금 일찍 일어나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타일러 바트.

나와 마찬가지로 양키스의 선수다. 올해까지 뛰면 연봉조정 자격을 얻는 외야수인데 나보다 먼저 플로리다에서 개인 훈련을 시작했다고 한다. 보다시피 나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먼저 조깅을 하는데 한 15분 정도 달리는 나와 다르게 거의 40분을 달린다.

상당히 외향적인 성격을 지닌 녀석이었는지라 고작 열흘 사이에 제법 친해졌는데 살을 찌워야 하는 나와는 반대로 살을 빼느라 고생이 심했다.

“다이어트는 계획대로 잘 되고 있어?”

“말도 마. 어제부터 엄마가 만들어준 라자냐가 먹고 싶어서 죽겠으니까. 진짜 스완 너는 축복 받은 줄 알아야 해. 살을 안 빼도 되는 체질이라니. 휴······.”

현재 키 187cm에 몸무게는 107kg.

참고로 지난 시즌이 끝났을 때 체중은 92kg이었는데 고작 한 달 반 만에 117kg까지 쪘다가 부랴부랴 감량을 시작해서 10kg을 뺀 상태라고 했다.

“대신 난 찌우는 게 고생이잖아.”

“너랑 나랑 체질을 섞어서 딱 반으로 나누면 좋을 텐데. 아무튼 오늘 저녁에도 앤서니 집에서 다 같이 게임 하기로 했는데 참석 할거지?”

“미안,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선약?”

“어,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보기로 했거든.”

타일러 바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긴 미국에 온 지 몇 달 되지도 않았고 매일 훈련만 하던 나에게 친구가 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알겠어. 혹시라도 마음 바뀌면 오라고. 뭐 친구 데리고 와도 좋고.”

고개를 한 번 끄덕여주고 가볍게 거리를 뛰기 시작했다.

1월의 플로리다 날씨는 선선했다. 시간을 거슬러 오기 전에 팀에 어느 코치님이 말씀하시기를 자기 어릴 적에는 봄가을에 한두 달씩 이런 날씨였다고 그랬는데 솔직히 믿기 힘든 이야기다. 한국은 덥거나 춥거나 중간이 없는 나라인데 어떻게 일년에 한두 달이나 이런 날씨일 수 있겠는가.

15분 정도를 가볍게 달려 몸을 데우고 타일러 바트와 마찬가지로 집 마당에서 몸을 풀었다. 다만 타일러 바트와 달랐던 점은 집에서 같이 생활하는 잭 워싱턴이 함께 나의 몸을 풀어줬다는 점이었다.

“스완, 좋은 아침.”

“맥스, 오늘은 좀 늦게 일어난 거 아니야?”

“하하, 어제 아들이랑 영상통화 하는 바람에 조금 늦게 잤거든.”

그 와중에 거리를 조깅하는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왔는데 그중 몇몇은 마찬가지로 스프링트레이닝이 참가하기 위해 조금 일찍 플로리다로 와있던 선수들이었다.

꼼꼼하게 몸을 풀고 잭이 미리 준비해둔 식사를 끝냈다. 요즘 하루에 다섯 끼씩 섭취하고 있는데 두 번째 아침이라서 제법 묵직했다.

“윌리엄은?”

“형은 어제 훈련 영상 복기하다가 조금 늦게 잔 것 같아. 뭐 특별한 이야기가 없었던 거 보면 오후에 일어나서 피드백 해주지 않을까 싶네.”

“오케이. 그러면 나도 조금 쉬어야겠다.”

훈련과 영양섭취 그리고 휴식. 또 훈련.

그렇게 빡빡한 하루를 보내고 마침내 늦은 저녁.

“오우, 최수원이. 뭐야? 몸이 왜 이렇게 좋아졌어?”

“그러는 쪼유 너야말로 몸이 왜 이렇게 엉망이냐?”

“아니, 그거야 비시즌이었으니까······.”

“쯧, 수원아. 말도 마라. 쪼유 저거 내가 잔소리를 그렇게 했는데 아주 들어쳐먹지를 않아요. 내 잔소리를 먹느니 고기를 한 점이라도 더 먹겠다는 자세야.”

“선배가 고생이 많네요.”

오늘 나와 약속이 잡혀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조유진과 이정훈이었다. 물론 나를 만나기 위해서 미국까지 온 건 아니었다.

“훈련장은 좀 어때? 괜찮아?”

“어, 너도 와보면 진짜 깜짝 놀랄 거다. 시설이 진짜 미쳤어.”

“미국 많이 와본 내 입장에서 보자면 미친 것 까지는 아니고. 그래도 확실히 작년에 애리조나에 투쏜도 나쁘진 않았는데 그것보다 조금 더 좋긴 하더라. 특히 잔디가 거의 우리 홈보다 더 좋은 거 아닌가 싶을 만큼 관리가 잘 돼 있었어.”

이정훈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여기 잔디가 좀 좋긴 하죠.”

사실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마 잔디를 관리하는데 들어가는 돈만 따지자면 사직이 압도적으로 클 것이다. 애초에 날씨 자체가 한국은 잔디와 심각하게 어울리지 않는 날씨였고 여기 플로리다는 주기적으로 깎아주기만 하면 될 만큼 잔디 관리하기 쉬운 날씨다.

“근데 진짜 미국은 미국이다. 같은 플로리다인데 차로 2시간이 넘게 걸리네.”

“그렇게나 걸렸어? 여기랑 너희 훈련장이랑 한 140킬로 정도 거리 아니야?”

“정훈 선배님이 운전하셨거든······.”

“아······.”

뚜껑 열리는 스포츠카로 시속 60km/h 밟던 양반이 운전을 했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미국에서는 언제까지 훈련하는 거야?”

“다음 주까지.”

“바로 일본 가는 건가?”

“어, 3차 없이 곧바로 오키나와에 짐 풀고 훈련 들어가는 일정이야. 수원이 너는?”

“나는 스프링 트레이닝 소집까지 2주 남아서 그때까진 쭉 개인훈련이지.”

“역시 메이저리그는 메이저리그네. 자율야구. 크······. 멋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쪽 스타일이 좀 더 맞는 것 같······.”

엄지를 치켜드는 쪼유의 등짝을 이정훈이 가볍게 후려쳤다.

“메이저 스타일이 맞기는 개뿔. 인마. 넌 저렇게 했으면 시즌 뛰지도 못할 만큼 부풀었어. 그나마 한국 야구니까 괜찮은 거지. 수원아. 대체 얘 고등학교 때는 체중 관리를 어떻게 한 거냐? 뭐 운동 잠깐 안 했다고 애가 이렇게 부풀어?”

“고등학교 때면······. 그땐 운동을 안 한 적이 없었죠. 거의 매일 굴렀으니까요. 잘 아시잖아요.”

“아, 하긴. 나도 고등학교 때는 좀 그랬지. 그러고 보니 쪼유도 이제 1년 차 끝난 거니까 이렇게 길게 쉬어본 건 처음이겠네.”

짧게는 6년 길게는 12년 가깝게 남이 시키는 대로 운동만 하다가 처음으로 풀시즌을 뛰고 두 달에 가까운 휴식을 받았다. 솔직히 그런 상황에서 저 정도로 퍼지는 건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 정도면 선방 했다고 봅니다.”

-짝!!

이정훈의 손바닥이 쪼유의 등짝을 두들겼다. 그것도 이번엔 좀 찰지게 들어갔다.

“아주 매를 벌어요. 벌어. 저기 수원이는 인마. 뭐 프로 10년 차냐? 너랑 똑같은 이제 2년 차잖아.”

“아니, 쟤는 메이저리거잖아요. 저랑은 다르죠.”

“인마, 너도 나중에 포스팅이나 FA로 메이저리그 갈 거라며.”

“그거야 전 성장형이니까 이렇게 차근차근 성장해서 그때 쯤에는 저도 저런 식으로······.”

-짝!!

이번엔 나였다.

“아!! 최수원. 넌 또 왜 때리는 데.”

“아니, 등에도 살찐 것 같아서 얼마나 쪘나 확인해보려고. 야, 쪼유. 근데 내가 봤을 때 이런 식으로 찌우는 거면 차근차근 성장은커녕 차근차근 퇴보할 것 같다. 너 포수잖아. 몸무게 이렇게 대책 없이 늘어나면 무릎 완전 다 박살 난다?”

“······.”

오래간만에 직접 만나 평범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이 시간들은 상당히 괜찮았다. 아니, 솔직히 매우 즐거웠다.

‘아무래도 나도 스트레스가 좀 심하긴 했었나 보네.’

한 시즌 144경기.

7개월 동안 144일을 일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우리의 경우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기에 약 30일 정도를 더 뛰었으며 그 이전에는 스프링캠프와 시범 경기를 거쳤다. 보통 직장인들의 경우 1년에 230일 정도 일하는 것을 고려할 때 1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10개월을 일하고 받는 두 달의 휴식은 그렇게 쉬지 못한 나머지 날들을 몰아 받는 것에 더 가깝다.

하지만 이번 시즌 나의 경우는 조금 특별했다. 시즌을 끝내고 거의 휴식일 없이 몸을 만들고 메이저리그 진출에 관한 협상을 진행했다. 물론 훈련 자체가 컨디셔닝 훈련이었던 만큼 몸의 피로는 확실하게 풀면서 효율적으로 몸을 키워내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별 것 아닌 가벼운 잡담에 기분이 이 정도로 좋아지는 걸 보면 정신적인 피로는 아무래도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아, 맞다. 수원아. 근데 그러면 여기 너 말고 다른 메이저리거들도 막 와서 훈련하고 있고 그러냐?”“어, 바로 옆집에도 타일러 비트가 훈련하고 있어.”

“타일러 비트? 유명한 선수야?”

“글세······. 네가 모르는 거 보니까 아직 유명하진 않은 것 같은데? 올해로 3년 차고. 양키스 우익수야.”

-띵동.

“어?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달까?

타일러 비트였다.

“저녁에 약속이 있다고 하더니 차가 그대로 있길래 혹시나 해서 눌러봤는데. 친구를 집으로 부른 거였구나.”

“어, 인사해. 이쪽은 친구인 조유진. 그리고 한국 시절 팀 동료인 이정훈.”

타일러 비트가 스스럼 없이 다가가 그들과 피스트 범프를 했다.

“수도승처럼 훈련만 하던 스완에게 친구가 찾아온다고 해서 누군가 궁금했는데 팀 동료였구나. 아, 영어는 할 줄 알아?”

내가 둘 다 영어는 젬병이라고 답해주려는 찰나.

이정훈이 먼저 타일러에게 답했다.

“조금. 말은 거의 못 하지만 듣는 건 약간 해. 그러니까 천천히 말해 줘야 해.”

“오, 그 정도면 훌륭하지. 미국은 어쩐 일이야? 오프 시즌에 마지막 여행?”

“아니, 스프링 캠프가 미국에서 있어서 단체로 왔어.”

“스프링 캠프? 아, 스프링 트레이닝 말하는 거구나. 근데 스완 너희 나라 여기서 비행기로만 14시간 거리라고 하지 않았어? 근데 스프링 트레이닝을 여기까지 온 거야?”

“어. 우리 나라는 지금 이 시기에 기온이 14.0 ° F 밑으로 내려갈 때도 있어서. 보통 여기나 애리조나에 메이저팀 스프링 트레이닝 열리기 전에 그 시설에 먼저 2주 정도 훈련하고 다시 일본 남쪽 섬에서 또 3주 정도 훈련하고 시범경기 시작 하거든.”

“그래? 되게 터프한 일정이네. 아무튼 스완 친구들 만나서 반가워. 아, 맞다. 혹시 괜찮으면 오늘 앤서니가 파티 열기로 했는데 너희도 같이 할래? 술은 없지만 대신 맛있는 피자와 퍽퍽한 닭가슴살, 맛있는 나쵸와 마분지 맛 나는 오트밀. 그리고 단백질 쉐이크와 제로 콜라가 있어.”

“파티?”

지금까지 한 마디도 못 알아 듣고 조용히 있던 쪼유 녀석이 또 파티라는 말은 알아듣고 눈을 반짝였다.

“파티 좋지. 내가 또 어디서 파티 거절하는 스타일은 아니거든. 안 그래도 남자 셋이서 되게 칙칙했는데. 가보자고. 아메리카 스타일의 파티 경험해보러.”

자타공인 파티 피플.

지금은 손을 씻었다고 이야기하지만 한 때 스스로 서면의 황태자를 자칭했던 이정훈 역시 파티를 사양하지 않았다.

“선배, 잠깐만요. 진짜 파티 가시게요?”

“어, 당연하지. 안 그래도 미국 영화 같은 거 보면 하는 그런 홈파티 한 번은 경험해보고 싶었거든.”

“아니, 근데 저 파티가 그런 느낌은 좀 아닌데······.”

“에이, 아니면 또 어때. 내가 메이저리거들 파티를 지금 아니면 언제 또 경험해보겠냐.”

***

“오!! 컴온!! 라잇 웨잇 베이비!! 예압 버디!! 컴온!! 컴온!!”

쇠.

“헤이!! 고!!! 이글스!!! 고!!!! 고!!!”

스포츠.

“수원아······. 분명 홈 파티라고 하지 않았냐?”

“제가 그래서 좀 그런 느낌이 아닐 거라고 그랬잖아요.”

“아니, 이건 느낌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홈’이 아니라 ‘짐’이잖아?”

그리고 찐득한 사내의 땀내가 가득한 이 곳.

“오, 스완 못 온다더니 왔네? 이쪽은?”

이 체육관, 아니 이 집의 주인인 앤서니 볼피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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