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내 사전에 두번째 마린스는 없다(4)
스티브 코헨과 제임스 밀러가 신이 나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중에 스티브 코헨의 뒤편에서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유대계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반갑습니다. 조슈아 파그노만 단장님 맞으시죠? 이전에 김진규 스카우트님 통해서 오타니 선수의 일본 시절 데이터는 잘 받았습니다.”
“도움이 좀 됐나요?”
“네, 몇 가지 부분에서는요.”
“하하, 다행입니다.”
스티브 코헨은 여러모로 양키스의 조지 스타인브레너를 닮은 인물이었다. 특히 그 성정 부분이 매우 조지 스타인브레너와 흡사했는데 조지 스타인브레너는 1973년 양키스를 1,000만 달러에 구매한 이후 20년 동안 무려 10번이나 단장을 교체했고 감독은 그것보다 더해서 무려 20번을 교체했다. 뭐, 그렇다고 20명의 감독이 있었다는 건 아니다. 빌리 마틴과 같은 감독은 스타인브레너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지만 워낙에 인기가 있었던 덕분에 고작 10년 사이에 고용과 해고를 다섯 번이나 반복했으니까.
스티브 코헨 역시 사정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조슈아 파그노만을 단장에 앉히기 전까지 무려 3년 만에 무려 다섯 명의 단장을 갈아치웠다. 감독의 경우는 그래도 조지 스타인브레너보다는 양호해서 지난 8년 동안 다섯 번밖에 갈아치우지 않았으니,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주로 감독들과 싸웠다면 스티브 코헨은 주로 단장들과 싸웠다고 볼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활약했던 70년대에는 감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기였고 지금은 단장의 역할이 훨씬 중요한 시기였으니까.
“고생이 많으신 것 같네요.”
“그래보이나요?”
“조금?”
“하하······.”
조슈아 파그노만이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물론 저희 구단주님은 성격이 조금 불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마음의 근간에는 ‘우승’이라는 확고한 목표가 있죠. 세상에 우승이 목표가 아닌 구단이 어딨겠냐고 물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프로 구단에게 우승은 목표가 아닌 수단일 수도 있는 법이거든요.”
“이해합니다. 모든 구단주의 목표가 승리가 아니니까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그 흑역사들에도 불구하고 사랑받는 거죠.”
“맞습니다. 사실 오늘 같은 경우도 제가 나와서 협상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만 역시 금전에 관한 부분은 구단주님께서 이렇게 나와서 직접 이야기하시는 것만으로도 신뢰도가 확 올라가니까요. 결국 중요한 건 프런트에서 구단주님을 어떻게 보필하느냐. 저 의욕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사용하느냐. 뭐 그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젊은 조슈아 파그노만은 굉장히 긍정적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금 조슈아가 했던 말에서 거짓말이 있다고 생각한다.
스티브 코헨이 직접 협상장에 나온 것이 신뢰도를 올려준다고?
글쎄······.
그래, 스티브 코헨이 부자인 건 나도 알겠다. 그가 우승을 원하다는 것도 잘 알겠고. 하지만 우승을 원하는 부자의 마음을 신뢰한다? 글쎄······.
무엇보다 내가 기억하는 2030년대의 조슈아 파그노만은 지금보다 더 성마르고 까칠했으며 매사에 부정적인 인물이었다. 그것만 보더라도 저 영감과 함께 한다는 것이 이 30대의 젊은 유대인을 어떻게 망가트리는지 유추해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어메이징 메츠.
이 단어는 사실 긍정적인 느낌에서 시작됐던 단어였지만 글쎄······. 여러모로 부정적인 느낌의 별명이다. 사실 내가 느끼기에는 거의 봄린스급의 단어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그것도 ‘지금’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억하는 2030년대를 기준으로 했을 때 이야기다.
마린스가 가진 놀라운 기록 가운데는 10개 구단 최대 페이롤 꼴찌가 있다.
메츠도 그렇다. 아니, 정확히는 그럴 예정이다.
물론 단일 지구에 10개 팀이 공평하게 맞붙는 KBO와 양대 리그에서 지구별 대결을 기본으로 하는 메이저 리그는 그 궤가 조금 다르다. 하지만 그렇기에 30개 팀 최대 페이롤, 30개 팀 최저 승률의 기록은 전무후무. 과거에 없었고 앞으로도 없어야만 하는 그런 대기록이었다.
물론 나는 마린스를 우승 시켰다.
하지만 그 고생을 굳이 연봉도 최저연봉을 받아야 하는 메이저리그에서 또?
심지어 마린스야 드래프트 제도로 인해서 내게 팀을 선택할 권리가 없었다지만 지금은 팀을 내 마음대로 골라서 갈 수 있는데 굳이?
그래, 뭐 다 좋다.
3년 차를 끝내고 연장 계약을 주겠다느니 투수 등판에 무제한적인 지원을 하겠다느니. 우승을 위해서 선수를 파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고 그게 몇 억 달러의 사치세가 되더라도 얼마든지 지불하겠다는 이야기까지도 거짓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물론 다른 팀에서는 이보다 더한 기회를 보장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당신이 원하는 최정상에 설 수 있는 팀과 어느 한 선수에게 성적과 상관없이 이 이상을 제안한다는 것은 결코 병립할 수는 없습니다. 이걸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당신에게 정도를 넘어서는 제안을 할 수 있는 팀은 당신 외의 선수에게도 그 ‘정도’를 넘어서는 제안을 할 수 있다는 것을요.’
사실 브라이언 캐시먼의 저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나는 스티브 코헨이 팀의 운용에 끼어들었던 많은 사례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그게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데이브 윈필드에게 벌였던 것 같은 악행은 아니었다. 하지만 행크 스타인브레너가 알렉스 로드리게스에게 건넸던 재계약 수준의 짓거리를 한 번도 아니고 무려 세 번이나 저지른다.
“어휴, 뉴욕 물가가 좀 비쌉니까? 솔직히 최저연봉 받아서는 렌트비만 해도 안전하고 괜찮은 집에 사는 건 무리 아니겠습니까.”
“내 소유의 스튜디오를 하나 내주도록 하지. 쓸데없는 규약들 때문에 돈으로 더 줄 수는 없지만 애초에 위치 생각해보면 렌트비 자체가 높게 잡혀 있지 않은 스튜디오라서 회계처리 잘 하면 비용 안에서 감당할만한 액수일 거야. 거기에 완벽하게 리모델링만 넣어주면 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을 걸세. 아, 그리고 차는 통역 직원에게 법인 차량을 내주는 형태로 하면 원하는 차량을 내주는 것도 충분히 가능 할테고.”
“좋군요.”
그런 와중에도 내 에이전시인 제임스 밀러는 최대액수가 정해진 계약금과 연봉 외의 무언가를 이것저것 잘 긁어내고 있었다.
아니, 사실 저 둘이서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면 어떻게든 내주지 않으려는 사람과 어떻게든 얻어내려는 사람 간의 협상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규칙의 선을 넘어서지 않고 최대한 지원받을 수 있을까를 공모하는 공모자의 대화 느낌에 더 가까웠다.
제임스 밀러가 매우 만족한 표정으로 스티브 코헨의 손을 맞잡았다.
***
“일단은 양키스를 추천합니다.”
“네?”
리무진에 타자마자 제임스 밀러가 나에게 건넨 이야기에 살짝 놀랐다. 아니 조금 전까지 스티브 코헨과 그렇게 짝짝쿵이 잘 맞아놓고 돌아서자마자 이렇게 양키스를 추천한다고? 조수석에 앉아있던 테드 박도 고개를 뒤로 돌려 깜짝 놀란 눈으로 제임스를 바라봤다.
“조건만 본다면 메츠가 훨씬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돈만 생각한다면 메츠도 나쁠 건 없다고 보고요. 하지만 스완이 내건 수많은 조건. 그리고 NPB를 거치는 대신 국제유망주 계약으로라도 빠르게 MLB에 진출하려는 의도를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양키스 쪽이 스완에게 더 맞는 팀인 것 같습니다. 애초에 양키스도 최고의 선수에게 금전적으로 섭섭하게 구는 팀도 아니니까요.”
“음······. 하지만 메츠의 조건 가운데 우승을 위해 무제한으로 돈을 사용하겠다는 말은 매력적이지 않나요?”
제임스 밀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부분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전 기본적으로 부자의 변덕이라는 걸 그리 믿지 않는 고약한 성미를 지녔거든요. 무엇보다 저 양반 올해로 일흔이 넘었습니다. 지금이야 건강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는 일이죠.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보시면······. 아. 지금으로부터 약 18년 전에 지금의 메츠와 비슷한 느낌의 팀입니다. 마이클 일리치라는 어마어마한 갑부가 아낌없이 팀에 투자를 했지만 결국 우승에 실패했고, 마이클 일리치가 세상을 떠난 이후 디트로이트는 지금까지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메츠라고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죠. 결국 미래에 대한 약속이라는 약속의 당사자가 살아 있을 때나 유의미한 것이고, 저 나이에 미래에 대한 약속은 그런 의미에서 좀 공허한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건 브라이언 캐시먼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캐시먼의 계약도 슬슬 끝나가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본인이 은퇴 의사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양키스는 이미 구단 자체로 거대한 회사입니다. 구단주의 포켓머니가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팬들과 네트워크 채널. 그리고 구단의 상품성이 그만한 규모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주죠. 그리고 무엇보다 최 선수. 당신이 메츠는 영 탐탁지 않아 하고 있잖습니까.”
확실히 성공하는 사람은 성공하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브라이언 캐시먼이나 스티브 코헨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 대체 내 마음은 어떻게 읽은 걸까?
“최 선수는 지켜보기보다는 직접 행동하는 편이니까요. 아마 마음에 들었다면 저와 스티브 코헨의 대화를 그렇게 마냥 지켜보지만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근데 그걸 알면서도 왜 그렇게까지 자세히 이야기를 주고 받으신거죠?”
“이것 역시도 협상이니까요. 원래 협상이라는 건 구체적인 제안을 건네는 경쟁자가 있을 때 진짜 아니겠습니까.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아무래도 양키스도 메츠도 몸이 달아오른 모양이니 제가 최대한 유리한 방향으로 조건을 끌어내겠습니다. 최저연봉에 계약금도 고작 500만 달러도 안 되는데 그런 거라도 받아 내야죠.”
“말씀하신 것처럼 계약금도 고작 500만 달러도 안 되는데 굉장히 열심히 해주시네요.”
제임스 밀러가 웃으면서 답했다.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지금이야 500만 달러도 안 되지만 장차 5억 달러도 너끈한 선수 니까요. 지금 능력을 잘 보여 드려 놓아야 해고 안 되고 재계약까지 쭉 같이 갈 수 있죠.”
“하하······.”
“아, 이거 한 가지만 지침을 주시죠. 메츠를 아예 제외를 할까요? 아니면 조건에 차이가 크다면 메츠쪽으로 진행을 할까요.”
“음······. 일단 양쪽 다 조건은 조율을 해보는 걸로 하죠. 조건 차이가 크다면 아무리 양키스가 조금 더 끌린다고 해도 굳이 거기로 갈 이유는 없으니까요.”
“탁월한 선택입니다.”
***
“스완, 이야기 들었어. 오늘 구단에 왔다 갔다며.”
“어.”
“젠장!! 내가 가족 여행만 아니었어도 구장도 소개해주고 하는 건데. 아, 맞다. 퀸스에 한인타운은 가봤어? LA만큼은 아니어도 제법 괜찮다고.”
“아, 그래?”
숙소에 도착했을 때 알렉스가 곧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남미 쪽에 가족 여행을 갔다고 하더니 뒤로 비치는 해변이 제법 근사했다.
“벌써 두근거린다. 올봄부터 너랑 같이 뛸 생각을 하니까. 내가 진짜 전부 다 소개시켜줄게. 우리 주장부터 해서 너도 아마 마음에 들 거야.”
“아니, 알렉스. 아직 확정은 아니야. 협상 중이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지. 야 근데 대체 내가 시티필드 다녀온 건 어떻게 안 거야? 이거 나름 일정은 비밀로 했었는데.”
“어? 비밀로 했었다고? 기사에 다 나왔는데? 너 사진도 되게 대문짝만하게 찍혔어.”
[양키스와의 협상 직후 시티 필드로 이동하는 스완 초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 이 젊은 재능은 대체 양키스의 무엇에 화가 난 것일까?]
[길어지는 협상. 메츠는 과연 아시아에서 온 슈퍼맨을 잡을 수 있을까?]
[스완 초이 엘리샤 존슨과 같은 호텔에?]
[과연 아시아의 젊은 초인은 새로운 뉴욕의 연인에 등극할 수 있을까?]
[스완 초이 클럽 방문!! 뉴욕의 첫 날은 광란의 밤으로?]
뉴욕 기자 놈들이 극성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근데 벌써 얼굴도 못 본 여자랑 스캔들 기사를 띄우질 않나. 이렇게 호텔 방에 가만히 잘 있는 사람이 클럽행이라니······.
아무튼 뉴욕의 첫 번째 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광란으로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