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내 사전에 두번째 마린스는 없다(1)
내가 제임스 코퍼레이션을 통해 메이저 구단들에게 요청한 것은 세 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그 질문 역시 매우 간단했다.
첫 번째. 현재 나의 기량에 대한 평가. 이는 투수와 타자 두 가지를 나눠서. 그리고 두 가지를 종합한 것을 모두 요구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팀의 단, 장기적인 비전. 마지막 세 번째는 왜 그 팀이 내가 뛰기 최적의 팀인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사실 내용은 간단했지만 그래도 상당히 건방진 제안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달려든 구단의 숫자는 무려 30개 구단 가운데 28개.
심지어 그 답변들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나를 따라 미국으로 돌아온 테드 박이 짧은 질문에 비해 쓸데없이 두툼한 서류를 건넸다.
“말린스와 애슬래틱스는 애초에 포기했습니다. 그 외에 나머지 구단에서는 모두 서류를 보내왔고요. 30개 구단 전부가 아니라 좀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타니 쇼헤이 선수 때보다 하나 더 많은 숫자죠. 어깨를 좀 으쓱하셔도 괜찮겠는데요?”
“에이. 뭐 어깨 으쓱할 일도 아니죠. 오타니 선수가 이미 보여준 것도 있고 그냥 싼값에 선수 하나 살 기회라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아뇨. 가격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치들도 평생 해온 게 야구인데 야구 보는 눈 정도는 있지 않겠습니까? 작년 전체 1번이었던 라파엘 로드리게스도 전미 최고의 유망주로 이름 높았지만 이제 겨우 루키리그를 거쳐 싱글A를 뛰었습니다. 재작년의 전체 1번이자 올해 신인왕. MVP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역대급 천재 알렉산더 맥도웰도 1년 차에 AA리그를 박살냈다고는 하지만 스완이 KBO를 박살낸 것과 비교하면 박살이라는 단어 자체가 좀 민망한 수준이고요. 제가 생각할 때는 2억 달러에서 시작했어도 적어도 서너 팀은 달려들었을 겁니다.”
나름 가벼운 농담이었는데 돌아온 테드의 반응은 상당히 격렬했다. 그리고는 본인도 그걸 느꼈는지 곧바로 사과를 했다.
“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요즘 뭔가 스트레스 받는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아뇨, 아닙니다.”
나의 질문에 처음에는 아니라고 부인하던 테드였지만 그 부정이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어보니 솔직히 별 일도 아니라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에게 달려든 28개 구단 가운데 몇몇 구단들이 내부적으로는 내가 KBO에서 세운 기록을 좀 폄훼하고 투타겸업에 관해서도 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더 좋은 선택이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는 정도였으니까.
“에이, 뭐 그런 걸로 스트레스를 받고 그럽니까.”
“아니!! KBO의 수준을 어떻게 보건 간에. AA가 아니라 설사 싱글A라고 해도 그만큼 박살을 냈으면 메이저 즉전감이라고 봐야할 텐데. 그 생각 하는 논리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보수적인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아뇨. 아무리 보수적인 꼰대라도 이건 말이 안 됩니다. 게다가 이미 오타니 쇼헤이 선수가 투타 겸업의 유용성을 그렇게까지 증명했는데 투타 겸업 자체에 대해서 회의적이라뇨. 더군다나 지금 메이저에서 투타겸업 선수를 운용하는 팀이 벌써 일곱팀 아닙니까.”
확실히 지난 2021년의 새로운 로스터 정책 발표 이후로 메이저리그 팀들은 투타겸업을 사용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힘을 쓰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25인 로스터에서 투수로 등록 가능한 숫자는 13명인데 투타겸업 포지션의 경우 그 13명 외에 1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상황에 맞춰서 규칙이 바뀌기도 하지만, 그렇게 바뀐 규칙이 다시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야구는 아주 오래된 게임이다.
하지만 어느 위대한 타자가 남긴 명언처럼 우리는 우리가 평생 해온 경기에 대해 놀랄 만큼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처음 라루사이즘이라는 이름의 투수분업. 그러니까 당시 평가하기를 ‘다 이긴 경기의 9회에만 쓸데없이 등판해서 연봉을 받아먹는 먹튀.’ 줄여서 ‘1이닝 마무리 투수’를 도입한 것이 프로야구가 1876년에 처음 시작되고 무려 10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난 1988년이었다.
그 이후로 야구는 매우 빠르게 변화했다. 평균적으로 투수 11인 야수 14인이던 로스터가 투수 12인 야수 13인이 평균이 됐고 결국 투수 13인 야수 12인 로스터가 더 많아질 정도로 투수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사실 메이저리그 로스터가 25인에서 26인으로 늘어난 배경도 투수 13인이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과정에서 야수 백업이 백업 포수를 제외하면 고작 3명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 된 탓이 컸다.
즉 최근 메이저리그에 유행하는 멀티요원등도 결국에는 로스터 내에 투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함에 따라서 벌어진 일이라고 봐야했다.
그리고 그렇기에 투타 겸업은 아주 중요한 대안이었다.
오타니 쇼헤이가 워낙에 대단한 활약을 한 덕분에 투타겸업이라는 말이 선발과 지명타자를 동시에 수행하는 역할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아졌는데 사실 현존하는 대부분의 투타겸업 선수는 불펜과 백업 야수 역활을 수행한다. 일종에 내야 유틸리티 요원의 확장판인 셈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그러니까 오타니 쇼헤이의 활약을 보고 자라난 어린이들이 프로에 본격적으로 진출해서 자리 잡기 시작하는 2030년대 중반이 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긴 한다. 하지만 미래라는 것을 미리 예측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평생 야구를 해온 사람일수록 자신이 해왔던 관성에 지배당하기에 오히려 그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라루사이즘이 처음 시작될 당시 1이닝 마무리를 다 이긴 경기의 9회에만 쓸데없이 등판하는 사람취급 했던 것처럼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투타겸업은 숫자를 다루는 프런트에서조차도 여전히 그 유용성에 관해 왈가왈부가 나오는 영역이었다. 보수적인 좀 부정적이었는데 하물며 보수성으로는 프런트를 압도하는 현장의 분위기는 더욱 심각했다.
“오타니 쇼헤이? 그건 그냥 그 녀석이 슈퍼맨이라서 그런거고. 나는 동시기에 그런 슈퍼맨이 또 존재할 수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아.”
“하지만 스완은 좀 다르지 않을까? 너도 그 녀석 타격 폼 보고 감탄했었잖아.”
“아, 물론 스완 그 녀석은 대단하지. 하지만 오타니를 보라고. 투수로써 완성된 녀석이 타자의 재능도 대단했던 것 뿐이야. 반면 스완은 투수로의 완성도? 글쎄. 나는 녀석이 메이저급 투수라고 생각하지 않아. 어설프게 5선발이나 롱릴리프로 던질 바에야 전업타자로 집중해서 타격으로 포텐셜을 모두 터트리는 게 더 큰 도움 아니겠어?”
이건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로 참고로 거기서도 나에게 넣은 오퍼 내용은 투타겸업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LA 에인절스에서 오타니 쇼헤이에게 해줬던 것에 준하는 모든 지원을 해주겠노라 이야기했다. 자기 팀내 분위기 알면서도 일단 던지고 보는 제안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애틀 매리너스의 경우 저런 분위기가 아니더라도 애초에 후보에 없던 팀이기는 했다.
절대 우승할 수 없는 팀을 우승 시키는 데 얼마나 대단한 힘이 필요한지를 시험해보는 것은 한국의 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당장 2020년을 전후로 했을 때의 LA 에인절스만 보더라도 단순한 MVP급을 넘어서 명전 직행은 물론이거니와 역대 탑 20에 꼽을만한 선수가 둘이나 있는데 포스트 시즌 진출 자체가 불가능 했었다.
그리고 시애틀 매리너스는 마치 한국의 마린스와 비슷한 팀이다.
물론 시애틀 매리너스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오랜 시간 우승하지 못한 팀은 아니었다. 이미 깨져버린 시카고 컵스 108년의 기록이나 보스턴 레드삭스 86년의 기록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 위로 클리블랜드의 실시간 진행 중인 90년짜리 기록. 61년 창단 이후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텍사스 레인저스, 마찬가지로 69년에 창단하고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밀워키 브루어스와 샌디에고 파드레스가 있었으니 그보다 8년이나 늦은 77년에 창단한 시애틀 매리너스는 우승에서 만큼은 양반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애틀 매리너스가 특별한 것은 다른 팀들은 그래도 우승에 ‘도전’은 해봤지만 아쉽게 실패했던 반면에 시애틀 매리너스는 창단이후 한 번도 우승에 ‘도전권’이라고 할 수 있는 월드 시리즈 진출을 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 팀을 경험하는 것은 부산 마린스 하나면 충분했다.
아무튼 요즘 제임스 코퍼레이션에서는 이런 식으로 팀에서 오는 오퍼와 실제 그 팀의 분위기가 조금 다른 곳들을 체크해서 걸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가 그냥 일반적인 FA였다면 필요 없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작 500만 달러 이하의 계약금에 최저 연봉으로 계약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2억, 3억 달러씩 쓰는 선수에 비해 일단 질러놓고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팀이 나올 수도 있었기에 이건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아, 물론 그렇게 팀을 선별하는 작업에는 나 역시 매우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었다. 이래 봬도 나는 ‘미래’를 아는 남자였으니까. 어느 팀이 우승을 하고, 어떤 선수가 잘 나가고 하는 것들을 이미 알고 있는데 내가 뛰기 가장 적절한 팀이 어디일지를 고르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지.’
반성한다.
나는 ‘나비 효과’라는 것을 너무 우습게 봤다. 솔직히 역사에서 바뀐 건 ‘한국’에서 뛰는 나뿐이었으니 지구 반대편의 미국에서 뭐 얼마나 바뀌었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잠시만요. 텍사스 레인저스의 애런 리즈가 러브콜을 보냈다고요? 그게 제가 아는 애런 리즈 맞는 거죠?”
“네, 바로 그 ‘텍사스의 미래’ 애런 리즈요.”
여기서 내가 놀랐던 점은 애런 리즈가 아메리칸리그의 MVP라는 점이나 그 애런 리즈가 나에게 러브콜을 보냈다는 점이 아니었다.
내가 놀란 부분은 바로 그가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의 선수였다는 점이다. 원래 역사에서 애런 리즈는 신시내티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한 번도 MVP를 따낸 적은 없지만 그래도 꾸준히 올스타로 뽑히는 리그 최정상급의 ‘3루수’였다. 그리고 현재의 애런 리즈는 작년에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데뷔한 ‘유격수’로 뛰고 있었다.
원래 알던 역사와 바뀐 것은 고작 그 정도에서 끝이 아니었다. 내가 이 시대로 돌아온 이후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 3년이라는 시간 동안 태평양 건너에서 야구를 하는 내가 만들어낸 나비 효과는 실로 거대했다.
트레이드가 드문 KBO와는 달리 MLB의 트레이드는 매우 적극적이며 심지어 마이너 선수들을 포함한 트레이드나 옵트아웃 웨이버 등은 더 활발하다. 몇몇 선수가 바뀌는 것으로 팀의 순위가 바뀌고 드래프트 순서가 바뀌고 그걸로 다시 트레이드가 바뀌고 그런것들을 통하여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연쇄 효과들이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말했을 때 2028시즌을 앞둔 메이저리그의 상황은 내가 기억하는 메이저리그와는 너무 달랐다. 심지어 지난 생애에서 메이저에서 뛰었던 것은 2034시즌부터였기에 28시즌에 관해서는 정말 대략적인 것만 기억하는 수준이라 더 어려웠다.
결국 미래를 아는 치트키로 가장 적절한 팀을 골라서 간다는 계획은 시작도 해보기 전에 폐기됐고 그냥 내가 기억하는 미래의 지식은 팀을 고르는 데 참고용 정도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문가들에게 일차적으로 맡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나는 순수하게 몸을 만드는 데 전념했다.
가끔 살이 찌는 게 어렵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게 결국 체질이다. 왜 그렇지 않은가. 다이어트보다 다이어트한 몸매를 유지하는 게 더 어렵다고. 마찬가지다. 몸을 키우는 것도 어려운데 사실 내가 본래 먹는 섭식이 있는데 억지로 그걸 오버해서 만들어낸 몸을 유지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보디빌딩 선수들이 은퇴하면 몸이 쪼그라드는 걸 단순히 약을 끊어서 그렇다고만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그들이 몸을 그렇게 유지하는 것도 하루 5, 6끼를 꾸준히 섭취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단순히 약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아무튼 나는 워싱턴 형제의 동생인 잭과 그가 소개해준 피지컬 인스트럭터인 순다르의 도움 아래 매우 순조롭게 몸을 키울 수 있었다.
지난 시즌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찍었던 몸무게가 92kg. 그리고 시즌이 끝났을 때 체중이 88kg이었다. 그리고 지금.
220lb
kg단위로는 100kg.
나는 드디어 멸치에서 탈출을 했다.
“최수원 선수.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저희는 우선 최종 후보로 다섯 팀을 뽑았습니다.”
서류 면접에서 광탈한 팀이 28개 가운데 절반.
다시 조금 더 꼼꼼한 분석으로 탈락한 팀이 또 일곱.
그리고 그 사이에 변화한 팀내 사정으로 다시 탈락한 팀이 둘.
그렇게 내 앞으로 총 다섯 개 팀의 이름이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