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한국 시리즈(15)
[브레이브스의 덕아웃. 망설임이 없습니다. 자동 고의 사구!! 어제 경기에서 한 번 삼진을 잡아내긴 했지만 그래도 최수원은 최수원이다. 그 말이겠죠.]
“쯧······.”
알렉산더 맥도웰이 혀를 찼다.
1차전부터 지금까지 쭉 경기들을 지켜봤다.
“보셨죠? 제가 이래서 이런 작은 리그 말고 빅리그로 와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겁니다. 스완을 담기에 이 리그의 수준은 너무 낮아요. 이래서야 성장은커녕 오히려 퇴보할 겁니다.”
“······.”
최경식이 침묵했다.
알렉산더 맥도웰의 빠른 말을 못 알아 들어서가 아니었다. 그는 제법 능력 있는 남자였고 비록 그 발음이 한국적이라고는 해도 순수하게 영어 실력만 따지자면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알렉산더 맥도웰보다 최경식 쪽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이 침묵은 품 안의 자식이 만리타향으로 가는 것을 내심 반대했던 그의 과거가 과연 옳았는가에 대한 고뇌.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품기에 너무 커버렸다는 말을 듣는 저 열아홉 어린아이에 대한 걱정일 것이다.
“사실 이 아저씨는 야구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단다. 하지만 아들이 야구에 빠지고 야구 선수가 되겠다고 하니까 애비 된 도리로 야구를 어느 정도 공부할 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그렇게 야구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게 하나 있는데 어쩌면 이건 야구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스포츠에도 적용할만한 아주 중요한 명제인 것 같더구나.”
“그게 뭡니까?”
“그건 다치지 않고 꾸준하게 하는 선수가 결국 성공한다는 거지. 이제 열아홉 살짜리 아이가 프로 선수로 풀 시즌을 치르는 것만해도 힘들 텐데, 언어도 문화도 다른 외국에서 그걸 한다? 한국에 프로리그가 없는 것도 아닌데? 나는 우리 수원이가 조금 늦게 성장하더라도 이게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단다.”
알렉산더 맥도웰이 잠시 침묵했다.
물론 그 침묵과 무관하게 경기는 계속됐다. 마린스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마린스였다. 아니, 노아웃 만루에서 1점이라도 뽑아냈다는 점에서 마린스 치고는 제법 선방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아저씨, 제가 아시아 문화는 좀 잘 모르는 거거든요. 근데 야구는 제가 아주 잘 알아요. 아저씨가 말하는 건 그냥 적당히 그러니까 맥시멈 명예의 전당 정도 노려볼 만한 선수에게는 맞는 이야기에요. 근데 아저씨가 볼 때 저나 스완이 정말 그 정도 선수로 보이세요?”
2회 초.
수원이 다시 마운드로 올라왔다.
“오타니 쇼헤이가 2년 늦게 미국에 왔더라면 최저연봉이 아니라 총액 1억 5천만 달러쯤 받고 올 수 있었을 겁니다. 이건 확실해요. 안그래도 스완 때문에 국제유망주인지 뭔지 개똥같은 조항 조사해보다가 알게 된 사실이니까요. 아무튼 그런데 오타니는 그 1억 5천만 달러보다 2년을 선택했어요. 자기 정도 선수에게 1년, 1년의 커리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아, 물론 오타니도 NPB에서 5년인가? 뛰긴 했어요. 하지만 제가 생각할 때는 오타니도 투타겸업이라는 게 미국에서 받아들여졌더라면 NPB에서 그렇게 오래 뛰지도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오타니는 슈퍼맨이었지만······. 글쎄요. 제가 봤을 때 지금 19살의 스완은 적어도 NPB를 박살 냈던 21살의 오타니보다 오히려 더 대단해 보이는데요?”
분명 수원은 투수로써 완성도가 부족했다.
KBO 최초로 퍼펙트를 기록했지만, 결코 그것이 KBO 최고의 투수라는 말은 아니었다. 기복이 있었고 레퍼토리가 부족했다.
-뻐엉!!
“스트라잌!! 아웃!!”
하지만 지금 마운드에서 보여주는 그의 피칭에는 그것을 넘어서는 ‘위력’이 존재했다.
타자를 윽박지르는 강속구.
전광판에 162.1km/h라는 숫자가 찍혔다. 11월, 현재 기온이 16.1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믿기 힘든 강속구였다.
“그래, 대단하지······. 대단해······. 대체 언제 이렇게 큰 건지. 참······.”
몸도 제대로 뒤집지 못하던 작은 아이가 대체 언제 이렇게 자란 것일까.
그가 볼 때 참 모자란 아들이었다. 생긴 건 도망간 마누라랑 자신에게서 좋은 것만 쏙쏙 빼닮아 참 훤칠한데 머리는 도망간 마누라에게 물려받았는지 좀 멍청했다. 그러면 성격이라도 좋을 것이지. 하필 성격은 또 최경식 자신을 빼닮아서 더럽다.
아, 저건 답이 없겠구나. 그러니까 그냥 돈이라도 많이 벌어서 물려주는 것이 아들에게 가장 좋은 아비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보다 저 아이와 밥이라도 한 번 더 먹고, 캠핑이라도 한 번 더 가고. 캐치볼이라도 한 번 더 해주는 것이 더 좋은 아비의 역할이 아니었을까?
-부웅!!!
“스트라잌!! 아웃!!!”
KKK.
그야말로 그동안 방망이 못 휘두르면서 발생한 스트레스를 마운드에서 모조리 해결해버리겠다는 기세의 압도적인 피칭이었다. 브레이브스의 타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졌다.
이어지는 3회와 4회 그리고 5회를 지나 6회까지.
브레이브스는 점수를 내지 못했다.
마린스는?
······.
그냥 평소 그대로의 마린스였다.
***
가득 찬 관중.
인생의 마지막 경기.
가장 영광스러운 무대.
그리고 홈.
이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대체 얼마쯤 될까?
이규만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대부분 선수들이 기억하는 수학의 마지막이 사칙연산인 시점에서 경우의 수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규만은 충분히 선방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노형욱은 결국 한국 시리즈에서 최거노를 성공시키지 못했다.
시즌 중에도 그는 그 사실을 괴로워했었고, 어느 정도 극복했던 것처럼 굴었지만 결국 또 괴로워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서른 살쯤 되면 자기가 뭔가 다 큰 것 같고 세상의 이치를 좀 깨달은 것 같지만 그래봐야 이립(而立). 그냥 똑바로 서는 나이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규만은 그렇게 힘들어하는 노형욱의 말을 그냥 들어주었다. 딱히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때론 그냥 그렇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규만이 타석에 섰다.
만루.
그래, 만루였다.
1루에 선 것은 최수원.
오늘 벌써 세 번째 걸어 나간 최수원이다.
노형욱은 최거노에 실패했지만 이규만은 최거이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이규만이 전광판을 힐끔 바라봤다.
점수는 여전히 1:0. 마린스는 몇 번이나 좋은 기회를 얻었지만 아직까지도 1회 초에 쥐어짜냈던 1점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오늘 브레이브스의 선발인 장야오쉰이 그런 투수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많은 과거를 껴안고 살아간다는 말과도 같다. 그렇기에 이규만은 마운드에 선 장야오쉰에게서 다른 사람의 향기를 느꼈다.
대만특급 왕첸밍.
80년생. 그보다 여섯 살 많은 투수로 무려 메이저리그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던 대만 출신의 투수다.
이규만이 신인이던 시절에 이미 양키스의 선발 투수였다. 당시 그가 얼마나 대단한 투수였냐면 06년과 09년 WBC. 그리고 08년에 올림픽 당시에도 대만에서는 왕첸밍은 메이저에서 더 큰 일을 하게 내버려두고 너희들끼리 국가대표 경기하라는 여론이 있을 정도였다.
그가 처음 국제대회에 선 것은 그 기량이 꺾였던 2013년.
이규만은 거기서 왕첸밍을 처음 만났다.
27살.
그야말로 절정의 기량을 달리던 타자 이규만과 33살이지만 몇 차례의 부상으로 망가졌던 왕첸밍의 맞대결은 너무나도 당연히 이규만의 압승으로 끝났다. 다만 이규만 개인과 왕첸밍의 맞대결에서 이규만이 이긴 것과 별개로 당시 대회 자체는 한국은 1라운드에서 탈락. 대만은 진출하는 것으로 대만이 판정승을 거뒀다.
타석의 이규만이 고개를 저었다.
늙은이의 쓸모없는 과거 회상이 너무 길었다. 아무튼 저 장야오쉰에게서는 그 대만특급의 향기가 진하게 묻어났다. 재밌는 점은 이제 상황이 정 반대라는 점이었다.
아직 기량이 꺾이지 않은 투수.
나이를 먹고, 몇 차례의 부상으로 망가져 은퇴를 앞둔 타자.
마운드의 왕첸밍이 1루를 한 번 힐끔 바라봤다.
‘아니, 왕첸밍이 아니지. 장야오쉰이지.’
그는 이규만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이규만 홈런!! 이규만 홈런!!
사직 구장에는 이규만을 응원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감상적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마운드의 그가 크게 와인드업했다.
1회 초에 흔들렸던 모습은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2회 이후로 장야오쉰의 피칭은 매우 좋았다.
이규만은 알고 있었다.
공략하기 힘들 거라는 걸.
물론 절대 불가능하지는 않다.
아무튼 야구는 같은 리그에서 뛰는 수준이라면 2할 정도는 보장할만한 종목이니까. 다섯 타석에서 휘두르면 그래도 한 번은 안타를 치는 게 야구니까.
그런데 엄밀히 말해서 이제 은퇴가 코앞인 늙은 타자와 아직 기량이 좀 쌩쌩하게 남아 있는 투수는 같은 리그 수준이라고 보기 힘들지 않을까? 그것도 정규시즌에 그 장엄했던 마지막 홈런으로 이미 심지까지 모두 불태워버린 늙은 타자라면 더더욱.
아마도 이규만의 야구는 정규시즌의 그 우승으로 끝이 났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보너스 스테이지다. 그냥 집에 돌아가기엔 너무 아쉬워서 해가 져 버린 놀이터를 배회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점수는 1:0.
이규만의 오른손이 방망이의 끝으로 미끄러졌다.
번트였다.
-툭.
이규만은 번트를 대지 않는다. KBO 통산 안타, 홈런, 타점 1위의 타자가 번트를 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이제 발까지 느린 타자였다. 외야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가 땅볼로 둔갑하는 타자가 번트를 댈 일은 더더욱 없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었다.
이규만이라는 타자가 얼마나 번트를 잘 대는 타자인지를.
그래, 야구는 원래 잘하는 놈이 잘한다.
그리고 이규만은 한때 한국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던 선수였다.
타구의 힘을 죽인 완벽한 번트였다.
-뻐엉!!
“아웃!!”
물론 그렇다고 우익수 앞 땅볼을 치는 이규만이 번트로 살아 나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 번트가 원아웃 만루에서 병살이 아닌 투아웃 주자 2, 3루를 만들어 줄 수는 있었다.
[와, 여기서 이규만 선수가 번트를 할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게요. 이전에 두 타자 연속 번트도 그렇고. 김대철 감독 한국 시리즈 들어와서 정말 쥐어 짜내는 야구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식의 스몰볼. 그러니까 작전 야구는 요즘 선호되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확률적으로 따졌을 때 리스크에 비해서 리턴이 적기도 하고요. 하지만 어쨌거나 이 정도로 성공을 했으면 그건 그거대로 인정을 해야죠.]
[자, 6회 말. 마린스가 소중한 1점을 더 쥐어 짜내면서 점수는 2:0. 한국 시리즈 우승까지 한 걸음 더 가까워졌습니다.]
사람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이규만이 이 타이밍에 번트라는 기상천외한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이 기꺼이 이규만의 플레이에 크게 박수친 것은 마린스가 낳은 가장 위대한 타자의 마지막이 그들이 원하던 그것에 매우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홈과 1루를 잇는 어느 경계선에는 헬멧 하나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것은 KBO에서 가장 느린 타자는 고작 번트를 대고 ‘병살타를 치는 대신에 이걸로 1점을 쥐어짜낼 수 있었으니 됐다.’라고 만족하며 설렁설렁 조깅을 하는 대신 전력을 다하여 달린 흔적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아무 의미 없는 체력낭비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 의미 없는 야구라는 공놀이가 기록을 넘어 역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아무 의미 없는 낭비들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일 것이다.
왜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본래 낭만은 낭비에서 나오는 법이라고.
마린스가 6회 말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낭만’했다.
그리고 7회 초 점수는 2:0.
최수원이 또다시 공을 던졌다.
여전히 브레이브스는 점수를 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