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247화 (247/305)

247화. 한국 시리즈(12)

그래, 우리가 이기긴 이겼다.

근데 사실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특히 8회 초에 1사 1, 3루 상황에서는 아찔했었다. 7이닝 무실점에 밀어내기 볼넷으로 점수까지 뽑아냈는데 설마 이걸 지나? 싶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김대철 감독이 과감한 선택을 했다.

FA를 앞둔 마무리 투수 박재혁을 한 박자 빠르게 투입한 거다. 불펜에게 2이닝 던지게 하는 거 솔직히 좀 빡센 거 맞다. 근데 원래 토너먼트전이라는 건 그 빡셈을 좀 각오하고 가야 하는 게 있다.

박재혁은 두 타자에게 연속으로 삼진을 뽑아내며 무사히 이닝을 마무리 지었고, 9회에도 마운드에 올라가 경기를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과연 FA로이드. 내년까지 뛰고 FA에 들어가는 고설민이나 태지완과는 각오 자체가 다르다.

아무튼 최민혁에 최진웅을 내주고 불펜을 데리고 온 건 마린스 입장에서는 정말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반면 설마 한국 시리즈에서 마린스를 만날까 싶었던 브레이브스 입장에서는 최악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시즌 초까지만 하더라도 자기 팀의 든든한 수호신이었던 박재혁이 한국 시리즈에서 자신들을 막아내는 꼴이라니······. 팬들은 대체 저걸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

“공병준 저건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아니, 한국 시리즈 상대한테 팀의 필승조를 그대로 헌납을 한다고? 가뜩이나 조창혁 미국 갈거 생각하면 올해가 우승 도전할 마지막 기회인데!!”

“내가 말했잖아. 브레이브스 이 새끼들은 우승 할 생각이 없다니까? 그냥 가을 야구만 하면 메인 스폰서 받는 건 문제 없다. 뭐 그거지. 아니, 딱 1년에 전력 몰아서 우승하고 리빌딩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꾸준히 그냥 잘하는 선수 팔고 유망주 사오는 거 반복해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가을야구만 가는 스타일을 아예 확립을 한 거야. 장담하는데 얘들은 절대 우승 못 해.”

확실히 충격적인 장면이긴 했다.

시리즈 2차전. 8회 초 1점 차이에 1사 1, 3루라는 절호의 찬스에 시즌 초반에 팔아먹은 팀의 마무리가 올라와서 틀어막는 꼴이라니.

사실 브레이브스의 팬들은 브레이브스라는 팀의 기형적인 구조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KBO라는 환경에서 모그룹이 없는 상태로 운영되는 팀을 응원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하지만 그 이해라는 것도 결국 임계점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야, 나 브레이브스 불매한다 이제.”

“어? 갑자기?”

“이 새끼들은 매일 푯값도 비싸게 받는 새끼들이 선수 팔아 재끼는 거 오냐오냐해주니까 선을 넘어도 너무 쎄게 넘잖아. 어? 박재혁에 고설민에 태지완이면 마무리에 필승조 아니냐. 셋업빼고 불펜 다 팔아먹은 거나 마찬가지지.”

“야, 근데 너 시즌 중에는 트레이드 잘했다고 칭찬하지 않았었냐? 어차피 잡지도 못할 애들로 적어도 6년은 써먹을 수 있는 든든한 배터리 잘 챙겨왔다며.”

“몰랐으니까!!! 우리가 한국 시리즈까지 올라가고, 하필 또 그 상대가 마린스일 줄 몰랐으니까!! 솔직히 어? 박재혁 고설민 태지완 데려 갔다고 마린스가 한국 시리즈 나갈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냐? 그땐 최수원도 그냥 초반에 잠깐 반짝하는 신인일 줄 알았지. 누가 홈런을 74개나 때릴 줄 알았겠냐고!!”

“그런데 그건 공병준 단장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팬은 그래도 되지만 단장은 그러면 안되지!!”

“에휴, 그래 그래. 근데 진짜 너 브레이브스 불매할 거야? 그러면 얼른 가서 표 팔아. 지금 푯값 완전히 미쳤던데?”

“미쳤냐? 한국시리즈 표를 팔긴 왜 팔아. 그것까진 봐야지.”

물론 어느 브레이브스 팬의 이야기처럼 그들이 실망을 했건 말건 한국 시리즈 좌석은 이미 만석으로 심지어 25,000원에 정상 판매했던 고척의 외야 지정석이 10만 원을 넘어갈 만큼 그야말로 대흥행을 기록 중이었다.

2차전과 3차전 사이에 하루의 휴식.

부산에서 다시 서울로 이동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선수들에게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최수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발 등판했으니 몸도 추슬러야 했고 3차전부터 5차전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만큼 그에 따른 준비들도 필요했다. 하지만 그 모든 일보다 훨씬 충격적인 일이 그를 기다렸으니 그건 다름 아닌 저 태평양 너머에서 온 방문객의 등장이었다.

***

“스완!!”

“어? 알렉스? 이런 미친. 야. 너 진짜 온 거야? 언제 온 건데? 설마 오늘 경기도 다 본 거야?”

“당연하지!! 어디 오늘 경기뿐이겠어? 어제 경기도 다 봤어.”

“어제 도착했다고? 근데 왜 연락을 안 했어. 아니, 대체 잠은 어디서 잔 건데?”

“요 앞 호텔에서. 나쁘지 않던데? 비데도 좋았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들이 막 알아봐서 돌아다니기 힘들진 않았어?”

“어······. 생각보다 내가 한국에서 인지도가 좀 떨어지는 것 같더라. 아무도 못 알아보던데? 심지어 어떤 택시 기사는 내가 알렉스라고 사인했더니 알렉스 로드리게스냐고 묻더라니까.”

알렉산더 맥도웰.

분명 미국에서 현재 가장 뜨거운 야구 선수다. 아마 뉴욕이었다면 혼자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거다. 하지만 한국이라면? 메이저리그 선수를 넘어서 한국에서도 개봉한 헐리웃 영화의 주인공이 지하철을 탔는데 아무도 못 알아보는 나라다. 아니, 헐리웃 배우는 그냥 잘생긴 외국인이구나 하고 유심히 보기라도 하지. 알렉산더 맥도웰이라면 그냥 험상궂은 외국인이구나 하고 피해 다니기 급급할 거다.

“그래, 확실히 한국에 메이저리그 야구팬이 좀 적긴 하지.”

“그러니까. 한국에서 야구가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라고 해서 좀 기대했는데 말이지. 근데 아무리 그래도 야구장에 온 사람들까지 날 몰라보는 건 좀 심한 것 같더라. 아무래도 내가 좀 더 열심히 분발해야겠어.”

“뭐, 여기 온 사람들은 KBO의 팬이지 MLB의 팬은 아니니까. 그래서 아예 아무도 못 알아본 거야?”

“아니, 어떤 남자 커플은 날 알아보길래 야구공에 사인해주고 사진도 찍어줬지. 좋아하던데? 네 팬인 것 같더라. 뭐라더라? 나중에 내 사인볼에 네 사인도 같이 받아보고 싶다고 그러길래 하나 더 해줬어. 그러니까 너도 나중에 내 사인볼에 사인해달라는 남자 커플 보이면 하나 더 해줘.”

“그래? 한국에서는 그렇게 공공장소에서 커밍아웃 아직 쉽지 않을텐데. 대단하네. 아무튼 서울에 올라오면 바로 연락해. 고척에 표는 구했어? 쉽지 않을 텐데.”

알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여긴 확실히 표가 좀 싸던데? 며칠 전에 파는 표를 샀는데 꽤 괜찮은 좌석인데도 2,000달러도 안 하더라고?”

확실히 메이저리그에 비하면 푯값이 많이 싸긴 하다.

양키스 경기 같은 건 포스트시즌이 아니라 그냥 시즌 중에 경기라고 해도 상대가 보스턴 같은 인기 팀일 경우 한국의 테이블석 정도 되는 프리미엄석이라면 1,000달러를 훌쩍 넘어가고 비교적 저렴한 애리조나 같은 곳도 500달러는 줘야 했으니까.

사실 저 2,000달러도 한국 시리즈에 올라간 팀이 마린스에다가 경기장이 고척이라서 거의 맥시멈에 가까운 금액의 암표일 확률이 높다. 마린스의 한국 시리즈 경기는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평생에 한 번 보기 힘든 빅 이벤트였으니까.

“한국이 싼 것도 있지만 미국이 너무 비싼 거야. 아니다. 생각해보니까 또 그런것만은 아니네. 경기의 평균적인 퀄리티나 가치를 생각하면 어쩌면 적절한 가격 차이일지도?”

“워워, 스완. 네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하지 말라고. 네 경기는 누군가에겐 충분히 2,000달러를 지불할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아니, 그게 내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하는 게 아니라······.”

3차전.

마운드 위에 디에고 로드리게스가 올라왔다.

작년과 올해. 그는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평균보다 조금 더 괜찮은 성적을 거뒀다. 브레이브스의 타선이 평균보다 훌륭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뜻밖의 결과다.

[한국 시리즈 3차전!! 1회 초 마린스의 공격이 무안타로 끝난 가운데 마운드에 디에고 로드리게스 선수가 올라옵니다. 시즌 내내 2선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던 디에고 로드리게스 선수인데요. 한국 시리즈에서는 뜻밖에도 세 번째로 등판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 경기 전 김대철 감독은 디에고 로드리게스 선수의 고척돔 성적이 매우 훌륭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박동식 위원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 그래도 제가 이걸 좀 조사를 해봤습니다. 이게 디에고 선수의 경우 삼진도 상당히 잘 잡지만 살펴보면 타구에서 땅볼의 비율도 상당히 훌륭합니다. 주로 사용하는 공이 150km/h 근방에서 형성되는 커터니까 이상한 일도 아니긴 하죠.]

[아, 그러니까 땅볼 투수라서 고척에서 성적이 괜찮다는 말씀인가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그 반대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요?]

[맞습니다. 사실 고척돔이 사실 땅볼 투수한테는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닙니다. 인조 잔디의 경우 타구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내야의 타구 속도가 빨라진다는 이야기는 결국 땅볼이 안타로 연결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체 왜 디에고 로드리게스 선수는 고척에서 성적이 좋은 거죠?]

[제가 볼 때는 그건 작년 디에고 선수가 뛰었던 엘리츠의 유격수인 오형원 선수. 그리고 마린스의 유격수인 강라온 선수 덕분이라고 봅니다. 핫코너를 담당하는 선수가 리그에서 손꼽히는 반응 속도를 가진 선수들이니 가능한 부분이겠죠.]

지금 주머니에서 오백원짜리 동전을 꺼내서 던져보자.

이게 아주 정상적인 보통의 동전이라는 가정하에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1/2다. 물론 동전이 선다는 천문학적인 확률도 있겠지만 아무튼 대충 1/2라고 생각하자.

확률이 1/2니까 이번에 앞면이 나왔으면 동전을 또 던졌을 때 무조건 뒷면이 나올까? 아니다. 마찬가지로 1/2다. 그렇다면 반대로 한 네 번 정도 연속으로 던졌다. 근데 계속 앞면만 나온다. 그러면 이 동전은 던지면 무조건 앞면이 나오는 동전일까? 그래, 이게 정상적인 동전이 아니라 사기 동전이라면 그럴 지도 모르겠다.

-딱!!!

[강한 타구!! 강라온 몸을 날려 봅니다만은 조금 멀었습니다!! 좌익수 이정훈이 빠르게 달려옵니다!! 하지만 그사이 2루 주자 홈으로!! 1회 말!! 브레이브스가 선취점을 획득합니다.]

작년과 올해. 디에고 로드리게스가 고척에서 치렀던 경기들은 그 내용도 좋았고 결과도 훌륭했다. 하지만 그 경기의 숫자는 불과 네 경기. 동전을 네 번 던져서 모두 앞면이 나온 셈이다.

그리고 한국 시리즈 3차전.

김대철 감독은 디에고 로드리게스라는 투수가 사기 동전이라 믿고 또 한 번 앞면을 기대하며 동전을 던졌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디에고 로드리게스는 아주 정상적인 보통의 동전이었으며 이번에는 동전의 앞면이 아닌 뒷면이 나왔다.

[반격의 서막? 한국 시리즈 3차전!! 11:4 브레이브스 승리!!]

[2.1이닝 6실점. 빨랐지만 너무 늦었던 김대철 감독의 판단!!]

[한국 시리즈 4차전. 한솥밥을 먹던 동료의 맞대결? 백하민 vs 최민혁!!]

[야구에서 타자가 경기를 지배할 수 없는 이유? 1차전 첫 번째 타석 이후 단 한 번도 방망이를 휘두르지 못하고 있는 최수원!!]

[전략일까? 규칙 개정이 필요한 악법일까? 최수원 13타석 0타수 13볼넷.]

─출루율 100%. 무조건 출루하는 타자를 데리고도 경기에 지는 건 대체 어느 나라 야구냐!! 이 시부럴 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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