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243화 (243/305)

243화. 한국 시리즈(8)

오늘 브레이브스의 선발 투수는 장야오쉰.

그는 대만 출신의 프로 선수로 대만 리그에 있을 당시 그 유명한 대만특급 왕첸밍에게 사사한 정통파 싱커볼러다.

한때 양키스의 선발 투수로 한 시즌 아시아 투수 최다승 기록과 사이영 2위까지 보유하고 있는 왕첸밍이 대만의 프로팀에서 투수코치로 6년을 재직하는 동안 키워낸 싱커볼러 가운데 손에 꼽을만한 완성도를 지녔다는 평가를 듣는다.

다만 그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가 MLB나 NPB가 아닌 KBO에서 뛰는 이유는 역시 올해를 기준으로 34살이라는 많은 나이, 그리고 그가 터진 것이 바로 작년의 일이기 때문이다. KBO 쪽이 상대적으로 이동 거리가 짧고 일정이 여유로운 데다가 1년 차를 기준으로는 그 연봉 역시 아주 크게 적은 건 아니었다.

단년 45만 달러.

대만에서 그가 받던 금액의 3배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작년 대만 리그에서 그의 성적이 대폭발했다고는 하지만 플루크였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브레이브스로서는 상당히 위험한 모험을 한 셈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험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장야오쉰의 이번 시즌 성적은 187.1이닝 ERA 3.07로 평자책만 보자면 리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게 빼어난 성적이었다.

물론 싱커볼러의 특성상 삼진이 적고 땅볼을 유도했기에 인조잔디를 사용하는 고척돔이라는 환경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은 매우 큰 단점이었다.

“아니, 근데 브레이브스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땅볼 투수만 주야장천으로 모은 거야? 고척 인조 잔디는 땅볼 투수한테는 거의 지옥이잖아. 이번 시즌 장야오쉰이 잘 던지기는 했는데 자책이랑 실점이 16점이나 차이 나기도 하고. 그거보다 더 차이나는 건 딜튼 도일리 정도 제외하면 없지 않나?”

“딜튼은 평자책이랑 실점이랑 15점 차이라서 장야오쉰보다 1점 적게 차이 난다. 장야오쉰 16점이 피닉스에 최으뜸, 잭 서튼이랑 같이 공동 1등이야.”

“아무튼. 고척돔 환경 생각하면 땅볼 투수가 아니라 뜬공 투수로 데리고 와야 하는 거 아니냐. 뭐 그런 이야기지.”

“아, 그거 나 특집 기사 읽은 적 있어. 뭐더라? ‘뜬공 투수는 없다.’였나? 아, 맞다. 이거다.”

마운드의 장야오쉰이 가볍게 호흡했다.

올해 45만 달러.

그가 작년까지 대만에서 12년 동안 프로 생활을 해오면서 수령한 연봉 총액이 80만 달러가 채 되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보통 큰 금액이 아니다. 작년을 기준으로 대만 리그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았던 용병 타자 엘리안 구리엘의 연봉이 32만 달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우승만 하면 보너스가 10만 달러······.’

올해로 만 34세.

이제 언제까지 더 뛸 수 있을지도 모르는 나이다. 싱커볼러들의 부상이 잦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타석에 마린스의 1번 타자인 강라온이 올라왔다.

어려운 타자다. 커버할 수 있는 존이 넓고 시즌에 10개에 가까운 홈런을 기대해볼 만한 파워도 있다. 심지어 3루타도 꾸준히 2, 3개씩 만들어 낼만큼 발도 빠르다.

장야오쉰이 공을 던졌다.

-뻐엉!!

[초구, 144.7km/h의 낮게 깔리는 공!! 강라온 선수가 잘 골라냅니다.]

[아주 좋은 싱커였습니다. 강라온 선수가 잘 참았어요.]

초구는 일단 한가운데 직구가 아니면 어지간하면 참겠다는 각오로 들어온 것이 득이 됐다. 아마 방망이가 나갔더라면 내야 땅볼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두 번째.

이번에는 그보다 조금 높은 코스.

-부웅!!

“스트라잌!!”

139.9km/h의 슬라이더였다.

싱커와는 정반대되는 궤적.

강라온이 침착하게 호흡하며 세 번째 공을 기다렸다.

볼카운트 1-1.

두 번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궤적으로 공이 날아왔다.

슬라이더?

싱커?

-딱!!!

강라온의 배트가 공을 두들겼다. 하지만 제대로 맞추지는 못했다.

강라온이 1루를 향해 빠르게 달렸다. 야구는 언제 어떤 플레이가 나올지 모른다. 심지어 한국 시리즈다. 설사 땅볼 아웃을 예감하더라도 전력으로 달려야 했다. 브레이브스의 2루수인 신희성 역시 타구를 잡기 위해 앞으로 몇 걸음을 달려 나왔다.

실책이었다.

살짝 패인 땅을 타고 튀어오른 타구가 2루수 신희성의 글러브를 살짝 벗어났다. 허겁지겁 몸을 돌려 타구를 주워 던졌지만 늦었다.

“세이프!!”

장야오쉰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딱 그뿐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어설픈 한국어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장야오쉰의 나이도 올해 만으로 서른넷이다. 적지 않은 그 나이만큼이나 많은 사연들이 있었다. 시즌 내내 이어진 많은 에러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에러들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어지는 타자는 2번 타자인 이정훈.

타석 직전에 최수원에게 한마디도 입을 뻥긋하지 않은 그가 타석에 섰다.

마린스의 상위타선은 까다롭다.

최수원이라는 규격 외를 제외하더라도 돌핀스 정도를 제외한다면 마린스보다 확실히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 팀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이정훈은 그런 마린스에서도 꾸준하게 1, 2번을 오가는 테이블 셰터다.

‘이정훈. 매우 끈질긴 타자.’

하지만 그런 이정훈이 묘하게 그 끈질김을 상실할 때가 있다.

바로 좋은 카운트에 자기가 좋아하는 코스로 공이 들어왔을 때다. 이때 그는 과감하게 방망이를 휘두른다.

바로 이렇게!!

-딱!!

[쳤습니다!! 2, 3루 간으로 흐르는 타구!! 장찬민 가볍게 잡아서 신희성에게!! 신희성!! 그대로 1루에 명진수에게까지!!]

“아웃!!”

[깔끔한 더블 아웃!! 장야오쉰 선수가 이정훈 선수에게 병살타를 끌어냅니다.]

[확실히 장야오쉰 선수의 싱커가 까다롭긴 까다롭습니다. 사실 저게 제대로 정타를 때리기 정말 어려운 공이거든요.]

[투아웃에 주자 없는 상황. 타석에 오늘 선발 투수죠? 3번 타자 최수원 선수가 올라옵니다.]

최수원.

다른 말로 하면 괴물.

장야오쉰은 항상 자신의 나이를 아쉽게 생각했었다.

조금만 더 일찍 왕첸밍을 만나서 그에게 피칭을 배울 수 있었더라면 아마 자신도 KBO를 넘어 더 높은 곳을 노려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KBO에 와서 최수원을 본 순간 그 아쉬움을 확실하게 접을 수 있었다.

아, 저런 게 바로 메이저급 선수라는 거구나.

규격 자체가 달랐다.

다른 사람들이 다 야구(野球)를 하는데 쟤는 혼자 Baseball을 하고 있었다. 그게 대체 무슨 헛소리냐고? 야구가 곧 베이스볼 아니냐고? 그래, 맞다. 방셔우(棒球)건 야구(野球)건 야큐(野球)건 다 똑같은 말이다. 하지만 최수원의 특별함은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분명 같은 조건 하에서 같은 게임을 하는데 쟤는 혼자 다르다.

그러니까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거대한 야유가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자동고의사구!! 브레이브스의 덕아웃이 자동 고의사구로 최수원 선수를 내보냅니다. 이걸로 지난 경기 이후로 벌써 4타석 연속 자동 고의사구입니다.]

[이건 뭐······. 사실 제가 박유성 감독 자리에 있더라도 비슷한 선택을 했을 것 같습니다.]

그 거대한 야유 속에서도 장야오쉰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 결국 쟤 혼자 Baseball을 하고 있으니 쟤만 상대 안 하면 그만이다. 물론 저 녀석은 그렇게 해도 골치 아프다. 시즌 도루가 무려 24개다. 성공률도 나쁘지 않아서 85.7%나 된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은 상관없었다.

[사실 최수원 선수 같은 경우 주자 없는 상황에서 볼넷으로 출루시켜도 골치 아픈 선수인 건 사실입니다. 발이 빠르거든요. 일단 2루로 도루를 하고, 바로 뒤에 노형욱 선수가 단타만 쳐줘도 그대로 1점을 만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보시면 투수로 출장했을 때는 도루가 0개입니다. 아예 시도 자체가 없어요.]

[어? 제가 기억하기로는 예전에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투수로 출장한 경기에 도루를 했던 것 같은데요.]

[아아, 브레이브스와의 경기라면 최수원 선수가 2.1이닝 던지고 조기 강판당한 다음, 1루수로 경기를 뛰면서 도루를 했던 경기를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세트 포지션.

슬라이드 스텝으로 한 박자 빠르게 공을 던졌다.

-뻐엉!!

그 덕분에 제구가 흔들렸다.

존 밖으로 빠져나가는 공에 노형욱이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았다.

1루를 한 번 또 바라보고.

세트 포지션에서 슬라이드 스텝으로 또 하나 공을 던졌다.

아슬아슬하게 포를 뜨듯이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슬라이더.

-부웅!!

“스트라잌!!”

노형욱의 방망이가 허공을 휘저었다.

볼카운트 1-1.

세 번째.

여기서 약간의 페이크를 섞는다.

세트 포지션에서 슬라이드 스텝이 아닌 정상 스텝으로 박자를 흔든다. 그리고 가장 빠른 싱커!! 146.4km/h의 빠른 싱커가 존의 복판에서 미묘하게 타자 몸쪽으로 흘러 들어갔다.

-딱!!!

벼락처럼 뽑혀나온 노형욱의 배트.

스윗스팟을 맞추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힘으로 방망이를 끝까지 잡아당겼다.

높게 뜬 타구가 쭉쭉 뻗어나갔다.

노형욱이 멋지게 방망이를 버리고 1루를 향해 내달렸다.

투아웃 상황.

최수원 역시 리터치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일단 2루를 향해 달렸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마린스의 팬들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타구를 노려봤다.

[쭉쭉 뻗어 나가는 빠른 타구!! 상당히 큽니다!!]

장야오쉰 역시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가 던진 공은 매우 좋았지만 좋은 공을 던졌다고 항상 좋은 결과가 따라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제발!!’

물론 그 내면의 절규와는 별개로 그 표정만큼은 담담했으니 그 담담한 표정 역시 굴곡 가득한 지난 세월이 그에게 준 선물 중 하나였다.

강호창이 달렸다.

이주혁 이전에 마린스의 주전 중견수였던 32세의 베테랑으로 브레이브스가 이번 시즌 우승을 위해 야심차게 영입한 4년 45억의 중견수다.

마린스의 디에고 로드리게스가 자신의 친정이었던 엘리츠에게만큼은 패배하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강호창 역시 마린스에게 만큼은 패배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디에고는 엘리츠에게 버림받았고, 강호창은 직접 마린스를 버렸다는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본래 전 여자친구라는 것이 내가 찼건, 차였건 상관없이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존재인 것처럼, 친정팀이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강호창의 달리는 속도는 이주혁의 질주만큼 빠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시작이 조금 더 빨랐고 그 방향이 매우 올발랐으며 그 의지 역시 남달랐다.

워닝 트랙까지 한 걸음.

쭉 뻗은 강호창의 글러브가 날아오는 야구공을 낚아 챘다.

[잡았습니다!! 강호창!!]

[와, 강호창 선수. 정말 멋진 수비였습니다. 쉽지 않은 타구였는데 저걸 저렇게 잡아내네요.]

[1회 말. 점수는 0:0. 마린스의 공격이 조금 아쉽게 끝이 납니다.]

경기가 계속됐다.

최수원은 압도적인 구위로 브레이브스의 타선을 내리눌렀다. 종종 위협적인 타구가 나왔지만 운도 조금 따랐다. 그리하여 5회까지 그가 허용한 출루는 고작 볼넷 하나에 불과했다.

장야오쉰 역시 마린스의 타선을 매우 잘 막아냈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구속 역시 조금씩 올라와서 4회에는 마침내 싱커의 구속이 147.9km/h를 찍었다.

그리고 6회 초 브레이브스의 공격.

최수원이 또 다시 마운드 위로 올라왔다.

선두타자는 8번.

마린스의 배신자인 45억짜리 중견수 강호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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