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239화 (239/305)

239화. 한국 시리즈(4)

“오, 영상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좋아졌는데?”

약 2년 만의 만남이었다. 아니,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아직 만남까지는 아니다. 알렉산더 맥도웰은 최수원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최수원이 바라보는 것은 등 뒤편의 관객석이 아닌 마운드 위의 투수였으니까.

알렉산더 맥도웰이 등을 돌리고 자신의 어깨 너머로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서는 최수원이 보이게 셀카를 찍었다. 그리고 일단 자신의 SNS에 그 사진을 올렸다. 동영상은 추후에 하이라이트 형식으로 다시 편집해서 올릴 예정이다.

팔로워 숫자는 320만

“후······. 더럽게 안 느네. 진짜.”

무려 데뷔 시즌 올스타에 신인왕 확정. MVP 후보. 리그 홈런 2위. 심지어 SNS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법에 대하여 강의까지 들었음에도 이 모양이다.

야구라는 종목의 한계일까?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하지만 그렇기에 알렉산더 맥도웰은 자신이 하는 이 모든 행동들이 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묵묵하게 야구만 열심히 하면 된다?

21세기 가장 화제성 있는 스포츠 스타는 역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였다. 아니, 어쩌면 복싱이라는 종목의 역사를 통틀어서도 그는 가장 화제성 있는 선수였는지도 모른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그를 욕했다. 심지어는 복싱 팬들조차도 그렇다.

그는 전통적으로 가장 인기있던 헤비급조차 아닌 웰터급이었지만 결국 웰터급 자체를 가장 인기있는 체급으로 만들어버렸다. 물론 거기에는 그의 노력만이 아닌 다른 위대한 선수들의 스토리도 가득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그토록 강조되고 모두의 시선을 끌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메이웨더의 공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야구는 미국의 국기(America’s National Pastime)다. 모든 스포츠 종목 가운데 유일하게 법적으로 광범위한 반독점법 면제권을 갖는다.

어째서일까?

알렉산더 맥도웰은 알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야구가 미국의 국기인 것도 알지 못했으며 그의 할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그건 그의 증조할아버지 정도까지는 올라가야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지금 야구의 인기는 이 모양일까?

물론 여전히 야구는 북미 No.2 스포츠다. 특히 최근 WBC가 나름대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No.2의 자리를 더욱 공고하게 굳히는 추세다.

하지만 범위를 세계로 넓혀 본다면?

NFL, NBA.

심지어 MLS의 스타들조차도 야구 스타보다 훨씬 더 높은 인기를 구가한다. 당장 MLB 선수들 가운데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팔로워를 자랑하는 알렉산더 맥도웰 자신의 팔로워 숫자가 고작 320만이다. 팝스타의 애완강아지 팔로워가 1,000만을 넘어가는 시대에 참으로 처참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두서없는 생각이었지만 알렉산더 맥도웰의 목표는 확실했다.

야구의 부흥.

그는 플로이드 메이웨더가 쇠퇴해가는 복싱에 산소호흡기라도 붙여놨던 것 이상의 무언가를 야구계에 안겨 주고 싶었다.

그가 생각할 때 단순히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선수가 되기는 쉬운 일이었다. 아니, 솔직히 보통 사람에게는 그것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는 알렉산더 맥도웰이었다.

그리고 그런 알렉산더 맥도웰은 WBSC U-18 야구 월드컵에서 최수원을 보는 순간 직감했었다.

‘스완, 네가 나의 팩맨이야.’

야구의 인기가 가장 크게 반등했던 시절은 배리 본즈가 홈런 신기록을 쭉쭉 써 내려갈 때가 아니었다.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 경쟁이 벌어질 때다.

또한 플로이드 메이웨더의 시작은 오스카 델 라 호야였지만 그가 그토록 높이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8체급 석권의 위대한 챔프 매니 파퀴아오와의 라이벌리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알렉산더 맥도웰 자신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최수원. 그리고 대충 어디서 라틴계 하나 더 튀어 나와주면 그것만으로도 세계의 절반이다.

“자, 그러니까 스완. 어서 마침표를 찍고 넘어오라고.”

#rival #Bestfriend #74HRhitter #swan-choi #baseball #KBO

***

조창혁은 에이스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그 에이스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강력한 에고를 지니고 있었다.

“네? 감독님.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니, 창혁아. 흥분하지 말고······.”

“감독님!! 저 조창혁입니다!! 브레이브스의 에이스 조창혁!! 내년에 메이저리그 갈 조창혁이요!!”

“그래, 알지. 알아. 근데 인마 너 어? 얼마 전에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임광형 상대로 최수원이가 하는 거 봤냐. 못 봤냐.”

“······.”

“솔직히 그 경기에서 임광형이가 최수원이 볼넷만 줬다고 생각해봐라. 와일드카드 결정전 치르는 건 피닉스가 아니라 우리였을거다. 그리고 만약 그랬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우리가 아니라 피닉스였을 수도 있는 거고.”

사실 의미 없는 가정이기는 했다.

홈런 신기록 행진을 보여주던 최수원에게 볼넷을 준다는 건, 심지어 마린스의 홈인 사직에서 그런 짓을 한다는 건 그야말로 폭동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브레이브스 박유성 감독의 말처럼 만약 그날 경기에서 최수원에게 전 타석 볼넷을 줬더라면 피닉스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아닌 준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따냈을 것이다.

“하지만 전 광형 선배가 아닙니다.”

“알지, 나도 잘 알지. 창혁아, 근데 이거 단기전이잖냐. 어? 내가 너를 못 믿어서 그러는 게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박유성 감독은 이번 시즌 조창혁과 임광형의 기량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둘 다 최수원에게 호구 잡힌 것도 똑같았다. 하지만 지금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는 없었다.

‘내가 진짜 더러워서. 어휴, 진짜 내가 선수로 뛸 적 같았으면 어? 에이스고 뭐고 감독이 까라면 까지 뭐 말이 많냐고 그대로 조인트를 확!! 진짜 야구판 많이 좋아졌다. 많이 좋아졌어.’

단순히 감독의 권위로 눌러버리기에 조창혁이라는 에이스가 팀에서 갖는 위상은 너무 컸다. 게다가 내년에 어차피 메이저로 떠날 사람이라 감독의 권위가 잘 먹혀들지 않는다는 점도 주요했으며 무엇보다 기분에 따라 좌우되는 녀석의 퍼포먼스가 너무 큰 불안 요소였다.

“후, 알겠습니다. 감독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

“그래, 인마. 잘 생각했어. 눈 딱 감고 어? 최수원만 싹 거르자. 마린스 별 거 아니야. 그렇게만 하면 어? 너도 미국 떠나기 전에 한국 시리즈 MVP 딱 타고. 브레이브스를 우승까지 시킨 최초의 에이스 타이틀 딱 가지고 든든하게 가는 거야. 너도 잘 알지? 미국 가더라도 결국 한국인들 응원도 중요하다는 거.”

“물론 잘 알죠. 근데요, 감독님······. 딱 한 번만 기회를 좀 주세요.”

“어?”

“솔직히 저도 나름대로 에이스라는 자부심이 있는데 첫 타석부터 대뜸 볼넷은 좀 그렇잖아요.”

“아냐, 안 그래. 아무도 뭐 그렇게 생각을 안 해. 메이저에 그 앤드류인가? 평속이 97마일인 그 괴물. 걔도 지금 최수원이랑 정면 승부는 피해갈거야.”

“근데 최수원도 3주나 쉬었잖아요. 타격감이 어떨지는 또 모르죠. 그러니까 진짜 딱 첫 타석만 승부하게 해주세요. 느낌 싸하다 싶으면 바로 빠질게요. 장작만 안 쌓으면 최악의 경우 1점이잖아요.”

“······.”

“감독님. 진짜 딱 첫 타석 간 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 내보내겠습니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루라도 밀어내기 볼넷 할게요. 솔직히 애 상태 어떤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도망치는 건 제가 너무 쪽팔리잖아요.”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데 박유성 감독도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는 이제 더 밀어붙여 봤자 득보다 실이 더 크다.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더 길게 이야기할 필욘 없을 것 같네. 우리 진짜 이겨보자. 어? 솔직히 내년 이후로 너 없이 팀 운영할 생각하면 진짜 눈앞이 깜깜하다. 최소한 5년, 아니 10년 통틀어서 올해가 우리 팀 전력 최고점이야. 어? 그러니까 제발, 제발 미국 가기 전에 우승 좀 안겨주고 가라. 오케이?”

“넵!! 알겠습니다.”

KK

강라온에 이정훈까지 삼진으로 잡아냈다. 일단 최수원 앞에 장작을 쌓지 않겠다는 약속은 지킨 셈이다.

‘젠장, 쓸데없이 끈질겨서는.’

하지만 쉽게 쉽게 해결했던 강라온과 달리 이정훈을 해결하는 데는 제법 애를 먹었다. 적당히 힘을 빼고 잡아낼 생각이었는데 거의 전력으로 공을 뿌려야만 했다. 이왕이면 최수원에게 제대로 된 공 하나도 보여주지 않고 승부를 시작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툭툭

로진백을 두 차례 매만지고 폐부 깊숙하게 호흡을 삼켰다.

올해를 끝으로 빅리그에 가지만, 그렇기에 최수원과의 승부는 이것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다. 들리는 소문 따윈 다 무시하더라도 최수원이라면 분명 메이저로 올 테니까.

‘하여간 운도 좋다니까.’

프로 7년.

상무 2년.

무려 9년을 한국에서 뛴 이후에야 간신히 포스팅으로 미국에 도전하는 자신과 달리 최수원은 고작 1년 만에 메이저에 진출한다. 배가 너무너무 아프다.

‘그러니까 마지막 승부 정도는 이 선배님한테 양보 좀 해라.’

그는 최수원을 절대 쉽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강력한 에고는 타인을 쉽게 인정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를 깎아내리는 법이 없다.

전력투구.

조창혁이 던진 속구가 그의 손을 떠났다.

159.1km/h.

매우 빠른 공이었다.

***

‘미친?’

정말 내가 생각해도 이건 동물과 같은 반사신경이었다.

정면으로 날아오는 터무니 없이 빠른 속구를 간발의 차로 피했다.

-뻐엉!!!

159.1km/h.

만약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머리에 맞았더라면 시리즈 아웃은 물론이거니와 후유증을 걱정해야 할 만큼 강력한 공이었다.

덕아웃의 딜튼이 자기가 오늘 선발이라는 것도 잊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팔을 걷어붙였다. 역시 이건 방망이를 집어 던지고 달려가야 맞는 거겠지? 괜히 이런 거 내버려 두면 얕보인다.

그래, 결정했다.

그렇게 내가 방망이를 집어 던지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

마운드의 조창혁이 모자를 벗었다.

그러니까 평소 하는 꼬라지를 봤을 때, 모자를 벗는 게 아니라 글러브를 벗고 파이팅 자세를 취해도 이상하지 않을 놈이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미미하게 고개가 움직였다.

스읍······. 그러니까 꾸벅이라는 의성어를 쓰기에는 당연히 부족했고, 까딱이라고 하기에도 조금 부족한 정도의 각도였다.

‘야, 진짜 고의는 아니었다. 미안.’

정확히 이 정도 느낌이다.

딜튼이 일단 걷어붙였던 소매는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솔직히 제구도 안 되는 놈이 몸쪽 공을 던진 건 쳐맞을만한 일이기는 했지만, 한국 야구판에서 선배가 실투 던졌다고 후배한테 사과하는 건 어지간하면 벌어지기 힘든 일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 사과하는 것이 학폭 조창혁이라니. 아마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은 물론이거니와 해설자들도 깜짝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래, 좋다.

급하게 공을 피하느라 바닥에 떨어진 헬멧을 주워 썼다.

그리고 다시 타석에서 녀석의 두 번째 공을 기다렸다.

느낌이 왔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조창혁이라면, 아니 조창혁이기에 이렇게 하지 않을까 싶은 그런 느낌이었다.

몸쪽 높은 코스.

마찬가지로 빠른 공.

이번에는 빠지지 않은 정말 좋은 공이었다.

-딱!!!

타구가 담장을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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