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237화 (237/305)

237화. 한국 시리즈(2)

프로 팀 간에 전력 차이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역시 자금력이다. 빅마켓 구단과 스몰마켓 구단의 매출은 다를 수밖에 없고 당연히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의 단위가 달라지니 팀의 전력 역시 달라진다. 물론 자금력이 전력의 모든 것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실제로 이번 시즌 메츠의 페이롤은 하위 다섯 개 팀을 모두 합친 것만큼 막대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어메이징 메츠는 고작 그들이 사용하는 페이롤의 14%에 불과한 피츠버그 파이러츠에 밀려 와일드카드 획득에 실패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결국 야구라는 종목의 근간이라고 볼 수 있는 선수의 수급이 드래프트 제도로 컨트롤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제도가 없을 경우 돈이 많은 팀이 얼마나 강력해질 수 있는지는 과거 1기 악의 제국 시절 양키스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프로리그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팀 간의 ‘경쟁’이 가능해야 한다. 물론 도입 당시에는 사회주의 빨갱이 같은 사상이라며 욕을 좀 많이 먹긴 했지만 그런 의미에서 이 드래프트라는 제도는 오직 마켓의 규모만이 팀의 강함을 결정짓지 못 하게 하여 제대로 된 프로리그의 성립이 가능케 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드래프트 제도가 시행되고, 심지어 마켓의 규모에서 딱히 차이를 보이지 않는. 아니, 심지어 돈을 더럽게 많이 쓰는 팀이 꾸준하게 하위권만 유지하는 리그가 있다?

그래, KBO다.

“육성 차이지 뭐.”

“아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방금 수원이 네가 말했잖아. 어차피 좁은 바닥이라서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근데 어느 팀만 20년 30년 동안 꾸준히 육성을 실패하고 어느 팀은 계속 성공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잖아.”

갑자기 부산 내려온다고 하길래 그러라고 했더니 대뜸 소주 두 병을 사서 쳐들어온 박은진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여기 물 마시고 진정 좀 해라.”

“솔직히 10년 만에 가을 야구라서 그걸로 만족하려고 했거든? 근데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정규시즌 4위 팀이 5위 팀한테 업셋 당한 게 와일드카드 결정전 12년 역사에서 처음이라잖아. 아니, 왜 그런 안 좋은 기록은 죄다 우리가 가져가는 건데.”

“죄다 너희가 가져가진 않았지. 우리 마린스도 그런 쪽으로는 절대 만만치가 않아.”

“대신 마린스는 너 가져갔잖아!! 정규시즌 우승도 했고!! 한국시리즈 우승도 할 거고!!”

솔직히 여기서는 피닉스도 내년엔 괜찮아질 거야. 라고 위로를 하는 게 맞긴 한데 너무 거짓말 같아서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수원아, 너 미국 말고 피닉스로 오면 안 되냐? 어?”

“괜찮겠어? 미국이야 당장이라도 포스팅으로 가능하다지만 피닉스 가려면 FA 자격 얻어야 가능하잖아. 앞으로 7년을 더 마린스에서 뛰어야 하는데?”

얼굴이 좀 불콰해지던 박은진이 나의 말에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반듯한 자세로 답했다.

“아뇨,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저 박은진은 대승적인 마음으로 최수원 선수의 메이저 도전을 응원합니다.”

“그래, 그 응원 기꺼이 받아들이마.”

“아니, 근데 진짜 우리 피닉스는 답이 없는 거야? 솔직히 우리가 돈을 안 쓰는 것도 아니고 그래, 다른 구단들은 다 그렇다고 치자. 왜 브레이브스 같은 거지들은 FA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맨날 선수들 팔기만 하면서도 꾸역꾸역 포스트시즌 진출하는데 우린 이 모양인 거야?”

“그러게나 말이다.”

이유야 많았다.

아마 박은진도 몇 가지 정도는 익히 알고 있을 거다. 만약 내가 진짜 열아홉 시절이었다면 여기서 주저리주저리 이유를 늘어놓으며 한국 야구계의 앞날에 관하여 진지한 토론을 이어갔겠지.

하지만 지금 박은진에게 필요한 것은 빈 잔에 소주를 채워줄 나의 오른손. 그리고 그녀의 푸념에 끄덕여줄 나의 고갯짓이었다.

“진짜 처음에는 재규어스 아주 박살을 내달라고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우리한테 2연승 하고 올라간 재규어스가 준플레이오프에서 브레이브스한테 3연패를 하는 꼴을 보니까 뭔가 좋으면서도 찝찝하더라니까.”

“왜?”

“아니, 뭔가 우리를 이긴 팀이 사실 엄청나게 약한 팀이었다. 뭐 그런 느낌? 그래서 플레이오프는 나도 모르게 브레이브스 응원하게 되더라.”

“그거 강호 형이 들으면 섭섭하겠는데? 강호 형 심지어 너희 그룹 노래 가사까지 다 외웠던데?”

“진짜? 백강호가? 우리 중에 누구 좋아하는데? 희진이? 세희? 유진이? 걔가 꼬시면 피닉스로 팀 옮길 수도 있나?”

“글쎄다. 그것까진 잘 모르겠네. 근데 강호 형도 워낙에 이기는 걸 좋아해서. 피닉스는 좀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

“아, 왜!! 우리 팀이 뭐가 어때서!!”

하여간, 조금 전까지 그렇게 피닉스 욕을 하더니, 정작 내가 살짝 까니까 바로 정색을 해버린다. 그렇게 이후로도 쓸데없는 잡담이 좀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두 병이나 되는 술을 홀짝 홀짝 혼자 다 마신 박은진이 뭔가 아쉬운 표정으로 빈 술잔을 바라봤다.

“후딱 가서 딱 한 병만 더 사올까?”

“야. 늦었다. 얼른 들어가서 자라. 너도 명색의 아이돌인데 관리해야지.”

“관리야 매일 빡세게 하고 있지. 애들도 내 몸매 예쁘다고 얼마나 부러워하는데.”

“아이고 네네, 자알 알겠습니다.”

“뭐야 그 반응? 못 믿겠으면 여기서 한 번 보여줘?”

박은진이 당장 옷이라도 벗어 던질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밌는 부분은 그렇게 대담하게 일어난 주제에 눈동자는 파르르 떨린다는 점이었다. 하여간 어설프기는.

“야, 박은진. 너 취했다. 얼른 들어가 자라. 손님 방에 침대 시트 새 거로 깔아 놨으니까.”

“······.”

사실 굳이 저렇게 나오지 않더라도 알고 있었다. 박은진이 지금 바라는 건 너무 명백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살아보니까 때때로 남녀 간에는 어지간하면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라는 것이 있고 그걸 넘어서는 순간 당장이야 즐겁지만 몇 년 지나고 나면 종종 후회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육체적 즐거움이야 정서적 교감이 없는 상대와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데 굳이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친구와 그걸 넘을 필요도 없다. 적어도 박은진과 정말 선을 넘으려면 어느 쪽으로든 각오 정도는 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 밤은 그런 각오를 하기에 그리 좋은 날은 아니었다.

다행인 점은 박은진도 술의 힘까지 빌려가면서까지 제법 과감하게 나와봤지만 딱 거기까지였다는 점이었다. 우물쭈물하던 녀석이 방으로 걸어갔다.

“야, 최수원.”

“어?”

“그거 내가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다 치울 테니까 괜히 치우지 마라.”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어. 너 상태 보아하니 내일 일어나면 나 출근하고 없을 수도 있으니까 깨끗하게 치워놓고 가라. 알겠냐?”

“하여간 한 마디를 안 진다니까. 그리고 너······.”

잠깐의 망설임.

“뭔데?”

“아니, 뭐 그냥······. 아까 미국 가라는 거 농담이었다고. 마린스에 7년 더 있어도 되니까 FA로 피닉스 오는 것도 좋겠다고.”

“박은진 넌 무슨 말도 안 되는 스카우트를 사랑 고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하고 있냐?”

“아, 몰라!! 최수원 짜증나!!”

-쾅!!

박은진이 방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새벽 1시 30분.

바로 앞에서 술 마시는 걸 봐서 그런가? 나도 술 한 잔이 간절히 땡겼다.

‘나중에.’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몸을 뉘었다. 아, 물론 혹시 모르는 사태에 대비해서 방문도 완벽하게 잠궜다.

아주 조금 불편한 밤이었다.

***

[플레이오프 5차전. 브레이브스와 돌핀스의 마지막 경기!! 1회 초 브레이브스의 공격이 아쉽게도 무득점으로 끝이 났습니다. 과연 오늘 경기를 제압하고 한국 시리즈에서 마린스와 싸우는 팀은 누가 될지. 박동진 위원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돌핀스의 선발인 지대열 선수 오늘 공이 아주 좋습니다. 하지만 브레이브스도 포기하기에는 많이 이르죠. 사실 두 팀 모두 시즌 내내 보여줬던 모습이나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줬던 모습들만 생각해보면 누가 오늘 경기에 승리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만?]

[바로 어제 경기, 벼랑 끝에 섰던 브레이브스가 불펜을 총출동시켰던 만큼 아직 불펜에 조금 여유가 있는 돌핀스가 그래도 약간은 유리하지 않을까요? 뭐, 확실한 건 오늘 경기 승자가 누가 됐건 한국 시리즈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린스는 웃고 있을 거란 점이겠네요.]

[그렇죠. 사실 안 그래도 정규시즌 우승 팀이 한국 시리즈에서 패배한 경우가 KBO 역사에 고작 여섯 번뿐인데 이렇게 플옵에서 전력을 소모하고 올라오면 그 가능성은 더 희박해지니까요. 아, 말씀드리는 순간 마운드에 브레이브스의 선발 다니엘 쿠퍼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왔습니다.]

한국 시리즈까지 딱 한 걸음.

정규시즌 우승을 놓친 건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KBO에서 진짜 우승은 정규시즌 우승이 아닌 한국 시리즈 우승이다. 실제로 한국 시리즈에 업셋을 하면 기록지에서도 1위가 바뀐다.

백강호가 자신의 방망이를 움켜 쥐었다.

“내가 어? 아쉽게. 정말 간발의 차이로 홈런왕은 놓쳤지만, 그래도 우승까지 내줄 수는 없지.”

오늘 브레이브스의 선발인 다니엘 쿠퍼는 정규시즌 내내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경기를 뛰었으며 포스트 시즌에 들어와서는 4일 휴식 등판으로 벌써 세 경기째 출장이었다.

사람인 이상 지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1번 타자인 강일진이 1회 초부터 기습 번트로 출루에 성공했고 2번 타자인 잭 해밀턴이 안타를 쏘아 올리며 노아웃에 주자 1, 3루.

[자, 타석에 3번 타자 백강호 선수입니다. 이번 시즌 43홈런으로 리그 홈런 2위를 기록했습니다.]

-부웅!!!

시원한 스윙.

제대로 맞으면 그대로 담장을 넘어갈 것 같다는 그 서늘함이 투수를 압박했다.

홈런 타자의 무서움이다.

-부웅!!!!

아무리 유리한 카운트라도 제대로 맞기만 한다면!!!

-부우우우웅!!!

“스트라잌!! 아웃!!!”

[아, 여기서 삼구삼진······. 백강호 선수. 아쉽습니다.]

“이 미친 돌민우 새끼. 진짜 믿음의 야구. 아오, 아니. 18타수 1안타면 어? 좀 믿음을 꺾을 때도 되지 않았냐?”

시리즈 23타석 22타수 1볼넷 1안타.

돌핀스의 핵심 타자인 백강호는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까지 침묵했다. 그리고 결국 8회에는 대타까지 올라왔지만 승부를 뒤집기에는 너무 늦은 타이밍이었다.

[돌핀스 최민우 감독 ‘시리즈 패배의 원인은 정규 시즌이 끝나고 길었던 휴식 기간 동안 백강호의 컨디션 관리를 제대로 해주지 못했던 우리의 실수에 있었다.’]

[플레이오프 5차전, 10회 초 경기에 쐐기를 박는 장찬민의 2타점 2루타!!]

─돌민우사퇴기원: 돌민우 저 개xx 저거. 끝까지 지가 잘못했다는 말은 안 하지? 감독이 선수 컨디션이 안 좋으면 다른 선수를 써야지. 지가 믿음의 야구 해놓고 컨디션 관리 이x랄x병을 하고 있네.

플레이오프 3:2.

치열한 접전 끝에 브레이브스 승리.

마침내 마린스의 한국 시리즈 상대가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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