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우승 이후(2)
만약 두 경기에 하나 꼴로 홈런을 치는 타자가 있다고 치자. 그게 144경기라면 72개고 162경기라면 81개다. 이렇게 두 경기에 1홈런 페이스라는 건 사실 매우 터무니없는 숫자다. 그래, 분명 그러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세상에는 그런 터무니 없는 페이스에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으니 최수원의 최근 몇 경기를 지켜보는 오규환씨가 그러했다.
“아······. 진짜 아깝네······.”
언제나처럼 출근과 동시에 화장실 제일 오른쪽 칸 가장 따듯한 변좌에 몸을 맡긴 오규환 씨는 오늘도 인터넷 뉴스를 읽어 내려가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최수원 호크스전 아쉬운 4타수 2안타 0홈런]
사실 기사 내용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규환 씨는 이미 그 경기를 라이브로 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심지어 최수원의 타석 하이라이트까지 몇 차례씩이나 돌려봤다.
심지어 거기에 더해 어제 매우 늦은 시간까지 최수원의 홈런에 관하여 치열하게 키보드로 전투를 벌이기까지 했는데 생각 외로 그 전투의 수준이 매우 높아서 어쩌면 이 기사를 쓴 기자조차도 간밤의 그 치열했던 전투 속에서 몇 가지 정보를 얻어다가 기사를 작성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 물론 4경기에 2홈런 대단하지. 66홈런이면 어? 역대 공동 3위 기록이고. 솔직히 네 경기나 남았으니까 단독 3위. 진짜 잘하면 2위까지도 노려볼 만한 기록인 것도 사실이고. 근데 10경기 남기고 홈런 신기록까지 13개 남긴 상황에서 2경기 연속 멀티 홈런 보여줬었으니까. 어? 당연히 기대 하는 게 정상 아니야?”
10경기를 남기고 60홈런이던 시점에서는 당연히 오규환 씨도 세계 기록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그건 아무리 최수원 빠돌이라고 해도 미친 소리였으니까. 그냥 혼자 조용히 생각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9경기 남기고 신기록까지 11개. 그리고 또 8경기 남기고 9개로 격차를 줄이는 꼴을 본 순간 오규환 씨의 손가락은 당연히 ‘킹우의 수’를 써내려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2경기 연속 멀티 홈런을 칠만큼 타격감이 올라왔는데 이제 남은 경기 홈런 1개씩 쳐주고 딱 한 경기만 더 멀티 홈런을 쳐주면 73개 아니던가. 게다가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의 이 미친 홈런 페이스를 서너 경기만 더 끌고 가주면 정말 73이라는 숫자도 마냥 터무니 없지만은 않을 터였다.
그래, 분명 그러했었다.
하지만 이제 남은 경기는 네 경기.
그리고 신기록까지 남은 홈런은 무려 일곱 개다.
이제는 오규환 씨도 안다.
이건 이제 좀 어렵겠다는 것을.
그리고 오규환씨 같이 희망 회로가 불타다 못해 재가 되어 흩날리는 사람마저도 이게 어렵다고 느낀다는 말은 이제 이게 가능할거라고 생각하는 이가 거의 없다는 말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마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라면 지금 타이밍에는 절대로 홈런 신기록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라면.
“응??”
[알렉산더 맥도웰 ‘홈런 신기록? 내가 아는 스완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이유? 그것이 나의 라이벌이니까.’]
***
“하하하, 역시 슈퍼스타의 숙명이란 어쩔 수 없군. 가볍게 트윗에 한 마디 남긴 건데 설마 태평양 건너 한국 언론까지 실시간으로 반응할 줄이야.”
“알렉스. 너 꼭 해야 한다는 중요한 할 말이라는 게 설마 네가 올린 트윗이 한국 포털 메인 페이지에 올라갔다는 그거였어?”
“아니, 그건 아니고······. 우리 떨어졌다.”
“와일드카드?”
“어, 뭐 어쩔 수 없지. 이 천재가 시즌 아웃인데 별 수 있겠어? 아쉽지만 이번 시즌 MVP는 물 건너 간 것 같고. 그냥 신인왕이나 받아야지.”
“유감이다.”
내 말에 화면 속의 알렉스가 씨익 웃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다행이야.”
“뭐가?”
“정규시즌은 좀 무리겠지만 네 포스트시즌 경기는 보러 갈 수 있을 것 같아. 우리가 포스트시즌 진출했더라면 그것도 무리였을 텐데 말이야.”
“너희 팀 가을 야구는 떨어졌는데 다른 나라 가을 야구 보러 가면 욕 좀 먹는 거 아니냐? 괜히 그러지 말고 집에서 몸조리나 잘 하지?”
“욕? 누가 감히? 솔직히 내가 이 만큼이나 했는데 가을 야구 못 했으면 이게 팀 탓이지. 내 탓이겠어? 게다가 팬들도 충분히 환영할걸? 올해의 신인왕이 내년의 신인왕을 마중 나간 거니까.”
“어······. 음······. 그래, 그러면 한국 관광 조심히 잘하고. 나중에 연락하자.”
“스완.”
“어?”
“신기록 꼭 달성해라. 내 몫까지 부담감 팍팍 갖고.”
“야, 잠깐만. 내 홈런에 갑자기 네 몫이 왜 끼어드는건데?”
“내가 15경기나 날려 먹었잖아. 그 경기 숫자만큼의 기운을 몰아 줄테니까 그만큼 몰아 치라고. 그러면 73홈런 거뜬하지 않겠어? 솔직히 그 정도는 해줘야 내 라이벌이지.”
맥락도 논리도 없었다. 아니, 심지어 이걸 응원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를 수준이다. 하지만 나도 시즌 막판을 부상으로 날려봐서 안다. 그거 진짜 속이 쓰리고 아프다.
심지어 알렉스의 경우 조금 어렵다고는 해도 MVP의 가능성 자체가 완전히 0이 된 것은 아니었다. 또한 MVP야 다음번에 노려도 된다지만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수상할 기회는 올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건 누군가에게는 허황한 목표겠지만 단순한 MVP급 타자가 아니라 명예의 전당을 노린다는 이야기를 태연하게 내뱉는 녀석 입장에서는 진심으로 속이 쓰린 상황일 터.
이건 분명 알렉산더 맥도웰 나름의 응원이었다.
“그래.”
***
미국의 여론은 한국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
실시간으로 미국의 여론을 읽을 수 있고, 그 번역 역시 그리 어렵지 않은 21세기다. 물론 미국에서 펼쳐지는 사소한 이야기들에 한국의 여론이 들썩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만약 그 이야기가 ‘한국’에 관한 이야기라면?
알렉산더 맥도웰은 MVP를 다투는 매우 유망한 선수였다.
양키스가 아니라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어쨌거나 세계에서 가장 야구의 인기가 높은 도시 중 하나인 뉴욕을 홈으로 하는 야구 선수였기에 화제성 역시 결코 적지 않았다.
실제로 그의 SNS 팔로워 숫자는 이미 200만을 가뿐히 넘겼는데 그 팔로워 대부분이 미국인이며 야구라는 종목의 특성을 생각해볼 때 그 파급력은 그 숫자 이상으로 거대했다.
그리고 그런 그가 무려 ‘그 기록’을 논했다.
게다가 MLB 역시 시즌 막판.
이제 지구 1위는 대부분 가려졌고 남은 와일드 카드를 놓고 한참 다투는 상황이었다. 와일드 카드를 다투는 팀의 팬들이야 여전히 쫄깃하겠지만 상당수 팬들은 새로운 화제에 목이 마르던 차였다.
덕분에 제법 유명한 야구 관련 TV 쇼에서도 비록 5분짜리 짧은 한 꼭지이기는 했지만, 최수원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전 애초에 우리가 이런 주제로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메이저리그도 아니고. 하다 못 해 심지어 일본도 아니고 KBO에서 홈런 좀 친다고 그걸로 호들갑이라니. 나 원 참. 거기 AA급 리그 아닙니까?”
“그래서 AA급 리그에 알렉산더 맥도웰 선수가 풀 시즌을 뛴다면 홈런을 몇 개나 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거야 케이스 바이 케이스죠. 그리고 그 스완이라는 선수가 정말로 그렇게 대단했다면 빅리그로 바로 왔어야죠. 안 그렇습니까?”
“그야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전 국제유망주 관련된 규칙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당연히 그 논의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른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즌 막판에 저 태평양 건너의 어느 선수에 관하여 미국의 야구 팬들이 제법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스완인가 그 친구 내년에 빅리그에 진출 한다며?”
“어, 알렉산더 맥도웰 최근 트윗 보면 아마 메츠로 올 것 같던데?”
“에이, 그 녀석 호들갑이야 믿을 건 못 되지. 그리고 지금 메츠 페이롤 생각하면 무리 아닌가?”
“제이크가 쓴 기사 읽어보니까 국제유망주 계약이라서 FA가 아니라 3년은 최저 연봉이라고 하던데? 사치세에 부담도 없고. 데리고 오면 무조건 이득이라고 하던데. 그러면 패널티 물더라도 계약금 좀 지를 수 없나?”
“예전에 하드캡으로 바뀌고 그건 원천적으로 금지됐다고 하더라고. 아무튼 그래서 지금 8월 이후로 국제유망주 계약 소식이 좀 뜸한 것도 전부 그 스완 때문이라고 하던데?”
“아, 그래?”
“뭐, 알만한 팀들은 이런 이야기 나오기 전부터 다들 노리고 있던거지.”
미국 사람들은 미국 이외의 일에 대하여 굉장히 무관심하며 야구팬의 경우 하드한 팬이 아닌 이상에야 응원하는 팀이나 그 팀이 소속된 지구 외의 선수에 대하여 올스타급 선수 정도 되지 않으면 전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대화가 오간다는 건 매우 대단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화제 속에서 수원은 또 한 번 멀티 홈런을 기록하며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희망 회로에 불을 지폈다.
“거 봐!! 내가 뭐라고 했어. 최수원 얘라면 가능할 거라고 했지?”
“야, 아무리 그래도 3경기 남았는데 아직 홈런을 5개나 더 쳐야 하잖아.”
“최수원 이번 시즌에 3홈런 경기만 세 번이고. 4홈런 친 경기도 한 번 있는 거 모르냐?”
“어, 알지. 근데 홈런을 한 번도 못 친 경기가 절반이 넘는 것도 사실이잖아. 게다가 남은 3경기 중에서 2경기가 잠실이다.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 하겠냐?”
“어, 최수원 잠실에서 멀티 홈런 경기만 3 경기.”
142번째 경기.
첫 번째 타석에서 외야 뜬공 아웃.
그리고 두 번째.
-뻐엉!!
[7구째!! 볼!! 볼입니다. 최수원 선수가 볼넷으로 1루에 걸어 나갑니다.]
-우우우우우!!!!
그야말로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심지어 오늘 마린스의 상대인 재규어스는 지금 매우 격렬하게 5위 싸움을 하고 있으니 오늘 경기에서 꼭 이겨야만 하는 상황임에도 그러했다.
그리고 세 번째 타석.
-딱!!!
우중간.
정말 아슬아슬하게 담장을 두들기는 2루타.
[아······.]
“와, 이걸 여기서 또 김잠실이 호수비를 해버리네.”
“아니, 여긴 진짜 쓸데없이 넓은 담장 이거 좀 앞으로 당겨야 해. 이러니까 한국 야구가 발전을 못 하지.”
“김잠실이 최수원 69호 홈런 막은 것만으로도 한국 야구가 3년 후퇴했다는 거 동의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 남자들이 입고 있는 옷은 재규어스의 자존심 박동석의 저지였다는 점에서 지금 KBO 팬들이 최수원의 홈런에 갖는 관심과 응원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최수원 아쉬운 4타수 1안타 1볼넷. 이제 남은 경기는 단 두 경기!!]
[마린스 대 재규어스전. 24.7%!! 21세기 프로야구 사상 최고 시청률 경신!!]
평일 저녁 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역대 프로야구 정규시즌 최고 시청률의 2배를 아득히 상회하는 압도적인 시청률이 나왔다. 이것은 TV라는 매체가 그 힘을 많이 잃어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실로 터무니 없는 수치였다.
그리고 10월 2일.
마린스와 엘리츠의 시즌 143번째 경기.
1회 초.
1번 타자 최수원.
-딱!!!
그가 바로 어제까지 지독하게 막아서던 김잠실의 밀착 수비를 첫 타석부터 떼어내며 마침내 시즌 69호 홈런포를 만들어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73이라는 숫자는 지독히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 내내 최수원이 보여줬던 모습들이 대부분 지독히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일까?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아 홈플레이트를 밟는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저 녀석이라면 혹시’라는 기대가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