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우승(4)
158.9km/h.
덕아웃에서 조용히 경기장을 지켜보던 하민이형이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라 몸을 기울였다. 다른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야, 뭐야? 158.9?? 거의 160아니야?”
“지용혁?”
“아, 명훈이랑 동기인데. 작년에 퓨쳐스에서 155 던져서 좀 화제 됐던 앱니다.”
“그래? 근데 이번 시즌에는 왜 1군에서 안 뛰었던 거야?”
“얼핏 듣기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제구가 좀 문제였는데 그게 잘 안 잡혔었다고 들었습니다.”
지용혁이라는 이름은 분명히 기억이 난다. 우리 사이에서는 피처라기보다는 하드 쓰로워로 좀 악명이 높았었다.
확실히 공 하나는 지독하게 빨랐다.
KBO에서 평속이 153정도 되는 투수는 그 자체로 화제성이 있다. 물론 불과 5, 6년 사이에 KBO에도 패스트볼 혁명이 좀 제대로 자리를 잡는 느낌이라 평속 153이면 역대 최고 구속 뭐 그런 이야기를 들을 정도는 아니다.
당장 불펜 중에서 시즌 평속 150 이상을 찍는 투수가 무려 12명이나 되는 상황이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도 최고 159에 가까운 구속은 분명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용혁은 마지막까지 마무리 투수급까지는 올라가지 못했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결국 근본적인 원인은 컨트롤이 잡히지 않았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그랬다. 지용혁은 컨트롤이 안 되는 투수였다.
소총으로 치자면 아무리 중앙에 놓고 쏴도 탄착군이 500원짜리만 한 수준이 아니라 거의 A4용지만 한 투수라는 뜻이다. 빈볼을 던졌는데도 그게 존 한복판을 노리고 던졌는데 손에서 빠진 거라는 변명이 설득력이 있는 투수였다. 도저히 결정적인 순간을 믿고 맡길만한 투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시즌을 거듭할수록 지용혁의 구속은 조금씩 떨어졌다. 그리고 결국 내가 메이저에 진출할 때 즈음에는 트레이드 카드로 여기저기 다른 구단에서 좀 긁어보는 자원으로 전락했었다. 뭐, 30대가 돼서도 이 악물고 던지면 최고 150 초반까지는 던졌다고 하니까 충분히 긁어볼 만한 자원이기는 했을 것이다.
마운드의 지용혁이 두 번째 공을 던졌다.
-뻐엉!!
157.8km/h의 속구.
심판의 손이 올라오지 않았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존을 비켜나가는 공. 과연 저건 보더라인을 노리고 던진 공일까? 아니면 존의 중앙을 노리고 던졌는데 존 밖으로 빠진 공일까?
규만 선배의 방망이가 반쯤 돌아가다 멈췄다. 반응 속도가 좀 문제일 뿐. 확실히 아직 선구안은 그래도 제법 살아있다.
사람들은 구속이 100마일인데 제구가 안 잡힌 투수를 보며 구속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제구를 잡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130던지는 투수가 제구를 조금 포기하면 140, 150을 던질 수 있을까? 애초에 제구 역시 재능의 영역이다.
물론 릴리스 포인트의 문제라거나 동작에 문제가 있어서 그걸 교정함으로써 제구가 좋아지는 예도 있긴 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마운드의 지용혁 같은 경우 상당히 일정한 타이밍과 일정한 박자로 정말 정직하게 공을 던지고 있었다. 나름대로 저게 최선의 제구라는 뜻이다.
“와, 공 진짜 살벌한데? 또 158이야?”
“리그에 왼손으로 150 후반 던지는 투수가 있었나?”
“156까지는 몇 명 있었는데 158은 처음 같은데?”
하지만 제구가 어쨌거나 157, 8의 구속에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규만 선배가 잠시 손을 들어 타임을 요청했다. 마운드를 한번 힐끔 살핀 심판이 고개를 끄덕였다. 투수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지만 경기촉진룰이고 뭐고 간에 규만 선배 정도 되는 짬밥이면 저 정도 배려는 당연했다.
***
이규만이 가볍게 한 번 심호흡을 했다.
당황스러우리만치 빠른 공이었다. 만약 이전 타석에서 한 번이라도 보고 올라왔다면 아마 조금은 덜 당황스럽지 않았을까?
‘사실 당황한 게 진짜 문제가 아닌 거 잘 알잖아.’
그 솔직한 내면의 소리에 이규만이 쓰게 웃었다.
‘그래도 다행 아니겠어? 어차피 여기서 내가 못 치더라도 우리의 승리에는 크게 지장은 없을 테니까.’
그의 시선이 잠시 전광판을 스쳤다.
4:0.
그래, 이미 4점이나 앞서고 있다.
‘게다가······.’
그의 시선이 또 덕아웃을 스쳤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후배들이 적지 않다. 녀석들도 160에 가까운 구속에 놀란 것이겠지.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백하민의 모습에서는 이미 4점이라는 득점이 있는 이상 여기서 추가점이 나건 말건 아무 상관 없다는 강한 마음이 느껴졌다.
우승은 확정이다.
비록 그 우승에 이규만 자신의 몫은 지극히 미미하겠지만 원래 팀 스포츠라는 것이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이룰 수는 없는 법 아닌가. 각자가 각자의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했을 때 찾아오는 것이 우승이다. 이규만 자신은 최연장자이자 주장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최수원의 건방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선배, 선배는 지금까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셨어요.’
그래, 솔직히 마린스의 학맥과 인맥을 비롯한 내부의 정치질에서 저 괴물을 자유롭게 만들어준 것. 그리고 저 건방진 성격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불협화음이 생기지 않도록 다른 팀의 베테랑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것 정도만 하더라도 이규만 자신은 정말 많은 것을 해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은 길었지만, 시간은 짧았다.
그래,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나는 충분히 노력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시선이 홈플레이트의 뒤편.
내야의 관중석을 스쳤다.
그리고 거기에 어떤 두 할머니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마!! 이규만이!! 이 문디 자슥이. 니 단디 해라.”
“아이고마. 언니야. 그만해라. 남사시럽다.”
“남사시럽기는 뭐가 남사시럽노. 내는 그런 거 없다.”
그리고 그 할머니들이 이규만의 눈에 확 들어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오늘 경기장에 마린스의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매우 많았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부산과 창원은 매우 가까웠고 가을 야구 탈락이 확정된 블레이즈와 달리 마린스에는 최수원의 홈런 레이스부터 우승까지 참 많은 것이 걸린 경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많은 팬들이 입은 유니폼 대부분은 최수원의 등번호인 79번이 새겨진 빳빳한 새 유니폼들이었다.
하지만 저 할머니들은 조금 달랐다.
경기장의 가장 비싼 테이블석에 어울리지 않는 오래되고 낡은 유니폼. 그리고 그 낡은 유니폼에는 마찬가지로 오래되어 빛이 바래가는 희미한 사인이 눈에 확 들어왔다. 참으로 촌스럽기 짝이 없는 사인이었다.
이규만.
10년? 어쩌면 20년도 더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겉멋은 잔뜩 들어서 쓸데없이 복잡한 사인을 추구하던 시절, 자신의 사인이었다. 괜히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부끄러웠다.
대체 무엇이 부끄러웠을까?
그 오래된 촌스러운 사인일까? 아니면 그 오래된 촌스러운 사인을 쓰던 당시의 이규만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 오래된 촌스러운 사인을 쓰던 당시의 자신이 바라볼 지금의 이규만일까.
자신도 모르게 그의 시선이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곳에는 여전히 최수원이 있었다. 그의 얼굴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 같은 얼굴은 조금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선배, 할 수 있는 한도 내의 일이라는 것이 정말 최선이라는 말과 어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어쩌면 그것은 2027년의 최수원이 아닌 2007년의 이규만일지도 모르겠다.
이규만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규만?”
“아, 죄송합니다.”
홈플레이트 뒤편의 구심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보다 3년 일찍 프로에 데뷔했던 선배로 프로 생활을 5년 만에 청산하고 바로 심판의 길로 들어가서 벌써 21년 차에 접어든 베테랑 심판이다.
그가 다시 타석에 섰다.
마운드 위의 투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상황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다.
점수는 여전히 4:0
마린스의 승리는 거의 확실했으며 마운드의 투수는 158의 공을 뻥뻥 던져대는 좌완이었고 타석의 타자는 이제 만으로도 42세. 은퇴를 코앞에 둔 늙은이였다.
대체 언제부터 그는 조연으로 만족을 했을까?
대체 언제부터 이규만 자신은 타석에서 단디 하지 않았을까?
“저 문디 자슥. 하여간에 신인 때부터 손이 많이 간다카이.”
아, 저 할머니들. 이제 기억이 났다.
22년 전에 창원에서 홈 경기했을 때 버스 앞에 드러누웠던 할머니들이다. 덕분에 버스에서 20분이나 시간을 지체하고 결국 감독님이 나가서 머리 숙여 사죄하고 다음 번에는 제대로 하겠노라 이야기를 했었다. 덤으로 당시 신인급이던 이규만이 유니폼에 사인도 해줬었다.
참······.
22년이나 이렇게 포기를 하지 않다니.
어쩌면 저 할머니들의 뚝심이야 말로 그야말로 강철과 같다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마운드의 지용혁이 와인드업했다.
자신만만한 얼굴.
하지만 이규만은 그 얼굴에서 진짜 자신감이 아닌 그저 자신감을 갖기 위해 발버둥치는 애송이의 얼굴을 읽었다.
정직한 자세에서 나오는 정직한 피칭. 타석에 선 타자를 상대하는 것이 아닌 그저 자신이 던질 수 있는 가장 좋은 공을 던지려는 발버둥.
하나의 공을 보냈다.
그리고 네 번째.
-딱!!!
빠르게.
마운드에 선 투수가 던지는 공이 무엇인지를 구분하기보다 그저 그 타이밍에 맞춰서 조금 더 빠르게.
그는 달리지 않았다.
잠시 타석에 서서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의 타구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무도 그런 이규만을 탓하지 않았다. 타구 감상이 투수를 도발하는 행위라고 하기에 이규만이라는 타자가 KBO에서 쌓아올린 위상은 너무 대단했으니까.
그러니까 이것은 그저 자신이 아주 오래 지배했던 영역을 바라보는 갈기가 다 빠져버린 사자의 마지막 포효일 뿐이다. 그 늙은 사자의 포효를 어떤 젊은 사자도 도발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이규만의 타구 감상 역시 그러했으리라.
야구공은 가볍게 담장을 넘어갔다.
5:0
비록 경기를 결정짓는 홈런은 아니었지만, 팀의 우승이 달린 그 중요한 경기에서 마침내 홈런을 때려낸 아주 오래된 팀의 맏형에게 마찬가지로 그를 아주 오래 지켜본 팬들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렇게 마치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순간이었지만 이제 고작 6회 초가 지나고 있을 뿐, 경기의 끝은 아직 멀었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가장 화려한 순간에 끝이 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심지어 지금은 아직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했던 6회 초였고 따라서 이닝의 끝 역시 멀어 보였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조유진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삼진으로 6회 초 마린스의 공격이 마무리됐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투수가 당연하게 자신의 글러브를 쥐고 마운드로 올라갔다.
5점.
그것은 투수가 경기를 승리로 이끌기에 매우 충분한 점수였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프로야구 부산 마린스!! KBO 프로 야구 창단 이래 첫 우승 확정!!]
[1982년 이래 46시즌!! 마린스 마침내 창단 첫 우승!!]
[최수원 멀티 홈런 작렬!! 과연 그 기록의 끝은 어딜까?]
“아······. 이거 하필 왜 마린스 우승 기사에 사진이 내 삼진 사진이냐고······.”
그리고 데뷔 2경기 차 조규혁이 포털 메인 페이지에 당당하게 얼굴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