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우승(3)
마산은 아주 오래전부터 야구의 고장이었다.
기본적으로 일자리가 많은 고장에 스포츠 문화가 발달하는 것은 일종의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스포츠 문화가 야구인 이유를 찾아보자면 그것은 구한 말, 일제시대 때까지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애당초 마산은 당시 일본인들이 매우 많이 거주했던 동네 중 하나였다. 그리고 당시 야구는 일본이나 미국에서 국기(國技)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될 만큼 흥행하던 종목이었다. 활발하게 전파가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당시 조선인들에게 그들이 그토록 애지중지 하던 ‘야구’에서 일본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은 일종의 ‘항일’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1920년대 일본인 유학생들과 마산에 거주하던 조선인 학생들의 야구 시합이라거나, 마산의 일본 이민자들과 마산 토박이들의 야구 시합이 자주 있었으며 그 경기에 승리한 내용은 당시 신문에도 여러 차례 실릴 만큼 커다란 화젯거리였다.
최경자씨는 대한민국 경제개발의 주체라고 불리는 1970년대 마산 한일합섬의 여공 중 하나였다. 비록 한일합섬은 대한민국의 주력 산업이 변화와 경영진의 실책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당시 한일합섬에서 열심히 일하고 악착같이 월급을 저축하고 재테크 또한 열심히 했던 여공들 가운데는 이제 지역 유지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성공한 이들도 적지 않았고 최미경씨 역시 그러했다.
“진짜로 오래 살고 볼 일이 아이가? 우째 살다 살다 마린스 우승하는 꼴을 다 보겠네. 이거 먼저 뒤진 우리 영감탱이가 알면 무덤에서 뛰쳐나오겠다.”
“언니야, 와 그라노. 벌써 치매가? 그래도 84년이랑 92년에도 우리 우승했잖아. 기억 안 나나?”
“야야, 내 어떻게 그걸 까먹겠나. 그때 니 기분 좋다고 사고 치는 바람에 두 달 만에 식 올렸던 거 그건 벽에 똥칠을 해도 절대 못 까먹지.”
“언니야. 그런 건 좀 까묵으라.”
“암튼 그때 우승은 한국 시리즈 우승이었고. 이건 정규시즌 우승 아이가. 완전히 다르지. 니 알제? 우리 영감탱이 살아 생전 소원이 마린스 정규 시즌 우승이었던 거.”
“알지. 형부가 맨날천날 아주 노래를 불렀잖아. 그때가 벌써 15년 전인가? 시즌 2위 하는 거까지 보고 이거면 됐다고. 내년에는 무조건 우승 하겠다면서 웃으면서 갔었제?”
“그랬었지. 잘된 거였어. 몇 년 더 살았으면 울화가 치밀어서 그렇게 편히 가지도 못했을걸.”
한일합섬이 사라지고. 마산시의 인구가 쪼그라들고. 마침내 마산이 창원과 통합이 됐다. 그 긴 역사 속에서 마침내 그들의 고장에는 그토록 바라던 프로야구팀이 생기기까지 했다. 그리고 1년에 고작 5, 6 경기도 오기 힘들다고 징징거리던 망할 마린스 놈들은 이제 매년 8경기씩은 꼬박꼬박 치르러 마산을 찾아왔다.
그 모든 과정속에서 참으로 많은 이들이 마린스가 아닌 블레이즈로 응원팀을 갈아 탔지만 그럼에도 최경자 씨는 그럴 수가 없었다. 60년을 넘게 그렇게 살아 왔는데 뭐 얼마나 대단한 꼴을 보겠다고 팀을 옮겨 탄단 말인가.
물론 블레이즈가 우승하는 꼴을 봤을 때는 조금은 후회를 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 이렇게 좋은 날도 죽기 전에 한 번 찾아오지 않았던가.
“어이구, 우리 수원이 차례네.”
“대철이도 쟈도 고민이 참 많을기야. 내보내자니 체력이 부담일끼고, 안내보내자니 기록이 아른아른거리고.”
“그래도 좀 쉬게 해줘야지. 오늘 보니까 영 힘을 못 쓰던데. 마린스가 저러다가 보낸 선수가 어데 한 둘이가.”
6회 초.
타석에 2번 타자 최수원이 올라왔다.
그녀들은 1982년 프로야구가 개막한 이래, 아니 프로야구가 개막하기 이전부터 고교야구와 실업야구를 관람했던 아주 오래된 야구 팬들이었다. 그 긴 세월 동안 야구는 너무 많이 변해서 지금은 너무 복잡한 숫자들로 가득했지만, 그럼에도 그녀들은 여전히 야구의 팬이었다.
전설과도 같았던 무쇠팔의 경기도 직접 봤었고, 리그를 지배했던 저 무등산의 폭격기도 직접 봤다. 자신의 팔을 불태웠던 염슬라의 투혼에 박수갈채를 보냈고, KBO 역사상 야구를 가장 잘했던 남자가 마린스를 박살 내는 것에 이를 박박 갈기도 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런 선수는 없었다. 복잡한 숫자는 잘 몰랐다. 하지만 어떤 선수가 좋은 선수인지는 너무 명확했다.
그것은 잘 던지고, 잘 치고, 잘 달리는 선수다.
그리고 최수원은 거기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선수였다. 시즌 중반 즈음에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듣기 싫었던 그던 그녀들도 최수원이 KBO 역사상 가장 야구를 잘하는 선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제는 너무 유명한 최수원 특유의 루틴. 왼손으로 헬멧을 툭툭 두 번 두들기며 오른 손에 쥔 방망이로 홈플레이트를 한번 톡 건드린다.
약 2초 정도?
피칭도 그렇고 참 간결했다. 과거 루틴만 10초, 20초씩 쓰던 선수들을 잘 알고 있는 그녀들에게 최수원의 저 짧은 루틴은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급해 보이기까지 했다.
마운드의 이진명이 와인드업했다.
역동적인 폼과 그렇지 못한 공의 괴리감은 그가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었다.
-딱!!!
좌측 내야 관중석에 떨어지는 큼지막한 파울.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다음 공을 준비했다. 물론 표정과 무관하게 그 심정은 많이 복잡했다.
‘아, 진짜 솔직히 에반데. 아니, 쟤는 갑자기 왜 내 차례에 성실하고 지랄이야. 이번에 고과 점수 진짜 간당간당한 데. 안 그래도 포시 못 가서 보너스도 못 받는 상황에서 연봉까지 깎이면 마누라도 화 많이 낼 텐데. 아니, 팀도 그렇지. 솔직히 최수원 쟤는 고과 산정에서 아예 제외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일종의 재난이잖아. 그러면 재난지원금을 줘도 모자란 거 아닌가?’
두 번째.
바깥쪽으로 최대한 달아나는 속구.
-뻐엉!!
심판의 손이 올라오지 않았다.
괜찮다. 나름의 빌드업이다.
세 번째.
그것보다 조금 더 안쪽 코스.
마치 두 번째 공에서 심판이 잡아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존 안쪽으로 공을 넣는다는 느낌이 드는 방향으로 공을 던졌다.
‘굿!!!’
좋았다.
완벽하게 낚아챘다.
그가 던진 공이 원하던 코스로 정확하게 들어갔다.
이진명은 최근 아들이 보는 다큐멘터리를 보며 감명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아프리카 숫사자들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는데 육체적 전성기를 지나간 수사자라고 꼭 쫓겨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특히 그 세월만큼이나 더 노련해지고 더 교활해진 수사자는 한창 근육이 단단할 때보다 오히려 더 거대한 무리를 지배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은 그의 심금을 울렸었다.
최수원의 방망이가 움직였다.
여전히 무표정하려고 애쓰는 그의 입가가 살짝 씰룩였다.
됐다.
완벽하게 속였다.
존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 같던 공이 환상적으로 뚝 떨어지며 살짝 밖으로 빠져나갔다. 속구와 약 8km/h 정도 차이가 나는 체인지업이었다.
-딱!!!
‘응?’
타구음이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제법 긴 시간.
그러니까 마운드의 이진명이 느끼기에는 영원에 가까울 만큼 긴 시간 동안 타석의 최수원이 저 멀리 날아가는 타구를 응시했다.
그리고 이진명이 보지 못한 그 사자에 관한 다큐멘터리의 다음 편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 더 노련해지고 더 교활해진 수사자를 쫓아내는 것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노련함과 교활함을 갖춘 전성기의 수사자였노라고.
[밀어친 타구!! 우측 담장을!! 우측 담장을!!! 넘어!!! 갔습니다!!! 64호!! 64호!!! 64호 홈런입니다!! 최수원의 멀티 홈런!! 최수원이 시즌 64번째 홈런을 기록합니다!!]
[오늘 경기 두 번째 홈런입니다. 와, 이게 또 넘어 가네요.]
[상당히 아슬아슬했죠?]
[네, 최수원 선수 같은 경우 평소 홈런 비거리가 상당히 되는 강타자인데 오늘 홈런들은 하나 같이 조금 아슬아슬하네요. 아무래도 어제 등판하고 바로 경기에 출장한 영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2:0.
이진명의 오늘 피칭은 정말 괜찮았다.
지금까지 내준 안타는 고작 네 개. 볼넷은 하나에 불과했다. 물론 그 네 개의 안타 가운데 두 개가 홈런이긴 했지만 그것 역시 상대가 저 미친 최수원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문제는 인사 고과는 그걸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지.’
괜히 5이닝 동안 1점도 못 낸 무능한 야수 놈들에 대한 분노가 솟구쳤다. 하지만 이진명은 노련한 투수 답게 그 분노의 감정을 적절하게 잘 억제했다.
가득 찬 분노를 담아 공을 뿌렸을 때 더 잘 던지는 투수들도 많았고, 젊은 시절의 이진명도 그런 투수에 속했었지만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침착하게 체인지업을 던졌다.
-딱!!!
강라온이 그 체인지업을 공략했다.
빠른 타구가 내야 수비를 꿰뚫는다.
[좌중간!! 깔끔한 안타!! 강라온이 1루를 밟습니다.]
노형욱이 타석에 섰다.
묵직했다.
최수원에게서 느껴지는 감각이 답이 안 나오는 막막함이라면 노형욱은 전성기에 이른 최정상급 타자에게서 느껴지는 묵직함이 있었다.
-부웅!!
“스트라잌!!”
초구 스트라이크.
노형욱이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뻐엉!!
살짝 빠지는 체인지업에 속아넘어가지 않았다.
세 번째.
-딱!!
타구가 3루 파울라인을 살짝 넘어갔다.
볼카운트 1-2.
마침내 네 번째.
-딱!!!!
깊숙하게 퍼 올린 노형욱의 타구가 외야 최상단을 때려냈다.
시원한 투런포. 마린스가 무려 4점을 앞서 나가며 오늘의 선발 투수를 덕아웃으로 돌려 보냈다.
이진명의 포커페이스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
“다녀오겠습니다.”
지용혁의 가슴이 크게 두방망이질쳤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오늘이 그의 데뷔전이다. 데뷔전이라니. 그만큼 가슴이 떨리는 순간이 또 있을까?
“그래, 빠른 공 위주로 팍팍 집어 넣어. 위에서도 너한테 바라는 게 그거니까. 알지? 규만 선배 이제 빠른 공은 제대로 못 치는 거. 네 공은 그냥 존에 들어가기만 하면 충분하다. 어? 그러니까 오늘 네 상대는 타자가 아니라 너 자신이다 생각하고. 오케이?”
“넵!!”
불펜에 코치가 해주는 이야기도 지용혁의 귀에는 잘 박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평소 하던 것처럼 씩씩하게 대답은 잘 했다.
1군의 마운드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역시 남달랐다. 더욱이 오늘 관객석에는 빈 자리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압박감.
그러한 가운데 타석에 이규만. 그러니까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전설적인 활약을 펼쳤던 KBO의 대타자가 올라왔다.
두방망이질 치던 가슴이 조금은 진정됐다.
그래, 만약 상대가 최수원. 아니 하다 못해 노형욱이나 강라온이었다면 더 긴장됐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규만이다.
다 늙어서 이제는 그 갈퀴마저 빠져버린 비루한 수사자.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한때 이 지역을 지배했었다는 아무 의미 없는 명성뿐이다.
-후읍.
커다란 심호흡.
그가 공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무려 150 초반의 공을 던졌지만 제구가 형편없다는 평가와 함께 1라운드 8번까지 밀려났었다. 이후로 제구를 잡으려던 코치들의 수많은 시도에 순응했으나 제구가 잡히기는커녕 구속마저 떨어졌다. 아마 상무에서 만났던 여러 인연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결코 1군 무대에 설 수 없었을 것이다.
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해내려 노력하기 보다 할 수 있는 것에 노력을 집중하여 더 잘하는 것이 프로에 살아남기 위한 비결이다.
-뻐엉!!!
강하게 낚아챈 공이 그대로 홈플레이트를 통과했다.
“스트라잌!!!!”
158.9km/h.
이규만의 방망이가 반응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