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우승(2)
3회 초, 마산 사는 김경호 씨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 이게 안 넘어가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라 주변을 한 차례 둘러봤다. 하지만 함께 야구를 보러 온 친구 도근이도 그 와이프인 박영애도 모두가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김경호 씨는 아주 오랜 마린스의 팬이었다. 그의 친구인 이도근 씨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를 묻는다면 별 건 없었다. ‘그냥 마산에서 태어났으니까.’가 그 이유다. 거기에 약간의 구체성을 더하자면 그들의 아버지가 마린스의 팬이었으니까 정도가 되겠다.
아주 오래전 마린스는 지역 팬들을 위해서 홈 경기 가운데 일정 경기를 사직이 아닌 마산에 할당을 했었다. 뭐 그래봐야 1년에 고작 서너 경기에 불과했지만. 아무튼 마산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마린스의 경기에 그들의 아버지는 그렇게 열광을 했더랬다.
그의 아버지는 일각에 전설처럼 회자하는 산소용접기로 자물쇠를 따고 경기장에 침범했으며, 경기장에서 삼겹살과 소주를 마시다 경기에서 지면 불판을 엎어버렸던 마산 아재 중 하나였다. 함께 온 친구 도근이의 아버지 또한 그러했다.
물론 그들은 80년대에 태어난 M 세대로써 그런 야만적인 문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학 진학률 80%인 세대에 야구장에서 소주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야, 이거 하이볼 어디 거냐? 되게 맛있네?”
아무튼 그렇다.
21세기 이후에도 그들은 꾸준히 마린스를 응원했다. 솔직히 마린스가 경기 좀 못하는 건 견딜 만했다. 심지어 저 이규만이 하지만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은퇴한 마린스 선수들의 인터뷰였다.
“아, 마산이요? 거긴 좀······.”
“솔직히 부산은 차라리 양반이죠. 마산은 어휴, 말도 마십쇼.”
그래, 뭐 솔직히 아버지 세대의 문화가 좀 미개했던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스스로 반성하고 지금 세대에서 이어지지 않아야 할 문화였지 당시 그분들의 그 뜨거웠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선수들이 조롱할만한 꺼리는 될 수 없었다.
적어도 김경호 씨와 이도근 씨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찰나에 마산에 블레이즈가 생겼다.
뭐 엄밀히 따지자면 창원이라고 하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마창진이면 어떻고 창마진이면 어떻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내가 먹고 사는 이 고장에 프로야구팀이 생겼다는 점인 것을.
이제 더 이상 1년에 서너 경기가 아니었다. 1년에 60경기, 70경기씩 열렸다. 그래서 그들은 미련 없이 팀을 갈아탔다. 심지어 미련을 가지고 팀을 갈아타지 못했던 친구들이 고통받을 때 그들은 우승의 기쁨까지 만끽할 수 있었다.
그랬다. 분명 김경호 씨는 부산 마린스를 버린 것을 후회하지 않았고,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안타까움 듬뿍 담긴 한숨은 마린스와는 무관한. 그러니까 저기 저 미친놈처럼 방망이를 휘두르는 최수원이라는 규격 외의 괴물에 대한 애정일 것이다.
‘뭐, 마린스가 아무리 싫어졌다고 해도 염슬라까지 싫어진 건 아니니까.’
그리고 경기가 계속됐다.
최수원과 달리 마운드의 저 녀석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즌 초반부터 그랬다. 희멀겋고 부실한 것이 영 사내답지 못하다.
“오빠야, 쟈는 뭔데? 왜 혼자 다르게 생겼는데? 야구 선수 맞나? 엄마야, 진짜 억수로 잘생깄네?”
1년 4개월 전.
그러니까 지금은 헤어진 여자친구 미진이가 저 녀석 얼굴 하나 보고 마린스 팬으로 갈아탄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둘이 헤어진 것은 서로 응원하는 팀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그냥 성격 차이였으니까. 아무튼 그렇다.
백하민이 공을 던졌다.
투수 치고 작은 몸을 누구보다 역동적으로.
-뻐엉!!
150.8km/h.
“스트라잌!!”
아무튼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스트라잌!! 아웃!!”
백하민이 삼진으로 블레이즈의 타자를 돌려세웠다. 그리고 이규만은 지금 자신의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고 있음을 느꼈다.
긴장? 기대?
-짝!!
이규만이 글러브를 끼지 않은 손으로 자신의 뺨을 강하게 쳤다.
옆에 있던 블레이즈의 코치, 영석이 형이 저 녀석 왜 저래? 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규만과는 고작 두 살 차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팔 년 전에 은퇴해서 코치 생활만 벌써 칠 년째였다.
박영석만이 아니었다.
1군 감독까지는 아니더라도 2군 감독, 코치, 해설, 학교 감독 등등. 이규만과 함께 동시대를 뛰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어느새 선수 유니폼이 아닌 지도자의 옷을 입고 그의 곁에 있었다. 그나마 아직 현역으로 뛰는 동기라고는 그와 함께 일인자 자리를 다퉜다고 주장하는 채광민뿐이다.
그렇게 아직까지 뛰고 있는 채광민과 이규만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KBO의 역사를 통틀어 손에 꼽을 만큼 대단한 타자들이라는 점이었다.
이규만이야 인정하지 않지만, 커리어 전체를 살펴보면 채광민이 이규만보다 더 잘 쳤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다. 데뷔 시즌은 물론이거니와 컨디션이 조금 갈렸던 최근 2, 3년이 아니라 전성기를 놓고 보더라도 적어도 한 시즌, 잘 봐주면 두 시즌 정도는 채광민이 극미하게 이규만보다 좋은 타자였다. 그리고 전성기 당시 KBO에서 이규만보다 좋은 타자였다는 말은 KBO에서 가장 좋은 타자였다는 말과도 같은 말이다.
그렇듯 가장 뛰어난 타자의 자리를 두고 다퉜던 두 사람이었지만 모두 반지가 없었다. 팀의 프랜차이즈로 20년 넘게 팀을 끌어왔지만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그것은 팀의 문제일까? 아니면 자신들의 문제일까?
-뻐엉!!
“스트라잌!!!”
이규만의 심장이 또 한 번 거칠게 약동했다.
항상 상상했었다.
이제는 대체 언제부터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아득한 옛날부터.
마린스에 2차 1라운드 전체 2번으로 입단했을 때?
세계청소년 야구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고교 MVP를 따냈을 때?
중학시절 은사의 집에서 숙식하며 야구에 전념했을 때?
마린스배 초등학교 야구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그래, 어쩌면 21세기가 아닌 20세기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구체적인 형상은 달랐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항상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마린스의 이규만이 새겨져 있었다.
아니, 사실 그것은 이규만 혼자만의 꿈이 아니었다. 분명 부산에서 자라난 야구 소년에게 마린스를 우승시키는 것은 당연히 가져야 하는 꿈과도 같은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수많은 야구 소년들의 의지가 모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는 작았을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모인 그들의 의지는 실로 굳건하여 마치 강철과도 같아 보였다.
하지만 세월은 진짜 강철조차 삭게 만드는 법이다. 너무 많은 실패와 너무 많은 좌절 앞에서 사람의 마음이 부러지고 끊어진 것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데뷔 이후 무려 2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긴 시간이었다.
그렇게 마린스의 우승을 꿈꾸던 야구 소년들은 모두 사라지고 이 자리에 남은 것은 전성기의 기량을 대부분 잃어버린 왕년의 4번 타자뿐이었다.
-딱!!!
누군가가 공을 쳤다.
이규만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일루수는 아니었다.
원래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 한다고 어렸을 적에는 커다란 덩치에도 불구하고 발군의 운동 능력으로 유격 수비까지 곧잘 보던 몸이었다.
그래, 그런 몸이‘었’다.
반응이 늦었다.
이규만이 허겁지겁 미트를 들이밀었다.
그의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는 커다란 일루수용 미트였다.
[장재환의 빠른 타구!! 1, 2루 간을 뚫어 냅니다!!]
[아, 바깥쪽 상당히 좋은 볼이었는데 이걸 기가 막히게 밀어 치네요. 오늘 앞선 이닝의 수비들도 그렇고. 장재환 선수 컨디션이 상당히 좋은 것 같습니다.]
[자, 투아웃에 주자 1루. 블레이즈 오늘 첫 출루입니다.]
하지만 타구가 더 빨랐다.
다행히 빠르게 달려나온 서경준이 타구를 잡아 2루타가 되는 것을 막아냈다.
마운드의 백하민이 1루를 한 번 힐끔 바라봤다.
얼굴이 뜨거웠다.
이규만이 은퇴를 결심했을 때 그를 가장 강하게 말린 것은 피닉스의 채광민이었다. 망할 놈이다. 자기는 몸 상태가 괜찮으니 모른다. 솔직히 나이 마흔둘에 타율이 3할 가까운 게 어디 말이 되는 소리인가?
“후회 안 하겠냐? 그렇게 X 빠지게 뛰고 우승 반지 하나 없는데?”
“지랄. 앞으로 몇 년 더 뛴다고 없던 우승 반지가 생긴다냐?”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근데 확실히 안 생기는 것보다는 모를 일로 두는 게 더 좋지 않겠냐?”
“됐어. 솔직히 이 정도면 할 만큼 하기도 했고. 더 뛰는 것도 슬슬 민폐다.”
“하긴, 너 인마 급 늙긴 했더라. 영 예전 같지 않아. 그러니까 얼른 은퇴하고 가서 예능이나 찍어라. 뭐 한 10년 후에 보면 내 커리어가 너보다 짱짱할테니 좋긴 하네.”
“지랄.”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원색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원수 놈이었다. 그래, 어쩌면 팀은 달랐지만 채광민 역시 허황한 꿈을 꾸는 야구 소년이었기에 이런 대화가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채광민보다 이규만 자신 쪽이 운이 더 좋았다.
전국 고교대회 MVP.
청소년야구 월드컵 준우승.
그리고 1라운드 전체 1번.
이규만과 닮은.
하지만 이규만과는 조금 다른 녀석이 마린스에 합류했다.
그래, 어쩌면 이규만 자신의 뒤를 이어 마린스를 이끌어나갈 차기 프랜차이즈라고 생각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최수원 본인이야 모를 수 있겠지만 이규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잘 해줬다.
특히 이규만 본인이 가장 괴로웠던 마린스 특유의 난해한 학맥과 인맥에서 거의 자유에 가까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최수원이 리그를 폭파시켰다.
어쩌면 저것은 이규만이 오랜 시간 꿈꿔왔던 자신의 모습인지도 몰랐다. 상황이고 환경이고 타이밍이고 뭐고 아무것도 상관없이 그저 압도적인 실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버리는 백마 탄 초인.
마운드의 백하민이 공을 던졌다.
1루를 의식한 슬라이드 스텝.
148.4km/h의 속구가 존을 살짝 벗어났다.
볼카운트 1-0
20세기에 태어났던 야구 소년은 항상 우승을 꿈꿔왔다.
무려 21세기가 되고 27년이라는 시간이 더 흐른 지금까지.
그리고 그렇게 꿈꾸던 우승이 현실로 성큼 다가온 지금.
이규만은 자신에게 되물었다.
‘이것이 과연 내가 항상 꿈꿔왔던 그 순간인가.’
마운드의 백하민이 견제구를 던졌다.
-뻐엉!!
세이프.
아니,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이규만이 꿈꿨던 우승의 순간에서 그는 단 한 번도 지금처럼 비루하지 않았다.
두 번째.
바깥쪽으로 살짝 빠지는 슬라이더.
-부웅!!
“스트라잌!!”
굵은 땀방울이 백하민의 잘생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젊었다.
과연 저 녀석은 채광민이 자신에게 경쟁심을 불태웠던 것처럼 최수원에게 비슷한 감정을 불태우고 있을까?
23년 만에 나타난 백마 탄 초인은 아쉽게도 마린스의 미래가 아니었다.
야구 소년이 그토록 꿈꿨던 순간조차도 그에게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통과점에 불과하리라.
세 번째.
바깥쪽 낮은 코스 빠른 공.
살짝 흔들린 제구.
-딱!!
강철같던 육체는 이미 사라졌다.
그와 같은 꿈을 꾸던 동료들 역시 모두 사라졌다.
어쩌면 그의 의지 역시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강산이 두 번 바뀌고 거기에 3년을 더 얹은 세월.
그럼에도 여전히 끊어지지 않았으니 그 끊어지기 일보 직전의 의지를 강철이라 하는 것은 결코 과찬이 아닐 것이다.
이규만이 강철과 같은 의지로 몸을 움직였다.
[1, 2루 간!! 빠른 타구!! 이규만 잡아서 2루에!!]
“아웃!!”
[사울 로페즈!! 다시 그대로 1루로!!]
“아웃!!”
3-4-3 병살.
마운드의 백하민이 땀으로 흠뻑 젖은 모자를 벗고 머리를 털어내며 씨익 웃었다.
쓸데없이 멋진 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