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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220화 (220/305)

220화. 그 너머에 위대한 기록(3)

김대철 감독은 처음에는 휴식일 없이 가겠다는 수원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대체 무슨 이야기지? 그러니까 방금 전에 열 경기 다 출장하라고 내가 이야기했잖아. 안 한다고 했다가 갑자기 왜 또 하겠다는 거지?’

이것은 단순히 그의 이해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최수원의 말이 이치에 맞지 않는 허황한 이야기였다는 뜻이다.

“잠깐만. 그러니까 지금 등판도 다 하고 휴식일 없이 달리겠다는 말이야?”

“네.”

안 그래도 지금 체력 때문에 점점 힘들어 하는 모습이 눈에 띄는 상황이었다.

아니, 물론 수원이가 여기서 퍼진다고 해도 정규시즌 우승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10경기가 남았는데 매직넘버가 3이기 때문이다. 이는 리그 2위를 달리는 돌핀스가 남은 11경기에서 모두 승리한다고 해도 마린스가 남은 10경기에서 3승을 하면 우승은 마린스의 것이라는 뜻으로 사실상 시즌 우승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 없다. 심지어 프런트에서는 은근히 그 매직넘버를 완전히 지우는 것을 홈 경기에서 해줬으면 할 만큼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대철 감독은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지금은 ‘동원아 우짜겠노 여기까지 왔는데.’가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아니 심지어 그것을 넘어 충분히 기용할 수 있는 범위라고 생각하고 기용을 했음에도 언론이나 팬들이 혹사라고 난리를 치는 세상이다.

무엇보다 최수원. 그는 한국에서, 아니 어쩌면 세계를 통틀어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위대한 재능이다. 만약에 저 녀석이 한 15년 후인 삼십 대 중반 즈음에 에이징커브가 찾아왔다고 치자. 그냥 기량이 하락할 나이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개중에는 분명 아직 보호받아야 하는 19살에 너무 빡빡하게 경기를 뛴 것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수원아, 그래. 네 마음은 잘 안다. 나도 젊은 시절에는 어? 막 그러고 싶고. 막 그랬지. 근데 우리 이제 10경기 남았고 우승은 확정이나 다름없어. 타격에만 집중하자. 어? 한국 시리즈 생각하면 컨디션 관리도 좀 해줘야지. 우리가 정규시즌만 우승하고 말 거야? 아니잖아.”

“감독님. 저 할 수 있습니다.”

최수원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김대철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나도 안다. 넌 할 수 있겠지. 근데 인마, 내가 허락을 할 수가 없어요.’

요즘 애들은 열혈 이런 거 막 촌스럽다고 그런다던데. 확실히 될성부른 떡잎이라 그런지 다르긴 다르다.

“그래, 알지. 근데 사람이 원래 또 할 수 있는 걸 다 하고 살지는 않거든. 솔직히 지금 네가 굳이 투수까지 완주 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도 없잖냐. 올해 벌써 153이닝 던졌나?”

“네, 153.1이닝 던졌습니다.”

“그래, 1년 차가 그 정도면 충분히 많이 던졌어.”

김대철 감독의 시선이 힐끔 카메라로 향했다.

다큐멘터리라고 했던가? 요즘 수원이 졸졸 따라다니는 카메라다. 카메라 감독이 자기 신경 쓰지 말라는 듯한 제스쳐를 보냈다.

‘염병······. 이걸 어떻게 신경을 안 쓰냐. 솔직히 카메라만 없었어도.’

최근에 4회에 만루홈런 맞은 것도 너 힘 빠져서 그런 거 다 안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지금 이렇게 계속 뛰면 평자책 오히려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으니 아직 2점대에 스탯 예쁘게 남았을 때 그만하면 얼마나 좋은가.

물론 수원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도망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설득력 없는 이야기로 누군가를 움직일 수는 없는 법이다.

“시즌 내내 피칭과 타격을 함께 하는 루틴으로 달려왔습니다. 이제와서 하나를 그만두면 오히려 감각에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다. 아시잖습니까. 평생 야수로 뛰던 타자들 갑자기 지명타자 주면 오히려 타격 성적 훅 빠지는 경우 많은 거.”

“······.”

“지켜보시고 제가 체력적으로 너무 부족하다 싶으시면 그때는 내리셔도 군소리 없이 따르겠습니다. 감독님 부디 기회를 주십쇼.”

김대철 감독이 속으로 신음했다.

‘아······. 젠장.’

이거 이제 외통수다. 이렇게 된 이상 괜히 홈런 기록에 뭔가 영향이 가거나 하면 욕받이 확정이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또 카메라를 한번 힐끔 살폈다.

과연 어느 게 리스크가 더 적을까?

고민은 짧았다. 사람은 본래 당장의 손실은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에이징 커브고 뭐고 어차피 먼 미래의 일이다. 그리고 홈런 신기록 달성은 조만간 닥쳐올 가까운 미래의 일이고.

김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고민 가득한 명장의 표정으로.

***

이제 판은 다 깔렸다.

정규시즌 우승 당연한 일이다. 한국 시리즈까지 통합 우승? 그것도 당연히 해내야한다. 아시아 홈런 신기록? 그것도 물론이다. 10경기나 남았는데 홈런 하나 더 못 쳐서야 되겠는가. 비약물 타자 홈런 신기록? 거기까지도 충분하다.

하지만 진짜는 따로 있다.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스타라면, 그 기대를 뛰어 넘어주는 것이 슈퍼 스타다. 지금 시점에서 모두가 감히 언급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63, 64, 65, 66.

그리고 70과 73.

그 숫자들은 분명 대단했지만 단지 대단할 뿐. 거기에 위대함이 없었다.

그것은 이 숫자들이 금지된 약물로 얼룩진 숫자들이기 때문이다. 약물은 단순히 근육의 크기를 키워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에브리데이 스포츠인 야구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인간적인 회복력을 준다는 점이다.

야구선수라면 누가 됐건, 그것이 설사 철인으로 유명한 루 게릭이나 칼 립켄 주니어라도 시즌 막판에 가면 지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야구에서 약물이 얼마나 대단한 역할을 하는지는 기록만 봐도 알 수 있다.

61홈런을 쳤던 로저 매리스는 시즌 막판 30경기에서 10개. 62홈런을 쳐낸 애런 저지는 9월 이후로 30경기에서 고작 11개에 그쳤다. 그렇다면 약쟁이들은 어땠을까? 새미 소사는 14개. 마크 맥과이어는 16개. 배리 본즈는 무려 17개를 쳤다.

그래, 젠장.

나도 시즌 막판에 평소처럼 휘둘렀는데 자꾸 담장 앞에서 잡혀서 짜증이 나서 찾아본 기록들이다. 참고로 나는 61홈런 쳤던 시즌에 막판 30경기에서 9개밖에 못 쳤었다.

아무튼간에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지금 내 몸 상태가 어떤지를 말이다. 물론 나의 준비는 단순히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와우, 생각보다 훨씬 좋네. 아무리 그래도 프로 첫 시즌을 풀로 치른다고 해서 좀 걱정했는데 확실히 주 6일 스케줄에 5일 휴식 로테이션을 철저하게 지켜서 그런가 봐. 게다가 밸런스도 상당히 잘 잡혔어. 체지방은 여전히 좀 부족하지만 말이야.”

“하하, 진짜 잘 먹고 있는데 그건 영 안 붙더라고요. 아무튼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요.”

시즌 막판.

뉴욕에서 NBM이라는 이름의 피칭 랩을 운영하는 워싱턴 형제가 나의 초대에 응했다.

“고맙기는. 왕복 비행기 값에 숙박비까지 다 내준다는데. 이 정도면 뭐 거의 휴가지. 안 그래?”

“휴가는 무슨. 13시간 동안 그 좁은 이코노미석에 구겨 앉아 있느라 죽는 줄 알았구만. 스완. 미리 말해두겠는데 다음번에는 또 한국에 부를 거면 무조건 최소한 비즈니스야. 알겠어? 이제 곧 메이저리거 될 거라 돈도 잔뜩 벌 거면서. 이런 거 아끼는 거 아니다?”

이코노미석이라고?

내가 한 번 이코노미석에 몸을 구겨 넣고 와봤기에 알 수 있었다. 키 190에 가까운 사내들이 이코노미석에 타면 얼마나 힘든지를. 게다가 나름 귀한 인재들이라 정중하게 초대했는데 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네? 이코노미를 타고 오셨어요?”

동생 잭 워싱턴이 윌리엄 뒤에서 필사적으로 나를 향해 팔을 휘저었다.

“잠깐만······. 야 잭. 너 설마?”

“그래!! 내가 이코노미석으로 달라고 했다!! 벌써 석 달이나 월급을 반밖에 못 가져갔잖아. 형이야 어차피 가족도 없으니 혼자 광합성 하면서 살면 된다고 쳐도. 난 딸린 가족들이 있다고.”

보아하니 여전히 주머니 사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자자, 싸우지들 마세요. 제가 이번에 우승까지 하면 보너스가 제법 나올 거거든요. 그 돈이면 그 이코노미석들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 하기 충분할 겁니다. 그러니까 다들 저 좀 제대로 도와주세요.”

물론 미국에서 사람 둘이 왔다고 해도 맨땅에서 엄청난 기적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또한 동생인 잭의 마사지가 매우 훌륭하긴 했지만, 고작 마사지 받자고 미국에서 사람을 부른 건 당연히 아니었다.

“그래, 뭐 그거야 어렵지 않지. 근데 이 장비들 정말 우리가 이렇게 마음대로 써도 괜찮은 거야?”

“네, 미리 허락 다 받은 거에요. 시설은 좀 괜찮은가요?”

“어, 미리 이야기는 들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훌륭하네. 종류야 조금 다르지만 이 정도면 거의 우리 센터만큼 잘 갖춰져있는데?”

“그 정도에요?”

“어, 새로 나온 기계들도 굉장히 많고. 확실히 프로 팀은 프로 팀이네.”

마린스의 전상익 단장은 하위권을 전전하는 팀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수급한 좋은 재능을 제대로 키워내는 데 있다고 보는 사람이었다.

“이제 이런 장비들이 비싼 FA 하나 지를 돈보다 저렴합니다. 그걸로 유망주들을 제대로 키워낼 수 있다면 무조건 남는 장사죠.”

다만 그 생각의 문제점은 그렇게 비싼 장비들은 그걸 운용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전상익 단장을 설득하는 건 매우 쉬웠다.

“대신 저거랑 저거. 운영 요령 좀 대충 전수 부탁해요. 뭐 특별히 가르쳐 주시지는 않더라도 제꺼 하는 것 좀 같이해주는 걸로 충분할 거예요.”

시리즈 남은 10경기.

그리고 한국 시리즈 최대 7경기.

내 몸은 그 남은 모든 경기들을 전력으로 달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9월을 넘어서 10월.

이제는 서늘한 수준이 아니라 쌀쌀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날씨였다. 보통 이쯤 되면 가을야구 진출이 답도 없는 팀의 경우 홈 경기가 있는 날에 경기장이 이 날씨에 어울리게 한산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 창원 블레이즈 파크는 조금 달랐다.

그야말로 구장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물론 창원의 경우 부산과 원체 가까웠던 탓에 마린스 팬들이 몰려오기 딱 좋은 구장이기는 했다. 심지어 부산 경남 지역은 원래 마린스의 텃밭으로 창원, 마산쪽 사람들 가운데는 여전히 마린스를 응원하는 팬들도 제법 많았다.

그렇지만 오늘 창원 블레이즈 파크를 가득 메운 팬들은 단순히 마린스의 원정 팬들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들 가운데 절반이 넘는 사람들은 분명 블레이즈 선수들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오늘 아시아 신기록 달성 하려나?”

“글쎄······. 요즘 선발로 나오는 날에는 홈런은 못 쳤잖아. 아무래도 내일 달성하지 않을까?”

“내일? 오늘 선발로 뛰니까 내일은 쉬는 날이잖아.”

“아, 그러면 모레겠네.”

이미 블레이즈의 가을 야구 진출은 물 건너간 상황.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61호 홈런이라는 역사적인 상황을 목격하기 위하여 경기장을 찾았다.

그리고 블레이즈 선수들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찾은 것은 블레이즈의 팬들만이 아니었다.

“아······. 하필 수원이 등판일이네.”

179cm.

프로야구선수치고는 그리 큰 키라고 볼 수 없었지만 그는 거대했다. 107kg의 체중에도 불구하고 18%가 채 되지 않는 체지방.

작년 4라운드에 뽑혔던 블레이즈의 유망주.

수원의 고등학교 선배인 조규혁이 확장 엔트리로 2군에서 콜업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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