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그 너머에 위대한 기록(1)
다큐멘터리 감독 박주빈은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아, 얼떨떨하네요. 그냥 집에서는 매일 널브러져 있는 동생 년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밖에서는 대체 뭘 하고 사는지가 좀 궁금해서 찍은 작품이 이렇게 큰 상까지 받게 될 줄이야······. 감사합니다.”
졸업작품으로 뭘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거실에 자빠져서 과자나 뜯어 먹는 한심한 여동생을 찍은 것이 대박이 났다. 한국 영화판에 어느 감독은 영화를 찍으려는데 아무리 찾아도 양아치가 없어서 고민하다 집에 와보니 집에 양아치가 하나 있었다고 하는데, 박주빈도 그와 비슷했던 셈이다.
평가는 대박이었다.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민낯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럼에도 그에 도전하는 어린 소녀의 굳은 마음을 무미건조해 보이지만, 사실 애정이 듬뿍 담긴 앵글로 완벽하게 잡아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참고로 박주빈은 여전히 자기 다큐멘터리에 붙은 평가인 무미건조해 보이는데 애정이 듬뿍 담긴 앵글이라는 게 뭔지 알지 못했다.
어쨌거나 그렇게 큰 상을 대뜸 수상했기에 기회가 제법 많이 찾아왔다. 원래라면 바닥부터 박박 기면서 기회를 노렸어야 했을 텐데 그 기간이 삭제된 셈이다. 다만 이 기회라는 것이 오랜 시간 쌓아올린 인맥과 실력으로 만든 것이 아닌 만큼 이번 한 번에 그친다는 것은 명확했다.
치열하게 고민했다.
과연 자신이 무엇을 잘할 수 있을 것인가를.
“네? 50억이요?”
그리고 그 치열했던 고민은 대체 내가 왜 고민을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어이없이 끝이 났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조건이었다. 이건 고민 할 생각도 하지 말고 무조건 받아야 하는 딜이었다.
“아, 물론 이런저런 수수료나 뭐 다 제외하면 실제 촬영에 사용할 수 있는 돈은 45억 정도 될 건데······. 그거 박감독 인건비랑 촬영스탭들 인건비에 장비 대여하는 비용까지 다 포함인 건 알지? 그리고 이건 대박이 나도 추가로 뭘 더 받아갈 수는 없는 조건이다?”
“어휴, 넥플 정책이야 잘 알죠. 근데 50억이면 대박을 서너번 쯤 내도 못 받을 금액이잖습니까. 극장에 걸어서 대체 몇 명이 봐야 50억일지······. 아니, 걔들은 뭐 자선사업을 한답니까? 다큐 한 편에 50억을 태운다뇨.”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편은 아니고. 5화짜리로 편당 제작비 9억 정도 배정된 셈이지.”
“그것만 해도 훌륭하죠. 편당 제작비 5천도 못 받는 게 허다한데. 하겠습니다. 이건 무조건해야죠.”
인맥?
필요 없다. 이만한 돈이면 다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잠깐만요. 이거 대체 저한테 왜 들어온 겁니까? 커리어 짱짱하고 날고 기는 감독님들도 많잖아요.”
“그게 우리 회사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건 아니고. 견적 넣어 본 건 회사 능력 맞지만, 지금 상황에서 갑은 찍히는 쪽이니까. 그쪽에서 네 이름 불렀다고 하더라.”
“네? 최수원 선수가 저를요?”
“어, 네 다큐 꽤 유명했잖아. 게다가 최수원도 얼마 전까지 고교 선수였고 하니까 아마 뭔가 감정적으로 좀 공감 가는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
“안녕하세요.”
박주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부스스한 폭탄머리에 비리비리한 체격. 거기에 커다란 안경을 썼다. 심지어 안경의 도수도 제법 높은 탓에 왜곡이 심해서 정말 눈이 콩알만 하게 보였다. 15년 후의 박주빈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참 웃음이 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보니까 저 양반 진짜 서른두 살까지 모쏠이었다는 게 확 신뢰가 가네.’
15년 후.
그러니까 내가 이 시대로 회귀하기 전의 박주빈은 많이 달랐다. 영국에서 맞춘 정장을 입고 이태리에서 맞춘 구두와 허리띠를 착용했다. 40대의 나이에도 풍성한 머리는 항상 올백으로 단정하게 넘겼고 아무리 바빠도 빼먹지 않는 운동으로 다져진 몸은 일반인치고는 제법 탄탄했었다.
“······해서 이런 식으로 찍을 계획입니다. 어떠신가요?”
“그렇게 하면 일정이 조금 빡빡하지 않나요? 아마 그쪽에서는 한국시리즈 전에 1화를 업로드하고 싶어 할 것 같은데요.”
“그렇게는 한데, 다 찍어놓고 편집하는 게 아니라, 일단 찍으면서 틈틈이 밤이랑 주말에 편집하면서 진행을 하면 앞부분은 어차피 일단은 완성이 된 상태일 거니까요.”
정말 아무렇지 않게 자기 목숨을 태우겠노라 이야기하는 이 양반이 정말 박주빈이 맞나? 내가 기억하는 박주빈은 자기가 능력 있는 걸 알아서 그런지 절대 이런 파이팅 넘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것이 박주빈 이 양반, 정확하게 8년 후에 아카데미에서 장편 다큐멘터리로 상 받는다. 그리고 헐리웃에서 그대로 영화도 하나 찍는데 그게 또 3천만 달러 제작비에 월드와이드 2억4천만으로 대박이 나고 속편을 2개나 더 찍는 기염을 토한다.
아, 내가 이걸 어떻게 다 기억하냐면 3편까지만 나왔으면 딱 좋았을 그 영화의 4편을 대차게 말아먹은 저 양반이 다시 다큐 감독으로 돌아와서 찍은 다큐가 내 다큐였기 때문이다. 당시 어찌나 자기 약력을 줄줄 떠들어 대던지 정말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양반을 또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능력.
그러니까 본인 말처럼 뭐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거장까지는 아닐지라도 분명 아주 능력있는 감독이다. 사실 다큐멘터리야 있는 거 그대로 찍는데, 그거 능력이 뭐가 중요한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야말로 감독의 능력을 정말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야 배우의 이런 거, 저런 거 조정해서 감독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낼 여지가 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사람을 찍고 그렇게 찍어낸 방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렇게 보여준 것이 사람들을 ‘매료’ 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위대한 인물은 그냥 단순히 그려지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예컨대 지금 KBO 홈런 신기록을 작성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은 적어도 한국 야구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싶은 사람이다. 아마 대충 카메라만 돌려서 적당히 찍어내도 시청율이 보장이 될 거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아니다. 솔직히 이거 다큐 찍는 거 굉장히 귀찮다. 그래도 굳이 찍는 건 역시 인지도 때문인데 사실 그렇게 임팩트 있게 홈런 신기록을 달성한 내가 한국에서 인지도 때문에 귀찮은 일을 해야 할 상황이 아니다. 적어도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리그는 KBO였으니까.
내가 바라는 것은 그 이후에 있었다.
“제 조건은 간단합니다. 한국시리즈 전에 굳이 업로드 하려고 애쓰시기보다는 그 이후까지 생각한 정말 제대로 된 홍보용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주세요.”
“네?”
잠시 박주빈이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 그의 표정이 살짝 사납게 변했다. 뭔가 촌스럽고 박주빈 답지 않은 모습의 연속이었는데 저럽게 사납게 변한 얼굴을 보니 원래 내가 알던 15년 후의 박주빈이랑 조금은 비슷해 보여서 정감이 갔다.
“아니, 최수원 선수. 물론 제가 다큐를 찍긴 찍을 건데. 그리고 그게 물론 홍보가 되는 것도 맞긴 하고요. 근데 최수원 선수. 저한테 돈 주는 거 최수원 선수가 아니라 넥플인 건 알고 계시죠? 제가 지금 비위 맞춰야 하는 쪽도 넥플인 것도요.”
“알죠. 그리고 제가 협조를 잘해야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온다는 것도 잘 알고요.”
“우아, 잠깐만요. 지금 설마 협박입니까?”
“협박은 넥플에 이야기해서 저기 MBS나 KBC쪽 검증된 다큐 감독 붙여 달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는 게 협박이고요. 들으셨죠? 제가 굳이 박주빈 감독님 선택한 이유.”
“네, 제 다큐 재밌게 보신 것 같다고······.”
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죠. 아니, 저야 당연히 재밌어야죠. 동생분이랑 저랑 사이에는 엘리트 스포츠라는 공통점이 존재하니까요. 제가 진짜 마음에 든 부분은 그 다큐가 낸 성적입니다.”
“그거 좀 너무 노골적으로 상 받은 거 때문에 뽑아 주셨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상도 상인데 상업성도 있었죠. 그거 결국 엘리트 스포츠도 모르고, 양궁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 다큐에 매료가 됐다는 거 아닙니까. 전 제 다큐가 그걸 본 사람들을 매료시켰으면 좋겠거든요.”
“아니, 그거야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제 다큐면 당연히 한국에서 흥행은 보장이죠. 제가 바라는 건 그 이상입니다. 아마 넥플도 진짜 내심 바라는 건 그거일 겁니다.”
그래, 미국이다.
물론 미국에서 한국인이 야구하는 다큐를 뭐가 재밌다고 보겠느냐. 라고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한국에서 북해에 대게 잡는 다큐는 대체 뭐가 재밌다고 보겠는가? 근데 놀랍게도 그게 보다 보면 빠져드는 재미가 있다.
참고로 예전에, 그러니까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 오기 전에 이 양반이 찍어줬던 내 MLB 다큐멘터리는 몇몇 사람들이 평가하기로는 그냥 야구 경기, 혹은 야구 하이라이트 보는 것보다 더 재밌었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이 양반 다큐를 보고 야구에 입문했다는 이야기도 나왔고.
“그러니까 지금 원하시는 게 한국말고 저기 외국에서 흥행하는 거라고요? 야구선수 다큐멘터리가? 이것 참. 스케일이······. 진짜 남다르네요.”
“그래서 하기 싫으세요? 감독님도 암스테르담에서 상 하나 받으셨으면 이제 더 높은 곳 보셔야죠. 넥플이면 세계적으로 다 서비스 되는 OTT 아닙니까.”
“아니, 하기 싫기는요. 그리고 애당초 좋고 싫고가 어딨습니까? 회차당 9억짜리면 이건 무조건 고 해야죠. 알겠습니다. 제가 진짜 죽을똥 살똥 힘써서 최대한 잘 팔리는 재밌는 홍보 다큐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뭔가 생긴 건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느껴지는 분위기가 원래 내가 알고 있던 재수 없던 박주빈과 비슷해서 정감도 가고 좋았다. 다만 그래도 역시 세월은 어쩔 수 없는 건지 영 어설펐다.
“감독님 제가 조언 하나 해드릴게요.”
“네? 또요?”
“앞에 거는 조언이 아니라 제 다큐를 위한 요구였고. 이건 진짜 순수한 의미로 호의를 가득 담은 조언입니다.”
“네, 말씀하시죠.”
“다음에는 에이전시 꼭 능력 있는 곳으로 찾으세요. 아까 말씀하신 거나, 제가 요구했던 부분들이나 다 맞추려면 회차당 9억도 진짜 빠듯할 텐데. 고작 그걸로 만족하시다뇨.”
“아니, 그건 최수원 선수가 이 바닥을 잘 모르셔서 그러는데. 다큐가 회차당 9억이면 엄청난 겁니다.”
“알죠. 근데 저 최수원이잖아요.”
박주빈이 이게 또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제가 감독님이랑 하겠다고 이야기한 거고요. 협상 제대로 할 줄 아는 에이전시라면······. 아무튼 그 엄청난 금액 죄다 제작비로 털어 넣고 본인은 하루 18시간 일하면서 열정페이로 일하겠다는 게 참 안쓰러워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열정으로 일하실 거면 운동이라도 해서 몸이라도 만드시던지요.”
“······.”
참고로 지금 내가 해준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오기 전 박주빈이 나한테 해줬던 이야기랑 좀 비슷했다.
“아니, 너 초상권료가 얼마일 텐데 이걸 홍보 효과랍시고 그냥 찍는다고? 야, 에이전시 당장에 갈아 치워라. 걔들 일 진짜 더럽게 못 하네.”
***
경기가 계속됐다.
홈런 역시 계속 쌓여갔다.
58개 그리고 59개에서 60개.
그렇게 아시아 최다 홈런 기록에 도착하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시아 최대 홈런 기록 경신까지 단 1개를 남겨 둔 시점에서 최수원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말이야. 야구에서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 있잖아? 그거 몇 개지?”
“60개, 지금 최수원이 1개 남겼잖아. 기사 좀 읽어라. 요즘 아주 포털에 도배가 되는 구만. 그걸 모르냐?”
“아니 아니, 아시아 기록 말고.”
”그러면?”
”세계 기록. 세계 기록은 몇 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