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208화 (208/305)

208화. 신기록(4)

[쳐······, 쳤습니다!! 오늘 경기 최수원 선수의 두 번째 홈런포!! 시즌 49호 홈런!! 최수원이 피닉스의 에이스 임광형을 상대로 마흔아홉번째 홈런포를 쏘아 올렸습니다!!]

[시즌이 한 달 남짓 남은 상황에서 2타석 연속 홈런포!! 와, 이건 어떻게든 한국 신기록 꼭 세우겠다. 뭐 그런 느낌입니다.]

─최수동원: 느낌 온다. 133경기 56홈런 경신 각이다.

─96층의하늘은푸르다: 어쩌다 멀티 홈런 좀 쳤다고 설레발은 ㅉㅉㅉ

─안타가없으면홈런을: 어쩌다 멀티 홈런은 아니지. 이번 시즌 수원이 멀티 홈런이 몇 갠데. 근데 그것보다 수원이 이상하게 임광형한테 되게 강한 듯. 임광형 이번시즌 피홈런이 17개인데 그중에서 5개가 수원이한테 얻어맞은 홈런임.

─최수동원: 우리 수원이가 임광형한테만 강한 게 아니야. 보면 그리핀즈 정도 제외하고 팀에 에이스급 투수들은 전부 다 골고루 잘 두들기고 다님.

─사직야가다: 그거야 그리핀즈 놈들은 우리 수원이한테 맨날 볼넷만 던지니까. 에이스고 나발이고 말이야. 솔직히 걔들은 팀 통틀어서 수원이한테 삼진 딱 하나 잡았잖아. 쫄보 새끼들.

─홈런왕이주혁: 그래서 그리핀즈는 우리 이주혁이 두들긴다.

─가전은럭키금성: 아, 그래서 최수원이 에이스들 상대로 오히려 홈런을 더 잘 치는 건가?

─마린스우승: 그렇다면 최수원한테 홈런 맞은 적 없는 애들은 에이스가 아니라는 소리네?

─발전없는타자: 아주 최수원 멀티 홈런 쳤다고 지랄도 지랄도······. 그래서 그 논리대로면 최수원한테 홈런 맞은 적 없는 최수원 본인은 에이스가 아니겠네?

─사직야가다: 아!! 그런 패러독스가!!

최수원의 멀티 홈런에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그에게 호의적인 곳이건, 그렇지 않은 곳이건 그가 실시간으로 놀라운 기록을 세워나가고 있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했다.

심지어 그에게 호의적인 커뮤니티에서는 한국 최다 홈런 기록인 56개를 넘어 아시아 최다인 60개에 도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올 지경이다.

“거봐, 내가 앞으로 수원이 경기는 평일이고 뭐고 놓치지 말고 다 봐야 한다고 이야기했잖아. 내 말 듣기를 잘했지?”

“그러게. 와, 아니. 설마 했는데 진짜 여기서 멀티홈런을 까버리네. 이렇게 되면 앞으로는 원정 경기도 다 따라 가봐야겠다. 야 근데 그러면 우리도 앞으로 외야석으로 구해야 하는 거 아니냐? 홈런볼 노려 봐야지.”

“글쎄다. 그게 되려나?”

“되건 안 되건 시도는 해봐야지. 시도는 해야 가능성이라도 생기는 거잖아. 예전에 그 홈런볼 비싸게 팔린 거 1억도 넘게 팔리지 않았나?”

“어, 그 세계최연소 300호 홈런볼이 1억 넘게 팔려서 그리핀즈에 기증됐고, 55호 홈런볼은 낙찰됐는데 구매자가 구매 취소해서 안 팔렸다더라.”

“그래? 그러면 신기록 세워도 1억까지는 안 가겠네?”

“글쎄다. 메이저리그 보면 막 10억, 20억짜리 홈런볼도 나오니까. 수원이꺼도 시즌 마지막 홈런볼 정도면 억 소리 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거야 메이저리그니까 가능한 거지. 미국 애들은 애초에 스포츠에 미쳐서 돈을 막 쓰잖아. 보니까 우리 지금 앉은 테이블석 정도 되는 자리 앉으려면 한 경기에 육칠백만 원씩 들어가더만.”

“그렇지. 역시 거긴 자본 규모가 다르니까. 근데 바꿔 생각해보면 그러니까 수원이꺼도 나중엔 억 소리 나지 않을까?”

경기장을 찾은 두 남자가 주고 받는 이야기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은 많았다.

아니, 사실은 홈런볼이 수억이 되건 안 되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 KBO의 역사. 어쩌면 단순히 KBO를 넘어 야구라는 15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종목의 역사 가운데 매우 중요한 페이지일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 매우 중요한 순간을 현장에서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것. 그것은 야구의 팬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감정이었다.

‘설마 했는데······.’

임광형이 신음했다.

그 유명한 그렉 매덕스도 말했다. 공의 회전을 읽어내는 타자도, 릴리스 포인트의 차이로 구종을 알아내는 타자도 있다. 하지만 구속에 변화를 줄 수 있다면 어떤 타자건 잡아낼 수 있다. 퍼킹 토니 그윈만 빼고.

시즌 초반에 임광형은 마린스 타자들한테 체인지업이 좀 털렸다.

그래, 최수원이야 백번 양보해서 그 토니 그윈만큼 이레귤러라고 치자. 하지만 다른 마린스 선수들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 그의 폼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다행히 피닉스의 장비들은 나쁘지 않았다.

하여간 KBO도 많이 올라왔다. 메이저만큼 능숙하게 다루는 인력들은 없었지만 장비 자체는 MLB에 크게 뒤지지 않았다. 아무튼 그 장비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투구폼을 정밀하게 분석해본 결과 체인지업을 던질 때 팔꿈치의 각도에 약간의 문제가 있는 것이 발견됐다. 아마 공을 더 느리게 던지려고 하다 보니 생긴 문제 같았다.

그리고 지금.

마린스의 다른 타자들은 이제 그의 체인지업을 전혀 구분하지 못했다.

저 망할 최수원만 빼고.

1루와 2루. 그리고 3루를 지나 홈까지.

최수원이 가볍게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4회 말.

0:2.

그의 마흔아홉 번째 홈런에 팀 동료들이 모조리 달려 나왔다. 이미 과거 이규만이 세웠던 마린스의 단일시즌 홈런 기록은 넘긴 지 오래였다. 49홈런이면 KBO를 기준으로 단일시즌 최다홈런 단독 6위의 기록이다. 1위와 2위가 동일 인물이고, 공동 3위와 5위가 동일 인물이니 이제 그보다 많은 홈런을 쳤던 타자는 KBO 역사를 통틀어 오직 세 명뿐.

팀원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 덕아웃으로 돌아간 그에게 이정훈이 스윽 다가왔다.

“야, 뭐야? 들어보니까 체인지업 그거 뭐 팔꿈치 어쩌고 고친 것 같던데. 다른 거 뭐 찾은 거야?”

오늘 그의 성적은 병살타 하나와 헛스윙 삼진 하나로 2타수 무안타.

특별히 이정훈의 성적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오늘 임광형에게 안타를 뽑아낸 타자는 수원을 제외한다면 강라온과 이규만 두 사람이 전부였으니까.

“아뇨. 뭐 특별한 쿠세 같은 건 못찾겠더라고요.”

“뭐야? 그러면 그냥 보고 친 거라는 이야기야?”

“절반 정도는요.”

“광형 선배의 체인지업을 절반은 보고 쳤다는 것부터 좀 재수가 없으려고 하지만 너야 원래 항상 재수가 없으니까 그건 그냥 넘어가고 그러면 그 나머지 절반은 뭔데?”

“찍었어요.”

“찍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광형 선배는 커맨드가 워낙 좋아서 공이 진짜 아슬아슬하게 들어오잖아요. 우타자 기준으로는 바깥쪽 낮은 코스로는 투심이랑 체인지업 섞어 들어오고 그러다가 안쪽에 포심 집어넣는 거. 그러다가 깜짝 놀라게 슬라이더도 들어오고요. 근데 보니까 오늘 슬라이더가 좀 별로더라고요. 그래서 바깥쪽 투심 아니면 체인지업. 몸쪽 포심이라고 생각했는데 앞에서 투심을 두 개나 보여주길래 그냥 바깥쪽 체인지업이라고 찍고 기다렸어요.”

“그러다가 바깥쪽 투심이나 몸쪽 포심 들어오면?”

“바깥쪽 투심이면 파울 만들어보는 거고, 몸쪽 포심이면 헛스윙으로 삼진 먹거나 범타로 아웃 되는 거죠 뭐. 광형 선배 정도 투수한테 무조건 치겠다 이런 생각하는 건 좀 오만이잖아요.”

“애초에 노리던 공 들어온다고 무조건 치겠다는 생각도 오만한 건 마찬가지지만······. 오만한 것도 원래 항상 오만했으니까 일단 그냥 넘어가고. 그래서 좌타자는 뭔데?”

“저야 모르죠. 근데 그거 경기 전에 미팅에서 이야기하잖아요. 자료도 나눠주고요.”

“맙소사······. 너 설마 그걸 다 읽는 거야?”

“맙소사는 제가 맙소사 거든요. 안 읽는 선배들 많다고는 들었지만, 선배도 안 읽는 거였어요? 선배 언어는 그래도 4등급은 나왔었다면서요.”

이정훈이 어색한 표정으로 빠르게 물러났다.

그가 특별히 게으른 것은 아니었다. 사실 매일매일 나눠주는 전력분석팀의 자료를 항상 읽는 선수는 매우 드물었다. 전력분석팀에서 커브니 투심이니 싱커니 슬라이더니 하면서 공을 구분하는 것과 별개로 타자들 대부분은 그냥 떨어지는 공, 빠져 나가는 공, 들어오는 공 정도로 공을 구분했고 투수들의 패턴이라는 것도 결국 한 가운데로 오는 공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보더라인에 집요하게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는 MLB에서도 보기 드물다.

그리고 그렇게 빠르게 물러난 이정훈이 저기 한 구석에 쌓여있는 자료를 슬쩍 읽기 시작하는 모습에 최수원이 실소했다.

뭐 저걸 읽는다고 사람이 극적으로 달라질 수는 없다. 애초에 이규만이나 노형욱 혹은 쪼유 같은 타입은 저걸 읽고 머리가 복잡해지면 오히려 더 나빠질 수도 있고. 하지만 이정훈이라면 머리를 좀 굴리는 편이 나으리라.

경기가 계속됐다.

4회 말.

임광형은 노형욱에게 또 다시 안타를 허용했지만 이규만에게 병살을 뽑아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서경준을 삼진으로 잡아냈다.

곽재영은 이를 악물었다.

두 번째 타순에서는 더 어려웠다. 그는 구속이 떨어진 늙은 투수 답게 이것저것 많은 변화구를 건드렸지만 사실 실전에서 제대로 써먹을만한 공은 포심과 슬라이더 정도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그냥 깜짝쇼 정도의 느낌이다. 물론 KBO의 많은 투수들이 그렇듯 그 역시 슬라이더가 한 종류가 아니었다. 횡으로 크게 움직이는 슬라이더와 종으로 크게 떨어지는 슬라이더 두 종류였다. 하지만 어쨌거나 슬라이더는 슬라이더다. 이제 슬슬 좌타자들은 버거웠다.

경기가 조금 더 진행됐다.

조유진이 임광형의 공을 세게 쳤다.

그리고 미친듯한 속도로 질주했다. 하지만 오민엽이 자기가 괜히 리그의 3대 유격수 중 하나로 꼽히는 게 아님을 증명했다.

그리고 또 다시 피닉스의 공격.

이제 세 번째 타순은 더 어려운 수준을 넘어섰다. 이것을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곽재영은 생각했다. 그래, 이건 디아블로다. 노멀과 나이트메어와 헬 난이도가 같은 구성이지만 그 어려움은 비교를 불허하는 것과 같다. 곽재영은 나이트메어에서 파밍이 제대로 끝나지 않았음에도 헬 난이도에 꾸역꾸역 도전하는 게이머의 심정으로 꾸역꾸역 마운드에서 버텼다.

5.2이닝 1실점.

그리고 주자 1, 2루.

김대철 감독이 필승조를 동원했다.

이번 시즌 지금까지 64.1이닝을 소화하고 있는 불펜 고설민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현재 리그의 불펜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있는 그는 이대로라면 시즌이 끝날 때쯤 80이닝에 가까운 이닝을 소화하게 될 것이라 예상됐다. 분명 언젠가는 퍼질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늘은 아니었다.

공 하나로 깔끔하게 내야땅볼.

6회 초, 피닉스가 동점 기회를 날렸다.

그리고 6회 말.

다시 1번부터 시작되는 마린스의 공격.

임광형이 또 마운드에 올라왔다.

강라온은 이번에도 안타를 기록하지 못했다.

바깥쪽 체인지업이 결정구로만 올 거라고 예측했지만 0-1의 카운트에서 들어온 바깥코스가 투심이 아닌 체인지업이었다.

2구째에 내야 뜬공 아웃.

‘저 선배 투구 패턴을 또 바꿨네.’

이어지는 2번 타자 이정훈.

그는 자료집에 있던 임광형의 피칭 레퍼토리를 완벽하게 기억했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물론 기억만 했다는 뜻이다.

애초에 보더라인으로 깔끔하게 붙어오는 공만 주야장천 던져대는 투수를 공략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 저 선배. 왜 내 차례에선 실투 하나 없는 거지?”

두 명의 타자가 물러났다.

그리고 타석에 3번 타자.

시즌 50홈런에 도전하는 최수원이 올라왔다.

[자, 6회 말. 앞선 두 번의 타석에서 모두 홈런을 쳐낸 최수원 선수의 세 번째 타석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피닉스의 마운드가 아닌 덕아웃으로 향했다.

그리고 피닉스의 덕아웃은 두 번의 피홈런을 허용한 자신의 에이스를 믿는 것으로 그 시선에 답했다.

고의사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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