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가장 위대한 것(1)
“엥? 뭐야? 수원이가 등판을 거른다고?”
“왜? 거를 수도 있지. 신인에 투타겸업에. 게다가 올해가 2018년 이후 가장 더운 해라며. 퍼져도 이상할 게 전혀 없어 보이는구만.”
“아니, 그야 그렇지만. 최수원 올해 한 번도 등판 거른 적이 없잖아. 게다가 어제 경기에서도 홈런 쳤고.”
“잠깐만, 걔 올해 한 번도 등판을 거른 적이 없다고?”
현재 KBO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는 누가 뭐래도 최수원이었다. 아니 사실 KBO를 넘어 전 세계 야구를 통틀어도 현재 MLB를 강타하고 있는 천재 알렉산더 맥도웰 정도를 제외한다면 그보다 화제가 되는 인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KBO를 보는 모든 팬들이 최수원의 성적을 일일이 체크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최수원이 화제가 되는 것은 그 미친 탈인간급 타격능력 쪽이지 피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 잠깐만. 얘 뭐야? 얘 왜 이렇게 잘 던졌어? 이 정도면 거의 토종 선발 가운데서는 조창혁 정도 빼고는 최고 수준 아니야?”
20경기 20선발 124이닝 49실점 39자책 104피안타 8피홈런 34볼넷 5사구 2보크 1폭투 그리고 141삼진. ERA 2.83에 FIP 2.81.
심지어 ERA+는 무려 148에 FIP+는 147.1로 그보다 높은 FIP+를 기록한 토종 투수는 조창혁과 임광혁뿐이었으며 거기에 외국인 투수까지 다 해도 고작 일곱에 불과했다.
“수원이 최고 구속이 163이잖아. KBO 최초 퍼펙트도 있고. 기복이 좀 있어서 그렇지 포텐셜만 따지면 조창혁도 못 비비지. 조창혁 19살 때 2군이었잖아.”
“아니, 그거야 학폭 때문에 시즌 준비가 제대로 안 돼서 그랬던 거지.”
“아무튼 19살에 이만한 성적 기록한 투수가 어딨냐? 솔직히 최수원이라는 이름 지우고 그냥 한국인 투수 A가 19살에 이렇게 던졌으면 그것만으로도 차기 메이저리거감이라고 난리 났을걸? 그렇게 보자면 투수 최수원은 타자 최수원한테 묻힌 비운의 투수인 셈이지.”
“뭔가 완전 개소리인데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네······.”
기본적으로 프로야구의 팬이라고 모든 경기를 보는 것은 아니다. 자기 응원하는 팀의 144경기를 모두 챙겨보는 팬만 하더라도 충분히 하드코어한 팬에 속한다. 다른 팀의 경기따위 결과를 보거나 하이라이트 정도 보는 게 전부다.
그리고 투수 최수원은 잘 던지는 경기에서는 기가 막힌 모습을 보여주지만, 가끔 또 못 던지는 경기에서는 살짝 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덕분에 노히트를 허용한 브레이브스와 퍼펙트를 허용한 돌핀스의 팬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개 구단 팬들에게 최수원의 피칭은 사람들에게 그냥 타자가 저만큼 치는데 투수까지 선발로 1인분을 해내고 있다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것보다 우리 수원이 몸에 문제 있는 거면 안 되는데······.”
***
“특별히 문제는 없습니다. 어디 아픈 곳도 없고요. 다만 많은 분이 워낙에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는 탓에 잊고 있지만, 수원이 나이가 고작 열아홉입니다. 통상적으로 메이저리그 같은 곳에서도 열아홉 살짜리 선수에게는 이닝 제한을 거는 편이죠. 개인적으로 20경기 124이닝이면 사실 충분 이상으로 경기를 소화했다고 생각합니다. 선수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감독으로서는 적절한 휴식을 부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 마린스의 경우 1위 경쟁이 매우 치열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최수원 선수에게 휴식을 주는 것은 굉장한 낭비가 아닐까요? 물론 선수의 앞날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긴 합니다만, 결국 구단에게 있어서 제1의 과제는 우승이고, 그건 선수 역시 마찬가지니까요. 혹여라도 그런 배려로 인해 천려일실의 우를 범하게 된다면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실패로 남을 텐데요.”
김대철 감독이 쓰게 웃었다.
“그건 저희 팀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게 아닐까 싶네요. 수원이가 등판을 거른다고 저희가 1위 경쟁에서 밀려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장 지금 2위인 돌핀스와 저희의 승차가 2.5경기나 되고요.”
“아, 죄송합니다. 워낙에 최수원 선수의 성적이 압도적이라 제가 실례되는 말을 했네요.”
“괜찮습니다. 아무튼 오늘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시죠.”
워낙에 압도적인 화제를 뿌리고 다니는 녀석이라서일까?
한 경기 로테이션을 거른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여기저기서 잡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바로 어제 경기에서 홈런을 친 녀석에게 부상이라는 기사는 양반이었고 오만한 성격으로 팀 내에 불화가 있다느니 막나가는 바람에 구단 고위층에게 찍혔다느니 하는 루머도 나돈다.
대꾸할 가치도 없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다.
다만 며칠 전 나눴던 대화가 그의 머릿속을 조금 괴롭했다.
“최수원이 너무 지친 것 같은데 좀 휴식을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네?”
“아니, 뭘 그리 놀라십니까?”
“아뇨, 평소에 선수단 운영에는 한 마디도 안 하시는데 갑자기 최수원 선수 이야기만 하시길래 조금 놀랐습니다.”
“하하, 그거야 감독님을 워낙에 믿으니까요. 다만 최수원 선수의 경우는 그 뭐랄까. 저보다 높은 곳에서도 워낙에 관심을 갖는 선수라서. 그거 아시죠? 마린스의 저주. 그 우승 하려면 에이스 팔을 아작내야 한다는 그 징크스. 윗선에서는 우승도 우승인데 그 이야기 나오는 걸 정말로 싫어합니다. 특히 요즘은 SNS다 뭐다 워낙 말이 많잖습니까. 가뜩이나 모그룹이 소비재기업인데 이미지 중요하잖습니까. 모그룹 입장에서는 우승하더라도 MLB에서 주목한다는 유망주 팔 갉아 먹으면서까지 우승하는 건 바라지 않는다. 뭐 그런 거죠.”
그것은 매우 이례적인 대화였다.
물론 마린스의 단장인 전상익은 그리핀즈의 강지우와 찰리김 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메이저리그 물을 먹어 본 유학파로 프런트 위주의 야구를 중시하는 편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선수단 구성에 관한 부분이었지 선수단의 운용에 관한 것까지는 아니었다.
게다가 한층 더 그를 찝찝하게 만드는 것은 아직 기사화된 적은 없었지만, 그의 귀에 알음알음 들리는 한 가지 괴이한 소문이 있다는 점이다.
최수원의 마린스 이면 계약이 있으며 그것은 포스팅에 관한 조건으로 ‘우승’과 관련되어 있다는 소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KBO에서 진짜 우승은 한국시리즈 우승이잖습니까. 정규시즌 우승 그걸 누가 그렇게까지 신경 쓴답니까. 안 그렇습니까?”
복잡해지는 머릿속.
김대철 감독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야구 감독이었다.
그가 생각할 때 야구 감독은 선수들을 관리하고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직업이다. 그런 정치질이나 협잡질은 저기 높은 양반들이 신경 쓸 일이다.
단장의 말이 터무니 없다면 듣지 않으면 그만이다. 다만 그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수원이한테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은 그 역시 동의할 수 있었다.
호크스와의 1차전.
본래라면 최수원이 등판했어야 하는 그 경기에 등판한 백하민은 4회까지 무실점으로 제법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5회.
-딱!!
홈런.
-딱!!!!
그리고 또 홈런.
두 방의 홈런이 백하민을 무너트렸다.
[아, 나영준의 백투백 홈런!! 0:0의 팽팽한 점수가 한순간에 3:0으로 벌어집니다.]
[백하민 선수, 앞선 홈런 이후로 조금 흔들린 걸까요? 나영준, 가운데로 살짝 몰린 공을 놓치지 않습니다.]
김대철 감독의 얼굴에는 표정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정뿐이다. 그의 마음이 흔들렸다. 생각해보면 백하민 역시 최수원보다 고작 1살이 많을 뿐. 프로에서 선발로 뛴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최수원과 마찬가지로 20경기를 소화했고 그 가운데 19경기를 선발로 출정하여 119.1이닝을 소화했다. 지금 시점까지 하면 21경기에 123.2이닝이다. 물론 최수원과 달리 투타겸업도 아니고 올스타 브레이크에서 충분한 휴식을 가졌다지만 최수원과는 사이즈가 다르고 재능이 다르다. 평범한 선수라면 당연히 지칠 수밖에 없다.
당장 교체를 해야 할까?
점수는 아직 3:0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
하지만 4이닝을 잘 던졌고 공도 아직 살아있다. 앞선 2점 홈런은 그냥 타자가 잘 쳤던 거고, 나영준의 홈런은 홈런 맞고 잠깐 흔들린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정답을 모르는 선택.
“코치님.”
“어때? 더 던질 수 있겠어?”
“네, 아직 쌩쌩합니다.”
땀으로 범벅이 됐지만 그럼에도 숨겨지지 않는 잘생김. 그런 얼굴로 진지하게 말을 뱉으니 괜히 더 신뢰가 간다.
마운드를 방문한 투수코치가 돌아왔다.
“눈빛이 아직 살아있습니다. 악력도 꽤 남아있고요. 조금만 더 믿어보시죠.”
김대철 감독은 선택을 했다.
스무살의 투수를 조금 더 믿어보기로.
-딱!!!
그리고 이어진 초구 이루타.
“불펜에 연락해.”
백하민 4.1이닝 4실점.
그리고 최수원의 솔로 홈런포에도 불구하고 7:4의 아쉬운 패배.
2차전.
스타팅 명단에 최수원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
“뭐에요? 언니 남자친구 왜 출장을 안 하는 거예요? 진짜 뭐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어제 원래 등판이었잖아요.”
“세희야. 내 남자친구 아니고. 문제 있는 것도 아니야. 그냥 원래 수원이 루틴이 그렇잖아.”
“아니, 그건 그런데요. 그 루틴 자체가 등판한 다음 날에 쉬는 거였잖아요. 어제 등판 하지 않았으니까 쉴 이유도 없는 거 아니에요?”
본래는 팀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언니인 박은진이 꼬박꼬박 챙겨보는 그 ‘동창’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보기 시작한 야구였다.
하지만 의외로 그 야구장의 분위기와 야구라는 게임의 흐름이 잘 맞았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 ‘동창’이라는 사람이 소속됐다는 이유만으로 응원하던 팀이 꾸역꾸역 이겨 나가며 결국 리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이세희는 어느새 굳이 박은진이 아니라도 가끔 야구를 챙겨보고 매일매일 순위를 확인하는 가벼운 팬이 되어 있었다.
“세희야. 너도 예능 프로그램 출연할 때 꼭 그 행운의 브래지어 차고 나가야 하는 징크스가 있잖아? 야구선수들 루틴도 그거랑 좀 비슷해. 이왕이면 루틴 지키는 게 좋지. 게다가 선발 한 번 쉬는 것 자체가 체력적으로 휴식을 주려고 그러는 거잖아.”
“아니, 그건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도 타이밍이 안 좋잖아요. 어제 경기로 연승도 깨졌는데 바로 분위기 반전해야죠.”
“글쎄. 마린스 감독도 다 생각이 있겠지.”
“돌대철이 생각이 있다고요? 차라리 피닉스가 우승한다는 말이 더 신빙성 있겠는데요?”
“야!! 우리 피닉스가 뭐 어때서!!”
“아니, 언니는 남자친구가 마린스 프랜차이즈 마린스 영구결변 0순위인데 왜 아직도 우리 피닉스에요!! 이제 마린스로 갈아탈 때도 됐잖아욧!!”
‘아니, 우리 수원이는 마린스 프랜차이즈 같은 거 안하고 바로 메이저 갈 거거든!!’ 이라는 말이 턱 끝까지 나왔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얼마나 불쌍한가.
어쩌다 마린스 같은 팀의 팬이 돼서는 남한테 마린스 팬질 같이 하자고 영업까지 하는 신세라니. 올해야 수원이 있으니까 잠깐 잘하겠지. 하지만 그 댓가로 앞으로 30, 40년은 꼴찌 구르는 꼴을 참아내야 할 것 아닌가.
반면 피닉스는 얼마나 미래가 창창한가. 최으뜸에 오민엽. 게다가 팀의 20년을 책임질 포수 정병철에 최근 2군에서는 서규탁이랑 김정민도 아주 잘 던지고 있다.
그렇게 KBO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꼴찌를 피닉스의 팬이 KBO 역사상 가장 많은 꼴찌를 기록한 마린스의 팬을 동정하는 사이 마린스와 호크스의 2차전 경기가 빠르게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