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199화 (199/305)

199화. 고비(5)

“더위인가?”

“네,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슬슬 쉬어갈 타이밍이 된 것 같습니다. 본인이야 괜찮다고 하지만 체중이 벌써 2kg 가깝게 빠졌습니다.”

“키가 1cm가 더 자랐다고 그랬나?”

“네, 몸의 사이즈도 좀 더 커졌습니다. 게다가 거의 매일 경기까지 뛰고 있다보니 먹는 양을 아무리 늘려도······.”

본래도 수원은 쉽게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었다. 거기다가 지금 수원이 소화하고 있는 스케줄은 사실 말이 안 되는 수준의 스케줄이었다. 타자가 매일매일 경기를 소화하는 것은 힘들지만 그래도 체력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투수가 닷새에 한 번씩 경기를 소화하는 것도 힘들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소화 하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야구에서 투수라는 포지션은 특별하다. 그 체력의 소모가 다른 포지션과는 사뭇 달라서 턴제로 펼쳐지는 야구와 달리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다른 구기 종목들에 필적한다. 어마어마한 운동에너지를 오직 어깨와 팔을 통하여 폭발적으로 쏟아내기에 팔과 어깨에 걸리는 부하는 보통이 아니며, 그 회복에 필요한 시간 역시 매우 길다.

“진작에 좀 길게 쉬게 했어야 했는데······.”

수원은 지금까지 96경기 가운데 73경기에 출장을 했다. 본인이 등판한 경기 바로 다음 날에는 꼭 하루씩 휴식일을 부여했지만, 그걸 제외하면 나머지 거의 모든 경기에 출장을 했다는 뜻이다.

“어쩔 수 없었죠, 지금도 2위랑 고작 2경기 차이인데요. 지금이야 저희가 부산의 영웅이지만 여기서 한 걸음이라도 삐끗하면 그대로 역적 아니겠습니까.”

시즌 중반에 1위에 오른 것이 무려 15년 만의 일이었다. 그 미친 듯이 달아오른 분위기는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현재 김대철 감독은 가는 음식점마다 서비스가 나오고 커피 한 잔을 시켜도 마들렌 하나 정도는 꼭 따라 나오는, 거의 뭐 부산의 영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오늘 경기 이후로 며칠 정도 휴식일을 준다고 해. 훈련은 가볍게 스트레칭 정도만 하도록 하고. 타격이야 어쩔 수 없지만, 이왕이면 등판도 한 번 정도는 건너 뛰자. 아, 식단도 제대로 지키는지 양 코치 네가 좀 신경 좀 써주고.”

“그러면 이번 기회에 구단 프런트에서 조르던 것들을······.”

“스읍, 내 말 못 들었어? 휴식 주라고. 괜히 어디 가서 사진 찍고 그러는 것도 다 피곤한 일이야. 그냥 좋은 거 먹이고 시원한 곳에서 푹 쉬게 해. 더위에는 그게 최고니까.”

“하지만 수원이가 말을 들을까요? 지금 안 그래도 각종 신기록들로 이슈인데 그렇게나 결장을 시켜 버리면······.”

코치가 고작 신인이 과연 감독의 지시를 따를 것인지를 걱정하는 모습은 참으로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신인이 KBO의 각종 역대급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고 있는 괴물이라면 또 이상할 것도 없다.

-딱!!!

[쳤습니다!! 김나민의 적시안타!! 5회 말, 투아웃!! 그리핀즈가 1점을 더 따라잡으며 점수는 이제 5:2.]

[좀 아쉬운 공이었네요. 방금 보시면 완전 정중앙으로 들어왔거든요. 물론 실투라고는 해도 구속이 157.1km/h의 강속구였던 만큼 김나민 선수가 아주 잘 받아친 건 맞습니다.]

[조금 지친 걸까요?]

[확실히 오늘 날씨가 퍼지기 딱 좋은 날씨이긴 합니다. 게다가 최수원 선수 개막 이후로 지금까지 거의 쉬지 않고 달려왔거든요. 신인에게는, 아니 베테랑이라도 버거운 스케줄입니다. 실제로 오타니 쇼헤이 선수도  NPB 시절 기록들을 보면 투수로는 거의 풀타임을 뛰더라도 타자로는 70에서 80경기. 200타석 내외만 소화했었거든요, 그에 비하자면 지금 최수원 선수의 일정은 너무 하드합니다.]

[하지만 1위 경쟁이 한창인 마린스 입장에서 선발진의 한 축이자, 가장 든든한 타자를 빼고 경기를 치르기란 참 어려운 일이죠.]

누군가가 해설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좀 너무 빡빡하지. 이제 열아홉 살인데. 몇 경기 정도 푹 쉬게 해줘야 한다고 본다.”

“열아홉인데 뭐? 염슬라는 열아홉에 35경기 204.2이닝을 던졌어. 22경기 선발에 완투만 13번을 했고. 필요하면 불펜으로도 나왔다고. MVP급 선수라면 그 정도는 해야지.”

“미친놈아. 그래서 염슬라 1년 던지고 팔이 완전 아작 난 건 까먹은거냐? 왜? 수원이도 1년 그렇게 굴려서 우승하고 아작내자고? 마린스 전통 좋은 것도 많은데, 그런 엿 같은 전통까지 굳이 가져 갈 필요 있냐?”

“아니, 누가 그 정도로 굴리자고 그랬냐? 지금이면 충분하다는 거지. 그리고 오타니는 NPB 시절, 타석에 많이 안 선게 아니라 그냥 타격 성적은 그닥이라서 많이 못 선거지. 실제로 타격 폭발했던 16년 이후로는 니폰햄도 타석에 졸라 세웠잖아. 어? 게다가 수원이 각종 기록들은 다 어쩔건데?”

“어차피 경기 숫자 부족해서 대부분 비율 스탯 기록이잖아. 좀 쉬어도 규정타석만 채우면 신기록 다 갈아치울 수 있는 건 마찬가지야.”

“홈런은? 수원이 지금 34홈런인 거 알지? 물론 이게 시즌 51홈런 페이스이기는 한데 최근 경기 홈런 늘어나는 숫자 보면 완전 분위기 탔어. 홈런 신기록도 가능한 페이스라고. 그리고 이렇게 분위기를 타야 애들도 압박감 느껴서 고의사구 못 내주는 거야. 괜히 홈런 신기록 고의 사구로 깨트렸다. 뭐 그런 이야기 안 들으려고.”

마운드의 최수원이 크게 호흡했다.

짜증이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였다.

오늘따라 신경이 좀 날카롭다. 아무래도 끈적한 더위 때문에 불쾌지수가 많이 높아진 탓일 것이다.

‘끝나고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자. 그리고 바나나 우유맛 보충제를 한 잔 벌컥벌컥 마시는 거야.’

그의 시선이 조유진의 미트를 향했다.

더위 때문에 머리가 뜨끈해서일까? 무언가 생각하는 것도 귀찮았다. 조유진이 요구하는 공을 그대로 뿌렸다.

높은 코스.

빠른공.

-딱!!

타자의 방망이가 따라 나왔다.

하지만 공은 뻗어나가지 못했다. 바닥을 한 번 크게 찍은 타구가 2루를 보는 사울 로페즈의 글러브에 쏙 들어갔다.

-뻐엉!!

“아웃!!”

포스 아웃.

최수원이 별다른 퍼포먼스 없이 덕아웃으로 내려갔다.

경기는 계속됐다.

***

“수고했다.”

“네?”

피칭을 끝내고 마운드를 내려올 때만 하더라도 아 얼른 경기 끝내고 퇴근해서 씻고 좀 시원한 곳에서 푹 쉬고 싶다.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었다.

근데 또 그만 던지라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마음이 달라진다. 아니, 이제 고작 5이닝을 던졌는데 그만 하라고?

“코치님, 제가 1점 내줘서 그런 겁니까? 물론 1점 내주기는 했지만, 아직 공도 괜찮고 더 던질 수 있습니다.”

“그래, 수원이 너 더 던질 수 있지. 근데 그래도 지금은 좀 쉬어 두는 게 더 좋겠다.”

한 번 더 반발을 할까 했지만 참았다.

아마 마운드였으면 한 차례 더 거부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선수들이 전부 다 있는 덕아웃이었다. 17년 차 리그 레전드 최수원이라면 모를까. 열아홉 애송이 최수원은 여기서 한번 더 반발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지금 이렇게 한 번이라도 반발할 수 있었던 것도, 코치가 이렇게 사정사정하듯 말하는 것도 그나마 내가 지난 몇 달동안 쌓아올린 성적이 있었던 덕분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러면 어디로 들어가나요? 1루? 아니면 우익수?”

“아니, 오늘은 완전히 끝이다. 가서 먼저 샤워하고 와도 좋아.”

“네?”

5:2

석 점 차이.

그래, 우리가 이기고 있다. 하지만 시즌의 지난 경기들을 돌이켜볼 때 6회가 시작하는 시점에서 고작 석 점은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는 점수다. 물론 박재혁과 고설민, 태지완이 합류한 이후 불펜이 조금 안정화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래, 수원아. 오늘 고생했다. 아주 땀범벅인데 가서 먼저 씻고 아이싱도 좀 하고.”

규만 선배가 코치의 말에 한마디를 보탰다.

“그래, 인마. 여기 너 먼저 씻는다고 고깝게 볼 꼰대 하나도 없으니까 얼른 가서 씻어. 아니면 왜? 설마 석 점이나 앞서고 있는데 뭐 불안해서 그러는 거야?”

“아뇨. 제가 불안한 건 정훈 선배님의 병살타와 에러뿐인데요.”

“뭐 인마?”

선배들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데 버틸 수는 없었다.

라커룸으로 돌아가 몇 가지 물건을 챙겨 샤워실로 들어갔다. 적당히 시원한 물로 몸을 씻었다. 이상하게 짜증나던 감정들이 끈적한 흙먼지, 뜨거운 열기와 함께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깨달았다.

아······. 나 지금 좀 지쳤구나.

“내가 계속 말했잖냐. 너 좀 더 격렬하게 쉬어야 한다고. 훈련량도 좀 과해. 이제는 정말 컨디셔닝만 하고 쭉 쉬어줘야 할 타이밍이야.”

“아니, 근데 분명 올스타전 끝나고 뭔가 컨디션이 막 올라오는 느낌이었거든요.”

“그거야 올스타전에서 그렇게 미친 듯이 활약했으니 뽕맛 제대로 빨고 정신이 몸을 속이는 단계였던 거지. 그래도 감독님이 적절한 타이밍에 제동 잘 걸어주셨네.”

코치님이 어깨와 팔꿈치에 아이싱을 감아주시며 내가 지금 얼마나 하드한 스케줄을 소화중인지를 한 번 더 설교하셨다.

“그래도 뭐, 신인이 이 정도면 엄청난 거지. 성적도 성적이지만 컨디션 관리도 진짜······. 어떻게 보면 넌 신인이 아니라 거의 뭐 10년차 베테랑 같다니까.”

“아하하······. 감사합니다.”

솔직히 쪽팔렸다.

KBO에서 8년. 메이저에서 9년.

그것도 최정상급. 아니, 단순한 최정상급을 넘어 역대 가장 위대한 타자를 자부하던 몸이다. 근데 시즌 중에 체력관리가 제대로 안 되다니.

물론 변명 거리는 많았다.

빅리그에서 뛰던 당시에 이런 세세한 부분은 개인적으로 고용한 트레이너가 세심하게 관리해주긴 했다. 난 그냥 트레이너들이 시키는 대로 운동만 하면 됐고. 게다가 투타 겸업은 아예 처음이었으며 이 망할 팀은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답답해서 내가 뛰지 않으면 안 되는 팀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다 변명이다.

아마 내가 조금만 더 짬밥이 됐거나 그랬으면 방금 상황에서 마운드 내려가라는 말에 끝까지 반항했겠지. 그랬더라도 감독님이나 코치님이 결국 한 번 정도는 굽혀줬을 테고.

“자, 다 끝났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얼른 덕아웃으로 나가 봐. 경기는 안 뛰더라도 그래도 네가 덕아웃에 있는 거랑 없는 거랑 분위기가 좀 다르니까. 아, 그리고 경기 끝나고 마사지 제일 먼저 받으러 오고.”

덕아웃으로 가는 길의 아무도 없는 복도.

저 멀리 문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5:2의 점수는 과연 어떻게 변해 있을까?

그래도 역전은 당하지 않았겠지?

아니, 아니다.

이놈의 팀은 그딴 걸 기대하면 보란 듯이 멋지게 역전을 당한다. 물론 기대를 안 한다고 해서 역전을 안 당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기대하지 않았으면 실망감도 없다는 장점 정도는 있다.

복도를 나서 덕아웃으로 가자마자 한순간에 느껴지는 푹푹한 습기.

코끼리 에어컨을 세 개나 틀었고, 시간도 저녁 8시로 넘어가고 있음에도 온도와 습도는 여전히 엉망이었다.

“왔냐?”

“어.”

나를 맞이하는 조유진의 표정이 이상하게 밝았다. 하지만 뭐 이 녀석이야 1할 칠 때도 항상 밝긴 했으니······.

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가장 먼저 전광판으로 향했다.

7회 초.

점수는 8:3.

투아웃에 주자 2, 3루.

그리고 대타 김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내가 조유진에게 설명해보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녀석이 그런 나의 눈빛을 아주 자기 마음대로 해석했다.

“야, 뭘 또 그렇게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냐. 그래, 맞아. 나야. 투아웃 상황에서 쓰리런 쐐기포를 날린 이번 시즌의 올스타 포수.”

“엥? 삼 점 홈런이라고? 네가?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해?”

조유진이 쓰리 런이라고?

뭐지? 내가 지금 저 덕아웃 문을 통과하면서 차원 이동으로 이세계라도 온 건가?

7월의 마지막 날.

우리는 경기에서 8:3으로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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