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고비(4)
최수원에 대한 빅리그의 관심은 이제 너무 공공연한 것이었다.
빅리그는 KBO와는 그 구조 자체가 좀 다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존재하지만 사실 그 근간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스포츠에 미친 나라라는 점. 그리고 누구보다 자본주의에 충실한 나라라는 점이 가장 컸다.
양키스를 기준으로 보자면 5만 석짜리 스타디움에서 가장 저렴한 좌석은 2만원 내외. 비싼 좌석은 수백 만원을 호가한다. 심지어 상대 팀에 따라 그 가격은 유동적이다. 평균적인 티켓의 입장권 가격이 12만원 가량으로 이것은 한국과 미국의 소득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매우 큰 차이다.
결과적으로 빅리그는 구단의 수입 가운데 1/4가량을 입장권 판매를 통해 올리는데, 30개 구단이 올리는 입장 수익을 모두 합치면 근 40억 달러에 달한다. 물론 여기도 빈부 격차는 상당히 크고 따라서 구단에 따라 페이롤이 3억 달러가 넘어가는 팀도 있지만 고작 4천만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팀도 있다. 그렇기에 만약 최수원이라는 선수가 제대로 된 포스팅, 혹은 FA로 빅리그에 도전을 한다고 했더라면 그를 데려올 수 있는 팀은 몇몇 팀에 국한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신분은 ‘국제 유망주’였다. 고작해야 계약금 500만 달러 내외. 향후 3년간 연봉 60만 달러에 보너스 450만 달러 미만의 헐값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한화로 총액 150억 가까운 금액이 헐값이라고 한다면 거부감을 가질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최수원에게 기대되는 성적을 고려하면. 그리고 정말 그가 그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준다면 3년이 아니라 1년에 150억을 사용한다고 해도 그것은 헐값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으리라.
결론적으로 말해 최수원은 고작 연평균 최대 330만 달러 남짓으로 3년. 그리고 이후로도 3년간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최고의 유망주다.
이제 최수원에 대한 이야기는 구단의 관계자들을 넘어 미 전역에 MLB를 즐기는 보통의 팬들 입에서도 심심치 않게 오르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우리 팀도 충분히 가능성은 있지. 선발 한 자리랑 지명타자 슬롯이 필요하다는 건데 우리 팀이라면 출장 기회 충분히 보장할 수 있잖아.”
“맞아, 저기 양키스 놈들은 이제 돌아가면서 지명타자로 뛰게 해줘야 하는 늙은이투성이잖아.”
스몰마켓 팀의 팬들은 자신들 역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물론 빅마켓 팀의 팬들 역시 최수원이라는 선수가 주는 매리트가 탐이 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녀석이 진짜 실력에 자신이 있으면 출장 기회에 목을 맬 이유는 없지. 오히려 우리처럼 우승을 노릴 수 있는 구단을 원하지 않겠어?”
“스완은 팀의 우승을 위한 최고의 조각이 될 거야. 녀석이 정말 페이롤에서 고작 200만 달러 남짓 차지하면서 올스타급 활약을 해줄 수 있다면 무조건 우승이지.”
물론 모두가 그렇게 긍정적인 의견을 내는 것은 아니었다.
“멍청하기는. 정말 가능하다고 보는 거야? 마린스라는 팀의 프런트들이 죄다 장애인이 아닌 판국에야 이딴 조건에 보내줄 리가 없을 것 같은데? 기껏해야 100만 달러. 뭐 보너스 받고 어쩌고 해봤자 150만 달러 남짓? 너라면 그딴 계약을 하겠어? 그냥 여섯 시즌 더 쓰고 보내면 못해도 2천만 달러는 벌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심지어 그 기간 동안 그만한 선수를 헐값에 사용하는 거잖아.”
7월 말.
이미 메이저리그 6월 드래프트가 끝난 지금,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관심이 한국으로 크게 쏠렸다.
***
“데이터 확보는?”
“실패입니다.”
약 두 달 전.
조슈아 파그노만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최수원을 확인했다. 선수를 확실하게 영입할 수 있는 비용도 아니고 고작 그를 설득하는데 필요한 자료의 가격으로 무려 1,000만 달러를 지르는 일을 그만한 수고도 없이 진행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 최수원을 확인한 조슈아는 그에게는 그만한 모험을 걸만한 가치가 있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구단주인 스티브 코헨 역시 기꺼이 자신의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조슈아는 비탄력적인 재화라는 것은 그 긴 의사 과정 속에서 다른 누군가가 먼저 채갈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했어야만 했다.
“아, 그거? 이미 팔았는데?”
“네? 하지만 분명 저희와 거래 하시기로!! 심지어 800만에서 1,000만으로 더 얹어드리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연락만 해주셨어도 더 드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게 그런 고민도 필요 없었던 것이 그쪽에서 되게 쿨하게 1,100만이나 주더라고.”
양키스.
뉴욕을 공유하는 나쁜 이웃.
물론 마이크 프로스태드가 직접 양키스가 하이재킹을 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든 정황이 가리키는 것은 그들이었다.
이후로 조슈아 파그노만은 백방으로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결과는 영 좋지 못했다. 그리고 그사이 안 그래도 괴물 같던 최수원은 더 괴물 같은 활약을 보여주며 전미의 관심을 한 몸에 집중시켜버렸다.
그리하여 결국 조슈아 파그노만에게 남은 방법은 한 가지.
마이크 프로스태드가 자신의 기억에 따라 복원한 데이터가 아닌 오리지날의 데이터를 보유한 곳과 직접 거래를 하는 방법뿐이었다.
“토리에게 연락 넣어줘.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말이야.”
LA 에인절스.
21세기를 대표하는 선수들을 꾸준히 보유했지만 2014년 이후 단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했던 비운의 팀.
메츠의 단장 조슈아 파그노만이 그 비운의 팀과 대화를 시작했다.
***
-딱!!!
임동훈이 최수원의 공을 쳤다.
“아······.”
경기를 지켜보던 그리핀즈의 단장 강지우가 자신도 모르게 아쉬움이 가득 담긴 신음을 내뱉었다.
[유격수 정면!! 낮게 깔린 타구!! 강라온이 잡아서 2루에!! 그리고 다시 1루로!!]
“아웃!!”
[더블 아웃!! 4회 말!! 최수원이 그리핀즈의 공격을 아주 효율적으로 막아냅니다.]
그리핀즈가 빅리그에서 시니어까지 올라갔던 강지우와 찰리김을 스카웃 해서 온 것은 그리핀즈의 시스템 자체를 바꾸겠다는 의지였다. 이미 30년이 넘어가는 한 기업의 문화를 통째로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강지우와 찰리 김은 그 쉽지 않은 일을 차근차근 해내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커리어가 그만큼 단단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들이 그만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쉬워할 필요도 없어. 저건 어쩔 수 없는 놈이야.”
“아니, 그거야 타자일 때 이야기고. 투수는 또 다르잖아.”
“다르기는. 그것도 최수원이 자기 공 그냥 배짱으로 던지면 그만인 거 모르던 시즌 초반 이야기지. KBO에서 160 이상의 공을 제대로 공략 가능한 타자는 스무 명 미만이야. 팀당 두 명도 안 된다고. 우리 팀에서는 기껏해야 채창식이랑 카를로스 정도? 올해는 그냥 자연 재해 만났다고 치고 내년에 얼른 미국으로 치워버리는 게 정답이야.”
“아니, 근데 그거 확실한 정보도 아니고······.”
“확실해.”
그들이 한국에 온 지도 벌써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렇다고 해도 미국에서 13년간 만들어뒀던 인맥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미 MLB쪽 구단들에는 최수원의 KBO 계약에 숨겨진 조항이 있으며 그 조항의 내용이 그의 메이저 진출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조항이라는 이야기까지 알음알음 퍼져 있었다.
“아마 최수원 쪽 에이전시에서 흘린 이야기겠지.”
“아니, 그럴 거면 애초에 그냥 MLB를 직행할 것이지······.”
“결과적으로 봤을 때 최수원 입장에서는 이게 수익 면에서도 최고고 심지어 메이저 30개 구단 가운데 원하는 팀으로 골라 갈 수 있는 꽃놀이 패잖아. KBO에서 MLB 쇼케이스 달달하게 하는 거지. 지금도 봐라. 저기 스카우트들 바글바글한 거.”
찰리 김의 말처럼 지금 눈에 보이는 메이저 스카우트 숫자만 스물이 넘어갔다. 그야말로 돈 받고 하는 쇼케이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다.
“게다가 투수로는 점점 완성도가 올라가는 게 보이잖아. 지우 너도 잘 알잖아. 우리가 유망주 볼 때 어떤 걸 더 선호하는지.”
“그야 당연히 상위 리그 적응이 빠른 선수지······.”
-뻐엉!!!
5회 초.
볼넷.
최수원이 1루로 걸어 나갔다.
이미 해는 서산으로 졌지만, 대구의 더위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이마에 머리카락이 찐득하니 들러붙는다.
“아무튼 지금은 일단 참아 보자고. 지금 좀 두들겨 맞더라도 데이터 잔뜩 쌓아서 딱 한 번만 되갚아주면 되는 거잖아.”
최수원이 2루를 훔쳤다.
***
미지근한 이온음료를 세 모금 들이켰다.
괜히 덥고 짜증이 난다고 시원한 녀석을 들이키면 몸에 좋지 않다.
덥고 끈끈하다.
저기 시원한 코끼리 에어컨 옆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참았다. 에어컨 찬바람이 직접적으로 닿지는 않는 위치에서 빠르게 언더 셔츠를 갈아입었다. 그리고 이 더위에도 불구하고 오른쪽 어깨에는 투수용 점퍼를 덮었다.
‘도루는 괜히 했나?’
더위 탓인지 한바탕 달리고 몸에 오른 열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미지근한 이온음료를 몇 모금 더 입에 머금었다.
오늘 타자로만 출장했으면 나도 저기 에어컨 옆에서 입 벌리고 있는 조유진 녀석이나 머리에 얼음봉지 얹고 앉아있는 이정훈처럼 몸 식는 거 생각 안 하고 차가운 이온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켰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이 정도로 더위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거면 차라리 그렇게라도 스트레스를 날리는 게 몸에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시선이 잠시 전광판으로 향했다.
5:1
어지간하면 투수로 출장하는 경기에서 이닝 소화하는 데 욕심을 내는 편인데 와······. 저기 스카우트가 잔뜩 나를 보고 있고 어쩌고 간에 오늘은 예외다. 그냥 적당히 던지고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아쉽게도 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직 땀도 다 식지 않았는데 다시 마운드 위로 오를 시간이었다.
“수원아 괜찮아? 여기 와서 땀 좀 식히고 가지?”
“됐어. 괜히 몸 차가워지면 리듬 망가진다.”
시간이 7시 40분이 넘어가는데도 더위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마운드 위에서 공을 준비하며 관중석을 잠시 살폈다.
프로야구 천만 시대라고 하더니 그게 진짜인 건지 이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관중석이 꽉 찼다.
타석에 오늘 그리핀즈에서 가장 위협적인 타자 채창식이 올라왔다. 좌투좌타의 일루수. 앞서 1타점짜리 2루타를 쳐서 그런지 표정도 좋았고 핵인싸답게 조유진과 웃으며 뭐라뭐라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퍽 자연스럽다.
초구.
몸쪽 높은 코스 빠른 공.
-뻐엉!!
“스트라잌!!”
158.1km/h.
구속이 많이 떨어졌다.
가볍게 호흡을 고르고 두 번째 공을 준비했다.
바깥쪽 낮은 코스 빠른 공.
살짝 빠져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힘있게 공을 뿌렸다.
-부웅!!!
“스트라잌!!!”
158.7km/h.
덕아웃의 감독과 투수코치가 뭐라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진짜 더위라도 먹은 건가? 공이 영 뻗지 않는다.
좀 짜증이 났다.
세 번째.
존에서 빠지는 공.
-딱!!
파울.
그리고 네 번째
또 존에서 빠지는 공.
-딱!!
또 파울.
볼카운트 0-2.
쪼유가 다섯 번째로 또 존에서 빠지는 공을 요구했다.
살짝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마 미친 더위와 습도 덕분에 불쾌지수가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다섯 번째.
그 짜증을 가득 담아 힘있게 공을 뿌렸다.
채창식의 방망이가 이번에도 공을 따라 움직였다.
됐다.
높은 곳에서 뚝 떨어지는 슬로우 커브.
-부웅!!!
“스트라잌!! 아웃!!!”
선두 타자 삼진.
갈아입은 언더 셔츠가 몸에 끈적하게 들러붙었다.
짜증은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