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올스타전(1)
7월 10일.
알렉산더 맥도웰은 부시 스타디움이 있는 미주리 주의 세인트루이스에 나와 있었다. 올해로 고작 열아홉 살에 불과한 그가 무려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 출장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생일을 지난 지 며칠 되지 않은 그의 나이는 고작 19세 하고도 15일에 불과했는데 이것은 지금까지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어린 나이에 올스타전에 진출한 케이스였다. 그 이전 가장 어린 나이에 진출했던 드와이트 구든의 경우 19세 176일. 브라이스 하퍼도 19세 225일의 나이였다.
“물론 목표는 역대 최고의 타자입니다.”
그렇기에 그 터무니없이 거대한 포부를 비웃는 이는 드물었다. 오히려 알렉산더 맥도웰이라면 응당 그 정도 포부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는 이들이 더 많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올스타전에 출장했던 가장 젊은 선수 10명을 꼽아보면 현역인 브라이스 하퍼와 제이슨 헤이워드. 그리고 불미스러운 일로 명예의 전당에서 여섯 번째 물을 먹은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제외한다면 명전에 오르지 못한 선수는 마약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망친 드와이트 구든이 유일하다.
“라이벌이요? 그야 당연히 가장 위대했던 타자들이죠. 아, 그리고 스완. 그 녀석이라면 저의 좋은 라이벌이 될만한 자질이 있죠. 물론 녀석이 쓸데없는 고집을 버리고 얼른 빅리그에 온다면 이라는 조건이 붙긴 하겠지만요.”
“저도 작년에 마이너에서 뛸 때만 하더라도 프로리그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마 막판에 빅리그 경험이 없었더라면 그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았을 거예요. 올해 제가 이런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시즌 막판 빅리그에서 영혼까지 털린 덕분입니다. 스완 그 녀석. 지금 마이너에서 너무 신을 내고 있어요. 딱 작년의 저와 똑같죠. 스탭업을 위해서는 녀석도 얼른 빅리그에 올 필요가 있어요. 녀석의 재능이라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저와 같은 높이에 설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알렉산더 맥도웰이 평소에 하던 인터뷰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는 평소에도 종종 수원의 이름을 인터뷰나 SNS를 통해 꾸준히 언급해왔으니까.
문제는 그가 올스타전에서 홈런을 쳤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무려 두 개나.
1933년 최초의 올스타전이 열린 이래 94년의 역사에서 멀티 홈런을 친 선수는 오직 다섯 명뿐이다.
게리 카터, 윌리 맥코비, 알 로젠, 아키 본. 그리고 테드 윌리엄스. 그 가운데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했던 선수는 부상으로 10시즌 만에 은퇴했던 알 로젠이 유일했다.
대중은 젊은 천재를 사랑한다. 그리고 언론은 대중의 관심을 항상 갈구한다.
그렇기에 언론은 젊은 천재의 일거수 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고작 열아홉의 나이에 최연소로 올스타에 선정된 젊은 천재가 지금까지 고작 다섯 명밖에 기록하지 못했던 올스타전 멀티홈런을 기록했다. 본래라면 그렇게까지 화제가 되진 않았을 인터뷰가 ESPN 첫 페이지를 장식했고 덕분에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퍼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또한, 말이라는 것은 사람의 입을 타는 순간 조금씩 더 자극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알렉산더 맥도웰의 인터뷰 기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연소 올스타!! 최연소 올스타 MVP!! 알렉산더 맥도웰. ‘나의 라이벌은 테드 윌리엄스. 그리고 최수원.’]
[알렉산더 맥도웰 ‘최수원 하루라도 빨리 MLB로 건너 와야해. 지금 그에게 KBO는 그저 재능 낭비일뿐.’]
[큰 물고기는 큰 물에서 놀아야지만 성장할 수 있는 법. 60경기 출장 263타석 106볼넷. KBO는 최수원이라는 선수를 담기에는 너무 좁다.]
자극적이기 짝이 없는 제목의 기사들이 포탈 스포츠면 메인을 장식했다. 심지어 그중 몇몇은 스포츠 기사를 넘어 아예 포털 메인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7월 11일 오후 2시.
KBO 올스타전을 불과 하루 앞둔 날의 기사들이었다.
***
우리 마린스는 KBO 최고의 인기팀 가운데 하나다.
그 인기가 어느 정도냐면 KBO의 천만 관중은 부산 마린스, 광주 호크스, 대구 그리핀즈, 대전 피닉스 네 팀이 포스트시즌에 나란히 진출하기만 하면 가능할 거라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다.
언론과 프런트에서 워낙 떠들어 대는 터라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라 숫자까지 구체적으로 알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 시즌 우리 사직구장을 찾은 총 관중 수는 무려 83만명이었다. 참고로 작년 같은 시기 관중 수가 고작 36만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인기를 반영하듯 이번 시즌 KBO 올스타전 드림 올스타전에 팬투표 1위를 한 마린스의 선수는 전체 12명 가운데 무려 11명. 그것도 대부분 선수들이 상당히 압도적인 표차이로 1위를 차지했다. 물론 올스타라는 것이 단순히 팬 투표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다. 선수단 투표 역시 30%가 들어간다.
하지만 팬투표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했다는 이야기는 정말 선수단 투표에서 큰 차이로 뒤지지 않는 이상 올스타 출장이 거의 확정적이라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쪼유가 있었다.
이주혁이 혀를 찼다.
“말세네. 말세야.”
“그러게요. 어쩌다 쟤가 올스타전까지······.”
쪼유는 올스타전 팬투표에서 정말 ‘압도적’으로 1등을 차지했다.
그 덕분에 선수단 투표에서 고작 36표로 5개 팀 포수 가운데 4등을 했는데도 정말 조금의 위협도 안전하게 올스타로 선정될 수 있었다.
“어쩌다기는. 너랑 동창이라서 그렇잖아. 수원이 너랑 고등학교 때부터 호흡 맞춘 포수라고 그렇게 입을 털어 대는데 사람들이 안좋아하고 배기겠냐?”
“······.”
아무튼 이번 올스타전에 참가한 우리 마린스 선수는 무려 여덟 명.
덕분에 올스타전인데 뭔가 그냥 시즌 중에 우리 팀 선수들이랑 경기하는 거랑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질 지경이다.
경기 전 인터뷰 요청은 당연히 매우 많았다.
본래 성적으로도 터무니 없이 많을 예정이었는데 저기 물 건너 태평양에서 알렉산더 녀석이 사고를 쳐준 덕분에 한층 더 많아졌다. 제법 귀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알렉산더 맥도웰 녀석에게 원망이 생기지는 않았다.
“이번 올스타전에 변경된 룰에 대해서 최수원 선수에 대한 특혜라는 이야기가 많은데요.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타니 룰에 관해서는 미국이나 일본은 이미 시행하고 있는 규칙입니다. 우리나라가 조금 늦었을 뿐이죠. 오히려 정규 리그에 규칙이 없던 덕분에 이번 시즌 마린스가 손해를 본 부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번 올스타전에 오타니 룰이 적용된 것 때문에 그제까지만 하더라도 쓸데없이 특혜니 뭐니 하는 질문이 워낙 많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알렉산더 녀석이 무슨 자기 라이벌이 테드 윌리엄스라느니 현역 가운데는 나 정도만이 자격이 있다느니 하는 소리를 늘어 놔준 덕분에 오타니 룰에 대한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나의 메이저행에 대한 질문들이었는데 나로서는 이쪽이 조금 더 기꺼운 질문이었다.
“알렉산더 그 녀석 자기도 작년에 거의 마이너에서만 뛴 주제에 언제부터 빅리거였다고 거만 떠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전 나름대로 여기서도 충분히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최수원 선수의 성적을 보면 263타석 106볼넷으로 거의 제대로 된 타격을 못하는 상황 아닌가요? 한참 실전을 경험해야 할 시기에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인 것 같은데요. 이런 상황에서도 정말 성장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 타격이요? 타격이라면 딱히 메이저를 간다고 뭐 성장할 껀덕지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제가 말한 성장은 피칭 이야기 한겁니다. 시즌 초랑 비교하면 실제로 상당히 좋아졌거든요.”
프레스룸에 잠깐 정적이 감돌았다.
기자들도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을 것이다. Z세대니 뭐니 해도 아직 한국 언론 인터뷰는 겸손을 미덕으로 치는 경향이 좀 있는 편이었으니까. 게다가 이런 인터뷰는 리스크도 있는 것이 이런 인터뷰 해놓고 경기 망치면 망신도 그런 개망신이 없기 때문이다.
“······. 그러니까 지금 최수원 선수 말씀은 당장 메이저리그를 가도 충분한 타격이다. 뭐 그런 말씀이신가요?”
“네, 당연하죠. 사실 KBO가 AA급이라고는 합니다만 일부 선수의 경우 MLB급인 거 기자님들도 잘 알고 있잖습니까. 당장 오늘 선발로 출장하는 피닉스의 임광형 선배님도 재작년까지 메이저에서 뛰셨고 실제로 빅리그의 다년 계약도 뿌리치고 한국에 복귀하셨죠. 게다가 브레이브스의 조창혁 선배님은 또 어떻습니까. 당장 내년에 빅리그에 진출을 예약하고 계신데 제가 조창혁 선배님 상대로 전적이 그러니까······. 뭐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아무튼 홈런도 뻥뻥 치고 상당히 좋거든요. 그러니까 메이저라고 해서 특별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경기 직전의 인터뷰가 그렇게 끝났다.
기자들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아주 좋은 떡밥들을 잔뜩 챙겼으니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최수원 선수.”
“어? 이지연 기자님?”
“잠깐 시간 괜찮을까요?”
“네, 뭐 선발이긴 하지만 그래봐야 1이닝이고. 오늘 부담도 없이 던지는 경기니까요. 미인이랑 1:1 데이트인데 사양할 이유가 없죠.”
이미 인터뷰는 끝냈지만, 평소 나에게 호의적인 이지연 기자이기도 했고 본인은 모르지만 이제는 오지 않을 미래에 나와 잠깐 인연이 있던 여자이기도 했다. 잠깐의 대화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별 건 아니고. 조금 걱정이 돼서요······.”
이지연의 용건은 조금 전 내 인터뷰 내용에 대한 걱정이었으며 어떻게 하면 수습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안이었다.
“기자님.”
“네?”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제가 특종을 하나 드릴게요.”
“특종이라구요?”
“네, 제가 이번에 기록을 하나 세울 생각이거든요. 그거면 아마 지금 기자님이 걱정하시는 것도 전부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
사실 이번 올스타전에 나는 지명타자로 선정이 됐다.
예상컨대 선발로 이름을 올렸어도 아마 무조건 1등을 했을 것 같기는 한데, 애초에 이게 팀에서 후보자 명단을 올리고 사람들이 투표를 하는 형태라서 선발이랑 지명타자 두 자리 모두 후보로 이름을 올릴 수가 없었다.
다만 무슨 일인지 감독 추천 선수에서 선발 투수의 한 자리에 내 이름이 올라왔다.
뭐, 그렇다고 해도 보통 경기 시작은 투표로 선정된 선발이 맡는 것이 관례였으니 원래대로라면 중간에 1이닝 정도 담당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여론과 프로야구 흥행이라는 명분은 그런 전통보다 훨씬 강력했다. 게다가 올스타 투표에서 1위를 한 투수가 우리 팀의 딜튼 도일리였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뭐, 어차피 MLB와 다르게 팬서비스 차원이 훨씬 강한 경기라면서. 역사에 길이 남을 KBO 최초의 투타 겸업인데 이 정도 양보는 해줘야지.”
그는 매우 흔쾌히 나에게 선발 자리를 양보했다. 그 결과 나는 드림 올스타팀의 선발로 마운드에 설 수 있었다.
나눔 올스타팀의 1번 타자는 피닉스의 채광민.
이번 시즌 은퇴하는 우리 규만 선배와 동갑인데 그런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쌩쌩하게 활약하고 있는 갭 타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