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인생의 낭비(2)
“크, 드디어 우리 강호가 홈런왕 가시권에 들어왔네.”
“이제 2개 남은 건가?”
“어, 근데 너 좀 시큰둥하다?”
“아냐, 나도 좋지. 근데 솔직히 홈런왕이 지금 뭐 대수인가 싶어서······.”
“대수인가 싶다니. 당연히 큰일이지. 이게 큰일이 아니면 뭐가 큰일이냐.”
“아니, 지금 결국 최수원이 12개에서 열흘 넘게 멈춰 있어서 따라잡고 있는 건데 이게 상대팀에서 그냥 최수원 볼넷으로 내보내면 그만이라는 마인드로 볼넷만 존나 줘서 나온 결과물이잖아.”
“그야 그런데. 솔직히 그것도 자기 복이지. 솔직히 최수원이 우리 팀이었으면 저만큼 볼넷도 안 받았을걸? 저기가 마린스니까 저렇게 꾸역꾸역 볼넷으로 내보내는 거지. 우리 강호처럼 뒤에 박주원 같은 애 있었어봐.”
“노형욱······.”
“에이. 형욱이랑 주원이는 끕이 다르지 그래도.”
“노형욱 지금 홈런 여섯 개야······. 주원이 일곱 개고. 심지어 장타율 빼곤 노형욱이 다 좋더라.”
“······.”
“너 솔직히 최수원 성적 안 봤지?”
“왜? 12홈런이잖아.”
“아니, 그거 말고. 세부 성적. 너도 그거 한 번 보면 홈런왕이고 뭐고 지금 그런 거 신경쓰고 싶지 않아진다?”
“뭔데?”
스마트폰을 펼쳤다.
······.
그러니까 이것이 과연 사람의 성적인가?
물론 야구에서는 한 달 단위로 끊어보면 터무니없는 성적을 기록하는 선수도 종종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야, 잠깐만······. 그러니까 지난 경기로 딱 100타석인데 57타수 30안타 12홈런. 심지어 2루타가 여섯 개고 3루타가 하나?”
“어, 거기에 볼넷 38개에 도루 2개, 희플 4개랑 몸에 맞는 공 1개 추가.”
“OPS가 1.298??”
“아니, 장타율이 1.298.”
그래, 얼핏보면 OPS 1.298의 단순한 MVP급 리그 파괴자 성적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는 기록이었지만 놀랍게도 저 1.298은 OPS가 아닌 장타율이었다.
0.526/0.690/1.298
그리하여 OPS는 무려 1.988
“야, 얘 뭐냐? 요즘 분명 부진 중이라고 그러지 않았어?”
“어, 부진 중이기는 했지. 한 경기에 볼넷으로 출루 두 번 하고 외야 플라이 두 번 때리는 경기만 두 경기 연속이었으니까. 아 하나는 희플이었나?”
“볼넷으로 출루 두 번에 외야 플라이 2개면 그래도 출루율은 0.5잖아······.”
“어, 근데 얜 그렇게 나오면 타율이랑 장타율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출루율도 떨어짐.”
2출루 하면 타출장이 다 떨어진다고? 본인이 말하고도 어이가 없어서일까?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이야기를 듣던 이도 마찬가지로 어처구니가 없어 그냥 웃음만 나왔다.
“얘 신인이니까 앞으로 6년 남은 건가?”
“에이, 설마. 이런 미친놈을 어떻게 6년을 냅두냐. 이번에 포스팅 시스템 개편 됐으니까 메이저에서 알아서 데려갈 거야. 국제 유망주가 만 23세 미만 기준이니까 앞으로 4년만 더 보면······.”
말문이 턱 하고 막혀왔다.
그러니까 지금 상대팀이 상대를 해주지 않는다고 제 마음대로 방망이 휘둘러서 외야 플라이 아웃을 당하는데 OPS가 2.0에 육박하는 타자를. 심지어 투타 겸업인데 투수로도 토종 에이스 소리 들을 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미친놈을 올해 제외하고 4년을 더 봐야 한다고?
“야, 솔직히 이런 애는 대한민국에서 대승적 차원에서 미국 보내야 하는 거 아니냐? 우리도 오타니 같은 애 하나 나와야지. 그래, 맞다. 오타니!! 오타니도 아직 스물셋 안 넘었는데 국제 유망주 자격으로 미국 건너 갔었잖아.”
“글쎄다······. 35년이나 우승 못한 팀에서 과연 저런 선수를 대승적이고 뭐고 보내줄까?”
“그러면 마린스가 올해 통합 우승······은 무리겠고 그냥 한국 시리즈 우승이라도······. 아······. 썅.”
사실 이와 같은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프로야구의 팬이라면 지금 최수원이 만들어내는 터무니 없는 성적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그야말로 2005년.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약마의 KBO 버전이다. 심지어 투수까지 동시에 하고 있으니 더 강화된 버전이다.
그러니까 어딘가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야, 근데 솔직히 최수원 좀 말이 안 되지 않냐?”
“뭐가?”
“아니, 이제 열아홉 살인데 저 성적이 말이 됨? 게다가 투타 겸업? 솔직히 주말에 두 경기씩 뛰던 고등학생이 갑자기 주 6일 경기 뛰는 거 적응하는 것도 진짜 대단한 건데 쟨 그걸 넘어서 투타겸업을 하고 있잖아. 체력적으로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근데 그 말이 안되는 걸 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세상에 말이 안 되는 게 현실로 일어나는 거면 물론 기적일 수도 있긴 한데······. 높은 확률로 딴 거더란 말이지. 그거 알지? 야구에서 약물은 기량 향상도 기량 향상인데 가장 중요한 게 결국 회복력 높여주는 게 사기라는 거.”
“에이, 이제 고등학교 졸업했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아냐. 이제 막 고등학교 졸업했다고 방심할 수도 없어. 실제로 잘 찾아보면 고등학생 때 빨아서 정지 먹은 사건도 있을걸?”
그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최대한 상식적으로 생각하려다 보면 나오게 되는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전반기 약물에 대한 KBO의 불시검사가 지나갔다.
[모구단 A선수 소변 검사에서 약물 양성 반응!!]
─화성갈끄니까: 최수원 드디어 걸렸쥬?
─최강동수원: 뭔 개소리냐? 왜 여기서 갑자기 수원이가 나옴?
─자강두병: 솔직히 최수원 좀 의심이 가긴 했음. 아니, OPS 2.0이 말이 됨?
─행복피닉스: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안 나왔는데 괜히 어린 선수 약쟁이 만들지 말자.
─사직야가다: 니들 이거 다 스샷찍어뒀다. 싹 신고 간다.
─코인은다시온다: 최수원 나락 가즈아!!!
─93층사람있어요: 내가 약물 전문가인데 최수원은 약일 수가 없다. 약 빨면 몸 저렇게 비리비리 할 수가 없음.
─자강두병: 니가 뭔데 약물 전문가?
─93층사람있어요: 나 피트니스쪽 일함. 7년 정도 꽂았는데 지금은 신장에 이상 생겨서 현역 은퇴하고 트레이너만 하는 중.
─자강두병: 안 섬?
─93층사람있어요: 약 먹으면 섬.
그리고 어디선가 약물 선수에 대한 이야기가 스물스물 흘러 나왔다.
“야이, 병신아. 스케줄 다 짜주는데 그걸 씨발······. 아······.”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이고 나발이고. 뭔데? 왜 걸린 건데?”
“그게 날짜를 헷갈려서······.”
“아. 씨발. 진짜······. 병신이 병신 인증도 가지가지로 하고 있네.”
“선배님. 그래도 그 워낙에 미량검출이라서 한약이랑 연고 잘 못 쓴 거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니, 네가 검사관이세요? 그러다가 혈액 들어가면 얄짤 없다고. 어?”
“무조건 제 선에서 끝내겠습니다.”
“당연한 이야기를 입 아프게 하지 말고. 씨발놈아. 제발 잘하자. 어?”
***
수원으로 가는 길.
중간에 천안삼거리 휴게소에 들렀는데, 규만 선배가 역시 호두과자는 천안이라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호두과자를 모두에게 쐈다. 그냥 프랜차이즈 호두과자랑 비교해서 오히려 더 맛이 없었다. 대체 왜 호두과자는 천안이라고 하는건지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규만 선배 어릴 적에는 이게 맛있는 음식이라서 그래. 네가 IMF라고 알란가 모르겠다.”
“IMF 당연히 알죠. 중학교 때 근현대사 시간에 배웠어요.”
“와, 너희 근현대사 시간에 IMF도 배우냐? 진짜 세대 차 소름 돋네.”
이정훈이 자기 때는 근현대사 교과서 최신이 금융실명제였다느니 하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동안 반대편 좌석에 앉아 있던 서경준이 이쪽으로 몸을 쑥 내밀었다.
“이정훈, 누가 들으면 넌 IMF 경험한 줄 알겠다? 98년생 주제에. 그리고 호두과자는 천안 맞아. 이거 천안이 원조니까.”
“아, 그래요? 그러면 원조라고 맛을 개량 안 해서 이런 건가?”
“아니, 지금 시간이 경기 끝나고 새벽이잖냐. 미리 만들어 놨던 거 파는 거라 그런 거지.”
항상 그렇듯 별 쓰잘데기없는 이야기는 쭉쭉 뻗어나가서 역시 요즘은 호두과자보다 가평 잣과자가 더 맛있다느니 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어?”
그때였다.
버스의 저 앞, 감독님 근처. 그러니까 버스에서도 상당히 좋지 않은 자리에 앉아있던 쪼유가 갑자기 나를 향해 손짓했다.
‘뭔데?’
‘스마트폰 봐봐. 스마트폰.’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 A선수의 정체는 최근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보이는 신인급 선수??]
얼라료.
약물 양성 반응?분명 내가 기억하기로 본래 역사에서 전반기 약물 검사는 걸리는 사람 없이 넘어갔었고 하반기 때 카를로스 에드윈이 양성 반응이 나와서 바로 지명할당 되면서 그리핀즈 성적이 나락으로 갔었다.
그런데 신인급 선수가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이 떴다고? 아, 물론 카를로스도 KBO를 기준으로는 신인이긴 한데, 보통 외국인 선수의 경우 이런 선수보호 차원의 이니셜이고 뭐고 얄짤 없이 본명 내보내는 게 이 바닥 국룰이다.
물론 이것도 내일 오전이면 그 A가 누구인지 실명이 나오긴 하겠지만 적어도 반나절 정도 구단 차원에서 성명서 낼 기회는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용병이 아니라 국내 선수라는 말인데······. 누구지?
근데 댓글을 보니까 진짜 장난이 아니다.
난 대체 누가 약물을 했는지 전혀 감이 안오는데 댓글 쓰는 애들은 대부분 감을 잡은 것 같다.
최수원이라고 마린스에서 뛰고 있는 투타 겸업에 성적이 미쳐 날뛰는 센세이셔널한 신인이 유력하지 않겠느냐. 역시 약이 아니면 이런 성적은 나올 수가 없다. 뭐 그런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억울한 마음은커녕 뭐랄까?
내 성적이 약물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되긴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공받이: 야,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지금 반응 장난 아닌데? 뭔가 대응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나: 대응은 무슨 대응을 하냐. 기사 읽어 보니까 소변검사 결과로 나왔다는데 난 애초에 혈액검사잖아. 그리고 내일 아침이면 어차피 이 A가 누군지도 다 나올건데 뭐.
─공받이: 아, 하긴. 그러고 보니까 너 오줌 안 나와서 혈액 그냥 뽑았다고 그랬지?
저 멀리 앉아있던 쪼유와 메신저로 잠깐 대화를 나눴다.
물론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혈액검사를 했건 뭘 했건 일단 의혹을 제기한 이상 내가 약물을 했다고 우길 놈들은 죽는 순간까지 그렇게 우길 거다. 아마 소변이 아니라 혈액검사를 한 것가지고도 뭐라고 할 수도 있다. 걔들한테 소변검사보다 혈액검사가 더 빡빡한 검사라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 애들은 진실을 알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약물을 했다고 정해놓고 각종 상황을 거기에 꿰맞추는 애들이니까.
그러니까 그냥 신경을 껐다.
평생 봉사만 하다 가신 테레사 수녀님 같은 분들도 안티가 있었다. 원래 유명해지는 건 저런 놈들이 생겨 나는 걸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천안삼거리 휴게소에서 또 약 한 시간.
마침내 수원 왕갈비의 고장에 도착했다.
“도시 이름이 아주 바람직하군. 왠지 퍼펙트······. 퉤퉤퉤. 하여간 뭔가 대단한 걸 해낼 것 같은 기분이야.”
나의 등판일은 사흘 후인 3차전.
일단은 28시간 뒤에 있을 타자 경기에 집중할 시간이었다.
***
“야, 최수원!!!”
“백강호 선배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너!! 왜 메시지 확인 안 하냐?”
“메시지요? 잠깐만요. 뭐 온 거 없는데요.”
“아니!! 문자 메시지 말고. 잉스타!!”
“아, 잉스타요? 그거 원래 그냥 사진 올려두는 용도라서 메시지는 확인을 안 하는데······. 그리고 얼마 전에 어플을 아예 지웠어요.”
“어?”
“근데 무슨 일이세요? 혹시 뭐 중요한 메시지라도 그걸로 보내신 거에요?”
“어, 그게 그러니까. 아니. 그냥 요즘 홈런 좀 뜸하던데 힘 내라고. 파이팅!!”
“······?”
“아니, 아니. 그러니까 오늘 파이팅 하라는 게 아니라. 다음 시리즈부터 파이팅하라고. 나 그러면 간다.”
“아······. 네.”
수원의 종합운동장에 있는 돌핀즈 파크.
백강호가 나타났던 속도보다 2배쯤 빠르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