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인생의 낭비(1)
“악!!!!”
작은 대기실.
늘씬한 몸매의 여성이 비명을 내질렀다.
“뭐야? 무슨 일이야?”
“몰라, 그냥 뭐 또 어떤 미친놈이 DM으로 자기 성기 사진이라도 보냈나 보지.”
“하여간 또라이들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줄어들지를 않아요. 아마 저 성기 사진도 자기 것도 아닐걸? 정작 자기 껀 좁쌀만 해서 남들 보여주지도 못할 놈들이 꼭 어디서 퍼온 사진으로 저런다니까.”
“역시, 언니 페이스북 시절부터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바이브가······.”
“어머머, 얘 좀 봐? 페이스북이라니. 난 SNS는 틱톡이 처음이었어.”
“아냐, 저 언니, 예전에 초등학교 때 싸이월드라는 거 해봤다고 그랬어.”
어느새 처음 비명을 내질렀던 여성은 완벽하게 소외된 상황.
그녀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최수원!!!”
“어? 수원이면 우리 귀염둥이? 걔가 왜? 혹시 뭐 열애설이라도 난 거야?”
“아뇨, 수원이가 나한테 댓글 달아줬어요.”
“진짜? 수원이가 너한테? 왜?”
“얼마 전에 정훈 오빠랑 인사하는데 우연히 만나서 같이 사진 찍었거든요. 근데 그 사진에 댓글 남겼어요.”
프로 야구의 꽃이라 불리는 치어리더.
사람들은 치어리더와 선수의 만남이 종종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도 않다. 치어리더들 사이에서는 특히 혈기 왕성한 젊은 선수들 만나는 것을 좀 조심하는 편이었는데 미래도 불안정하고 괜히 구설수에 오르면 본인만 피곤해지는 것을 오랜 선배들의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반론적인 이야기였으니 예외는 존재했다. 특히 현재 부산 마린스 치어리더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역시 백하민과 최수원이었는데 스타성부터 외모까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그들이 인기가 없기는 사실 힘든 일이었다.
물론 그러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번호 교환은커녕 SNS 맞팔을 하는 데 성공한 사람조차 없었다. 덕분에 일각에서는 최수원과 백하민이 남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수군거리는 사람까지 있었다.
“DM이라도 보내볼까요?”
***
“푸하하하하, 야 수원아 이것 좀 봐봐.”
“뭔데요?”
“아니, 며칠 전에 같이 사진 찍었던 혜미 기억 나?”
“그 좀 볼 통통하던 치어리더 누나요?”
“어, 걔가 지금 그때 사진 올렸는데 이거 봐봐. 진짜 웃겨.”
이정훈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그 혜미라는 치어리더가 올린 사진이 있었는데 뭐랄까? 참 가관이었다. 아니, 대체 무슨 필터를 얼마나 쓴 건지 이건 거의 사람의 형상이 아니다. 얘는 이게 진짜 예쁘다고 생각하고 올린 건가?
“야, 댓글을 왜 내 아이디로 달려고 그러냐. 네 걸로 달아. 네 걸로. 어차피 너도 태그돼서 찾아갈 수 있잖아.”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누군가의 명언은 사실 이 시대에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SNS는 매우 효율적인 홍보 수단이고 유명인이 이걸 안 하는 건 너무 멍처한 짓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걸 내가 직접 하는 건 더 멍청한 짓이다. 나는 야구 선수니까 야구를 하고, SNS는 SNS의 전문가가 담당하는 것이 순리에 맞다.
물론 아직은 SNS를 담당하는 인원을 뽑을 만큼 내 유명세가 대단하지 않았기에 그냥 유령계정에 가깝게. 소통이라기보다는 그냥 내 경기 사진이나 음식 사진 정도 올려놓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긴 했다.
오래간만에 접속한 SNS에는 DM이 가득했다.
별의별 메시지가 다 오기 때문에 굳이 메시지를 확인하지는 않았다.
적당히 그 기묘한 사진에 댓글을 하나 달아주고 나니까 문득 이것 말고 또 내가 나온 사진들이 뭐가 있는지가 좀 궁금해졌다.
“와······. 13만개?”
내가 프로로 뛰기 시작한 게 이제 고작 한 달이 넘었다. 그런데 그사이 내 이름이 태그된 게시물이 무려 13만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사진들에게서 팬들의 애정이 느껴졌다. 게다가 나 제법 멋지다. 자존감이 확 차오른다.
근데 점점 사진들을 보다 보니 뭐랄까? 좀 묘했다.
분명 잘 나온 사진들인 건 맞는데 뭐랄까? 이상한 필터도 하나 씌우고 거기다가······.
“뭔가 하민이 형이랑 덕아웃에서 투샷이 좀 많네요. 형이랑은 대기 타석에서 투샷이 좀 많은 것 같고요······.”
“아······, 그거? 댓글도 보면 더 기가 막힐걸?”
이정훈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묘한 미소가 상당히 기분 나빴다. 그리고 이 이상은 내가 이해하고 싶지 않은 심연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역시 SNS는 그냥 전문가에게 맡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뭐야? 왜 삭제를 하고 있어?”
“아뇨, 역시 SNS는 끊고 야구에 전념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딱!!!
최근 몇 년.
KBO리그는 극심한 투고타저였다. 투고타저가 얼마나 심각했느냐면 리그 홈런왕 가운데 4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한 이는 단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리그 자체가 타고투저가 됐는지를 묻는다면 아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최수원이라는 어지간한 팀 홈런만큼 홈런을 때려내는 괴물을 필두로 시즌 40개를 넘어 50홈런도 노려 볼만한 페이스로 달리는 선수가 셋이나 등장했다.
[백강호!! 쳤습니다!! 강한 타구!! 넘어 가느냐!! 넘어 가느냐!! 넘어!!! 갔습니다!!]
[시즌 아홉 번째 홈런!! 6회 말, 백강호가 최으뜸의 몸쪽 공을 그대로 넘겨 버렸습니다. 쓰리런 역전 홈런포!! 돌핀스가 피닉스를 2점 차로 앞서 나갑니다.]
[백강호 선수 최근 홈런 페이스가 상당히 매섭습니다. 지지난 경기 솔로포에 이어 오늘 쓰리런까지. 이걸로 그리핀즈의 카를로스 에드윈 선수를 따돌리고 리그 홈런 단독 2위로 치고 나갔습니다.]
[이제 이걸로 현재 리그 홈런 1위인 최수원 선수와는 3개 차이죠?]
[네, 맞습니다. 최수원 선수가 12호 홈런을 기록한 게 벌써 열흘 전인데 그 이후로 좀 잠잠한 동안 백강호 선수는 홈런을 세 개나 더 추가를 했습니다.]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아온 백강호가 자신의 손을 번쩍 들었다.
야구 치고는 제법 자극적이 세러머니. 하지만 그만한 커리어의 선수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장을 메운 돌핀스의 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리 강호 올해는 진짜 일 내겠는데? 시즌 48홈런 페이스야.”
“그러게. 미국에서도 2년 60억 부르던 애를 아무리 한국이 프리미엄이라고 해도 FA로 4년 110억씩 줄 때는 좀 불안했는데 백강호는 백강호네. 이러다가 진짜 홈런왕도 먹겠는데?”
“그러면 좋겠다. 최수원이 지금 12홈런인가?”
“어, 근데 솔직히 걘 경쟁자도 아니지. 벌써 열흘이나 홈런 없잖아. 신인이 잠깐 반짝 한 거지. 그보다 카를로스 에드윈이 좀 불안하더라.”
“글쎄다. 최수원 홈런 추가 못하는 건 그냥 애들이 승부를 안해줘서 그런 거 아니야? OPS만 따지면 미쳤던데? 걔 지금 출루율 5할이 넘잖아.”
“그건 그런데······. 아무튼 투수 하느라 타석도 자주 못 들어오고. 홈런왕은 우리 강호꺼임.”
“그래, 나도 제발 그러면 좋겠다.”
이번 시즌.
백강호가 내심 라이벌로 생각하던 정혜성은 미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야구라는 것이 참 재밌게도 그보다 더한 괴물이 나타났다.
최수원.
녀석이 기록한 12홈런까지 이제 3개.
백강호가 이를 악물었다.
***
기억을 살짝 되짚어봤다.
사실 워낙에 오래전 일이라 좀 가물가물하다. 아마 내년에 있었던 일이라면 진짜 깜깜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프로 1년차 때의 일이라 그런지 그래도 좀 기억이 났다.
당시 백강호는 홈런 27개 치고 타율은 2할 5푼 정도?
아무튼 거의 커리어 로우급 성적 기록하면서 110억짜리 먹튀라고 욕을 좀 먹었었다. 커리어 말년의 박주원에게 홈런왕도 뺏겼었고.
그가 다시 부활 했던 건 3년 차. 그러니까 나랑 정병철이 터져서 리그 최고 타자를 놓고 경쟁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지금.
이 양반 페이스가 거의 커리어 하이를 갱신할 기세다.
뭐, 경쟁자가 있어야 불타오르는 경우는 많긴 하다.
사실 예전에 소사랑 맥과이어도 누가 누가 약을 더 잘 빠는가를 놓고 승부할 때 경쟁자가 없었으면 약을 좀 덜 빨았을지도 모르니까.
아, 물론 그렇다고 백강호가 약을 빨았다는 말은 아니다.
저 양반 멘탈리티가 좀 썩어서 그렇지 재능 하나는 진퉁이다. 약은 대신 저 양반이랑 경쟁하고 있는 카를로스가 풀로 빨았다.
“최수원 선수.”
“아, 잠시만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오실 꺼면 한 5분만 미리 말씀해주시지. 조금 전에 싸서 안 나오는 걸 어떻게 합니까.”
그리고 검사는 내가 받는다.
솔직히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작년까지 리그 홈런왕이 36개 때리던 리그에서 갑자기 삼주만에 홈런을 12개씩 때리면 나라도 의심을 하겠다. 실제로 내가 3년 차에 터져 가지고 거의 50개씩 홈런 때릴 때도 이즈음에 도핑 테스트 한 번씩 하고 넘어갔었다.
“아, 이거 도저히 안 나오는데요. 검사관님 그냥 피 뽑죠.”
“혈액이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컨디션 좀 떨어지기는 하는데 나오지도 않는 오줌 붙잡고 있느니 그냥 피 뽑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어차피 피칭은 사흘 전에 끝냈으니까 당분간 타석에 멀뚱하게 서서 날아오는 공 구경이나 할 신세일 테고요.”
사실 약물검사는 소변검사보다 혈액검사가 더 정확하긴 하다.
소변검사는 적당히 테스트 시점 예상해서 반감기 계산해서 약물 디자인 해주는 디자이너들이 워낙에 많았다. 다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피 뽑을 수도 없는 게 실제로 피 뽑으면 컨디션에 좀 영향이 간다. 그게 심리적인 문제인지 진짜 피 뽑아서 그런 건지 의견은 분분했지만 선수 가운데는 경기하는 날 아침 메뉴까지 정해놓는 놈들도 있는 판국이다.
아침 메뉴가 계란 반숙이 아니라 완숙이 돼서 안타 못 쳤다고 화내는 판국에 피 뽑는 건 오죽할까.
뭐, 안 그래도 요즘 슬슬 커뮤니티의 분탕들 사이에서는 약 이야기가 좀 나오고 있긴 했다. 고작 열아홉 살 선수가 이런 스케줄로 시즌을 치르면서 이런 성적을 내는 게 말이 되느냐. 약물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뭐 그런 주장인데. 상상력의 빈곤함을 탓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메이저 MVP급 타자가 17년을 회귀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회귀해서 하는 짓이 주식이 아니라 또 야구라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하긴 하다.
아무튼, 괜히 그런 뒷이야기가 나오게 내버려 두느니 이왕 검사를 할 때 확실하게 청정선수라는 것을 밝히고 넘어가는 것도 괜찮을 거다. 조만간 리그에 약물에 관련된 파동도 한 번 몰아닥칠 터이기도 했고 말이다.
혈액검사의 절차는 제법 복잡했다.
단순히 내가 결백함을 넘어서서 내가 뽑은 피가 누군가의 의도로 오염될 확률도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5ml씩 두 개.
일반적으로 헌혈이 400ml정도씩 하니까 진짜 병아리 눈꼽 만큼 피를 뽑아냈다.
다음 경기는 수원.
비록 지난 경기 이후로 한 번도 연락을 주고 받은 적은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돌핀즈의 백강호가 나를 기다렸다.
100마일의 강속구를 던지는 한국 최고의 투수 최수원을.
***
5일 전
─백강호: 야, 최수원. 이제 5개 남았다.
3일 전
─백강호: 야, 최수원. 이제 4개 남았다.
하루 전
─백강호: 야, 최수원. 이제 3개 남았다.
─백강호: 대답 안 하냐?
─백강호: 너 설마 나 차단했냐?
─백강호: 혹시 이거 최수원씨 아이디 아닙니까? 그냥 팬 계정인가요?
─백강호: 뭐야, 너 치어리더한테는 댓글 달면서 선배 DM은 씹어? 너 뒤졌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