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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157화 (157/305)

157화. 이제 벚꽃은 잊어라(4)

전상익 단장이 자신의 의자에 몸을 푹 파묻은 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현재 호크스도 브레이브스도 원하는 것은 모두 이주혁이었다.

“이주혁······.”

그는 지난 단장의 작품으로 6년 전 2차 전체 1라운드였다. 2차 1번은 분명 10개 구단이 1차로 한 명씩 선수를 다 선발한 이후의 최우선 자원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체에서 11번째로 좋은 선수라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아마 지금과 같은 전면 드래프트 구도였다면 이주혁은 전체 1, 2번. 못해도 5번 밖으로는 절대 안 나갈 유망주였으니까.

하지만 이주혁도 이제 어느새 24세

당장 브레이브스가 이주혁과 함께 블록딜을 하자고 요구한 한명훈의 경우 5라운드였지만 현재 가치로 따지면 이주혁보다 오히려 더 높다. 지금 마린스니까 롱릴리프로 뛰고 있는 거지 사실 어느 팀을 가건 선발 한 자리를 담당할만하다.

그러나 호크스와 브레이브스가 모두 콕 찝어 이주혁을 요구해서일까? 이상하게 이주혁이 더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최근 이주혁이 보여주는 모습은 드디어 조금씩 적응을 해나가는 느낌이다.

실제로 1군에서 갈지자 수비로 유명한 이주혁이지만 훈련이나 2군 경기에서는 타구 판단에 심각한 문제를 보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 말은 그러한 실책들이 긴장 등의 심리적 문제일 확률이 높고 꾸준한 1군 경험을 통해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그게 해결되는 동안의 에러들은 값비싼 세금이 되는 셈이고, 만약 그러고도 해결이 안 된다면 심각한 손실로 돌아오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시기다.

선수마다 터지는 시기는 다르다. 언젠가 100만큼 터질 선수라고 해도 다른 선수단 모두가 달릴 때 혼자 20이면 곤란하다. 지금 마린스의 경우는 괴물이 있다. 문제는 이 괴물이 연한이 명확하게 정해진 괴물이라는 점이다.

올해와 내년.

과연 이주혁은 포텐셜을 터트릴 수 있는 선수일까?

그의 시선이 경기장으로 향했다.

***

이주혁은 오늘도 달렸다.

대체 무슨 타구가 이렇게 많이 날아오는 건지.

맞는 순간 오른쪽이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달리다가 보니 뭔가 잘못 보고 들은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살짝 고개를 돌려 타구를 찾았다.

해보면 안다.

자그마한 공이 높게 떠서 날아오는데 떨어질 거 같은 곳으로 등 돌린 채 뛰다가 고개 돌려서 확인할 때, 그 공을 바로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주 잠깐의 시간.

스읍······. 타구가 왠지 조금 왼쪽인 느낌이다. 살짝 방향을 틀어 왼쪽으로 움직였다. 그래, 이제야 공이 좀 똑바로 오는 느낌이다.

근데 공이 좀 짧다?

서둘러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거의 몸을 날리다시피 다이빙 캐치!!

[이주혁!! 잡아냈습니다. 3루 주자 달립니다!!]

[5회 1사 주자 3루에서 결국 그리핀즈가 1점을 짜내는 데 성공합니다.]

“저 새끼 또 호수프레하네.”

“그러니까. 아니, 무슨 그냥 적당히 뛰면 될 껄 존나 뛰어갔다가 되돌와서 공을 받냐.”

“워워, 너무 그러지 마라. 그래도 돌아와서 받은 게 어디냐. 옛날이었으면 그냥 거기서 기다렸을걸? 이주혁 치고는 많이 발전한거야.”

마운드의 최수원이 괜찮다며 손을 흔들었다.

아직 점수는 1:3.

타석에 그리핀즈의 4번 타자 카를로스 에드윈이 올라왔다.

***

와······.

이건 뭐라고 해야할까?

솔직히 채창식이 진짜 잘 쳤다. 타구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리그 평균 정도 되는 외야수라면 진짜 간신히 잡을 수 있는 타구였다. 우리 중견수는 이주혁이니까 당연히 놓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이주혁은 내 믿음에 훌륭하게 부응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보통 외야수라면 진짜 최선을 다해 달려야 간신히 잡을만한 타구를 한참 벗어나는 곳까지 달려가더니 방향을 180도로 틀어서 다시 달려와 잡아낸다.

와, 무슨 진기명기도 아니고. 속도도 속도인데 저런 급격한 턴에 몸이 버텨낸다는 것도 놀랍다. 진짜 아무리 봐도 쟨 육상을 하던지, 하다못해 죽어라 뛰어 다니는 축구를 해야 했다. 지금 여기서 야구나 하고 있을 인재가 아니다.

타석에 또 카를로스가 올라왔다.

오늘 벌써 세 번째 타석이다.

첫 번째 타석에서는 외야 뜬공 아웃.

두 번째 타석에서는 뚝 떨어지는 커브에 헛스윙 삼진. 중간에 진짜 폴대랑 한 10cm밖에 차이 안 나게 스쳐 지나가는 파울 홈런이 있어서 간담이 서늘했었다. 참고로 당시 녀석이 쳤던 공은 존에서 완전히 빠지는 속구였다.

아무튼 투 아웃에 주자 없는 상황.

존에서 완전히 빠지는 공에 방망이를 붕붕 휘두르는 괴물을 상대로 좋은 공을 줄 이유는 없었다.

초구.

존에서 완전히 빠지는 속구.

-뻐엉!!

‘어?’

근데 두 번째 타석까지 무지성으로 방망이를 돌리던 고장 난 선풍기가 회전을 멈췄다? 뭐지? 덕아웃에서 무슨 이야기라도 듣고 나온 건가? 아니면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전략이라도 세워 온 건가?

볼 하나 얻어낸 카를로스가 또 씨익 웃었다.

아니, 쟨 왜 자꾸 웃는 걸까? 체구가 딜튼을 닮아서 그런가? 뭔가 처음에는 위협적이던 웃음도 이제 슬슬 정겹게 느껴진다.

두 번째.

쪼유가 조금의 타협도 없이 빠지는 공을 요구했다.

조금 내적 갈등이 생겨났다.

앞서서는 저런 무식한 놈을 상대로 계속 빠지는 공만 던지라는 녀석의 태도가 나쁘지 않았다. 근데 3타석 연속 계속 도망만 치라고 하니까 뭔가 기분이 좀 묘했다.

뭐랄까? 어차피 난 저 괴물의 상대가 안된다고 이야기하는 기분이랄까?

지난 등판 경기.

나는 학폭 조창혁 선생의 피칭을 보고 조금 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대로 했더니 맙소사. 노히트를 기록해버렸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아침부터 조금 더 마인드 컨트롤을 똥배짱 쪽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결과는 매우 좋았다. 그런데 굳이 여기서 계속 피해 가는 승부를 한다?

물론 지금까지 피칭 경험은 쪼유의 선택이 옳다고 속삭였다.

하지만 하루 종일 가져온 마인드 컨트롤의 자아가 원래 쫄릴 때는 더 똥배짱으로 나가야 하는 법이라고 소리쳤다.

그래, 내 공은 졸라 좋다.

어차피 직전 타석에서는 헛스윙 삼진도 뽑아내지 않았던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까 지금 정면 승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줄줄이 생각이 났다.

솔직히 앞서 경험에서 알 수 있듯 쟤 공 보는 눈 매우 구리다. 그냥 내가 승부를 계속 피하니까 생각 없이 그냥 방망이 안 돌리는 거다.

여기서는 헷갈리게 공 하나 정도 윽박질러주는 게 답일 수도 있다. 아니, 답이다.

무려 17년 플러스 알파의 프로 경험.

물론 투수 경험은 플러스 알파 부분 밖에 없긴 하지만 아무튼지 간에 간다.

몸쪽 높은 코스.

가장 빠른 속구.

전력을 다해 몸을 끌어 올렸다.

몸에 때려 박아 넣은 가장 완벽한 폼.

하체에서 시작된 힘이 코어를 거쳐 손끝에 집약됐다.

마치 대포의 포탄을 발사하는 것 같은 힘으로 –펑!!!

100마일의 속구가 날았다.

원하던 것보다는 살짝 낮게, 하지만 몸쪽에 꽉 찬 코스로.

분명 카를로스의 강점은 바깥쪽 낮은 코스다. 그와 반대되는 이 코스라면 통한다. 게다가 이건 카를로스가 아니더라도 어지간하면 절대 못 치는 공이다.

-딱!!!

그래, 어지간하면······.

타구가 훨훨 날았다.

빠르게 달리던 이주혁이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어지간한 중견수라면 타구음과 각도, 속도를 보는 순간 바로 깨달았을 텐데 역시 이주혁이라서 그런지 한참 달린 후에야 깨닫는다.

카를로스가 씨익 웃었다.

정겹던 웃음이 어느새 또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2:3.

뭐, 어쩔 수 없지.

조창혁도 메이저 기준으로 4, 5 선발은 충분히 해 먹을만한 놈이었는데 ‘나’라는 반칙을 만나서 영혼까지 털렸다.

그런 것처럼 풀도핑한 괴물을 상대로는 나의 ‘좋은 공’도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냥 이게 다 그냥 인생의 좋은 교훈이었다 생각하고 넘어가자. 그리고 그런 나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전광판에 적힌 숫자는 무려 161.1km/h.

그래, 100마일짜리 속구가 좋은 코스로 들어갔는데 두들겨 맞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냥 앞으로 저런 괴물한테는 똥배짱보다는 적당히 피해가는 승부가 낫겠다는 교훈을 얻은 걸로 만족하자.

다 이렇게 한 걸음씩 성장하는 거다.

-뻐엉!!

“스트라잌!!!”

160.3km/h의 속구가 한복판을 꿰뚫었다. 그걸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지켜보는 상대 타자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바로 또 자신감이 풀로 충전됐다.

그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 공은 죽여준다.

그렇게 5회와 6회.

추가 실점은 없었다.

***

“어떻게 할까요? 힘은 아직 많이 남은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하기는. 원칙 정해둔 대로 해야지.”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선발이 6이닝 2실점 해줬으면 된 거야. 투구수가 이미 97개인데 여기서 더 던지게 하는 건 무리지. 잊지 말라고. 최수원이 이제 신인이라는 거.”

김대철 감독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물론 그 역시 최수원이 1이닝 이라도 더 던지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다. 단순히 오늘 승리 때문만이 아니었다. 저 녀석 타자로는 거의 완성에 가까워 별 느낌이 없지만 투수로는 한 경기 한 경기 실전을 치를 때마다 조금씩 성장한다는 느낌이 완연하게 전해진다.

분명 스프링 캠프 시절만 하더라도 최수원, 백하민, 최민혁은 거의 비슷비슷한 수준의 투수들이었지만 지금은 최수원쪽이 명백히 반 수는 높다.

아마 최수원이 전업 투수였다면 한 이닝 정도는 더 써먹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녀석은 투타 겸업으로 누구보다 더 세심하게 체력적인 관리를 해줘야 하는 녀석이었다.

당장 내일 경기야 휴식일을 준다고 치더라도 모레부터 다시 타자로 나와주지 않는다면 곤란하다. 지금 그리핀즈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타자 최수원은 언터쳐블 그 자체다. 차라리 타자 최수원과 투수 최수원이 별개의 두 사람이었다면······.

경기가 계속됐다.

***

여러모로 아쉬웠다.

느낌이 퍼펙트 할 것 같았는데 결국 6이닝 2실점이라니.

하지만 아침부터 가져갔던 그 마인드셋이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이제 와서 회상해보니 상당히 미친놈 같은 마인드셋이라서 좀 부끄럽기는 했지만 원래 선발 투수라는 건 미친놈들이 대부분이다. 평시에는 얌전한 놈들도 선발로 서는 날만큼은 미친놈 같은데 아마 오늘 나와 비슷한 자기 최면이 아닐까 싶다. 당장 하민이 형만 하더라도 선발로 서는 날에는 중2병이 좀 올라오는 느낌이니까.

-뻐엉!!!

볼카운트 2-3에서 빠지는 공.

한명훈이 영리하게 카를로스를 볼넷으로 내보냈다.

“하여간 이 나라는 개나 소나 죄다 비리비리한 겁쟁이뿐이로군.”

방망이를 내던지고 1루로 걸어 나온 카를로스가 중얼거렸다.

미리 말해두지만 KBO의 심판 대부분은 현역 선수 출신이다. 코치도 현역 선수 출신이다. 그리고 KBO 선수들의 평균적인 학력은 고졸이지만 그 학업 성취는 지극히 낮아서 중졸 이하, 아니 어쩌면 그 미만이다. 영어를 똑바로 하는 사람도 드물다는 뜻이다. 하물며 스페인어라면? 당연히 1루심이고 우리 1루 코치고 카를로스의 말을 알아듣는 놈이 있을 리가 없다.

“겁쟁이 같은 소리하네. 저건 스마트한 거지. 솔직히 공 보는 눈 없이 적당히 대충 던지기만 해도 방망이 붕붕 휘둘러주는데 뭣하러 승부를 해주겠냐? 안 그래?”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아니, 잠깐만······. 너 우리 말 할 줄 아는 거야?”

“할 줄 아니까 지금 네가 한 개소리에 대꾸해 주는 거지. 너 인마. 외국인 노동자가 남의 나라 와서 국가 비하나 하고. 지금 제정신이냐? 계약조건에 문제 일으켜서 퇴출 당하면 돈 토해내는 조약 있지 않아? 요즘 외노자 놈들이 하도 문제 일으켜서 그거 꼭 넣는 걸로 아는데. 특히 그리핀즈는 우리처럼 헐렁이도 아니고 단장이랑 죄다 빠삭한 애들이잖아. 아니야?”

카를로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약물로 펌핑된 팔뚝이 사뭇 위협적이다.

하지만 괜찮다.

녀석과 나의 거리는 3보.

나는 녀석보다 빠르다. 그러니 만약 공격해온다면 뒤도 보지 않고 딜튼에게 달려가면 된다. 나머지는 모두 딜튼이 해결해줄 것이다.

“미안하다······. 아무래도 내가 흥분해서 실언을 한 것 같군.”

“사과 받아들이지. 아무튼 나 말고도 스페인어 알아듣는 선배들도 있을 테니까 앞으로는 말조심해. 혹시라도 심리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으면 구단에 이야기하고. 한국은 의료보험 잘 되어 있어서 그런 거 진료받기 좋으니까. ‘약’ 처방받기도 편할 거고. 오케이?”

“······, 알겠다.”

[최수원 4연패를 끊어내는 161.1km/h의 강속구!!]

[최수원 타자로는 이미 리그 최고!! 이제 남은 것은 투수로 최고가 되는 것뿐?]

[마린스-브레이브스 빅딜 성사 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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