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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154화 (154/305)

154화. 이제 벚꽃은 잊어라(1)

2027년 4월 22일.

어느새 서서히 봄이 지나 가고 있었다. 부산의 벚꽃은 이미 져 버렸다.

벚꽃이 지면 마린스의 야구도 함께 진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올 해 마린스의 성적은 어떨까?

분명 평소보다 경기는 재밌었다.

그리고 느낌적인 느낌으로는 이기는 경기가 많았고, 패배하는 경기도 무기력하게 패배하는 경기는 거의 없다는 느낌이었다.

정말 한 끝 차이의 아쉬운 승부.

그것은 바로 재작년에 99패. 작년에 리그 8위를 했던 팀이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좋은 모습이었기에 팬들은 마린스가 정말로 강해졌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지금까지 총 열일곱 경기에서 9승 8패.

“야, 우리 생각보다 많이 못 이겼네? 느낌은 한 12승 정도는 한 것 같은데······.”

“보니까 8패 중에서 역전패가 다섯 번. 그리고 9승 중에서 역전승 두 번인데?”

“······. 근데 원래 우리 그래도 봄에는 그래도 좀 잘하는 거 아니었냐? 아니, 봄에도 이 모양이면 이거 노답 아님?”

“재작년 이전으로 몇 년은 봄에도 이것보다 확실히 엉망이었고 작년은 그래도 봄에 이것보다 더 좋긴 했지. 근데 난 올해 성적이 작년보다 더 좋을 것 같다.”

“최수원 때문에?”

“그건 너무 당연한 말이고. 그것말고도 팀 전체가 뭔가 조금 더 끈적해진 느낌이 좀 있어. 솔직히 작년에는 지고 있는 경기 8회 9회 가면 애들이 진짜 대충 뛰는 느낌이 있었거든. 저건 에러가 아니라 그냥 태업 아닌가 싶을 정도? 근데 올해는 그런 건 없더라고.”

“근데 그런 거 치고는 역전패가 너무 많잖아.”

오규환씨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냥 선발이랑 불펜 클라스 차이가 넘사벽이라 그런 듯. 아니, 한교철도 다른 팀 가면 막 엄청난 필승조 수준은 아닌데 우리 팀은 한교철만한 불펜이 없잖냐. 솔직히 지금은 조원형 짜르고 얠 마무리 시켜야 할 기세야.”

“근데 그러기에 한교철은 공이 좀 너무 구리지 않아? 조원형이 그래도 공 하나는 좋잖아.”

“그 좋은 공도 제대로 던질 때 이야기지. 얘 지금 블론만 두 개임. 게다가 곽재영 얜 3+1년 8+2억에 재계약 한 게 바로 작년인데 지금 구속이 136km/h가 최고구속이더라.”

“그러면 네 말은 우리 불펜만 좀 어떻게 하면 된다 그거네.”

“어, 내가 볼 땐 우리 최수원 쓸 수 있는 지금이 기회임. 트레이드건 뭐건 어떻게든 불펜 데려오고 2군에서도 괜찮은 투수 있으면 계속 올려서 시험 좀 해보고. 그리고 겨울에 FA로 무조건 A급 불펜 둘은 사 와야지. 곽재영처럼 똥 같은 애들 좀 내보내고.”

“와, 뭔가 우리 팀은 전부 다 문제라서 뭐부터 해결해야 할지 답이 없어 보였는데, 문제가 하나로 좁혀지니까 이제 답이 좀 보이는 느낌인데?”

***

전상익 단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시즌이 개막하고 삼 주.

기대보다 훨씬 훌륭한 부분이 있었고, 마찬가지로 기대에 터무니없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으며 딱 기대 정도 해주는 부분이 있었다.

“호크스 쪽 반응은 좀 어때?”

“그게······. 한교철에다가 이주혁까지 얹어서 블록딜로 가자고······.”

“뭐? 이주혁까지? 미친······. 그래, 어디 들어나 보자. 지들은 누구를 내주겠다는데?”

“우리가 원하던 서지웅에 곽원섭을 얹어주겠다고······.”

“돌았네. 잔여 연봉 40억에 2할짜리 타자를 얹어준다고? 이주혁을 데리고 가면서? 왜? 차라리 브레이브스랑 현금 트레이드를 하라고 하지.”

“안 그래도 브레이브스 쪽에서도 살짝 입질이 오긴 왔습니다.”

브레이브스.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인 공병준 단장의 능글능글한 미소가 떠올랐다.

전상익이 당장 집어치우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본능을 억지로 내리 눌렀다.

“뭐라는데?”

“거기도 이주혁이랑 한명훈, 조유진까지 내주면 박재혁, 고설민, 태지완 셋을 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올해 달릴 생각이라면 나쁘지 않은 제안인 것 같습니다.”

“서비스타임 5년 4년 7년이 남은 유망주들이랑 올해, 그리고 내년에 FA되는 베테랑 불펜이 셋이라······.”

베테랑 불펜이라고 퉁 치기는 했지만 투고타저라는 것을 감안해도 각기 평자책이 2~3점 대에서 놀고 있는 불펜 셋이다. 데려올 수만 있다면 지금 약점으로 지적되는 불펜을 완벽하게 안정시킬 수 있다.

게다가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같이 연봉 낮고 서비스 타임 많이 남았고 툴가이로 꼽히는 유망주들이다. 그 가운데 이주혁과 조유진은 2라운드로 뽑은 유망주였고 한명훈의 경우 5라운드이기는 하지만 작년 마린스 토종 최다승으로 이미 검증된 투수자원이라고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따져본다면 마린스 쪽이 살짝 손해를 보는 제안. 하지만 올해와 내년 정말로 달릴 생각이라면 불펜이 부실한 마린스 입장에서는 확 끌릴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확실히 공병준 그 자식다운 제안이긴 하네. 걔들 연봉이 지금 어떻게 되지?”

“박재혁은 FA 대비해서 7억. 그리고 고설민이랑 태지완은 각기 2억7천, 2억4천입니다.”

“다하면 12억이 넘네? 이거 완전 돈지랄인데······. 근데 한명훈이야 불펜들로만 셋이 들어오면 그렇다 치더라도 이주혁 나가면 우리 중견수는?”

“권혁주 쓰든지 아니면 사울 로페즈를 중견수 박아놓고 정지운이랑 김훈을 내야에서 돌리면 될 겁니다.”

잠재력만 따진다면 권혁주는 감히 이주혁에 비길 수가 없다.

하지만 현재 실력은? 솔직히 이주혁이 아주 조금 낫긴 하지만 그게 그렇게 큰 것도 아니다. 게다가 최수원을 6년 꽉 채워서 쓰겠다는 생각은 이미 17경기 만에 완전히 물 건너 갔다.

이건 아무리 길어도 2년이다. 팀이 꼴찌를 해도 얜 무조건 MVP다. 그러면 최수원이 MVP급 성적을 거두는 2년 동안 우승을 챙기는 것이 맞지 않을까?

“수원이가 예상 WAR이 어떻게 되지?”

“현재 구단 자체 예측치로는 19.7 예상합니다.”

KBO의 스탯을 측정하는 두 사이트는 최수원의 예측치를 각기 27.4과 28.7이라는 정신 나간 수치를 예측했다. 하지만 마린스가 예측하건데 최수원은 19.7정도로 소소하게 KBO의 역대급 기록은 물론이거니와 라이브볼 시대 이후 가장 높았던 1923년 루스의 14.2라는 기록을 사뿐히 제칠 예정이었다.

만약에 정말 최수원이 마린스의 예측과 같은 성적을 기록한다면 그것은 1883년 데드볼 시대 619이닝을 던진 팀 키프 이후 가장 높은 기록일 것이다.

“정말이지 언제 들어도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다른 모든 일들이 별 의미 없게 느껴지는 숫자야.”

“좀 그런 면이 있긴 하죠.”

“이런 선수를 데리고 우승을 못 하면 이건 병신 소리를 들어도 마땅하겠지?”

“뭐, 배리 본즈 데리고 있던 샌프란시스코도 우승 못 한 건 마찬가지잖습니까. 야구는 선수 하나로 우승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니까요.”

“그건 배리 본즈가 160짜리 공을 못 던졌기 때문 아닐까?”

“······. 어쩌면 그럴지도요.”

***

4연패.

사실 2연패까지만 하더라도 뭐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았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가 있는 법이고 야구는 본래 그런 사이클을 타는 종목이니까. 하지만 4연패는 이야기가 다르다.

좋은 타자는 타격 컨디션 좋을 때는 몰아치고 컨디션 별로일 때는 꾸역꾸역 어떻게든 1루로 기어 나가서 성적을 유지하는 타자다. 마찬가지로 좋은 팀 역시 컨디션 좋을 때는 확 몰아 이기고 컨디션 내려왔을 때도 루징시리즈 정도는 유지하면서 반등을 노린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마린스는 좋은 팀이 될 최소한의 자격은 갖췄다.

이유는 당연히 나라는 선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투수로는 9이닝 노히트.

타자로는 2홈런.

바로 직전 경기 내가 선발로 등판해서 얻어낸 성적이다.

그야말로 야구 혼자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기록.

“스윕은 없습니다. 오늘로 불운했던 연패를 끊어낼 생각입니다.”

“불운이라면, 지난 2연패가 운의 문제였다고 생각하십니까?”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경기 져서 기분 별로인데 인터뷰 들이밀길래 나도 모르게 시원하게 질러 버렸다. 타석에서 제대로 방망이 휘두르지도 못하고, 결국 2루타 하나 친 것도 빠지는 공 억지로 잡아당겼던 거라 아무래도 속에 쌓인 것도 좀 있었던 것 같다.

대충 인터넷이나 어딘가에 자극적인 제목으로 ‘지난 패배는 순전히 불운 탓.’ ‘실력 면에서는 우리가 훨씬 위라고 생각한다.’ 같은 기사가 올라갔으리라 예측이 됐고, 거기에 달렸을 댓글도 빤했기에 오늘 인터넷은 접속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런 기사 따위 오늘 노히트에 2홈런을 넘어서는 활약을 보여주면 싹 들어갈 예정이다.

아, 2홈런을 넘기는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좀 뭐하지만 연타석 출루 기록이나 이어가야겠다. KBO 역대 기록이 13타석 연속 출루였던가?

놀랍게도 그 13타석 연속 출루를 기록한 세 명의 선수 가운데 마린스 선수도 하나 있다. 마린스는 뭔가 안 좋은 기록만 가지고 있을 거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아무튼 오늘 그 KBO 기록은 깨질 예정이다.

-뻐엉!!!

“굿!! 오늘 아침 든든하게 먹었나봐? 볼이 좋은데?”

“어, 갈비찜.”

“아버님이 싸주신 그거? 아직 남았었어? 난 그거 가지고 내려온 바로 다음 날에 양념까지 싹 비웠는데.”

“등판일 아침에 먹으려고 일부러 좀 남겨놨었지. 그거 먹으니까 든든해서 그런지 컨디션이 좋더라고.”

“좋았어. 그러면 오늘도 깔끔하게 한 번 가보자.”

가벼운 연습 투구에서 조유진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속구가 전체적으로 좀 괜찮았고 커브는 살짝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딱 정해진 숫자 이상을 던지지는 않았다.

내 공은 굳이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충분히 좋은 공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장 몇 개 더 던진다고 확 좋아질 것도 아니고 혹시라도 퍼펙트에 도전하게 되면 여기서 낭비한 약간의 체력마저도 아까울 수 있을 테니까.

“아······. 퉤퉤퉤.”

“뭐야? 갑자기 침은 왜 뱉어?”

“아니, 좀 부정 탈 생각을 하나 해버려서.”

“대체 무슨 생각이길래······. 아······. 퉤퉤퉤.”

투수와 포수가 같은 마음이라니 완벽했다.

-부웅!!!

이주혁이 방망이 휘두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스윙이 나쁘지 않았다. 비록 지난 두 경기에서 아주 대단한 활약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사실 대단한 활약을 보이지 않은 정도만 하더라도 이주혁 치고는 선방이었다.

우리 팀 타선에 양대 구멍은 누가 뭐래도 이주혁과 조유진 이 녀석인데 얘들이 평균만 해준다면 장담컨대 우리 타선은 리그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팀의 가장 큰 구멍은 불펜.

그러니 승리를 위해서는 그 구멍이 나올 기회 자체를 봉쇄하면 그만이다.

목요일 저녁.

일주일 가운데 가장 버티기 힘든 날의 저녁 6시 30분.

경기장에는 빈자리가 제법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리가 팔리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오늘 공식적인 집계에 따르자면 사직 구장은 전 좌석 매진. 그러니까 비어 있는 자리는 그저 아직까지 퇴근하지 못한 불쌍한 직장인들의 영혼을 증명하는 것이다.

예전에 프로 생활 6년차 즈음인가?

어느 프로그램에서 직장인과 문답을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직장인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야구장에서 가장 기분 좋았던 경험이라······. 그러니까 클라이언트가 쓸데없는 트집을 잡아서 예정에 없던 야근 덕분에 늦게야 야구장에 갔던 날이 있었어요. 연패 중이라 솔직히 가기 싫었는데 진짜 비싼 표라서 거의 8시가 넘어서 꾸역꾸역 야구장을 찾았죠. 그때 도착했을 때 경기가 5회 말이었나? 근데 마침 그날 딱!! 연패가 끊긴 거예요. 와, 뭐랄까? 클라이언트한테 시달리면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싹 내려간다고 해야 할까?”

목요일 저녁.

4연패 중임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사직 구장을 찾아오겠노라 결정한 마린스의 팬들을 위하여 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를 하겠다 결심했다.

-딱!!!

선두타자 초구 안타.

조금 아쉽지만 마린스의 팬들이라면 굳이 퍼펙트까진 아니더라도 노히트도 충분히······.

“아, 퉤퉤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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