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마린스는 정말로 강팀이 되었나?(2)
“이거 아무래도 쪼당인 것 같은데?”
“에? 닭발이요? 근데 그건 송구에 문제 생기는 거 아니에요? 진웅이는 지금 공을 못 받는 거잖아요.”
“아니, 쪼당이 꼭 공 못 던지는 문제만 있는 건 아니야. 그냥 그런 경우가 많은 거지. 타격에 문제 생기는 경우도 있고 지금처럼 포구에 문제 생기는 경우도 있어.”
“하······. 역시 수원이 공에 영 안좋은 곳을 맞은 영향이겠죠?”
“뭐, 그렇겠지.”
-뻐엉!!!
최진웅이 딜튼의 공을 아주 무난하게 받아냈다.
그 모습을 지켜 본 투수 최고참 곽재영이 수심이 사라지지 않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구속 차이 때문에 받고 못 받고는 아닌 것 같네······.”
내 공을 두 차례나 놓친 최진웅을 위해 가장 먼저 공을 던져 본 것은 곽재영이었다. 그리고 최진웅은 그런 곽재영의 공을 너무 쉽게 받아냈다.
물론 나와 곽재영은 평속이 거의 25km/h 가깝게 차이가 났기에 곧바로 딜튼이 자신의 공도 한번 받아보라고 나섰다.
“Good!!”
자신의 모든 공을 다 시험해본 딜튼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한교철은 공수 양면에서 그리고 쪼유는 공격에서 영 마음에 차지 않던 딜튼에게 최진웅의 복귀는 크게 환영할만한 일일 것이다. 애당초 딜튼의 레파토리 중에서 스플리터는 주력 구종도 아니었고 변화도 그리 크지 않았던 만큼 블로킹이 약점인 것도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으니까.
“수원아 한 번만 더 던져 봐 줄 수 있냐? 아무래도 아까는 내가 그렇게 빠른 공은 너무 오래간만이라 긴장했던 것 같다.”
“네.”
그래도 하는 걸 보니까 내가 걱정한 최악의 사태는 아닌 것 같다.
솔직히 거기까지 가면 아무리 내가 직접 맞춘 게 아니라 파울볼이 영 좋지 않은 곳에 갖다 박은 거라고 해도 너무 미안해진다.
-뻐억
두 번.
최진웅은 이번에도 나의 공을 받지 못했다.
확실히 입스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그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진웅이는 나 좀 따라오고. 수원이는 정리 운동하고.”
“네.”
입스의 시작은 심리적인 부분일지라도 이후 작동하는 기전은 단순히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정말로 물리적으로 근육 자체의 움직임에 어려움이 생긴다.
그런데 내가 볼 때 지금 최진웅은 공을 받는 행동에 어려움이 생겼다기보다는 그냥 타자 있고, 내가 공을 던지는 상황에 트라우마 같은 게 생긴 것 같았다.
그러니 뭐, 입스까지는 아닌 듯하고, 지속적으로 심리치료 받고 어쩌고 하면 호전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글쎄······.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어차피 포수가 1년 144경기 다 출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구단에서도 차기 포수를 키우는 것에 조금 적극적인 것 같은데 그냥 아예 내 전담 포수로 쪼유를 넣어주면 해결되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내가 뭐 여기 마린스에서 천년만년 있을 것도 아니고 말이다.
무엇보다 블러킹이 되는 포수와 아닌 포수의 간극은 생각보다 훨씬 컸고 그래서 공을 던지는 내가 쪼유 쪽이 더 편하다. 빠따야 최진웅이 조금 더 낫다지만 내 입장에서 볼 땐 진짜 미미하다. 어차피 점수야 내가 홈런 쳐야 나는 건데 뭐······.
샤워를 하고 있는데 나보다 한 박자 늦게 들어온 딜튼이 슬금슬금 나에게 다가왔다.
거대했다.
아, 물론 몸 이야기다. 확실히 벤치 클리어링에서 그렇게 사람들을 휙휙 날린 게 이해가 가는 몸이었다. 나도 얼른 증량을 더 하긴 해야할 텐데 이게 투타의 밸런스를 맞춰가면서 몸을 키운다는 게 쉽지가 않다.
한 10년쯤 후라면 관련된 데이터도 많고 연구도 활발해서 참고할 자료들이 많겠지만 지금은 구할 수 있는 데이터가 너무 한정적이다.
“스완, 네 책임 아니니까 너무 꿀꿀 해하지 말라고. 심지어 네가 직접 맞춘 것도 아니고 그냥 파울팁이었잖아.”
“고마워.”
“고맙기는. 그건 내가 내일 너한테 할 이야기지.”
“이거 점수 좀 팍팍 내라는 압박 맞지?”
“압박이 아니라 응원. 2연패 했으면 끊어주는 게 에이스의 도리인데 점수를 안 주는 거야 내가 하면 된다지만 점수를 내는 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말이지.”
“그 팔뚝을 보니까 직접 방망이 휘둘러도 잘할 거 같은데?”
“하하, 글쎄. 요즘 몇몇 타자들 방망이 돌리는 거 보면 정말 그러고 싶은 마음도 들긴 하더군.”
***
KBO에 ‘왕조’라고 불릴만한 구단을 꼽으라면 꼽히는 몇몇 구단들이 있다.
뭐, 사람들의 의견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일치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딱 둘. 모두가 부정할 수 없는 왕조를 세웠던 구단들이 있다.
80년대 KBO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선수를 보유했던 광주 호크스.
그리고 2010년대 통합 4연패라는 터무니없는 기록을 달성했던 대구 그리핀즈.
그 가운데 대구 그리핀즈의 전성기는 2015년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스캔들로 끝이 났는데 당시 그들이 페넌트 레이스에서 5연패를 달성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직후에 정규시즌 9위. 그리고 무려 11년 동안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게 겨우 2번밖에 안된다는 점에서 그리핀즈의 왕조가 얼마나 철저하게 무너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 대구 그리핀즈의 부활을 꿈꾸는 두 남자가 있었다.
바로 물 건너 미국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MLB의 선진 시스템 아래서 13년을 일하고 한국의 그리핀즈에 스카웃 된 강지우와 찰리 김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어때? 뭐 좀 나와?”
“글쎄······. 어째 보면 볼수록 이건 답이 안 보이는데? 차라리 전성기에 이규만이 낫겠어.”
“그 정도야?”
“어. 이규만은 그래도 주루라도 문제가 있었지. 얜 그것도 없어. 차이가 있다면 이규만이 교타자가 힘이 너무 좋아서 담장이 넘어갔다면, 얜 홈런 타자가 가져다 대는 능력도 너무 좋은데 발도 빠른거지.”
“그거 완벽하다는 말을 좀 돌려서 말하는 것 같은데?”
“돌리긴 누가 돌렸다는 거야. 그냥 대놓고 터무니 없다고 말하는 건데. 내가 볼 땐 지금이 그냥 컨디션 절정이라고 보고 당분간은 무조건 피해가는 것 말고는 답이 없어 보인다. 그나마 약점이라면 투타 겸업하는 날에 한 6회, 7회쯤 되면 체력적으로 힘들어 보인다는 거?”
“어······. 그거 6회부터는 투수 그만하고 타자만 하면 아무 문제 없다는 이야기인 거지?”
“잘 알아들었네.”
프로 야구에 트랙맨이 도입된 것은 이미 오래 전 이야기다. 심지어 지금 대부분 구단에서는 그 다음 단계인 호크아이를 도입했다. 그야말로 선수의 사소한 버릇까지 완벽하게 분석이 가능한 시대인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선수가 그렇게 낱낱이 분석되는 것은 아니었다. 분석이 기본이 되는 데이터는 쌓이지만, 그것을 기반으로 분석을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러한 데이터들을 활용하는 곳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데이터를 분석하는 사람의 몸값은 쭉쭉 솟구칠 수밖에 없다.
“스읍······. 얘 우리 구장에서 경기 언제 있지? 아무래도 이런 데이터로는 좀 한계가 있는데.”
“일정상으로는 다음 달 셋째 주네.”
“아쉽네. 아쉬워. 이번 경기가 우리 홈 경기였으면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해보고 다음 시리즈 원정부터 적용해볼 수 있을 텐데 말이야.”
“그래서, 결국 지금 현재 결론은 그냥 답이 없다. 그거네?”
“어. 그냥 어지간하면 볼넷 주라고 해.”
“만루에서도?”
“확률적으로는 그러는 걸 추천한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데이터 분석가인 찰리 김의 단언에 그리핀즈의 단장 강지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 미치겠네. 이제 슬슬 시스템 좀 간신히 자리 잡을까 싶은데. 뭐 이딴 걸 분석이라고······.”
“이딴 거라니. 야, 그게 지금 박봉에 여기서 썩는 나한테 할 소리냐? 이게 도와달라, 도와달라 사정해서 왔더니.”
“인마, 솔직히 박봉은 아니지. 단장이랑 연봉이 같은데.”
“글쎄, 그냥 휴스턴에 있었으면 일은 더 편한데 돈도 이것보단 더 받았을 것 같은데······.”
“야, 그래도 생활비가 다르잖냐. 게다가 어? 이미 완성된 시스템에서 부품으로 일하는 것보다 함께 시스템을 만들어보자. 기억 안 나냐?”
“에휴, 하여간 쓸데없이 말은 잘한다니까. 알았으니까 좀 더 제대로 된 자료나 찾아봐. 트랙맨 말고 호크아이로. 알잖아. 투수 자료야 트랙맨도 괜찮다지만 타격 자료는 호크아이 필요하다고.”
“알겠어. 알겠어. 내가 최대한 한 번 해볼게.”
***
야구가 시작하는 화요일.
오늘 그리핀즈의 선발은 제프 캐일런. 28세의 투수로 작년 휴스턴에서 23.1이닝 동안 평자책 6.11을 기록한 남자였다.
본래라면 빅리그에 조금 더 도전을 해볼 법도 했지만 그리핀즈의 단장인 강지우가 그를 설득했다. 어차피 마이너에서 기량을 닦을 거라면 완벽한 지원과 큰 돈을 받으며 한국에서 뛰는 것이 더 이득일 것이라고.
지금까지 3경기에 등판하여 21이닝 3실점.
평자책 1.29.
그야말로 특급이라는 평가에 어울리는 성적이었다.
“음······. 이거 유니폼 디자인이 너무 촌스러운데?”
“참아. 그래도 우리 원정 유니폼은 저쪽 유니폼에 비하면 괜찮은 거니까.”
“이게 괜찮은 거라니. 참 믿기 힘든 이야기로군.”
대구 그리핀즈와 부산 마린스는 1982년 KBO 창단 이후 지금까지 연고지와 구단 이름, 그리고 모그룹이 바뀌지 않은 유이한 구단이었다.
물론 두 구단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긴 했다.
한 구단은 KBO 역사에서 두 번째로 많은 우승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왕조까지 세웠던 구단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KBO에서 가장 오랜 기간 우승을 하지 못했으며 피닉스와 함께 공동 11회라는 압도적인 꼴찌 횟수를 자랑하는 구단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이 두 구단의 시리즈는 조금 특별하게 치러졌는데 그것은 클래식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종종 올드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른다.
그리고 덕분에 오늘 마린스는 아주 즐거운 비명을 내질렀다.
“올드 유니폼 재고 없어?”
“네, 전 매장 죄다 끝났답니다.”
사실 이미 최수원의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을 구매한 팬들은 많았다.
지금까지 전 구단 유니폼 판매 1위가 최수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그렇게 최수원의 유니폼을 구매한 팬들조차도, 아니 이미 최수원의 유니폼을 구매한 팬들이기에 이번 최수원의 노히트 노런에 흥분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매우 기꺼운 마음에 자신의 지갑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결과는 올드 유니폼의 매진.
마린스의 유일한 우승 유니폼인 스머프 유니폼은 물론이거니와 오래된 디자인의 홈 유니폼까지 모조리 완판. 선수의 이름을 마킹 해주는 기계 앞에는 정말이지 언제 끝나나 싶을 만큼 긴 줄이 늘어섰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관심과 인기 속에서 경기가 시작됐다.
***
1회 초.
딜튼이 얻어맞았다.
아, 당연히 물리적으로 얻어맞았다는 소리는 아니다. 내가 봤을 때 한국에 그게 가능한 사람은 진짜 몇 안 된다. 아니, 어쩌면 없을 수도 있다.
아무튼 어제만 하더라도 컨디션이 괜찮아 보였는데 잠이라도 잘못 잔 건지 볼넷 하나에 안타만 세 개를 두들겨 맞으면서 1회에만 무려 3실점을 했다.
“Shit!!!!”
-펑!!!
덕아웃으로 돌아온 그가 과자 상자 하나를 내던졌다. 분명 작은 종이박스인데 무슨 거의 풍선 터지는 소리가 나는 것이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뭐, 애초에 분노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니 저건 말리는 것보다는 그냥 저렇게 냅두는 게 좋았다. 괜히 섣불리 말리기에는 좀 위험하기도 했고 말이다.
타석에 강라온이 올라갔다.
그리고 덕아웃 펜스에 기대서 상대 투수를 살폈다.
확실히 공이 좋긴 했다.
하지만 기껏해야 조창혁 수준?
지난번 벤치 클리어링 때 나를 위해 매우 큰 활약을 해준 딜튼에게 야구로 보답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는 상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리핀즈의 덕아웃.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고의사구를 선택하는군요.]
그러니까 노아웃 주자 1, 2루 상황에서 나에게 고의 사구를 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