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148화 (148/305)

148화. 마린스는 정말로 강팀이 되었나?(1)

노히트 노런.

KBO 역대 열여섯 번째. 토종 투수로는 26년만. 신인으로는 두 번째, 그리고 마린스 역대 두 번째 기록이었다.

타자로써 최수원이 답이 없는 괴물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2년 전 고교 야구에서 최수원에게 가장 많은 홈런을 허용한 것이 백하민 자신인데 어떻게 그것을 모를까.

하지만 투수로는?

글쎄······.

비록 최수원이 3선발의 자리를 맡긴 했지만, 백하민은 자신이 투수로써 녀석보다 아래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5선발을 맡고 있는 최민혁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투수로써의 자존심?

글쎄······.

그래, 뭐 포텐셜만 따진다면 더 크고, 더 길고. 심지어 공까지 더 빠른 최수원이 더 높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 그 포텐셜이라는 것이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전부 개화가 가능하다던가.

실제로 지난 노히트 이전 최수원은 두 경기 11이닝 3실점. 백하민 자신은 두 경기 12이닝 3실점으로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두 사람에게는 결정적 차이가 하나 존재했으니 투수 최수원에게는 든든한 동료인 타자 최수원이 있지만 백하민에게는 그렇게 점수를 뻥뻥 내줄 동료가 없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점수 지원을 등에 업은 것과 아닌 것. 공을 던지는 투수 마음의 여유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난 브레이브스와의 1차전.

덕아웃에 앉아 경기를 지켜본 백하민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치 한 꺼풀을 벗어 던진 것 같은 피칭이었다.

이유가 뭘까? 구속이 조금 올라서일까? 그건 아니라고 봤다. 그렇다면 컨디션이라도 기가 막혔던 것일까?

경기가 끝나고 최수원에게 직접 물었다.

“아······, 그냥······. 뭐랄까······. 제 공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공이더라고요.”

“어?”

“아니, 그러니까 오늘 브레이브스 선발이 던지는 공을 치는데 스읍······. 뭐랄까. 딱히 특별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별할 게 없다고?”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코앞에 두고 있는 리그에이스급 투수의 공을 보고 특별할 게 없다니. 만약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눈이 삐었냐고 대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왠지 이 녀석이라면 정말로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뭐 속구 커맨드 저보다 약간 괜찮고 슬라이더 좀 괜찮긴 했는데 솔직히 구위는 제 공이 더 낫지 않나. 뭐 그런 생각도 좀 들고······. 아무튼 이런 공이 프로리그 최고 수준의 속구란 말이지? 어지간하면 그냥 구속 구위로 내리 찍어버릴 수 있는. 그러면 속구에 고생할 일은 없겠는데? 대충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그렇게까지 생각을 하고 나니까. 어? 근데 그러면 내 속구도 이거랑 크게 뒤지지 않으니까 그냥 구속 구위로 내리찍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그냥 그렇게 해버렸다?”

“네. 칠 테면 쳐봐라. 라는 느낌으로 했는데. 의외로 잘 통하더라고요.”

“오늘 컨디션이 특별히 좋거나 한 건 아니고?”

“에이, 컨디션은 지난 2차전이 더 좋았죠. 화, 수, 목 사흘 내내 타자로 뛰고 서울로 또 올라온 건데요. 그냥 뭐랄까······. 저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투수더라고요. 그러니까 오늘 노히트의 비결을 굳이 말로 하자면······.”

마음.

백하민이 피식 웃었다.

아니, 무슨 소년만화도 아니고 마음이라니.

주변보다 10인치 높은 마운드.

언제부터였을까? 그 ‘마음’이라는 것을 잃어버린 채 이곳에 서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2년 전.

청룡기 결승전 당시 최수원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던 그때만 하더라도 분명 백하민은 그 ‘마음’이라는 것을 품고 있었으리라.

고척돔은 이번에도 가득 찼다.

어제의 경기에 대한 소문이 쫙 퍼져서일까?

아니 어쩌면 그냥 토요일 경기이기 때문일지도.

최수원은 어제 새하얗게 불태웠음을 증명하듯 상당히 무기력한 모습으로 덕아웃에 너부러져있었다.

사실 지난 경기들에서는 최수원이라는 타자가 덕아웃에 대기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든든했었다. 비록 선발 등판 다음 날은 휴식일로 정해져 있다지만 지난 백하민의 첫 번째 등판 때처럼 대타로 한 타석 정도는 소화해주는 변주는 얼마든지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그것도 아예 불가능하리라.

백하민의 빛나는 눈동자가 한교철의 미트로 향했다.

마운드에 선 투수가 믿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껏 쌓아올린 자신의 노력.

그 노력을 가능케 했던 눈부신 재능.

그리하여 만들어낸 지금의 자신.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

어느새 스스로 빛내는 법을 잃어버렸던 청년이 그렇게 자신의 공을 던졌다.

[젊은 투수들의 약진!! 마린스 백하민 7.1이닝 2실점 호투!!]

[7회 말 승계 주자 둘을 불러들이는 한명훈!!]

[백하민 넘치는 투지!!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끝까지 던지지 못해 분할 뿐.’]

[연이은 졸전. 브레이브스와의 3차전 잔루만 아홉 개!! 문제점은 타선의 짜임새!!]

[마린스, 아쉬운 루징 시리즈.]

[마린스는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충분한 휴식에도 흔들린 불펜들!!]

“와······. 실화냐? 첫 번째 경기에서 11:0으로 이겼던 팀이 두 경기 합쳐서 3점 낸 거?”

“아니, 무슨. 최수원 빠졌다고 타선이······. 그나마 노형욱 홈런 아니었으면 우리 두 경기 합쳐서 1점 냈을 거라는 게 진짜 암담하다. 아니 이 팀은 홈런 아니면 점수를 못 내나?”

“야, 최수원 지금 홈런이 12개인데 타점이 23타점이야. 그냥 첫 번째 경기가 좀 이상했던 거고 원래대로 회귀한 거임.”

“그러니까 타점이 전부 홈런으로‘만’ 나왔다고 해도 솔로 홈런이 하나는 있어야 하는 거네? 근데 내가 기억하기로는 우리 수원이 3타점짜리 싹쓸이 안타도 하나 있지 않았냐?”

“어······. 홈런 절반이 솔로 홈런임······.”

“와, 이건 수원이가 마린스 타자들 집합 시켜서 줄빠따 쳐도 무죄 아니냐?”

“인정. 아, 근데 형욱이는 빼주자. 얜 P.X 보내도 됨.”

“어, 형욱이는 인정.”

금, 토, 일.

마린스의 원정 경기를 모두 보겠다고 서울까지 찾아왔던 두 청년이 끊임없이 투덜거렸다. 차라리 마지막 경기가 최수원의 경기였다면 뭔가 깔끔하지 않았을까? 괜히 첫 경기 보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직관을 한 탓에 답답한 연패만 지켜봤다.

“야, 근데 그래도 우리 선발들은 좀 괜찮지 않았냐?”

“둘이 합쳐서 19억이잖냐. 수원이 몸값에서 1억 부족한 건데, 둘이 합쳐서 수원이만큼은 해줘야지.”

“아니, 진짜로 하민이도 솔직히 7회까진 엄청 잘 막았잖아. 7회에 아웃 하나 잡고 연속 볼넷은 좀 그랬지만 그건 대철이가 1차전에서 수원이 뽕 맞고 하민이도 완봉 시키려고 해서 그랬던거고 정상적으로 7이닝 던지고 내려왔으면 3경기 선발에 19이닝 3실점인 건데. 그 정도면 용병 투수 부럽지 않은 성적이지.”

“야구에 만약이 어딨냐. 걍 19.1이닝 5실점인 거지.”

“근데 그렇다고 해도 평자책 2.33이잖아. 와, 말하고 보니까 새삼 수원이 성적이 또 쩌네······. 얘 지금 20이닝 2자책이니까 평자책이 0.9잖아.”

하지만 응원하는 팀이 2연패로 루징시리즈를 기록했음에도 그들의 얼굴은 희망으로 가득했다.

“그 정도는 해야지 시즌 15경기만에 WAR이 3.9가 나오지.”

“야······. 그러면 144경기로 환산 했을 때 얼추 WAR이 한 35쯤 되는 건가? 작년에 우승했던 돌핀스랑 우리랑 34경기 차이였으니까······.”

“산술적으로 작년에 수원이 있었으면 우리 우승이었다는 거네?”

“어······. 뭐지? 세이버메트릭스가 잘못된 건가? 선수 하나 있다고 어떻게 8등이 우승을 한다고 계산이 되지?”

“그러게······. 와, 근데 난 더 소름 돋는 게 작년 기준으로 하면 평자책 0.9에 평균 7이닝씩 먹어주는 선발이 홈런을 115개쯤 까야 간신히 한 경기 차이로 우승할 수 있다는 거잖아?”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농담으로까지 들리는 이야기를 현실에 해내는 슈퍼맨이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 존재한다는 것.

그리하여 ‘가능성’이라는 것이 보이다는 것.

마린스의 팬들은 이미 충분하게 행복했다.

“수원이 열심히 해야겠네. 우리 우승하려면 아직 홈런을 103개나 더 쳐야 하잖아.”

***

경기가 없는 월요일의 사직 구장.

오래간만에 보는 얼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 최진웅이. 몸은 이제 완전히 괜찮아진 거야?”

“하하, 네. 완전히 쌩쌩해졌습니다. 오히려 더 튼튼해졌어요.”

“그래? 뼈는 한 번 부러진 다음에 더 단단해진다고 그러던데. 거기도 그런 건가?”

이정훈이 또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사이 나도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선배님. 제가 좀 더 자주 찾아뵀어야 했는데. 괜찮으시죠?”

“어? 어. 그럼. 괜찮지.”

“죄송했습니다.”

“아냐, 아냐.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 떨어지는 공을 제대로 못 받은 내 잘못이지. 재활 하면서 경기는 전부 다 챙겨봤다. 특히 지난 경기. 와······. 진짜 대단하던데? 솔직히 거기서 공 받는 저 녀석이 좀 부럽더라.”

최진웅의 시선이 쪼유에게 향했다.

프런트에서 쪼유와 한교철 중에서 누구를 내릴가로 상당히 고민을 했는데 결국 한교철을 내리는 것을 선택했다.

솔직히 최진웅의 수비가 좀 부족한 만큼 고민할 것도 없이 당연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프런트쪽에서는 최진웅을 장기적인 첫 번째 옵션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뭐 공수가 다 되는 포수를 좀 키워보겠다는 건데.

글쎄······. 가능할까?

“조만간 선배님이랑은 더 좋은 기록으로 하나 만들어야죠.”

“더 좋은 기록? 그러면 나 롤렉스 하나 받는 건가? 괜찮겠어? 이제 막 돈 벌기 시작했는데?”

“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퍼펙트 하면 어디 롤렉스가 문제겠습니까. 한국 프로리그 최초인데요.”

“좋았어!! 그러면 어디 미래의 퍼펙트 투수 공 한 번 오래간만에 받아볼까? 영상으로만 봤을 때는 공이 더 좋아진 것 같던데. 오늘이 딱 불펜 피칭 루틴 맞지? 내가 네 공을 직접 받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이미지 트레이닝은 엄청나게 했어. 기대할 만할 거야.”

“아, 네.”

최진웅이 의욕 넘치게 나의 공을 받아보겠다며 나섰다.

가볍게 몸을 푸는 차원에서 슬슬 속구를 몇 개 뿌렸다.

-뻐엉!!!

“오, 좋아. 좋아.”

최진웅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선배님. 커브 좀 던져보겠습니다.”

“어.”

“빠른 커브 먼저 갑니다.”

각은 조금 낮지만, 구속은 빠른 커브. 최진웅이 어렵지 않게 공을 받아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슬로우 커브까지 무난하게 받아냈다. 확실히 블러킹과 도루저지에 좀 약점이 있긴 했지만 한교철 보다는 공 받는 스킬 자체는 낫다.

“라이브 피칭?”

“괜찮으시겠어요?”

“포수가 안 괜찮을 게 뭐가 있겠어.”

타자까지 세워두고 본격적으로 공을 주고받아 보자는 최진웅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아. 좀 도와줄래?”

“나야 좋지.”

“어, 진짜로

옆에서 지켜보던 최진웅의 입단 동기인 강라온이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섰다.

“일단 속구부터 가볍게 가보겠습니다.”

“어.”

최근 타격감이 좀 별로이긴 했지만, 강라온은 원래 노형욱과 함께 팀의 타선을 끌어가던 타자였다.

그러니 무리를 하지 않는 선에서 진지하게.

속구를 바깥쪽 코스로 찔러 넣었다.

하지만 원하던 것보다 조금 더 안쪽으로 몰린 공.

-부웅!!!

강라온의 방망이가 시원하게 허공을 휘저었다.

그리고······.

-뻐억!!!

조금 전까지 멀쩡하게 공을 잘 받던 최진웅은 나의 속구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가슴 보호대에 정통으로 꽂힌 공.

“진웅아!!!”

깜짝 놀란 강라온이 그를 바라봤다.

“아, 괜찮아. 괜찮아. 실수. 실수.”

실수? 글쎄······.

내가 생각할 때 이거 아무래도 쪼유 운이 너무 좋은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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