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갈비찜의 자격(3)
금요일 저녁.
대부분 보통의 사람들이 고된 일주일의 노동을 끝내고 휴식에 들어가는 가장 꿀 같은 시간이다.
누군가는 가족과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또 누군가는 자기 자신을 위해 온전히 사용하고 싶은 그 소중한 시간을 그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팀을 응원하기 위하여 기꺼이 할애했다.
그리고 적어도 오늘 하루.
고척돔을 찾은 팬들은 그 시간을 충분, 아니 그 이상으로 보상받았다.
오늘 승리한 마린스의 팬들이야 당연히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그리고 패배한 홈팀의 팬들 역시 응원하는 팀이 일방적으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버렸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오늘 경기가 KBO 역대 열여섯 번째 노히트노런이라는 의미 있는 경기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응원하는 팀이 원사이드하게 패배하는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재미가 있었다.
열아홉살 신인이 161짜리 공을 뻥뻥 던지면서 노히트를 하는 장면이라니. 심지어 그런 공을 던지는 투수가 타석에서는 또 홈런 타자다. 일반적으로 타자는 홈런 타자, 투수는 강속구 투수가 보는 맛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경기를 지켜본 팬들은 그 말을 확실히 공감할 수 있었다.
“야, 그래도 다행이야.”
“다행은 개뿔. 앞으로 저 꼴을 매일 보게 생겼는데. 대체 어디가 다행이냐.”
“별로 길게 보지는 않을걸?”
“그게 무슨 소리야. 쟤 이제 1년 차 신인인데. 최소한 6년은 더 볼 텐데. 아, 설마 마린스의 ‘그 징크스’ 말하는 거야?”
마린스에는 우승을 위해서는 에이스의 팔을 갈아 넣어야 한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확실히 그 전설대로라면 올해 마린스가 우승을 해준다면 내년부터는 저 꼴을 다시는 안 봐도 괜찮다는······.
“야, 잠깐만, 근데 쟤 타자로 전업하면 더 미치는 거 아니냐? 오늘도 보니까 막판에 거의 홈런성 타구 날려대던데, 투수로 안 뛰었으면 체력 보존했을 거고 그러면 그것들 다 홈런이었을 가능성도 있잖아.”
“아, 뭐라는 거야. 앞길 창창한 애한테 무슨 마린스 징크스를 말하고 있어. 그거 말고. 올해 포스팅 룰 개정됐잖아.”
“포스팅 룰 개정?”
“야, 넌 어떻게 브레이브스 팬이라는 놈이 포스팅 룰 개정 된 것도 모르냐. 그것 때문에 우리 팀 팬들 난리 났었잖아. 그래도 이전에는 아무리 일찍 터져도 7년은 지켜보다가 팔아치웠는데 이제는 터지자마자 팔아치우게 생겼다고.”
“아!! 맞다!! 이제 포스팅에 연차 규정 삭제 됐지? 근데 그거 뭐 다른 게 더 있지 않았나?”
“더 있지. 국제 유망주 규칙. 만 23세 이전에는 국제유망주 슬롯 머니 이내 계약만 가능한 거. 그거 때문에 우리 유망주들 그래도 드래프트하고 최소 6년은 보는 거다. 이러고 넘어간 거잖아.”
“그래, 그러면 최수원 앞으로 6년을 더 봐야 하는 거 맞잖아.”
“야, 근데 그것도 어느 정도지. 저만큼 잘하면 그냥 미국 가는 게 이득이지.”
“최수원이야 그렇지. 근데 마린스 입장에서는 아니잖아. 포스팅으로 받는 돈은 그 선수 계약 총액에서 퍼센트로 가져 가는 거니까.”
“야, 지금 최수원 하는 거 보잖아? 진짜 한국에 스포츠 영웅 하나 탄생 각인데, 마린스 모그룹 입장에서 우승 한 번 하고 대승적 입장에서 풀어주는 게 이미지에 좋겠냐. 아니면 억지로 끌고 가는 게 좋겠냐? 가뜩이나 걔들 이미지도 별로인 소비재 그룹인데.”
“그런가?”
비록 지금의 최수원은 적이었지만 지금까지 벌써 몇 명이나 메이저로 선수를 수출했던 브레이브스의 팬이기에 알 수 있었다.
쟨 무조건 빅리그로 갈 놈이다.
“스읍······. 근데 만약 마린스 징크스랑 겹쳐서 우승 시키고 팔 갈아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냐? 보면 오늘도 고작 열아홉 살짜리가 9이닝이나 풀로 던졌잖아.”
“아······.”
***
“오, 어서 오세요.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 수원이가 신세를 참 많이 지고 있는 선배님들이시라고.”
“아버지, 저도 왔습니다. 잘 지내셨죠?”
“오, 그래. 유진이 너도 왔구나. 나야 뭐 항상 잘 지냈지. 자, 다들 경기 끝내고 시장하실 텐데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준비해놨습니다.”
“어휴, 아버님. 말씀 낮추십쇼. 선배라고 해봐야 수원이랑 몇 살 차이도 안 납니다.”
“아니, 그래도 정훈 선배는 우리랑 나이 차이가 제법······.”
집 안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본래는 이렇게 잔뜩 데리고 올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게 다 조유진 저 촉새 놈 때문이다.
모처럼 서울까지 올라왔는데 부모님이 결혼 기념으로 해외여행 나가셔서 집에 혼자라고 숙소에 있을 것 같다길래 그러면 오랜만에 우리 아버지나 한 번 뵙고 밥이나 같이 먹자고 권유했더니 그걸 또 여기저기 동네방네 다 이야기하고 다닌 덕분에 이정훈, 정지운에 이주혁까지. 오늘 야수로 섰던 사람 중에서 절반이 넘는 인원이 다 우리 집을 따라오겠다고 나섰다.
덕분에 아버지에게 급하게 연락을 했는데 매우 흔쾌히 다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
음식이야 더 준비하면 그만이라면서.
“우와, 아버님. 이거 음식이 아주 맛이 죽여줍니다. 이거 뭔가 제가 부산에서 먹던 거랑 맛이 다른데요?”
“그러게? 서울이라고 맛이 특별한 건가?”
“허허허, 많이들 들어요. 박가 놈이 이야기 들으면 기분 좋아하겠구만.”
“박사장님이요? 혹시 여기 가게 사장님이신가요?”
“아, 이 갈비찜 회사 사장인데 나랑은 좀 막역해서. 특별히 신경 쓴 거라고 보내줬는데 흰소리인 줄 알았는데 마냥 흰소리는 아니었나보구만.”
“우와, 잠시만요. 회사 사장님이면. 이거 엄청 큰 프랜차이즈 아닙니까? 막 50호점까지 있고 그랬던 것 같은데요.”
“뭐, 그래도 동창 중에서는 제일 크게 성공한 편이지.”
그래도 사실 나쁘지 않았다.
시간을 거슬러 온 이후 아버지한테 잘해드리려고 노력을 했지만 사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약간의 긴장감이 항상 존재했다. 쪼유를 데리고 오려던 것도 녀석의 넉살 때문이었는데 이정훈은 거기서 한 수 더 떴다.
“그러니까 거기서 제가 딱 말했죠. 비록 오늘 투수가 좀 어려운 투수지만 너라면 할 수 있다. 내가 혹여 못 나가더라도 넌 공략할 수 있도록 내가 어? 투수 공을 종류별로 싹 다 보여줄라니까 넌 두 눈 크게 딱 뜨고 잘 보고 있어라.”
“오, 하긴. 타자는 투수 공을 미리 보고 가는 것과 아닌 것이 큰 차이가 있다고 그러더구만.”
“크······. 역시 우리 수원이 아버님. 야잘알이시네. 이게 대기 타석에서 공을 또 다 보고 들어가는 거랑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가는 거랑은 완전 다르거든요.”
“허허, 뭐 야잘알까지야. 그냥 아들이 야구 선수니까 딱 남들 아는 만큼 아는 거지.”
와, 뭐지? 저 미친 친화력은?
조유진이 인싸계의 끝판왕 아니었나? 처음 보는 남의 아버지랑 저렇게까지 대화가 된다고? 신나게 대화를 이어나가던 아버지와 이정훈이 어느새 찬장에서 술까지 꺼내왔다.
“오우, 발렌타인 30년. 이렇게 좋은 술까지 안 주셔도 괜찮은데요.”
“좋기는. 그냥 선물 받은건데. 그보다 내일 경기도 있는데 술 정말 괜찮은 건가?”
“하하, 딱 한 잔 맛 만 보는 건데요 뭐.”
“아버님. 전 내일 스타팅 아니라서 몇 잔 더 마셔도 괜찮습니다.”
“야, 정지운, 넌 강남역 나갈 거라더니 여긴 왜 따라와서 술을 탐내고 있냐.”
“선배님. 솔직히 오늘 노히트의 결정적 공신은 저 아닙니까. 근데 축하 파티에 제가 빠질 수는 없죠.”
“퍼펙트를 노히트로 만든 주제에 말은 잘 한다. 너 인마 지금 인터넷에서는 짤방으로 난리 났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욕만 있는 건 아니었다. 대충 7:3 정도? 좋은 의미, 나쁜 의미 모든 면에서 게임의 지배자라고 아주 난리가 났다.
“그래서 당분간 인터넷 끊을라고요.”
“하여간 뺀질뺀질해서는. 주혁이 넌 안 마시지?”
“네.”
“선배님. 저도 맛 좀 보고 싶은데요.”
“그래? 하긴 너도 오늘 고생했으니까······. 아니 잠깐만. 아, 얼굴 보고 속을 뻔했네. 쪼유 너 수원이 친구잖아. 어딜 미짜가 술을 마시겠다고.”
“아니, 그래도 술은 원래 어른한테 배우는 거라고······.”
“나 어른 아니고, 아버님도 오늘 누구 가르치실 컨디션 아니시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저리 가서 수원이랑 같이 수정과나 마셔라.”
아버지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떠나지 않는다.
그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수원아 근데 노히트 같은 거 하면 투수가 경기 같이 뛴 포수한테 뭐 고급 시계 같은 거 선물하고 그런다던데. 난 애플워치 프로로 주면 안 되냐?”
······.
이건 태클 걸 부분이 너무 많으니까 대체 어디서 태클을 걸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쪼유 너 수정과에 취했냐?”
“그렇지? 워치 프로는 좀 그렇지? 네가 나한테 해준 게 있는데······. 그러면 그냥 애플 워치 44mm라도······.”
“헛소리하지 말고 가서 갈비나 더 뜯어. 그리고 넌 이따 특타다.”
“어?”
“어? 는 무슨 어? 야. 또 상하체가 따로 놀았는데. 너 어차피 내일 경기도 안 뛰잖아. 내가 소중한 시간 쪼개서 봐줄 테니까. 밥 먹고 소화 좀 되면 나가서 스윙 연습 500번이다.”
과연 이 녀석은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
나한테 특타 받는 게 롤렉스 하나 선물 받는 것보다 훨씬 귀한 선물이라는 것을?
“아······. 300번만 하면 안 될까?”
“1,000번 하고 싶다고?”
“아냐, 아냐. 난 옛날부터 500이 그렇게 좋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가장 완벽한 숫자인 것 같아.”
쪼유 녀석이 헛소리하는 사이 옆에서 조용히 음식을 먹고 있던 이주혁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저기 수원아. 그리고 유진아.”
“아, 주혁 선배님. 오늘 너무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노히트 할 수 있었습니다.”
“아냐, 아냐. 당연히 해야 할 수비였는데. 그보다 그······. 특타. 나도 같이해도 될까?”
“네?”
“아니······, 그냥 코치님들이 수원이 네 타격을 워낙에 칭찬하시기도 하고······. 좀 부담스러우면 그냥 따로 해도 괜찮고······.”
“아뇨, 부담은요. 같이 하시죠.”
***
거의 새벽 3시 무렵에야 사람들을 다 보냈다.
그리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 쓰러지듯 잠들었다.
눈을 떴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나 오늘 아프구나.’ 라는 생각이었다.
선발로 등판한 다음 날 근육통이야 당연하니 굳이 따로 아프다고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까 지금 이 아프다는 것은 단순한 근육통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마치 몸살 감기에 걸려서 미열에 시달리는 것 같은 무기력함이 느껴졌다.
메이저에서 뛰던 시절을 기준으로 한여름에 보름 정도 원정 돌고 막판에 더블 헤더 하루 딱 뛴 다음 몸 상태 정도 되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선발로 뛴 다음 날에 굳이 휴식하는 게 시즌을 길게 보고 체력 안배를 위해서였다면 오늘은 이거 푹 안 쉬면 정말 큰일 나겠는데 싶은 느낌이다.
“많이 피곤한 것 같구나.”
“네, 어제는 괜찮았는데 하루 자고 나니까 오히려 더 피곤하네요.”
“원래 좋은 일이 있을 땐 피곤도 늦게 오는 법이니까. 입맛 없을 텐데 죽 좀 준비해뒀으니까 먹고 가거라.”
“네? 죽을 준비해두셨다고요?”
“그래, 그 정훈이라는 네 선배가 말해줬다.”
아버지가 희미하게 웃었다.
“친구라고는 유진이랑 하민이 밖에 없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그래도 잘 지내는 것 같더구나. 참 다행이다. 서울 올라오면 종종 그렇게 데리고 와라. 다음에는 더 맛있는 걸로 준비해둘 테니.”
“네, 아버지.”
브레이브스와의 남은 두 경기.
나는 모두 출장하지 않고 푹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