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145화 (145/305)

145화. 갈비찜의 자격(1)

-부웅!!!

시원한 헛스윙.

그리고 잠깐의 기묘한 정적.

심판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스트라잌!!!”

경기장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전광판으로 향했다.

161.1km/h

최고구속의 경신이었다.

“와······. 최수원 쟤는 진짜 그냥 미쳤네······. 아니 7회에 구속을 또 끌어올린다고?”

“그것도 자기 최고 기록인데? 오늘 경기 160 던졌었나?”

“아닐걸, 오늘은 159까지 던지던 것 같은데.”

“오늘 제일 위험한 타자가 정찬민이니까 힘 빡 줘서 던졌다 뭐 그런 거겠네.”

관중들은 그저 161.1km/h라는 최고 구속에 집중했다.

사실 160이라는 숫자 자체가 상징적이지 거기서 또 1km/h 더 빨라지고 이랬다고 특별한 의미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경기장을 찾은 빅리그의 스카우트들은 조금 달랐다.

“100마일?”

물론 20년 전 과거처럼 100마일을 보고 꿈의 구속이니 같은 소리는 이제 없다. 빅리그의 어지간한 팀이라면 100마일을 던지는 투수 몇 명 정도씩은 볼 수 있는 시대였으니까. 하지만 그 말은 바꿔 말한다면 지금과 같은 시대에도 여전히 팀에서 몇 명 밖에 던지지 못 하는 공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스포츠과학이 이토록 발달한 시대에도 오직 선택받은 이들만이 던질 수 있는 공.

작년을 기준으로 20-80스케일로 구분하더라도 70점에 해당하는 속도. 오직 구속 상위 2.2%의 투수만이 최고 100마일의 공을 던졌다.

100마일이란 이 대구속의 시대에도 부정할 수 없는 강속구의 증거다.

하물며 지금은 7회다. 투구 수가 조금 적었다고는 하지만 최수원은 투타겸업을 뛰고 있었다. 체력적으로 당연히 투수만 전문적으로 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들다.

장찬민이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아니, 무슨 7회에 161.1km/h를 던진다고? 와······. 젊어서 그런가?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장찬민의 지금 심정이 그러했다.

하지만 이내 방망이를 쥐고 다시 타석에 섰다.

뭐 어차피 159나 161이나 숫자가 좀 달라졌을 뿐 더럽게 빠른 공이라는 건 마찬가지다. 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노력. 그리고 그 노력에 대한 믿음이다.

그 노력이 담긴 방망이가 최수원의 두 번째 공을 노렸다.

-부웅!!!

“아······.”

뚝 떨어지는 슬로우 커브.

조금 전 161.1km/h의 충격이 너무 강력했던 것일까? 그 속도에 맞춰 방망이를 휘두르기 위해 전력을 다한 탓에 스윙을 멈출 수 없었다.

“스트라잌!!”

볼카운트는 순식간에 0-2.

타자에게 너무나도 불리한 카운트다. 투수가 유인구를 무려 3개나 연속으로 던져도 괜찮다니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장찬민은 왠지 저 어린 투수라면 전력을 다해 존을 공략해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전 두 경기의 기록을 보면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 선수는 한 경기 한 경기가 다른 법이고 뭔가 한 꺼풀 벗어던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오늘이라면? 앞선 이닝에서 보여주던 매우 공격적인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지 않을까?

스물아홉.

이제 슬슬 베테랑의 초입 즈음에 들어서기 시작한 유격수 장찬민이 자신의 감각을 믿었다. 그리고 마운드 위의 어린 투수가 크게 와인드업했다.

세 번째.

공이 날았다.

***

161.1km/h가 찍혔을 때 나도 깜짝 놀랐다.

던지는 순간에는 아, 좀 빠졌는데? 라는 느낌이었는데 오히려 결과가 더 좋았다. 거의 가슴팍을 지나는 높은 속구였는데 방망이가 나와준 것이다.

확실히 손에 힘이 좀 빠지긴 빠졌다.

로케이션이 영 별로다. 커브도 한 번 점검해봤는데 낙폭이 좀 적었다. 쥐는 힘이 줄어서 회전수가 줄어든 탓이다.

만약 커브 단독이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161km/h라는 압박감이 있으니까 브레이킹볼이 좀 똥같이 들어가도 통한다.

세 번째.

볼카운트 0-2.

찬민이 형이 자세를 잡았다.

결정했다.

공격적으로 가겠다.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잘 통하던 게 있으면 그걸 믿고 가야 한다. 괜히 공이 조금 안 좋아진 것 같다는 불안한 마음에 패턴을 바꾸는 건 좋지 않다. 어차피 점수는 7:0. 만약 통하지 않는다면 그때 바꿔도 늦지 않다.

가장 빠른 공.

이번에도 100마일짜리 공을 던진다는 느낌으로 강하게 공을 뿌렸다.

‘아······.’

근데 조금 전에 100마일짜리 던졌을 때 공이 너무 떴던 것을 의식했던 탓일까? 낮게 깔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너무 낮게 깔렸다. 심지어 악력이 떨어져서 공의 상승 무브먼트도 좀 떨어지는 상황.

-부웅!!!!

“스트라잌!! 아웃!!!”

근데 그런 공을 향해 찬민이 형은 힘차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공이 좀 가라앉지 않았더라면 아슬아슬하게 존에 걸치는 수준일 수도 있었을 테니까. 라는 말로도 다 설명이 되지 않는 아주 힘 있는 스윙이었다. 마치 내가 정면승부 해올 것을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매우 다행이었다. 공이 빠지지 않았더라면 사고가 날 뻔했다. 아까 이주혁의 수비도 그렇고 오늘 여러모로 운이 좀 따랐다.

전광판에 찍힌 숫자는 159.6km/h.

여전히 빠른 구속이었지만 확실히 몸에 힘이 좀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실감이 됐다.

하지만 그럼 실감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세 번째 타자까지 무사히 내야 땅볼로 잡아내면서 삼자범퇴.

이로써 7이닝 무실점.

이제 남은 것은 고작 2이닝 뿐이었다.

***

“어떻게 할까?”

“아무래도 기록이 걸려 있으니까 내리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고. 다음 등판 간격이나 출장을 조금 조절하시는 것이······.”

“근데 지금 선발, 휴식, 일루수, 일루수, 지명타자 루틴을 잘 돌리고 있었는데 괜히 이거 흐트러질까 봐 그게 또 걱정이야.”

“어차피 중간중간 휴식일 때문에 완전히 그렇게 돌아간 것도 아니고. 충분히 적응 가능할 겁니다. 게다가 상황 봐서 몸 상태 좋으면 그냥 로테이션 돌리던 거 그대로 돌려도 괜찮을 테니까요. 이번에는 월요일 휴식일도 하루 껴있잖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덕아웃의 김대철 감독도 161.1km/h라는 구속이 찍혔을 때는 눈을 비비고 전광판을 다시 봤다.

여기서 대뜸 100마일이라니.

하지만 그 이후 이어진 피칭에서 특히 3번 타자를 상대로 구속이 157~158정도를 오가는 것을 보고 ‘아, 얘가 지치긴 지쳤구나.’하는 것을 실감했다. 아마 장찬민을 상대로 161을 던졌던 것은 그 나름대로 최대 고비를 넘기기 위한 쥐어짜냄 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제 다음 이닝만 버티면 아예 하위 타순이니까요.”

“결국 8회가 문제로군······.”

“그래도 점수가 7점이나 차이가 나니까 얻어맞으면 그때 바꾸더라도 늦지 않을 겁니다. 뭐 누군가야 혹사다 뭐다 떠들 테지만, 또 내리면 내리는 대로 기록 작성 중인데 내렸다고 떠들 테니 제 생각에는 이대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직전 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던 강희찬은 이번에도 또 마운드에 올라왔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선발을 뛰었던 선수였던 만큼 멀티 이닝을 뛰는 감각도 아직 살아 있었기에 브레이브스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오늘 경기는 사실상 패전을 각오해야 하는 경기다. 이제 공격 두 번 남은 상황에서 7점······. 심지어 노히트를 기록 중인 투수를 상대로 7점은 쉽지 않은 숫자였으니까.

[자, 마운드에 강희찬 선수가 올라옵니다. 직전 이닝 안타 하나만을 내주며 무사히 이닝을 마무리 했던 강희찬. 특히 주목할만한 부분은 최수원에게 외야 플라이를 유도했던 피칭이었죠?]

[네, 공을 두들겨 맞은 직후 보였던 그 의미심장한 미소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신인의 패기를 노련함으로 잡아내는 장면이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이 되는군요.]

[제가 볼 때도 그 타석은 앞으로도 많은 팀에서 참고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신인이라 데이터가 부족한 만큼 저런 타석의 정보 하나하나가 중요하거든요.]

해설자와 캐스터가 강희찬 본인이 들으면 어처구니가 없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홈런 두들겨 맞은 줄 알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는데 그게 외야 플라이를 유도하고 지은 의미심장한 미소라니.

다행히 타순은 6번부터 시작되는 하위 타선.

그래, 1이닝만 깔끔하게 더 막고 집에 들어가자. 갈 때는 치킨도 두 마리 사 들고 가자. 옛날에는 한 마리면 충분했는데 요즘 애들 먹성이 좋아져서 한 마리로는 부족하다. 치즈볼도 세 개씩은 먹을 수 있게 추가해야지.

-딱!!!

[쳤습니다!! 사울 로페즈!! 오늘 경기 첫 안타!!! 1루를 지나 2루까지 도착합니다!!]

수비 요정.

10개 구단 타자 용병 가운데 가장 부실한 빠따의 사나이 사울 로페즈가 2루타를 하나 기록했다.

순식간에 강희찬의 등에 주르륵 땀이 흘렀다.

어쩌지?

1루 채우고 병살 유도?

아니. 하지만 어차피 다음 타자는 이주혁이다. 2할짜리 똑딱이.

과감하게 승부를 가겠다.

-딱!!!

[이주혁!! 1, 2루 간을 뚫어내는 강한 안타!! 순식간에 2루 주자 3루로!!]

치킨 두 마리에 치즈볼을 꿈꾸던 소박한 가장이 쭉쭉 추가점을 내주고 무너졌다.

***

어우······.

죽을 것같이 힘들다.

이게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피칭이 단순히 어깨를 많이 쓰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사실 여긴 부하가 걸리는 위치에 가깝고 진짜 피곤할 정도로 혹사당하는 근육은 전완, 그리고 하체 쪽이다.

그리고 방금 8회 초 공격에서 나는 안그래도 피곤하던 하체를 한 번 더 털렸다.

하필 2루 타성 타구를 친 덕분에 정말 열심히 2루까지 달렸고, 이후 터진 안타에 또 3루까지 열심히 뛰었다.

게다가 그렇게 뛰고 점수라도 냈으면 힘이라도 좀 덜 빠졌을 텐데 규만 선배가 우익수 앞 땅볼을 하나 기록하는 바람에 홈까지 열심히 뛰고 무득점으로 끝나버렸다.

내셔널리그도 괜히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한 게 아니구나. 이거 투수가 타자까지 뛰는 거 진짜 오질나게 힘들구나. 하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투타겸업의 괴물들은 이짓을 1년 내내 하면서 투수와 타자 양쪽 모두 정상급으로 뛰었다는 건데 진짜 야구 실력을 떠나서 체력적으로 괴물이 되야 가능하겠다 싶은 느낌이다.

아무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8회 말에도 투수교체 없이 경기가 감행됐기에 또 마운드에 섰다. 투구 수가 조금 적기는 하지만 그래도 체력을 생각하면 슬슬 교체해줄 때가 된 것 같은데······. 뭐, 나야 이렇게 점수가 넉넉할 때 체력적으로 부치는 상황을 미리 경험해본다는 의미에서 나쁠 건 없다.

4번부터 시작하는 브레이브스의 타선.

예전이었다면 4번 타자는 팀에서 가장 강력한 타자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특히나 브레이브스처럼 2번에 가장 강한 타자를 배치하는 팀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건 그러니까 옛날로 치자면 5번 타자다.

-부웅!!!

살벌하게 돌아가는 방망이가 사뭇 위협적이다.

“스트라잌!!!”

초구 체인지업.

구속이 136.1km/h가 찍혔다.

확실히 힘이 빠지긴 빠졌다. 속구도 지금 이를 악물고 던져서 그렇지 그냥 던지면 한 3km/h 정도는 빠진다는 뜻이다.

다리를 몇 차례 가볍게 털었다.

어우······. 하체 운동 빡세게 몇 세트 털어준 후에 5분 정도 쉬어도 완전히 회복까지는 안 되는 것 같은 그 묵직한 감각이다.

느낌이 온다.

지금까지는 선발로 뛰고 다음 날 쉬는 거 적당히 쉬어도 됐는데 내일은 정말 치열하게 쉬어야 할 것 같다.

아무튼 내일 일은 내일 일이고.

지금은 눈앞의 타자에게 집중할 시간이었다.

바깥으로 빠지는 속구.

아······. 내 머릿 속에서는 바깥으로 좀 걸치는 공이었는데 현실에서는 정말 복판에 대놓고 쳐볼 테면 쳐보라 하는 공이 튀어나왔다.

-딱!!!

큼지막한 타구.

맞는 순간 알았다. 아······. 이건 코스도 나쁘지 않고, 각만 조금 더 컸으면 홈런도 가능했을 타구다. 그래도 다행히 공이 좀 가라앉아서 타구 각이 20도가 좀 못 되는 것 같다. 물론 빅리그 가면 저런 타구각으로도 담장 넘기는 괴물들이 종종 있지만 아무래도 오늘 브레이브스의 4번 타자는 거기까진 아니었다.

[이주혁!!! 달립니다!!]

와······.

등을 돌려 타구를 좀 보려는데 그보다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미친 듯이 달리는 이주혁이었다.

뭐지?

아, 물론 원래 이주혁이 뜀박질 하나는 정말 잘하기는 한다. 문제는 뜀박질‘만’ 잘해서 공이랑 상관없이 막 뛰어다니는 스타일이라는 점이다. 근데 지금 뭔가 얼추 타구의 방향과 뛰는 방향이 일치한다.

[뛰었습니다!!]

그리고도 모자란 약 1미터. 이주혁이 몸을 날렸다.

슬라이딩 캐치.

솔직히 말해서 보통 이주혁이 저런 장면을 보여주면 단타가 2루타가 되고 2루타가 3루타. 혹은 인사이드 파크 홈런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잡았습니다!! 이주혁!! 놀라운 수비!! 이주혁이 7회에 이어 또 한 번 최수원의 기록을 지켜냅니다.]

이주혁이 글러브에서 공을 뽑아 손을 번쩍 들었다.

와······. 쟤 오늘 뭐지? 무슨 날인가? 호수비에 안타에 또 호수비를?

저 필사적인 수비를 보고 있자니 이거 정말 경기 끝나고 집에 데려가서 아버지가 준비해두신 갈비찜이라도 한 끼 먹여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11:0

등을 돌린 김에 외야의 전광판을 보니 마음이 든든하다.

그래, 이 든든한 상태로 다음 타자를 준비하자.

다시 등을 돌려 피칭을 준비하려는데······.

잠깐만.

뭔가 좀 이상한 게 보인 것 같다?

H

0

???

어······.

어?

노히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