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143화 (143/305)

143화. 강속구(5)

“아, 미친. 내가 최수원 거르고 노형욱 할 때부터 알아봤다. 신인을 거르고 110억짜리 타자. 그것도 직전 타석에서 홈런 치고 타격감 절정으로 올라오는 애를 상대한다고? 어휴, 진짜.”

“아니, 근데 최수원은 솔직히 거를만했지. 얘 지금 홈런 페이스를 좀 봐. 얘보다 홈런 많이 친 거 지금까지 딱 다섯이야.”

“엥? 뭔 개소리야. 최수원 지금 홈런 1위 아니야?”

“우리 팀부터 돌핀스, 마린스, 블레이즈, 재규어스까지 다섯 팀.”

“미친······, 갑자기 최수원 거르고 노형욱을 이해하게 되네. 저 새끼 대체 뭐야? 그래도 우리 팀은 다행이네. 최수원보다는 홈런 많이 쳐서.”

“근데 오늘 경기 최수원이 홈런 두 방만 더 치면 우리 팀이랑도 동률이야.”

“······.”

브레이브스의 팬들은 지금 상황에 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주고받을수록 점점 더 어처구니가 없어짐을 느꼈다.

분명 최수원 거르고 노형욱에 대하여 성토를 하고 싶었는데 이건 어째 그 순간에는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는 것으로 귀결이 된다.

“아니, 그러면 1점 내주더라도 노형욱까지 거르고 이규만 병살로 끝내야지. 규만이 병살타 잘 치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전 세계가 다 알잖아.”

“그래도 조창혁이니까 한 번 해본 거겠지.”

“하······. 6:0. 그냥 일어날까?”

“야, 이제 3회 말이다. 아직 우리 공격 일곱 번이나 남았어. 그리고 최수원이 타자로나 압도적이지. 투수로는 뭐······.”

“160?”

“그건 창혁이도 160인데 지금 꼬라지 봐라. 게다가 쟤 지난 경기에 5.1이닝 무실점으로 세탁해서 그렇지 첫 번째 등판에서는 5.2이닝 3실점이었어. 좀 기복도 있고. 그냥 딱 창혁이 스무살 즈음 수준이야. 게다가 마린스 불펜도 한명훈 빼면 형편없잖아.”

“하긴······. 그건 또 그렇지.”

-뻐엉!!!!

“스트라잌!! 아웃!!”

전광판에 새겨진 159.8km/h라는 숫자가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분명 우리 창혁이도 스무 살 때 딱 저만큼 했던 거 맞지?”

“스······, 스물한 살? 아니면 스물두 살?”

“이 도른자야!! 창혁이 스물두 살이면 완전히 터져서 7, 8이닝씩 1, 2실점 이내로 밥 먹듯이 해치울 때잖아!!”

***

뭔가 앞서 조창혁이 힘으로 윽박지르는 피칭을 봐서 그런가? 나도 괜히 비슷한 짓을 하게 된다. 근데 이게 신기한게 제법 잘 통했다.

-딱!!

물론 얻어 맞기도 한다.

하지만 이게 쉽게 정타로 연결되지를 않는다.

[1, 2루간으로 빠지는 빠른 타구!! 정지운!! 아······.]

[글러브에 맞고 굴절된 타구!! 바닥을 구릅니다만 정지운, 쉽게 잡아내지 못합니다.]

“세이프!!”

[그사이 주자는 1루에.]

[조금 아쉬운 수비였습니다. 사실 고척의 잔디가 인조잔디라서 타구 속도가 좀 빠르니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조금 더 빠르게 공을 주웠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네요.]

“아!! 미치겠네. 아니, 마린스는 내야수 없어? 뭐 저런 놈을 이루수에 올려놓는 거야. 우리 수원이 퍼펙트 깨졌잖아!!”

“아니, 지금이 몸개그 할 타이밍이야? 뻔히 바닥에 구르는 공을 왜 못 줍고 더듬는 건데.”

“하여간에 저 뺀질이 새끼. 맨날 서면 가서 술이나 마실 줄 알지. 하체 운동을 똑바로 안하니까 비틀대는 거 아니야.”

“지금 분위기 완전 좋았는데. 아······.”

경기장 곳곳에서 거친 욕설들이 터져 나왔다.

정지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냥 놓친 거라면 또 몰라도 글러브 맞고 바로 아래 떨어진 공을 한참이나 더듬었으니 아마 방송에 어지간히 추하게 나간 것은 물론이거니와 짤방으로 두고두고 조롱당하며 욕 먹을 장면이라는 것을 본인도 잘 알 것이다.

이해한다. 아니, 정말로.

솔직히 잔디만 따지면 내야수가 뛰기에 고척은 최악이다. 이건 브레이브스가 잔디에 돈을 안 쓴다기보다는 그냥 폐쇄식 돔구장의 태생적인 한계 탓으로 모든 프로 야구장 가운데 이 고척만 인조 잔디를 쓰는 탓이다. 요즘 인조잔디도 많이 좋아지긴 했는데 아무래도 사용이 좀 계속되면 천연잔디보다 확실히 떨어지는 걸 느낀다.

나도 시간을 거슬러 오기 전, 여기서 일루수로 뛰던 시절에 저거랑 비슷한 실수를 했던 적이 있다. 참고로 그 자료는 훗날 내가 메이저에서 일루수 불가 판정 받았을 때, ‘수비 이따위로 하니까 지명타자로밖에 못 뛰지.’라면서 나를 조롱하는 악플러들의 대표적인 짤방으로 사용됐다.

메이저에서 내가 MVP 물 먹을 때마다, ‘최수원 MVP를 못 따게 만든 결정적 수비.’라는 제목으로 나돌았었는데 아마 정지운도 지금 짤은 두고두고 사용될 것이다.

앞으로 당할 그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했기에 그냥 고개를 한 번 끄덕여줬다.

어쨌거나 기껏해야 원아웃에 주자 1루.

그냥 몸쪽 높은 코스로 빠른 공을 욱여 넣었······

아······.

좀 가운데로 몰렸다.

-딱!!!

[신희성 쳤습니다!! 하지만 많이 밀린 타구!! 유격수 정면!! 강라온 잡아서 2루에!! 정지운 가볍게 잡아 다시 1루로!! 1루에서!!]

“아웃!!!”

[더블 아웃!! 깔끔한 더블 아웃입니다!! 강라온의 좋은 수비. 순식간에 3회 말, 브레이브스의 공격이 종료됩니다.]

[와, 이렇게 되면 최수원 선수 고작 공 여섯 개로 3회를 끝낸 셈이 되는군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투구수가······.]

[와우, 스물일곱 개밖에 되지 않네요. 3회까지 삼진만 다섯 개를 잡았는데 투구수가 굉장히 적은데요?]

[아무래도 오늘 최수원 선수가 조금 공격적으로 피칭을 해서 그런 거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존 밖으로 나가는 공이 거의 없어요. 근데 구위가 워낙에 좋다 보니 내야 땅볼이나 뜬공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타석에서는 2타석 1타수 1안타 1홈런 1볼넷. 그리고 마운드에서는 3이닝 5탈삼진 무실점. 와······. 정말 제 입으로 말하고도 너무 터무니가 없네요.]

[자, 이제 4회 초. 다시 마린스의 공격. 경기가 계속됩니다.]

***

선발로 등판하여 6점을 내줬다.

어지간하면. 아니, 어지간하지 않더라도 강판을 당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브레이브스의 박감독은 조창혁을 내리지 않았다.

분명 조창혁은 인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어디 야구판에 그런 사람이 한둘이던가. 이 바닥에서 중요한 것은 인성이 아니다. 실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창혁은 믿을 수 있는 투수였다.

그 압도적인 투쟁심과 승부욕은 6점을 내준 상황에서 사그라들기는커녕 더 거세게 불타올랐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6점이나 내주기는 했지만, 그의 구위가 떨어졌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그냥 최수원이, 노형욱이 너무 잘 쳤을 뿐이다.

-뻐엉!!

“스트라잌!! 아웃!!”

159를 넘나드는 강력한 강속구가 마린스의 5번 타자 이규만을 꽁꽁 묶었다. 그가 4회 초 마린스의 공격 이닝을 삭제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6분.

덕아웃에 돌아가 잠깐 앉아 숨밖에 돌리지 못한 최수원이 다시 마운드에 올라왔다.

하지만 제대로 쉬지 못한 것은 조창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치 받은 것을 그대로 돌려주겠다는 양 빠른 템포로 최수원의 피칭이 이어졌다. 지난 두 경기와는 사뭇 다른 형태였다. 최수원은 압도적인 구위를 갖고 있었으며 피칭 타이밍도 상당히 빨랐다. 하지만 그 피칭이 파워피처의 그것이냐고 묻는다면 좀 애매했다.

오히려 마치 파워피처인 양 상대방을 속이고 은근슬쩍 너구리처럼 카운트를 따내고 커브로 헛스윙 삼진을 잡아내는 뭔가 산전수전 다 경험한 늙은 투수의 향기가 좀 났다.

하지만 오늘 경기는 조금 달랐다.

그야말로 칠 수 있으면 쳐봐라. 라는 막가파식 피칭. 그렇다고 또 마냥 속구만 의식하기에는 중간중간 들어오는 커브가 너무 위력적이었다. 게다가 이번 경기 딱 세 개밖에 안 던진 체인지업.

브레이브스의 박감독이 생각할 때 바로 이 체인지업이 문제였다.

막 엄청 위력적이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근데 그래서 더 문제다. 140 남짓한 체인지업은 분명 노리고 친다면 아주 쉽게 공략할 수 있는 공이다.

제대로 공략이 어려운 속구와 커브. 그리고 쉽게 공략할 수 있는 체인지업.

체인지업을 거의 던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타자들이 쉽게 그것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하는 이유다.

그리고 그것은 4회 말, 두 번째 타자로 올라간 브레이브스의 유격수 장찬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딱!!!

투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휘두른 공이 날카롭게 떨어지던 커브볼의 윗동을 두들겼다. 애초에 카운트가 저렇게 몰린 것 자체가 체인지업을 의식한 탓이었다.

크게 바닥을 찍고 투수 정면으로 향하는 타구.

마운드의 최수원이 제 자리에서 그 타구를 처리했다.

“와······. 반응속도 보소? 공 던지고 자세 제대로 잡기도 전에 저걸 그냥 잡아버리네.”

“아, 근데 저런 건 좀 위험한 거 아니냐? 저런 건 그냥 뒤에 내야수가 처리하게 내버려 두지. 저러다 괜히 다치면 어쩌려고······.”

결과적으로 4회와 5회가 삭제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5분.

다시 6회 초.

조창혁이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마운드로 올라갔다. 그의 시선이 힐끔 대기 타석으로 향했다.

거기에서 방망이를 쥐고 있는 타자는 다름아닌 최수원.

그는 대기타석에 섰음에도 불구하고 타격 연습에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바로 직전까지 무려 2이닝을 빠른 템포로 거의 쉬지도 못하고 공을 던졌다. 거기서 쉬지도 못하고 또 대기 타석에 섰다. 당장 조창혁 자신도 상당히 지친 상황이다. 최수원이라고 뭐 다를까.

타석에는 이정훈이 서 있었다.

오늘 경기 세 번째 타석. 앞선 타석에서 안타 하나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경계가 되는 타자는 아니었다. 지금 조창혁은 홈런을 세 방이나 맞았지만, 오히려 컨디션은 더 올라왔다는 느낌이었다.

초구.

낮게 깔린 몸쪽 속구.

-딱!!

이정훈이 초구를 그대로 후려쳤다.

여전히 구속은 괜찮았다. 158.4km/h

하지만 아무래도 100구에 가까운 공을 던진 영향인지 악력이 빠져서 공이 조금 떴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맞은 타구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2, 3루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가는 타구.

[이정훈!! 쳤습니다!!]

‘시발, 장찬민!! 밥값 좀 해봐!!’

조창혁의 마음속 외침을 듣기라도 한 것일까?

장찬민이 마치 전성기, 햄스트링이 완전히 나가기 전의 그때처럼 몸을 날렸다.

그리하여 타구가 바닥에 닿기 전.

그의 글러브가 한 발 먼저 타구를 받아냈다.

[장찬민!! 슈퍼캐치!! 장찬민이 선두타자 이정훈의 안타를 훔쳐냅니다!!]

[굉장히 수준 높은 투수전이 오가는 상황에서 이런 슈퍼 캐치. 분명히 경기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거든요. 브레이브스 비록 6점이나 뒤처진 상황입니다만 집중력이 아주 좋습니다. 좋은 수비 뒤에는 좋은 공격도 나오는 법이고. 오늘 경기 굉장히 흥미롭게 진행됩니다.]

타석에 최수원이 올라왔다.

조창혁이 잠시 모자를 벗고 자신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브레이브스의 덕아웃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차피 점수는 6:0.

주자는 없었고 앞선 타석에서 고의사구로 내보냈다가 노형욱에게 만루홈런을 허용했다. 무엇보다 그 홈런 이후 조창혁이 보여준 피칭이 너무 좋았다.

마운드의 조창혁이 공을 준비했다.

‘시발······.’

머릿속에 레퍼토리가 쭉 그려졌다.

그래, 인정한다. 신인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대단한 타자다. 그러니까 아직 완성도가 좀 부족해서 꺼내놓지 않았던 스플리터를 결정구로 써먹겠다.

일단 속구와 슬라이더로 카운트를 조금 잡고······.

-딱!!!

방망이를 휘두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최수원이 조창혁의 초구를 그대로 후려갈겼다.

“아······.”

그리고 자연스럽게 배트를 내던지고 1루를 향해 천천히 뛰어나갔다.

이것으로 경기장을 찾은 모든 이들이 알게 됐다.

3회 초. 최수원을 걸렀던 브레이브스 덕아웃의 선택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7:0.

그리하여 최수원이 브레이브스의 팀 홈런을 따라잡기까지 남은 개수는 단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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