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강속구(1)
브레이브스는 조금 특이한 팀이었다.
KBO는 태생적으로 정부에서 기획하여 만들어진 리그였던 만큼 모그룹이라고 하는 대기업집단에 대한 의존이 상당히 높았다. 당장 몇몇 구단들의 경우 사장, 심한 경우 단장까지도 모그룹의 은퇴하는 임원에 대한 마지막 자리 정도로 내려보낼 정도였고 거기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브레이브스만은 유일하게 구단 그 자체가 사업 주체로써 존재했는데 이는 마치 메이저리그의 구단들과 비슷해 보였지만, 그 내실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달랐다.
기본적으로 메이저리그 구단의 수익구조를 보면 가장 큰 수입은 역시 중계권료. 그리고 그다음은 입장료다. 브레이브스의 경우 가장 큰 수입은 스폰서비. 그리고 광고비. 그다음이 입장료 그리고 중계권료다.
어쩔 수 없다. 미국과 한국. 양국 경제의 규모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MLB와 KBO의 객단가는 제법 크게 차이가 난다. 중계권료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브레이브스의 수입구조는 결국 메인 스폰서비용을 모기업에서 받느냐, 아니면 스폰서를 그때그때 모집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적자를 꾸준히 보더라도 모기업에서 결국 보전해주는 다른 구단들과 달리 브레이브스는 그 자체로 흑자를 봐야만 하는 ‘사업체’였다. 그리고 그들은 놀랍게도 그 ‘사업체’로서 구단을 벌써 십수 년째 훌륭하게 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포스팅은 적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까지를 벌어들이는 쏠쏠한 사업이었다. 몇몇은 그것을 선수팔이라고 욕했지만 나는 굳이 그것을 욕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거나 정해진 규칙 이내에서 행하는 일이다. 더군다나 당사자인 나는 그걸로 이득을 많이 봤다.
근데 또 여기서 신기한점은 그렇게 지속적인 선수 유출로 팀이 약한가 하면 우습게도 또 그렇지 않다. 실제로 팀이 좀 사람 같아진 2013년 이후로 작년 2026년까지 14시즌 동안 브레이브스가 가을 야구 진출에 실패한 것은 고작 두 번에 불과하다. 물론 그 와중에 우승은 고작 한 번 뿐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이건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 포스트시즌에 꾸준히 진출하는 응원할 맛이 나는, 그리고 스폰서가 될 만한 가치가 있는 팀을 무려 14년이나 유지했다는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참 많은 사람이 궁금해한다.
아니, 쟤들은 저렇게 선수 팔아재껴대는데 왜 계속 상위권인거지? 그리고 쟤들은 왜 계속 지속적으로 ‘슈퍼 스타’를 배출하는 걸까?
내가 직접 뛰어본 입장에서 말해보자면 그게 가능한 이유는 모그룹의 낙하산이 없다는 점은 생각보다 크다. 얘들은 어쨌든 이겨야 하는 진짜 절박한 이유가 있는 구단이다. 그렇기에 구단 자체가 그런 선수를 육성하기 위해서 정말 ‘최선’을 다한다.
게다가 그런 선수를 키워본 매뉴얼을 갖춘 코치와 프런트가 있고 또한 그런 선수로 자라날 수 있는 문화와 노하우가 선수단에 공유된다. 게다가 위에 슈퍼스타가 금방금방 빠져버리니 1군에 자리도 좀 쉽게 난다. 괜히 내가 타자로 전향하고 얼마 안됐는데 1군 출장을 보장받고 꾸준하게 실전 경험을 쌓은 게 아니다.
금요일 저녁
17,000석이 조금 못 되는 규모의 고척 스카이돔.
대한민국 최초의 돔구장에 사람들이 가득 찼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워낙에 막장으로 지어진 건물인 탓에 시야가 제한되는 좌석도 많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좌석도 매우 많았다. 이렇듯 고척에 자주 와본 관객이라면 설사 여기서 한국 시리즈가 열린다고 해도 절대 구매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좌석들까지 모조리 팔린 것이다.
저쪽에서 유흥파의 거두인 이정훈과 그 후배 정지운이 잡담을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여기가 고척인지 사직인지 모르겠네.”
“에이, 선배님. 어떻게 그걸 모릅니까. 딱 봐도 천장 막힌 게 고척이지.”
-딱!!
이정훈이 멍청한 소리를 하는 정지운의 머리통을 두들겼다.
“인마, 지금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좀 봐라. 저기 온통 마린스 유니폼 입은 팬들로 가득한 거.”
“아······.”
“확실히 스윕 한 게 크긴 큰가보다.”
“글쎄요. 그것보다는 그냥 오늘 수원이 등판이라 그런 거 아닐까요? 걔 요즘 워낙 잘 하니까요.,”
“그럴지도······.”
“그나저나 선배님. 오늘 오래간만에 불금에 서울인데. 어떻게 저녁에 자리 한 번 마련 합니까?”
“아니, 난 됐다.”
“네? 무슨 약속이라도 있으신 거예요?”
“약속은 무슨. 내가 그냥 서울이랑 좀 잘 안 맞아서 그래.”
“선배님. 저 오늘 간만에 스타팅인데······. 기념주 빠지실 거에요 진짜?”
“어, 그거 기념 너 많이 해라. 난 오늘은 좀 쉬려니까.”
이정훈이 멋쩍은 표정으로 자신의 턱을 긁적였다.
그러니까 지난 피닉스와의 경기에서 스윕승을 달성하고 올라오는 길에 버스에서, 그리고 올라온 이후 숙소에서도 이정훈과는 제법 깊은 대화를 나눴었다.
그 대화를 통해 박은진의 데뷔라는 예상치 못한 정보도 얻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이정훈이 나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조금 털어놨다는 점이었다.
뭐, 여기서 사내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일일이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다만 사람을 움직이는 세 가지 욕구인 존재와 관계 그리고 성장 가운데서 녀석은 관계와 성장이라는 두 가지가 상당히 부족했으며 심지어 자신도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고백은 좀 인상 깊었다.
그리고 나와의 대화가 녀석에게 제법 많은 의미를 안겨주었다는 것 역시도.
“술도 안 마시고 이런 이야기 하려니까 참 민망하네. 하여간 쓸데없이 어려서는. 넌 나중에 생일 지나면 꼭 와라. 내가 FA 된 기념으로 샀던 발렌타인 40년 산. 원래는 다음에 두 번째 FA 때 먹으려고 아껴놨었는데 그거 딸 테니까.”
그렇게 이정훈은 멋쩍은 얼굴로 딴 곳을 쳐다보면서 내일 선발 등판인데 늦게까지 붙잡아서 미안하다며 자기 방으로 사라졌었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말해놓고 밤에 나가서 술 처마시고 왔으면 좀 짜증 났을 텐데, 대충하는 짓을 보니 적어도 오늘은 나의 든든한 도우미가 돼볼 생각인 듯싶다.
그래. 솔직히 내가 이번 시즌에 홈런만 무려 10개를 쳤는데 심지어 만루 홈런도 하나 있는데 타점이 아직 21타점인 건 좀 심했지.
[마린스 대 브레이브스. 브레이브스 대 마린스의 시리즈 첫 경기. 여기는 고척, 고척 스카이 돔입니다.]
[자, 오늘 브레이브스의 선발은 브레이브스의 에이스 조창혁 선수. 시즌 세 번째 경기입니다. 본래 지지난 경기에 등판이 예고되어 있었는데 목에 담이 오는 바람에 등판 일정이 밀렸습니다.]
[그를 상대하는 마린스의 선발은 최수원 선수. 마찬가지로 시즌 세 번째 등판입니다.]
[첫 번째 등판에서는 무실점으로 노디시전. 그리고 지난 두 번째 등판 경기에서는 5.2이닝 3실점으로 승리.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점이 지난 두 번째 등판에서 혼자 무려 3홈런을 쳐내며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점입니다. 투타겸업인데 정말 혼자 야구를 다했다는 느낌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과연 오늘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정말 기대가 되는군요.]
[맞습니다. 사실 그런 기대를 하는 게 저희만은 아닌 것 같은 것이 지금 고척 스카이돔에 정말 많은 관객이 찾아 주셨어요. 얼핏 봐서는 빈 자리가 아예 보이질 않습니다.]
“야, 여기 뭐냐?”
“그러게······. 너 혹시 시야 방해석 산 거냐?”
“어, 자리 없어서······.”
“아, 미친. 경고 있었을 거 아니야. 싼 게 비지떡이라고 그냥 싼 자리 산 거 아니야?”
“아니야. 경고가 있긴 있었는데······. 그래도 가격은 똑같길래 이럴 줄 몰랐지. 애초에 내야쪽은 자리가 이것밖에 안 남았었다고.”
“하긴······. 근데 아무리 그래도 야구장에서 홈이랑 1, 3루가 안 보이면 이건 선 넘었지······.”
“야, 그래도 이쪽 자리는 투수랑 1, 3루까지는 보이네. 홈만 안 보이고.”
“네가 잘못 산 거니까 네가 이쪽에 앉아라. 난 타석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수원이 공 던지는 건 봐야겠으니까.”
“미친자야. 이건 그냥 가서 항의하고 환불 받던지 자리 교환을 받아야지. 무슨 헛소리야.”
“그러면 네가 해보던가. 보니까 완전 전좌석 매진이라 그냥 집에 가라고 할 것 같은데. 이제 와서 그냥 부산으로 돌아가자고?”
“아······.”
거대한 벽이 시야를 완전히 가로막아 경기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자리까지 꽉 찬 경기장을 보고 있자니 와, 이 새끼들 진짜 마린스 팬들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제대로 호구 잡아서 알뜰하게 팔아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선두타자는 강라온.
서경준은 오늘 간만에 휴식이다. 덕분에 사울이 우익수로 올라가고 평소 사울이 보던 2루에 저기 내야 백업인 정지운이 들어갔다.
마운드에 조창혁이 신중한 표정으로 공을 준비했다.
1999년생으로 28세.
작년을 기준으로 외국인 용병까지 모두 합쳐 KBO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던 투수다. 물론 올해를 기준으로 하면 당연히 내가 조금 더 빠르다.
아무튼간 지금까지 KBO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나 커리어를 생각해보면 조창혁은 MLB에서 유의미하게 통할만 한 투수라고 평가받는다. 근데 그런 투수가 28세까지 왜 빅리그에 못 갔느냐? 심지어 나름 19살부터 1군에서 뛴 지라 올해로 벌써 10년 차인데. 그 이유가 참 인상적이다.
학폭.
그러니까 고등학교 시절에 후배에게 폭력을 저질렀다. 그것도 안병영처럼 어정쩡한 게 아니라 확실하게 후배를 후려 팼다. 덕분에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서 자격정지 3년 받았는데 이게 저만한 선수에게는 가벼운 처벌이 아닌 것이 대한체육회 주관의 국제경기에는 영구 출전정지다. 즉 국제대회 수상을 통해 병역 면제를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대한체육회가 주관하지 않는 WBC를 통해서는 또 도전해볼 수 있었다지만 여론도 여론이고 WBC가 아시안게임처럼 확정 병역 면제도 아닌 터라 결국 상무로 2년을 퓨처스 리그에서 뛰었다.
내가 브레이브스에 있던 시절에 그리 친한 편은 아니었다.
투수조와 야수조로 나뉜 탓에 딱히 접점도 없었고 저 인간이랑 생활한 것도 고작 1년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뭐, 가기 전에 팀에 돈 두둑하게 주고 간 덕분에 내 연봉 오른 건 좀 좋았다.
154.1km/h의 강속구.
제법 훌륭하게 로케이션 된 공이 홈플레이트를 갈랐다.
-부웅!!!
“스트라잌!!!”
타격은 사이클이다.
누군가 올라오는 사람이 있으면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강라온은 요즘 영 별로다. 게다가 타격이 좀 흐트러지니까 수비도 종종 실수가 나온다. 문제는 그렇게 타격이 흐트러지고 실수를 좀 해도 강라온은 여전히 팀에서 손에 꼽을만한 내야수라는 점이다. 대체할 인력이 없다. 내야 백업 멤버인 정지운이고 김훈이고 죄다 1할 따리들이다.
속구, 속구, 속구. 그리고 슬라이더.
-부웅!!
“스트라잌!! 아웃!!”
무려 146km/h나 나오는 예리한 슬라이더다. 타자의 몸쪽으로 집어넣을 만큼 커맨드도 괜찮다. 타자 입장에서는 확실히 까다로운 투수다.
이어지는 2번 타자는 무려 닷새째 금주 중인 이정훈.
그래, 솔직히 이 정도면 뭔가 보여줄 때도 됐다. 어제 그렇게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고 어? 술도 끊고 이랬으면 막 각성해서 나의 든든한 도우미가······.
-딱!!
아······.
마치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겠다는 듯 초구에 투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가는 내야 뜬공. 어제 그렇게 열변을 토하던 이정훈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본인도 좀 쪽팔려하는 것 같아서 나도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자, 타석에 오늘 경기 선발 투수이자 3번 타자인 최수원. 최수원 선수가 들어옵니다.]
조창혁의 얼굴이 딱딱했다.
홈플레이트 뒤편에 포수는 뭐라뭐라 떠들어댔다.
녀석이 크게 와인드업했다.
내가 알기로 저 녀석 호승심 하나는 최고 수준이다. 그리고 타자로서의 나를 의식함과 동시에 투수로서의 나도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마 초구는······.
가장 빠른 공.
거의 100마일에 가까운 하지만 100마일까지 딱 1마일 모자란 99마일. 159.3km/h의 강속구가 날아온 속도보다 아주 조금 빠르게 튕겨 나갔다.
-딱!!
세 번째 캣워크를 한참 지나 누가 봐도 홈런이 확실한 곳. 나의 타구가 67.59미터 높이의 천장을 두들겼다.
11홈런에 22타점.
작년의 타점왕이 117타점이었으니 산술적으로 타점왕까지 이제 홈런 48개만 더 치면 된다.
근데 말하고 보니까 왠지 타점왕······.
가능하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