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성공한 투수(1)
현대 야구 팬들에게 세이버메트릭스라는 단어는 이제 더 이상 복잡하고 머리 아픈 단어가 아니었다. 물론 2027년 현재에도 MLB에 비하면 KBO의 자료는 아직 멀었다. MLB의 구단들이 각자 생산하는 세부 스탯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KBO의 팬들이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MLB에서는 모두에게 제공되는 레퍼런스나 팬그래프 수준의 자료에도 터무니없이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MLB의 세이버메트릭스라고 어떻게 처음부터 완벽했을까. 한국의 세이버메트릭스 관련 정보들은 분명 발전하고 있었고 그 발전의 가운데는 스탯즈와 네버 두 개의 사이트가 있었다.
MLB를 대표하는 두 사이트가 베이스볼레퍼런스와 팬그래프인지라 각기 bWAR과 fWAR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한국 역시 각자 사이트의 이름을 따 sWAR과 nWAR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그 가운데 네버의 관리자인 동현은 오늘도 어제 경기의 결과를 업데이트하면서 그로 인해 변경된 스탯들을 확인했다. 애당초 이런 숫자들을 워낙에 좋아하는 동현이었기에 매우 만족스러운 덕업일치의 순간이었다.
“어?”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몇 차례 눈을 끔뻑끔뻑하던 그가 곧바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펼쳤다. 그 스마트폰 즐겨찾기의 최상단에 위치한 것은 다름 아닌 경쟁사 스탯즈의 홈페이지였다.
“최수원······. 최수원······. 최수원······. 아, 왜 이렇게 느려. 하여간 서버 증설 좀 하지. 좆소 티 내는 것도 아니고. 됐다!!”
제법 길게 느껴지는 로딩.
그 로딩의 끝에 마침내 최수원의 기록이 올라왔다. 5.2이닝 3실점 2자책이 추가됐고 4타수 4홈런이 추가된 것은 똑같았다. 당연히 그가 확인하고 싶던 숫자는 그 스탯을 기반으로 가공된 숫자였다.
“1.78?”
어제까지 최수원의 sWAR은 0.81. 그러니까 한 경기 만에 0.97이 올랐다. 어제 한 경기에서 최수원의 활약은 대체선수에 비해 0.97승을 더해줄만큼 압도적이었다는 의미다.
“스탯즈 투수 WAR이 RA(실점)기반으로 하니까 우리보다 1점 더 감했다고 치고······. 아니, 근데 그거 치고는 너무 높은데? 아, 잠깐만. 얘들 수비 보정치가 그러니까······.”
정확한 식이 공개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동현은 스탯 덕후로 수많은 스탯들을 역산하여 이미 스탯즈의 스탯 산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정도는 파악한 지 오래다.
“미친······. 그러니까 어제 경기에 외야수 출장했던 거 수비 스탯 보정을 넣은 거구나.”
투수로의 WAR은 네버쪽이 조금 더 높았고 타자로의 WAR은 스탯즈 쪽이 미세하게 더 높았다. 그리하여 네버에 올라간 오늘 최수원의 WAR은 무려 1.01.
최수원은 바로 어제 경기에서만 팀에 1승 이상을 더해줬다는 의미다. 이게 대체 가능한 숫자이긴 한 것일까? 그래, 이론적으로 가능은 하다. 하지만 보통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이론적으로 가능은 하다.’라는 말은 불가능의 완곡화법이나 다름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야구 관련 사이트에 떨어진 불가능의 현현.
당연히 야구에 관련된 커뮤니티들은 불타올랐다.
─코인붐은온다: WAR이라는 스탯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를 말해주는 증거임. 경기에 이겨도 1승인데 무슨 한 경기에 1승 이상의 가치가 가능?
─팥단장: ㅉㅉㅉ 멍청한 소리 하네. WAR이 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잖아. 저기 대체선수가 들어갔으면 무조건 경기 졌다는 뜻이야.
─코인붐은온다: 그러니까 그게 맥시멈이 1이어야 되는 거 아니냐는 소리 하는 거잖아.
─별다방미스터정: 최수원 얼마냐?
─팥단장: 당연히 팀에 다른 놈들이 억제기니까 1 이상도 가능하지. 던지고 치고 잡고 혼자 다 했잖아.
─84층살려조: 결국 마린스가 또 ‘마린스’했다는 말인가?
그래, 분명 타올랐다.
하지만 그 타오름의 정도는 뭐랄까? 동현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미미했다. 분명 지금 눈앞에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는데 어째서 이렇게 반응이 미미한 것일까?
차라리 한 경가 4연타석 홈런이 KBO 역대 세 번째 라느니, 세계적으로 4연타석 홈런은 몇 명이 있었고 만약 원정 경기라서 초 공격이었거나, 마린스가 조금만 더 잘해서 한 번 더 타석 기회가 있었다면 5연타석 홈런으로 세계 최초도 가능했을 거라느니 하는 별 것 아닌 이야기들이 더 뜨거웠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OPS가 1.2를 넘네 뭐네 하는 소리보다 4할 타자가 더 직관적이다. 기록 덕후들이 보는 야구와 평범한 사람들이 보는 야구는 그만한 차이가 존재했다.
하지만 직관적인 기록보다 그 기록을 분석하여 만들어낸 숫자에 집중하는 이는 동현만이 아니었다.
태평양 너머 야구의 본고장 미국.
“뭐? 한 경기 WAR이 1.01이라고? 그게 가능해?”
“5.2이닝 삼진 아홉 개에 볼넷 하나. 그리고 4타석 4타수 4안타 4홈런 오타니룰 없어서 외야수로 교체.”
“외야수면 중견수로 교체 되서 들어간 거야?”
“아니, 우익수로.”
“그러면 아무리 투타겸업이라도 이닝을 조금 더 먹던지 한타석 정도 더 소화해서 장타 쳐야 가능한 거 아니야?”
“KBO는 투고타저라서 작년 홈런왕이 37개야.”
“그러면 가능했겠네. 근데 KBO면 스탯에 노이즈가 좀 많지 않아?”
“그래도 거기도 호크아이 쓰고 있어.”
“장비야 그렇다지만 그 동네는 분석이 영 그렇잖아.”
“그래서 내가 빙엄턴 코치한테 데이터 부탁했어.”
“빙엄턴?”
“어, 3년 전에 제임스 콜이 거기 감독으로 있을 때 코치로 갔었잖아.”
“아······.”
그들은 확신했다. 언제가 될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시아의 리그에서 뛰는 저 어린 선수는 무조건 빅리그로 넘어온다. 그리고 그때가 됐을 때, 그들이 만들어두려는 자료는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저 어린 선수가 그들과 같은 편에 서게 될지, 혹은 반대편에 서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야, 알렉산더 맥도웰이 또 입 털었다.”
[알렉산더 맥도웰 ‘국제유망주계약은 근본부터 잘못된 정책. 최수원과 같은 선수는 진작에 빅리그로 왔어야······.’]
***
“와······, 최수원이 걔 완전 미쳤더라. 빠따가 무슨 혼자 메이저리거야. 병철아, 어떻게 생각하냐?”
커다란 덩치.
하지만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순박한 인상의 청년이 미트에 들어온 공을 뽑아 던지며 답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선배님한테는 안 될 겁니다.”
“안되기는. 형준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제이크 보어도 연타석 홈런 두들겨 맞았잖냐. 너도 작년에 제이크 보어 공 상대해봤잖아.”
“확실히 무섭긴 했죠.”
“어쭈? 말이랑 표정이랑 조금 다른 것 같다?”
“그야 제이크 보어가 아무리 무서워도 선배님보단 못하니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쯧, 하여간 능글맞기는. 작년에는 딱딱하게 굳어서 놀리는 맛이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그야 선배님이랑 몇 달을 계속 붙어있었으니까요.”
피닉스는 올해도 엉망진창이었다.
시즌이 시작되고 여덟 경기를 치르는 동안 고작 2승.
하지만 똥 덩어리 위에도 꽃은 피는 법이고, 하물며 피닉스 팬들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억지로 생산하는 데 이골이 난 사람들이었다. 하물며 이번에 그들이 바라보는 희망은 억지로 생산한 희망도 아니었다.
-딱!!!
작년 87경기에 출장하여 9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며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유망주가 올해는 여덟 번째 경기에서 벌써 두 번째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물론 옆 동네에 꼴찌를 경쟁하는 어느 팀에 한 경기 만에 홈런을 네 개씩 날려대는 괴물이 있는 바람에 조금 묻히는 감이 있었지만 사실 터무니 없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대단한 일이었다.
─와······. 진짜 정병철 거르고 백하민이라니. 진짜 우리 프런트는 작년 마린스 프런트한테 큰절해야 함.
그의 두 번째 홈런 기사에 달렸던 댓글이다. 참고로 그 날 백하민은 6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었다.
물론 아무리 여덟경기 만에 2홈런을 친 타자라고 해도 6이닝 무실점이면 비슷한 수준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명타자나 일루수의 2홈런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무려 포수 2홈런이다.
최근 몇 년동안 피닉스에게 포수란 무릇 공이라도 똑바로 받아 주면 감지덕지하는 포지션이었다. 아니, 사실 피닉스만이 아니다. 타율이 2할만 되도 리그 평균 수준. 재작년까지 피닉스의 주전 포수였던 가동민은 0.187/0.221/0.247을 기록했었다.
괜히 프로 1년 차였던 정병철이 하반기에 주전 포수 자리를 꿰찬 것이 아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포스팅으로 MLB에 건너가 재작년까지 무려 일곱 시즌을 뛰고 돌아온 피닉스의 전설적인 투수 임광형. 비록 미국생활 말년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고장난 팔꿈치 때문이었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수술과 재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작년 1년을 통째로 날렸지만, 그는 결국 부활에 성공했다. 이번 시즌 개막전 경기에 출장하여 8이닝 3실점. 삼진만 무려 13개. 그리고 두 번째 경기에서도 7이닝 1실점 14삼진. 그리고 지금까지 평균자책점은 0점.
다른 팀의 팬들이 평가하기를
‘전성기를 피닉스에서 낭비했던 투수가 낭비벽을 버리지 못하고 말년까지 피닉스에서 낭비하기 위해 돌아왔다.’
임광형이 그를 키워냈던 경기장의 마운드에 섰다.
데뷔 이후 8년. 그리고 메이저에서 7년과 1년의 재활. 도합 16년으로 강산이 한 번 반 정도는 변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경기장의 팬들은 변함이 없었다.
승리보다 패배가 익숙했지만, 여전히 경기장을 찾아와 목소리를 높였다.
저 일본의 구로다 히로키처럼 멋지게 돌아오고 싶었다.
아직 힘이 남았을 때 팀을 우승시킬 수 있는 투수가 되고 싶었다.
“그래도 나도 2년 계약 제의 정도는 걷어차고 온 거니까······.”
21세기를 통틀어 단 한 번도 부활한 적이 없는 피닉스의 에이스가 1992년 이후로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는 마린스의 타자를 향해 공을 뿌렸다.
***
[피닉스대 마린스. 마린스대 피닉스!! 여기는 대전입니다.]
[오늘 피닉스의 선발은 현재 피닉스에서 유일하게 승리를 챙긴 투수인 임광형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일곱 시즌 동안 무려 79승을 거둔 투수죠. 한국과 미국 기록을 합치면 무려 143승!! 과연 오늘 144번째 승리를 거둘 수 있을지!! 경기 시작됐습니다.]
-뻐엉!!
“스트라잌!!”
147.3km/h의 속구가 존을 꿰뚫었다.
보더라인에 절묘하게 걸친 공. 서경준이 혀를 내둘렀다.
‘저 선배 공은 여전히 까다롭네.’
[오늘 경기 어떻게 보십니까.]
[글쎄요. 사실 마린스와 피닉스는 최근, 아니 꽤 오랜 기간동안 하위권을 맴돈 팀들이거든요. 그 말인즉 양팀 모두 양질의 유망주를 꽤 오래 수급했다는 뜻이에요. 실제로 슬슬 터지는 유망주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고요. 저는 이번 시즌은 양 팀 모두 하위권을 탈출하지 않을까 예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리즈는 상당히 중요한 시리즈라고 봅니다.]
-딱!!
[서경준 쳤습니다!! 하지만 이루수 정면!! 1루 포스 아웃입니다.]
[임광형 선수 매우 좋은 공이었어요. 사실 피닉스는 오늘 경기는 꼭 잡아야 하는 경기거든요. 에이스인 임광형 선수를 4일 휴식 후에 등판을 시켰어요. 월요일이 휴식일인 걸 사용해서 등판을 하루 당긴 거거든요. 반면 마린스는 그대로 5선발인 최민혁 선수를 선발로 내놨고요. 1등마와 5등마의 싸움인 셈인데. 이건 어떻게든 1등마를 쓴 쪽에서 승리를 잡아와야죠.]
원아웃.
그리고 두번째 타석.
어제 술집에 가지 않고 12시에 잠을 잔 이정훈이 타석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