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데뷔전?(1)
프로야구선수.
야구를 시작한 어린이가 프로야구선수가 된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 보통 사람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보통 사람들의 경우에 빗대보자면 학업에 집중한 끝에 서울대에 합격하는 것에 비길만하다. 그렇다면 거기서 다시 1군에 올라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글쎄, 굳이 따져보자면 고시 1차 합격에 비길만하지 않을까?
조유진은 불과 1, 2년 전만 하더라도 자신이 이 정도로 성공하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종종 ‘상상’은 했다. 로또를 사는 사람이 1등을 상상하는 것처럼. 시험을 치는 수험생이 합격을 상상하는 것처럼. 그것은 분명 예상이 아닌 ‘공상’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지금 조유진은 프로의 1군 무대. 그것도 무려 개막전에 포수 마스크를 쓰고 앉아있다.
비록 그것이 순수한 자신의 야구 실력으로 이뤄낸 결과는 아니기는 했지만,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던가. 고시에 1차에 합격하는 애들이라고 죄다 실력만으로 합격할까? 어정쩡한 실력에 잘 찍어서 합격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시범경기 8푼 치고 개막전 스타팅 포수로 들어가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적어도 조유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저거 정말 괜찮겠어? 어째 폼이 점점 이상해지는 느낌인데?”
“딜튼 의견도 그렇고······. 실제로 성적도 꽤 차이가 나서요. 게다가 그 양코치 말로는 연습에서는 상당히 괜찮답니다. 이게 멘탈 문제니까 아무래도 1군 큰 무대에 좀 적응하면 점점 괜찮아질 것 같다고······.”
“아니, 1군 무대가 애들 적응하는 무대야?”
“그건 그렇지만 당장 딜튼도 그렇고······. 게다가 유진이가 8푼이라고는 해도 어차피 교철이도 어차피 1할 9푼이라······.”
일루로 슬렁슬렁 걸어 나가는 최수원이 눈에 들어왔다.
조유진 자신이 객관식을 잘 찍어 고시 1차에 합격한 얼치기라면 지금 저 1루 베이스에 서 있는 최수원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실력으로 죄다 100점을 맞고 수석합격이 예정된 천재나 다름없으리라.
그래, 저 녀석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실력을 갖춘 녀석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실력에 어울리는 오만함 역시 갖췄다.
녀석이 ‘선배’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자면 그야말로 안하무인 그 자체다. 선배를 대하는 자세라기보다는 거의 동생, 아니 애들을 대하는 것 같다.
물론 녀석도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다. 2학년이 막 됐을 무렵인가? 녀석을 질투하던 선배가 선을 확 넘었던 어느 순간에 태도가 싹 바뀌었다. 덕분에 중앙고 선배들 가운데 녀석을 마음에 들어 하는 건 이진우가 유일했다.
사실 동기 중에도 녀석을 좋아하는 애들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특별히 잘난 척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일을 마치 숨 쉬는 것처럼 해버리고 이게 왜 안돼? 라는 표정을 짓는 녀석을 좋아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뻐엉!!
조유진이 미트에 들어온 공을 3루의 노형욱에게 공을 던졌다. 그리고 그 공은 오늘 유격수로 출장한 강라온과 이루수로 출장한 사울 로페즈의 글러브를 거쳐 최수원의 미트에 틀어박혔다.
녀석이 한차례 씨익 웃더니 등 뒤편, 높은 펜스 너머에 벌써 입장해있는 팬들을 향해 공을 던졌다. 별 것 아니지만 쉽지 않다. 하는 짓만 보면 대체 저게 오늘 프로 데뷔전을 치르는 신인이 맞나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유진은 도저히 녀석을 미워할 수 없었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다. 그냥 녀석이 아무 이유도 없이 이상할 정도로 그에게 잘해줬기 때문이다. 심지어 조유진이 자기 입으로 안병영이 녀석에게 지랄하는 걸 그냥 내버려 뒀노라고 솔직하게 고백했음에도 그러했다.
그래, 녀석이 갑자기 변한 후로 약 2년.
조유진은 녀석에게 상당히 많은 도움을 받았다. 조유진 본인도 드래프트에서 마린스에 2라운드 전체 11번으로 입단할 수 있었던 것도 녀석의 공이 가장 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모두를 눈 아래로 깔아보고 그저 혼자만 잘났던 녀석이 어느 날 조유진에게 ‘부탁’을 했다. 그 순간 조유진은 그가 느끼던 매우 거대한 결핍이 충족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기만 하는 관계는 대등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친구란 대등한 관계에만 성립하는 단어이며 그렇기에 최수원과 조유진 자신은 친구일 수 없다는 것 역시.
그래, 사실이 어떻건 간에 적어도 조유진의 생각은 그러했다.
최수원이 그에게 우승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작년 중앙고가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최수원 본인의 활약만이 아닌 팀을 단속하고 단합시켰던 조유진 자신의 공로가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금 마린스에도 그런 힘이 필요하다고 말을 했다.
솔직히 여러모로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우승에 조유진 본인의 공이 있었다는 이야기야 뭐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작년의 조유진과 최수원은 팀의 최고참이었다. 그 말인즉 최수원은 그런 행동을 해도 되는 위치였고 조유진 자신은 그런 역할을 해도 되는 위치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기껏해야 막내. 그것도 인맥이고 학맥이고 개뿔도 없는 막내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유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뻐엉!!!
“스트라잌!!!”
개막전 딜튼 도일리의 초구가 미트를 꿰뚫었다.
154km/h의 속구였다.
***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KBO 프로야구 2027시즌이 시작됐습니다. 오늘 개막전 경기, 부산 마린스 대 서울 엘리츠. 서울 엘리츠 대 부산 마린스. 저는 오늘 중계를 맡은 캐스터 이주형입니다. 그리고 오늘 경기의 해설로는 박동식 위원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동식입니다.]
[위원님 오늘 경기 어떻게 보십니까.]
[글쎄요. 일단 서울 엘리츠 같은 경우 작년 3위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1위인 돌핀스와는 고작 3.5경기 차이로 정말 마지막까지 가열차게 추격을 했었죠. 반면 마린스 같은 경우는······.]
[돌핀스와는 34경기 차이였죠.]
[물론 작년의 기록이 올해도 무조건 이어지리라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KBO는 용병 투수의 성적이 굉장히 중요하고, 작년 엘리츠의 2선발로 마린스를 상대로 3승 무패. 1.66의 평자책을 자랑했던 디에고 로드리게스 선수가 이번에는 마린스의 용병으로 합류를 했거든요.]
[사실 참 의아한 일입니다. 바로 작년까지 엘리츠의 용병으로 뛰던 선수. 그것도 그만한 성적을 거둔 선수를 아무 조건 없이 풀어주다니 말이죠. 보통은 임의탈퇴를 걸텐데 말이죠.]
[그게 계약적으로 얽힌 부분이 조금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임탈이 아니더라도 보류권을 갖지 않나요?]
[아, 그 부분은 제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이게 보류권 같은 경우 결국 구단의 재량인데 엘리츠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풀어줬다고 합니다.]
─무적엘리츠: 프런트 미친 건가? 재계약 안 한 것도 빡치는데 저만한 선수를 그냥 풀어줬다고?
─우리금고에금시계가있다: 프런트 안 미쳤음. 저거 계약이 좀 까다롭게 얽혔는데 협상 끝에 구단에서 그냥 피닉스랑 마린스에 한정해서 보류권 행사 안 하기로 합의 본 거임.
─무적엘리츠: 아, 그런거면 인정.
─마린스해체해: 야, 인정하지 마라. 우리는 작년에 8위였고 피닉스는 꼴찌였는데 왜 같은 취급이냐?
─무적엘리츠: 아, 미안. 가을야구 못 가는 미미한 팀들까지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네.
─사직아재: 꼴리츠 새끼들 지들이 언제부터 가을야구 갔다고 어이가 없네?
─유광점퍼사나이: 마린스가 8년 사이에 꼴찌 4번 하는 동안 쭉?
개막전.
딜튼 도일리의 컨디션은 상당했다.
-딱!!
하지만 컨디션이 상당한 것은 딜튼 도일리만이 아니었다. 작년 서울 엘리츠가 리그 3위라는 호성적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압도적인 외국인 원투 펀치. 그리고 리그에서 가장 높은 타율의 타선 덕분이었다.
그리고 겨울 시즌. 주력 선수 가운데 둘이나 유출된 마린스와 달리 엘리츠는 내부 FA를 모두 단속하는 데 성공했다.
[사울 로페즈!! 따라가 보지만 조금 높았습니다. 안타!! 1회 초, 엘리츠의 2번 타자 강소구가 안타를 기록합니다.]
[원아웃 주자 1루 상황. 타석에 엘리츠의 3번 타자 안영환이 들어옵니다. 작년 0.311/0.379/0.447에 19홈런을 기록했던 안영환. 이번 겨울에 몸을 불려 장타력을 보강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이번 시범 경기에서 4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그 효과를 톡톡히 봤습니다만 과연 정규 시즌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1루.
“야.”
배팅장갑과 정강이 보호대를 풀고 도루 장갑을 손에 낀 강소구가 최수원에게 말을 걸어왔다.
지난 시범 경기들에서 수원은 통상적으로 신인이 해서는 안 될 행동을 종합 패키지로 저질렀다. 홈런을 친 직후 방망이를 내던지는 자세부터 홈에 돌아와 손을 들어올리는 세리머니까지.
그리고 지금 1루에 나와있는 강소구와 수원에게 홈런을 얻어맞았던 김새한과 동기였다. 비록 트레이드로 지금 팀은 달라졌지만 그래도 일년에 서너번은 같이 만나 술잔을 나누는 사이다. 당연히 지금 목소리에 실린 감정은 적의에 가까웠다. 그리고 수원 역시 그 선명한 적의를 완벽하게 캐치했다.
그리고 수원의 사전에 의하자면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고와질 가능성도 생기는 법이다.
“왜 부르는데요?”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왜 불렀냐고요.”
해요체의 요를 아주 조금 늦게, 그리고 작게 붙였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수원이 강소구의 말에서 풍기는 적의를 읽은 것처럼 강소구 역시 수원의 대답에 실린 선명한 반감을 읽었다.
뭐랄까? 네가 뭔데 초면에 반말이야? 라고 외치는 것 같달까?
“너 내가 진짜 존나 동생 같아서 진지하게 이야기해 주는데 조심해라. 이 바닥 좁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고 어?”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인데요?”
“너, 김새한 알지? 그리핀즈에 투수.”
“네.”
“너 걔한테 홈런치고 어떻게 했냐.”
“그게 그러니까······. 어?”
마운드의 딜튼이 1루를 힐끔 살폈다. 그리고 그 순간 최수원의 몸이 움찔했다. 그야말로 한순간의 타이밍.
‘견제?’
세 걸음을 떨어져 2루를 향해 살짝 몸을 기울이고 있던 강소구의 균형이 살짝 무너졌다. 하지만 견제가 아니었다.
-딱!!
빠른 타구.
그러나 늦었다. 균형이 무너진 강소구는 타격과 동시에 전력으로 2루로 달리지 못했다. 물론 시간으로 따지자면 그리 크지 않다. 0.1초? 어쩌면 그 미만.
하지만 주루 플레이에서 그 시간은 매우 큰 시간이었다.
유격수인 강라온이 빠르게 공을 캐치했다. 오늘 이루수로 출장한 용병 타자 사울 로페즈는 전천후 유틸리티로 일반적인 용병 타자들처럼 빠따가 불방망이는 아니었지만, 내외야 모두 수준급의 수비를 자랑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빠른 2루 커버에 이어 강라온이 토스해준 공을 맨손으로 잡아 준비 동작 없이 그대로 일루를 향해 뿌렸다.
출발이 약간 늦은 강소구가 수비라도 방해하기 위해 벤트 레그 슬라이딩의 다리를 조금 높였지만 전혀 소용없었다. 이미 공은 사울 로페즈의 손을 떠났고 사울 로페즈는 놀라운 운동능력으로 그 ‘약간’ 동업자 정신이 없었던 슬라이딩을 피해냈다.
물론 그 한 박자 빠른 동작에는 그만큼의 약점도 존재했다.
송구의 방향이 완벽하지 못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최수원의 긴 팔이 살짝 떨어진 송구를 완벽하게 받아냈다.
더블 아웃.
이루에 서서 엉덩이를 털어내는 강소구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다.
이제 2년만 더 뛰면 FA 자격까지 얻는 베테랑인 자신이 고작 1년 차 애송이의 역동작에 넘어가다니.
1루의 최수원이 그를 향해 입을 벙긋벙긋 움직였다. 거리가 좀 있어서인지 그 입모양이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네, 조심할게요.
혹은 아, 조심해야죠.
둘 중 어떤 말이었을까?
강소구는 어쩐지 저 건방진 신인이 뱉는 말은 전자가 아닌 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안이 까끌까끌했다.
-퉤
그리고 공수교대.
1회 말, 서울 엘리츠의 마운드에 제이크 보어가 올라왔다.
작년 최동원상의 수상자.
그는 최근 3년 KBO에서 가장 꾸준하게 최정상급의 활약을 보여준 투수로 이번 시즌 기본급만 무려 170만 달러를 수령한다.
그리고 170만 달러라는 거액에 어울리는 공이 마린스의 타자들을 농락했다.
-딱!!
선두타자 내야 땅볼.
-딱!!
두 번째 타자는 내야 뜬공.
절묘하게 타이밍에 비껴 맞은 공들을 엘리츠의 내야진이 능숙하게 처리했다.
그리고 세 번째.
최수원이 타석에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