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올해는 다르다(3)
최수원이 이를 꽉 깨물었다.
답은 나왔다.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법이다. 무슨 팀의 융화라느니, 우승을 위한 리더쉽이라느니 하는 개풀 뜯어 먹는 소리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조유진은 그에게 똥이라도 오래 묵히면 거름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묵힌 똥을 제대로 밭에 뿌릴 때 이야기다. 여기는 그냥 똥끼리 뭉쳐서 지들끼리 푹푹 썩어 이제는 독이 돼버렸다. 괜히 그런 놈들이랑 어울려서 좋을 것 없다. 그냥 최수원 본인 혼자 야구 잘해서 MVP 2회 타고 빠르게 탈출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거야 말로 최수원이 가장 잘 하는 일이었다.
[자, 7회, 마린스가 11:3으로 크게 앞서는 가운데 타석에는 또 다시 최수원 선수가 올라옵니다.]
[이번 시범 경기 가장 뜨거운 선수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난 겨울부터 가장 뜨거운 선수일겁니다. 20억짜리 계약부터 메이저리그 팀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놀라운 활약. 그리고 현재 다섯 경기에 출장해서 무려 다섯 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1경기 1홈런 페이스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KBO가 시범 경기 기록을 공식 집계하기 시작한 2002년 이후 2016년과 2022년에 한 번씩 시범 경기 6홈런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올 해 최수원 선수가 그 기록을 깨트릴지도 모르겠군요.]
[지금 페이스로 봐서는 거의 확정이라고 봐야겠죠. 헌데 최수원 선수 이전 6홈런을 기록했던 선수들이 조금 궁금하네요.]
[아, 아쉽게도 두 선수 모두 정규시즌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습니다.]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는게 어느 정도였었나요?]
[두 선수 다 1군에서 20경기, 70타석 정도를 소화했죠. 사실 시범 경기라는 것이 그렇거든요. 결국 연습 경기예요. 지금 나오는 투수들 보시면 슬라이더가 주특기인 선수가 커터를 시험해보고, 투심이 괜찮은 투수는 싱커를 시험해보는 겁니다. 겨울에 익힌 첸졉이 다른 선수들에게 얼마나 먹히나도 확인 하는 거고요. 그 과정에서 실투 아닌 실투는 잔뜩 나올 수밖에 없고, 그걸 보고 넘길 힘이 있는 타자는 결국 홈런 수가 늘어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결국 지금 시범경기의 투수들은 제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뭐 그런 말씀이신가요?]
[뭐, 굳이 그렇게까지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만. 아무튼 그런 영향도 없잖아 있다. 뭐 그런 뜻입니다.]
오늘 경기는 평일 시범 경기였다. 그러니 경기장에 자리가 제법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앉던 외야석에 나란히 앉아서 각자 스마트폰을 펼쳐 중계까지 완벽하게 세팅해둔 청년 둘이 이야기를 나눴다.
“아, 똥식이 저거 또 저러네. 하여간 쟨 싹수 보이는 마린스 유망주만 보면 못 뜯어먹어서 안달이라니까.”
“원래 사랑하던 사람이 돌아서면 더 무서운 거잖아. 똥식이 쟤도 노 피어 시절에 마린스 팬 됐던 애잖아. 한 20년 마린스 팬질 하다가 지친 거니까. 그냥 다 이해해주자.”
“이해는 개뿔. 35년째 사직구장 가는 우리 아빠도 있는데. 7년 전에 창원 블레이즈가 우승했을 때 아빠 친구분 중에 두 분이 거기로 갈아탔거든? 아빠 말로는 그분들 단톡방에서 강퇴당했다더라. 연을 끊었대.”
“스읍······. 그건 마지막까지 빨간약 안 먹고 버티는 사람들이 답답해서 그분들 쪽에서 연을 끊으신 게 아닐까?”
“지랄하네. 그렇게 말하는 새끼가 시범 경기까지 보러 따라오냐?”
“아니, 그거야 난 똥식이처럼 안티 마린스니까. 마린스를 응원하면 1년 대부분이 괴롭지만 마린스의 패배에 기뻐하기 시작하면 1년 대부분이 행복하다고.”
“암튼 올해 마린스는 다르다. 최수원 저거 싹수가 보여.”
“너 작년에는 백하민 싹수를 봤고, 재작년에는 최민혁 싹수를 봤잖아. 심지어 5년 전에는 이주혁 싹수를 보지 않았냐?”
“아니······. 백하민이고 최민혁이고 두고 봐라. 백퍼 터진다.”
“이주혁은?”
“아니, 걔는······.”
-딱!!
해설자들은 이야기했다.
지금 투수들은 여러 가지를 시험해보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간과하고 있었다.
그것은 타자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최수원은 KBO의 투수들을 이번 시즌 처음 상대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을(물론 엄밀히 말하면 처음은 아니었지만 무려 17년+2년만이다. 그쯤되면 그건 처음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타자와 투수의 싸움에서 생소함이 더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투수라는 것을 말이다.
최수원이 친 타구가 쭉쭉 뻗어나갔다.
외야로. 외야로. 그리하여 담장 너머로.
그렇게 날아간 야구공이 두 사내 사이에 놓여있던 삼겹살 그릇을 박살을 냈다.
산산이 흩날리는 삼겹살. 그리고 부서진 플라스틱 접시.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홈런볼. 두 사내가 동시에 손을 뻗었다.
“야, 잡았어!! 와. 미쳤네. 여기서 홈런공을 다 잡네.”
“야, 좋은 말로 할 때 공 내놔라.”
“뭔 헛소리야. 내가 주웠는데.”
“이 삼겹살 내가 산 거거든? 그리고 넌 어차피 마린스 안티에 최수원도 별로라며.”
“말이 그렇다는 거지. 어느 미친 안티가 1년에 경기 직관만 40번을 넘게 오냐.”
“야, 그러면 그때 네가 갖고 싶다던 그 로이스터 버블 헤드. 그거 너 줄게.”
의도치 않게 두 청년의 음식과 우정을 잠시 박살을 낸 최수원이 여유롭게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았다.
이걸로 12:3.
그리고 역대 시범 경기 최다홈런과 타이기록인 6호 홈런.
[와······. 이걸 또 넘겨버리네요.]
[방금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바깥쪽으로 살짝 빠지는 슬라이더였습니다. 물론 조금 몰린 감이 있긴 했습니다만, 보시면 공이 더 멀리 빠지기 전에 그러니까 공이 홈플레이트까지 도달하기도 전에. 여기 무릎보다 훨씬 앞선 곳에서 완벽하게 잡아당겨 버리거든요. 게다가 놀라운 건 아무리 이렇게 잡아당겼다고 해도 히팅 포인트가 완벽하지는 않았거든요. 만약 힘이 부족했으면 그냥 평범한 외야플라이였을 건데,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인데도 손목 힘이 아주 대단합니다.]
마린스 유망주는 최대한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실망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박동식 해설이 자신도 모르게 연달아 칭찬을 내뱉었다. 어쩔 수 없다. 방금 저 타격은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는 타격이었다.
[여섯 경기 가운데 다섯 경기에 출장해서 벌써 6홈런. 아직 남은 경기가 네 경기나 되는 걸 생각해보면······.]
뻔한 산술적인 계산.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뱉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시범 경기라고 해도 그게 된다고? 그건 홈런 레이스, 아니 타격 연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페이스다.
3루 베이스를 밟은 최수원이 마침내 홈으로 돌아와 가볍게 오른손을 치켜들고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가벼운 홈런 세리머니. 하지만 받아들이는 이의 입장에서는 가볍지 않았다. 물론 KBO가 MLB에 비해 이런 부분에서 조금 더 관대하다지만 그래도 연차가 쌓인 선수가 하는 것과 신인이 하는 것에는 온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퉤
마린스의 라이벌 팀은 어디인가.
물론 2027년인 지금에 와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꼽는 팀은 창원의 블레이즈다. 실제로 마린스에서 가장 과열되는 경기는 낙동강 시리즈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40대 중반 이상. 그러니까 90년대에 야구를 직접 봤던 이들을 대상으로 묻는다면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마린스와 마찬가지로 프로 원년에 창단되어 같은 영남지역을 연고로 하는 대구 그리핀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82년 창단 이후 무려 45년의 역사 속에서 두 팀은 참으로 많이 부딪혔다. 특히 마린스가 지금 꼴이 나기 전인 80년대와 90년대까지 그러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대구 그리핀즈는 광주 호크스에 이어 ‘왕조’라고 할만한 시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데 반하여 마린스는 ‘암흑기’라는 말로도 부족한 최악의 시기를 꾸준히 이어왔다. 다만 최근 프로야구의 흥행을 위한 라이벌전 가운데 클래식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마린스와 그리핀즈의 경기가 부각되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는 가끔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는 것을 역행하여 결과 때문에 원인이 만들어지는 일도 있는 법이다. 마린스와 그리핀즈 간에 클래식 시리즈가 만들어진 것은 프로야구의 흥행을 위함이었으나 그로 인하여 선수들 사이에 경쟁심이 생긴 것이 그와 같았다.
오늘 그리핀즈의 투수였던 김새한이 읊조렸다.
“저거 신인 새끼가 졸라 건방지네.”
안 그래도 가뜩이나 경기 안 풀리고 점수 차이도 이렇게 나는데 굳이 홈런으로 추가점이라니. 그래봐야 시범 경기인데. 게다가 홈런 쳤으면 조용히 들어갈 것이지 굳이 세리머니까지?
물론 그가 홀로 읊조렸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리핀즈는 봄의 마린스에게 연달아 두들겨 맞았고 결국 경기는 17:6. 마린스의 완승으로 끝났다.
[그저 압도!! 시범 경기 전승행진!! 무관의 마린스. 드디어 올해는 일을 낼까?]
[올해는 이 선수를 주목하라!! ‘최수원’ 4경기 남은 상황에서 시범경기 최다홈런!!]
***
“야, 역시 규만 선배더라.”
“어?”
“뭐가 ‘어?’야. 너 우승하고 싶다며.”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지난번에 나 그래서 데리고 간 거잖아. 사람들 분위기 파악하고 어떻게 하면 될지 생각해봐달라고.”
아니었다.
뭐, 쪼유 이 녀석이 적당히 사람 관계 잘 조율하니까 데리고 간 건 있지만 그런 거창한 것까지 바라지는 않았다.
“보니까 규만 선배도 좀 겉도는 느낌은 있는데 결국 그 선배가 코어는 코어더라고. 게다가 그 선배들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규만 선배는 뭐라고 해야 할까······. 좀 찌들은 최수원? 그런 느낌이 없잖아 있더라. 특히 젊었을 적에는 너 못지않게 성격 개 같······. 아무튼 그랬다더라. 그러니까 내가 볼 때는 규만 선배를 자극하는 게 최선일 것 같아. 게다가 딱 타이밍도 좋은 게 규만 선배도 은퇴 직전이잖냐. 커리어 내내 반지 하나 없는데 본인도 얼마나 끼고 은퇴하고 싶겠어. 안 그래?”
“글쎄······. 나도 모임 나가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 했었는데. 솔직히 모임 나가고 실망이 너무 커서. 야, 무슨 루저들끼리 모여서 진짜,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더라. 근데 그런 인간들이랑 어울리면서 대장 놀이하는 인간이라고 뭐 다를까?”
쪼유가 미간을 찌푸렸다.
“야, 말이 좀 심하다?”
“심하기는.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아무튼 나 그냥 내 야구나 할란다. 우승은 무슨. 어차피 이 팀은 글렀어.”
“도망치는 거냐?”
“어? 뭐라고?”
“그렇잖아. 우승은 못 할 것 같으니까 도망치는 거 아니야. 왜? 고등학교 때는 수준이 워낙에 떨어지니까 너 혼자 날뛰면 우승각 보여서 한 거고, 이번엔 답이 안 보이니까 그냥 너 기록이나 챙기게?”
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 야, 나 이제 신인이야. 신인이 자기 야구만 잘하면 됐지. 뭘 더 하라고. 이런 똥통에서.”
“지랄. 스프링캠프 첫 참석에 비즈니스 타는 신인이 어딨냐? 너 필요할 때만 신인이라고 헛소리하지 말고. 그렇게 야구하면 너 재밌겠냐? 어차피 할 거면 어? 발로 해도 클리어 확정인 게임 말고 스트레스 좀 받아 가면서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게임 클리어하는 게 더 재미지 않겠냐?”
잠시 한숨을 내쉰 쪼유가 말을 이어갔다.
“최수원 네가 그 자리에서 왜 짜증 났는지는 알겠어. 이해가 안 될 거야. 그러고 있는 게. 근데 야. 그게 보통 사람이야. 인생 불안하니까 뭉치는 거고, 어? 실패했을 때 보험 생각하는 거고. 너 진우 선배가 포기하고 수능 준비한 건 별말 안 했잖아. 그냥 이 사람들도 그런 거야.”
“보통 사람이라는 말로 그런 똥 덩어리들이랑 진우 선배랑 같은 급으로 취급하지 마. 진우 선배는 마지막 심지까지 다 태웠고, 얘들은 그래봤자 뭐하냐고 놀고 있는 애들이야.”
“그건 그냥 패배가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 거야. 이기고 성공하는 건 생소해서 그런거고. 진우 선배라고 달랐을까? 그 선배가 마지막까지 그럴 수 있었던 건 팀에 네가 있어서 가능했던 거야. 유종의 미에 도전해볼 만한 껀덕지가 있었으니까. 근데 이 팀에는 그런 게 없잖아. 그냥 그것 뿐이야.”
조유진의 말에는 분명 힘이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설득되지는 않았다.
“넌 지금 프로팀에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냐?”
“뭐, 말이 안 될 것도 없지. 아무튼 뭐 너한테 그 사람들 이해하라는 소리까진 안 할 테니까 우리 딱 작년 처럼만 하자.”
“작년처럼?”
“어, 넌 하던 대로 야구 졸라 잘하면서 그냥 네 맘에 드는 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내. 원래 투수는 자기 꼴리는 대로 던지는 거잖아. 근데 대신 내가 말하는 사람들을 마음에 들어 하도록 노력이나 해보라는 거야. 오케이?”
하지만 그래도 해볼 만한 가치는 있다고 느꼈다.
어쨌거나 쪼유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는 인간관계 조율을 가장 잘하는 녀석이었고 딱히 내가 피곤할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시범경기 9승 1패 압도적 1위 마린스!!’ 개막전, 승전고 울릴까?]
[최수원 8경기 출장 10홈런. 역대급 홈런왕의 탄생 예고?]
시즌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