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올해는 다르다(1)
─마린스해체해: 올해는 다르다!! 이거, 이거 또 지랄 났네.
─사직야가다: 왜? 그래도 ‘올해는 다른가?’가 아니라 ‘다르다!!’잖아. 그러면 가능성 있는 거 아님?
─기러기별똥별우영우해체해: 응, 아니야. 원래 봄린스는 양키스랑 붙어도 이김.
─크보9구단기원: 어디 양키스뿐이겠어? 맨유랑 축구로 붙어도 이길걸?
─마린스해체해: 대신 여름에는 고고불독스랑 붙어도 질걸?
─사직야가다: 고고불독스?
─마린스해체해: 고고불독스라고 우리 집 근처에 내 아들 다니는 주니어 클럽 있음.
시범 경기 첫 승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냉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 야구 출범 이후 시범 경기 1위만 13회에 정규시즌 우승 0회다. 이 정도면 봄철 시범 경기 성적 좀 잘 나왔다고 ‘기대’라는 것을 하는 사람의 지능을 의심해봐야 하는 수준이다.
출근하면 화장실에 똥부터 싸러 가는 오규환 씨가 단언했다.
“이번에는 진짜 좀 다른 듯.”
“야, 이 도른자야. 너 또 그 무슨 부산은행 사기 적금 넣고 왔냐?”
“어허, 사기 적금이라니. ‘마린스 가을 야구 정기 예·적금’이야.”
“그러니까 사기 적금이지. 너 그거 10년 넣으면서 이자 제대로 받은 거 딱 한 번이잖아. 처음 넣었던 2017년 그거.”
“아니지. 2022년에도 받았어.”
“엥? 마린스가 2022년에도 포시 나갔었다고?”
“아니, 그땐 상품이 40주년 기념이랑 비대면 채널 가입이 가을야구 진출이랑 우승만큼 추가 이자를 줘서······. 아무튼 이번에는 느낌이 달라. 너 지난 경기 봤냐?”
“너도 그 말이 벌써 10년째인 거 알지? 마린스 봄에 설레발 치느 게 어디 하루이틀이냐? 괜히 봄린스가 아니잖아.”
“야, 솔직히 봄린스 봄린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야. 시범 경기 1위 한 해에는 정규시즌 결과도 보통 좋았다고. 92년엔 우승도 했고, 13번 중에서 절반은 포스트시즌 나갔었어.”
“시범경기 1위만 13번을 했는데 그중 우승은 한 번에 5위 이내 들어간 게 고작 절반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봄린스 맞는 것 같은데.”
“······.”
***
“확실히 난 놈은 난 놈이에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서울 출신 놈을 굳이 키워줄 필요가······.”
“선배님. 1차 지명 그거 이제 부활 안 합니다.”
“2010년에도 그렇게 이야기 했었지. 하지만 결국 2014년에 부활 했잖아. 야구는 태생부터가 지역 밀착형이야. 어쩔 수가 없다고.”
“그건 그때 이야기죠. 22년에 1차 지명 사라지고 벌써 5년입니다. 대한민국 10대의 65%가 서울, 경기, 인천 삽니다. 그 비율은 점점 늘어나고 있고요. 부산 청소년 숫자가 이제 서울의 25%도 안 되고 경기도의 20%도 안되요. 심지어 인천보다 적고요. 지역 연고 이제 완전 끝났습니다.”
최정식 코치가 서경준의 말에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찼다.
“쯧, 아무리 그래도 걘 너무 건방지잖아. 개념도 없고.”
“요즘 세대들이 다 그렇죠.”
“요즘 세대라고 하기엔 경준이 너도 같은 Z세대잖아.”
“그렇죠 코치님은 M세대고요. 근데 요즘 그걸로 세대 구분하면 욕 오지게 먹습니다. 그리고 저도 이제 서른넷이에요. 솔직히 나이로 따지면 최수원보다 코치님이 저랑 더 가깝죠.”
“경준이 네가 벌써 서른넷이야?”
“그러게요. 제가 벌써 서른넷이네요.”
“시간 참 빠르네······. 진짜 규만이 밀어줘야 하네, 마네 하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서경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때는 진짜 엄격해서 1차만 쳐줬는데 규만 선배가 2차 1라운드라서 말이 많았다고요.”
“말도 마라. 진짜 장난 아니었어. 아마 그때 09년에 그 1차 지명 잠깐 사라진 거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었을 거야.”
“이번에도 비슷하게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1차만 쳐주던 게 그냥 부산, 경남 출신으로 두각 드러내면 다 쳐주는 거로 바뀐 것처럼. 뭐 지역 연고가 플러스가 될 수는 있어도 배타적으로 나가기엔 이제 시대 흐름이 무립니다. 괜히 이러다가 규만 선배나 저는 밀어주는 애들이 없어서 코치나 감독 같은것도 제대로 못하고 나가리 날 수도 있어요. 선배님도 아직 한 걸음 남으셨잖아요.”
“그건 그렇지······.”
잠깐의 고민.
최정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 그러면 이번 주말에 모임에 걔도 데리고 나와. 시대적 흐름이고 뭐고, 일단 밥이나 한 끼 하면서 좀 결정하자.”
“네!! 알겠습니다.”
***
“shit!!”
마운드에 선 딜튼 도일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워워, 딜튼 진정해.”
“진정? 저 망할 새끼 공 받는 꼬라지를 보면서 지금 진정이라고 말한 거야? 내가 그래서 스프링 캠프 때부터 분명하게 말했지. 저 새끼랑은 절대 호흡 못 맞춘다고.”
“어쩔 수 없잖아. 진웅이가 부상에서 돌아오려면 6주가 필요하다니까 딱 그것만 좀 참아봐.”
“아니!! 참고 지랄이고. 안 그래도 수비부터 다 지랄이라 미치겠는데 최소한 포수는 공은 받을 줄 아는 놈이 올라와야 하는 거 아니야? 무슨 내가 110마일짜리 공을 던지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96마일인데 이걸 이렇게 불안하게 잡는 게 말이 되냐고.”
“딜튼, 그건 네 공이 변화가 워낙 좋아서 그런 거잖아.”
“변화가 좋기는 개뿔. 갈레고 녀석이 들으면 올해 최고의 농담이라고 박장대소 할 소리로구만.”
“갈레고? 다비드 갈레고? 딜튼, 다비드 갈레고라면 현역 메이저 포수잖아. 기준을 빅리그로 두면 안 되지.”
“아무튼 난 저 머저리랑은 호흡 못 맞추겠으니까 감독에게 알아서 전해줘. 저 머저리를 계속 쓰느니 진지하게 차라리 저기 스완한테 보호대 입히고 앉히는 게 백 배쯤 나을 것 같으니까.”
“알았어. 알았으니까 좀 진정해. 감독님한테는 내가 말해볼테니까.”
황급히 올라간 통역과 딜튼이 한참을 떠들었다. 그 장면을 보니까 딜튼이 실패한 두 번째 이유가 생각이 났다.
딜튼 쟤 멘탈이 개복치다.
괜히 리그 평자책 4점대인 AAA에서 2점대 찍은 투수가 빅리그에 가서는 6점대 찍은 게 아니다.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흥에 겨워 공을 던지면 결과가 더 좋고, 조금만 나빠도 땅을 파고 들어간다.
아마 KBO에서도 마린스 말고 저기 수원 돌핀스나 인천 드래곤스에 갔으면 2점대 찍고 슈퍼 에이스 놀이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튼 저런 멘탈이 저 개똥같은 포수를 만났으니 폭발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감독님.”
“어, 뭐래?”
“그게 한교철 선수한테는 도저히 공을 못 던지겠다고······.”
마린스에는 총 세 명의 포수가 있다.
아, 물론 1군 한 번 제대로 못 밟아본 포수까지 하면 그보다 더 많지만 감독이 생각할 때 가용전력으로 분류할 수 있는 포수는 총 셋이라는 뜻이다.
첫 번째인 최진웅.
그래도 작년에 0.222/0.267/0.368이라는 포수치고는 상당히 괜찮은 타격을 보여준 선수다. 도루 저지와 블러킹에 조금 약점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사람 같이 공은 받는다. 당연히 첫 번째 옵션이지만 현재 허벅지쪽 내전근 파열과 고환의 붓기로 6주짜리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두 번째인 한교철.
첫 번째 옵션인 최진웅과 마찬가지로 타격에 재능이 있다. 그래도 2할 초반대 타율은 보여주고 풀시즌을 뛰게 하면 홈런도 10개 이상 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수비는 최진웅보다 심각하다.
그리고 마지막 옵션인 장재경.
얜 앞에 두 가지 옵션보다 수비는 훨씬 괜찮다. 근데 1군에서 통산 타율이 0.112다. 쉽지 않다. 심지어 놀랍게도 거기서 더 떨어질 구석이 있었는지 최근에는 더 부진해서 진짜 1군에 써먹으면 통산 타율 0할대를 찍을지도 모른다.
김대철 감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솔직히 정규 시즌이었다면 그래도 꾸역꾸역 장재경로 버티는 선택지를 택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지금은 시범 경기다.
“최 코치.”
“네.”
“조유진이 오늘 몸 좀 어때?”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 저쪽에서 애들 공 받아 주고 있는데 부를까요?”
“그래, 저리 가서 딜튼 공 좀 받아보라고 그래.”
“딜튼 공을요?”
“걔 빠른공 잘 받는다며.”
“네, 아무래도 고등학생 때 최수원이 던지는 157짜리 공을 거의 3년 내내 받았으니······. 근데 저 녀석 타격폼이 진짜 심각해서 그거 수정하기 전에 써먹는 건 좀 그런데요.”
“아니, 누가 주전 확정이래? 어차피 지금 시범 경기잖아. 그러니까 이것저것 시험해보는 거지.”
“네, 알겠습니다.”
사실 어제 최진웅의 부상만 아니었으면 오늘 딜튼이 공을 던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시범 경기는 이것저것 시험을 해보는 자리였고 딜튼은 굳이 급하게 시험할 이유가 없는 에이스였으니까.
하지만 최진웅이 6주 진단을 받았고 다른 포수들과 호흡을 시험해봐야 하는 상황. 스프링 캠프 시절에도 디에고 로드리게스는 한교철과도 무난하게 공을 주고받았었지만 딜튼은 그러지 못했었다.
“부르셨습니까. 감독님.”
“그래, 유진이. 너 빠른 공 잘 받는다며. 저기 가서 딜튼 공 좀 받아봐라.”
“네!!”
쪼유 녀석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눈치 하나는 빠른 녀석이다. 지금 이게 기회라는 것을 어찌 모를까.
-뻐엉!!
“굿볼!! 굿볼!!”
154km/h 내외의 속구.
아마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몸이 완전 올라오면 최고 158km/h까지도 올라가겠지만 아직은 거기까지다. 그리고 그 구속은 평소 내가 적당히 던지던 구속과 거의 비슷했다. 심지어 딜튼의 폼은 나보다 정직해서 공을 받기도 편할 것이다.
물론 딜튼의 공을 받는 데 어려운 부분도 있긴 했다.
“자자, 투심. 원 모어.”
149km/h 내외에서 형성되는 투심 패스트볼.
땅볼을 유도하는데 최적화된 구종으로 그가 7점대 평자책을 기록하고 KBO를 떠나야 했던 1등 공신이라 추측되는 볼이다. 아마 그의 개복치 같은 멘탈로는 땅볼이 연거푸 내야 안타가 되는 상황을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뻐엉!!
하지만 분명 그 위력 하나는 일품이었다.
KBO를 기준으로 150이면 충분히 강속구에 속하는데 투심이 거의 그 정도로 들어온다는 건 이건 어지간하면 정타를 맞추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훨씬 낫군. 아니, 비교하는 게 미안할 지경이야.”
딜튼 도일리가 자신의 공을 받아드는 여드름 빡빡 난 어린 포수를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사직에서 열린 두 번째 시범 경기.
딜튼은 3이닝 동안 1실점을 기록하며 무사히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어······. 음······.”
그리고 조유진의 타석을 바라보던 김대철 감독은 할 말을 잃었다.
“제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조유진 저 녀석 저거 타격폼 진짜 심각하다니까요.”
2타석 2타수 무안타
조유진의 타격폼이 KBO 팬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저거 왜 더 엉망이 된 거지?”
그것도 상당히 퇴화한 형태로.
***
“아니, 그게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조유진은 타격에 재능이 있다.
물론 세상에 재능 있는 놈이 대체 어떻게 타격을 그딴 폼으로 할 수 있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바꿔 말하자면 타격폼이 그따위인데 그만큼이나 타격을 하는 것 자체가 녀석의 재능을 증명한다.
심지어 이 녀석 연습에서 좀 정상적인 폼으로 방망이를 휘두르면 뻥뻥 아주 공을 잘 날린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녀석의 타격이 몇 달 사이에 망가진 이유였다.
“어휴, 이 멍청한 새끼. 너 타격폼 그걸 어떻게 뜯어고친 건데 코치가 몇 마디 한다고 홀랑 넘어가서 그렇게 망가트린다고?”
“아니, 망가트린 게 아니라 그냥 긴장해서 그런거라니까. 연습 경기할 때는 오히려 더 좋았어.”
“그래, 당연히 더 좋았겠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조유진은 타격에 재능이 있다.
그렇다면 이 녀석은 대체 뭐가 문제일까. 딜튼과 비슷하다. 이 녀석도 멘탈 문제다. 타격이 다 끝나지 않았음에도 1루를 보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마음의 병이 있는 것이다. 이건 마치 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갑자기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던지지 못하는 블래스 신드롬처럼 그냥 마음의 병이다.
뭐, 연습 경기에서는 그걸 어떻게든 의식하고 꾹 참아내서 상체를 극단적으로 숙인 장애인 같은 폼을 약간 완화함으로써 장타력을 올릴 수 있었겠지. 하지만 실전에서 그것도 공중파로 중계되는 1군 경기에서 그런 걸 의식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병이라니. 말이 좀 심하네.”
“아, 됐고. 너 주말에 약속 있냐? 아니다. 약속이 있어도 취소해라.”
“아니, 약속이야 없긴 한데. 갑자기 주말은 왜?”
“글쎄, 선배들이 밥 사준다더라. 그것도 엄청 비싼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