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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110화 (110/305)

110화. 봄린스(3)

[아!!]

경기를 중계하던 이명철이 탄성을 내질렀다. 남자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그 고통.

고환은 본래 내부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 장기가 효율적인 열 배출을 위하여 체외로 나와 있는 기관이다. 그런 만큼 뼈나 장기로 보호받지 못하는 주제에 복막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곳을 가격당했을 때 통증의 크기는 그야말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고통 가운데 손에 꼽을만하다.

[최진웅 선수 일단 퇴장합니다. 부디 큰 부상이 아니었어야 할 텐데요.]

[그래도 지금 느린 영상으로 보니 다행스럽게도 직격은 아니네요. 파울타구가 허벅지 깊숙한 곳을 때리고 튕기면서 다시 국부를 가격했습니다.]

[방금 구속이 154km/h였네요. 최진웅 선수. 뭐라고 해야할까······ 참, 운이 없었네요. 하필 마운드에 선 선수가 3월 첫 시범 경기 초구부터 154까지 던질 수 있는 투수였다니 말이죠.]

당연히 낭심보호대를 착용했지만 154km/h짜리 속구가 가진 파괴력은 막강했다. 근육이 많은 허벅지 같은 곳에 맞아도 실밥 자국까지 그대로 피멍이 든다.

그야말로 극심한 고통

잠시 경기가 중단됐다.

“지금 당장 병원으로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파울타구를 만든 타자도, 공을 던진 최수원도 살짝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경기 중에 생긴 일이고 고의성은 없다지만 남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고통, 그리고 그 결과의 무서움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일단 허벅지를 두들기고 다시 고환보호대를 두들긴터라 파열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자, 마린스는 부상당한 최진웅을 대신하여 한교철이 포수 마스크를 썼습니다.]

[한교철 선수 올해 벌써 스물아홉이죠? 4년 전에 97경기에 출장해서 2할 4푼에 11홈런을 기록했던 적이 있는데요. 아쉬운 점이 수비 불안이죠. 특히 포수의 기본인 포구가 좀 불안해요.]

[마린스 입장에서도 참 애매할 겁니다. 포수로 아예 못 써먹을 건 아닌데, 그렇다고 또 주전으로 쓰자니 수비가 영 불안하고. 그렇다고 포지션을 변경하자니 포수로야 경쟁력 있는 타격이지만 일루수나 지명타자로는 좀 부족한 타격이고요.]

[게다가 요 몇 년 마린스의 일루와 지명타자는 사실상 포화상태이기도 했죠.]

경기가 재개됐다.

***

딜튼 도일리가 어째서 망했는가.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난 스프링캠프를 통해 추측해보자면 이유는 둘 중 하나다.

그 가운데 가장 유력한 이유는 역시 마린스다운 수비였고 그 마린스다운 수비라는 단어에는 ‘포수’라는 두 글자 역시 깊숙하게 새겨져 있다.

-뻐엉!!

심판의 손이 올라오지 않았다.

타자가 방망이를 던지고 일루로 걸어 나갔다.

젠장.

저기 마린스의 포수 한교철이 있다.

그를 보고 있자면 어쩌면 그는 야구라는 종목 자체에 중대한 질문을 던지는 중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포수가 공을 잘 받을 필요가 있을까?

이건 마치 마린스가 프로 야구계에 굳이 구단이 승리만을 추구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커다란 질문을 던지는 것과 흡사했다.

젠장.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엉망이다. 아니 대체 저게 무슨 짓일까? 프레이밍은 볼을 스트라이크로 만드는 것을 프레이밍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한교철이 하는 것은 응당 역 프레이밍이라고 이름을 붙임이 마땅했다. 멀쩡한 스트라이크를 볼로 둔갑시키다니.

사실 청백전을 할 때는 이 정도라고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인간이 존 안에 들어온 공을 밖으로 빼냈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심판은 기계가 아니다. 그렇기에 노골적이고 어설픈 프레이밍은 괘씸죄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그냥 가만히 받아도 아슬아슬하게 잘 들어간 공을 굳이 어설픈 미트질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 그것도 바로 직전에 바깥으로 완전히 빠진 실투를 가지고 보여줬던 미트질과 흡사한 짓거리로는 더더욱.

한교철의 사인에 고개를 저었다.

녀석이 또 다시 사인을 보냈다. 내가 또 고개를 저었다. 내쪽에서 녀석에게 사인을 보냈다. 미트를 옮기는 녀석의 손짓에 ‘불쾌함’이 엿보였다. 아마 마스크를 벗겨보면 인상도 찌푸리고 있지 않을까?

근데 이 새끼가? 이거 설마 미친 건가?

기껏해야 공받이 주제에 어딜 감히 투수님께.

공받이면 공받이답게 공이나 똑바로 받던지. 그것도 못 하니 내가 그냥 복판에 욱여넣겠다는 건데, 그걸 불쾌하게 생각한다고?

치밀어오르는 기분 나쁨을 꾹 삼키고 공을 던졌다.

힘이 조금 더 들어갔다. 덕분에 로케이션이 살짝 위쪽에 형성됐다. 빠르고 강한 높은 속구.

원아웃에 주자 1, 2루.

타석에 선 호크스의 4번 타자가 방망이를 휘둘렀다.

-딱!!

2, 3루 간.

빠른 땅볼 타구.

만약 유격수 자리를 지키는 것이 강라온이었다면 80%이상 확률로 더블아웃. 하지만 지금 유격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정지운이다.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다.

설마 마린스가 여기서 또 마린스 하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정지운이 가볍게 공을 받아 2루로. 그리고 다시 1루로!! 더블 아웃!! 마린스, 매우 깔끔하게 1이닝을 마무리 짓습니다.]

[오늘 유격수로 출장한 정지운 선수 같은 경우 현장에서 기본기가 좋다는 평가를 종종 듣거든요. 확실히 안정감이 있어요. 슈퍼플레이도 좋지만 이렇게 탄탄한 플레이가 또 투수를 안심시켜주는 거거든요.]

[비록 주전 포수가 불의의 사고로 교체됐습니다만 마린스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번 시즌 느낌이 매우 좋네요.]

생각해보니 지금은 아직 정규시즌이 시작되지 않은 봄.

여름이 시작되기 전의 마린스는 본래 무적인 법이다.

오늘 선발로 나오는 한민준은 분명 좋은 투수였다. 나와도 제법 안면이 있는 사이로 2년 전 내가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던 하반기 왕중왕전에서 나보다 한 발짝 먼저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적이 있었다. 물론 정작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바로 다음 경기에 본인은 공을 던지지 못해 팀은 탈락했으니 그 결과도 나와 똑같았다.

게다가 우리 사이의 인연은 그뿐만이 아니다. 2년 전의 U-18 야구 월드컵에서 나, 백하민, 조규찬과 함께 선발로 뛰며 한국팀의 우승을 견인했었다.

이번 시즌 마린스에서 백하민을 선발로 사용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 중인 것과 마찬가지로 호크스 역시 선발 카드로 한민준을 사용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 중이었다.

-딱!!

그리고 놀랍게도 마린스 타선은 그런 한민준을 상대로 무려 두 타자 연속 안타를 뽑아냈다.

노아웃에 주자 1, 3루.

나의 차례였다.

[타석에 3번 타자로 최수원 선수가 올라옵니다. 아마 지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경기 때문에 많은 야구팬분들이 이미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모르는 분을 위해 잠시 설명해 드리자면 최수원 선수 같은 경우 ‘투타 겸업’을 하는 선수입니다.]

[몇 년 전, 오타니 쇼헤이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투타 겸업을 성공한 이후로 참 많은 선수가 투타 겸업에 도전하고 있는데요. 한국의 경우 그런 선수들이 없었는데 어떻게 보면 최수원 선수가 처음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네, 사실 이게 단순한 재능의 문제라기 보다는, 투타겸업이 제대로 되려면 메이저식 오타니 룰. 그러니까 지명 타자에 관한 규칙이 좀 필요한데 KBO의 경우는 그렇지가 못하거든요.]

[지명 타자에 관한 규칙이라면?]

[그러니까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지명 타자는 규칙적으로 투수 타석에 대신 서는 타자인데, 만약 지명 타자 없이 선발 투수가 타석을 소화하게 된다면, 그 경기에는 더이상 지명 타자가 출장하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최수원 선수가 투수 겸 타자로 출장했는데 투수가 교체된다? 그러면 교체된 투수도 타석을 소화해야 하는 거죠.]

[아!! 그러니까 9명으로 시작한 팀은 끝까지 9명으로 가야 한다. 뭐 그런 거군요.]

[네, 바로 그겁니다. 그런 만큼 KBO에서 투타겸업을 한다는 건 투수가 어중간하게 잘 치는 수준으로는 곤란하다. 지명타자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잘 쳐야한다. 뭐 그런 의미가 되는 겁니다.]

[와, 그거 정말 보통 조건이 아니군요.]

[다만 시범 경기의 경우 선수 로스터에 27인 제한이 없이 거의 모든 선수를 무제한으로 교체할 수 있으니 오늘 경기에서는 크게 의미 있는 부분은 아니라고 봐도 괜찮습니다.]

***

마운드의 한민준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사직의 날씨가 서울에 비하면 조금 따듯하다고는 하지만 이제 고작 3월로 아직 쌀쌀한 날씨다. 그러니 이 땀방울의 원인은 더위가 아닌 긴장감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노아웃 1, 3루인데 타석에는 ‘그 최수원’이다.

아직도 기억한다. WBSC U-18 Baseball World Cup에서 미친 듯이 휘두르던 녀석의 방망이가. 그리고 2년 전, 하반기 왕중왕전 3차전에서 ‘오늘 경기가 네 고교야구 마지막 경기야.’라고 쐐기를 박아주는 것처럼 날렸던 그 대형 만루 홈런도 말이다.

지금 비어 있는 2루가 왠지 참 매력적으로 보였다.

-부웅

그리고 그 타이밍에 귀신처럼 마린스 대기 타석에 서있던 이규만이 무섭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젠장······.’

KBO의 제왕. 미스터 마린스. 무관의 제왕 등등.

그를 칭하는 별명은 참으로 많았다.

저 남자는 한민준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마린스의 선수였고, 한민준이 두 발로 서던 해에 MVP를 탔으며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 야구공을 던졌을 때는 타격 3관왕을 2년 연속으로 하고 있었다.

특히 타격왕 부문은 한민준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야구부에 들어갈 때까지 9년 동안 무려 일곱 번을 차지했으니 그야말로 한민준 세대에게 저 남자는 프로 야구 그 자체였다.

어째서일까? 그토록 매력적으로 보이던 비어 있는 2루가 갑자기 꽉 찬 느낌이다.

고의사구? 아무리 최수원이 무서워도 이규만이 뒤에 버티고 있는데 고의사구는 무리다. 비록 이규만이 올해 41세로 은퇴를 앞둔 노장이라고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다.

한민준이 이를 꽉 깨물었다.

그래, 여긴 프로다.

최수원의 재능은 인정한다. 하지만 고교 야구에서 그렇게 이름을 날리던 자신도, 백하민도, 경하고의 그 황금세대들도 한, 두 경기 정도 반짝했을 뿐, 첫해부터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지난 1년.

그는 분명 더 강해졌다. 시즌 초에 두들겨 맞고 2군에 내려갔다가, 막판에 올라와 보여준 성적이 그것을 증명한다.

간결한 세트 포지션.

포수가 요구하는 그대로. 최선을 다해 공을 뿌렸다.

낮은 코스 빠른 공. 원하던 것보다 살짝 낮게 깔렸다. 존에서 벗어나는 공. 하지만 타자의 방망이가 따라 나왔다.

-딱!!

컸다.

하지만 완벽한 정타는 절대 아니다. 빠지는 공을 억지로 쳤으니 이건 외야 플라이가 분명하다. 마린스의 1루, 3루 주자 역시 움직이지 않고 공을 지켜봤다.

최수원이 방망이를 슬쩍 옆으로 내려 놓았다.

거의 워닝트랙.

좌익수가 공을 쫓았다.

한 걸음 더.

그리고 한 걸음 더.

그리고 거기서 한 걸음 더.

‘어? 어어?’

-턱

진녹색의 외야 펜스가 그의 등을 가로막았다. 타구는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뛰어서 팔을 뻗으면 닿을까?

그럴 리가.

사람 팔이 2미터 정도로 쭉 늘어날 수 있다면 몰라도. 그게 아닌 이상 저건 못 잡는 타구다.

[너······, 넘어갔습니다!!]

[1회 말, 최수원 선수!! 타구각이 굉장히 높았는데요. 이게, 이게 넘어가네요.]

주자들을 멈춰 세웠던 주루 코치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1루와 3루의 주자들이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이건 바람이 좋았네요. 오늘 북서풍이 약 12km/h정도로 분다고 했거든요. 보통 1mph에 0.9m정도로 비거리를 잡으니까 그래도 한 7미터 정도는 이득을 본 거예요.]

[어찌 됐건 이런 부분도 또 야구의 요소 아니겠습니까? 마린스가 1회 초부터 석 점을 앞서나갑니다.]

이제는 날씨까지도 마린스를 돕는다.

그야말로 봄의 마린스 그 자체.

시범 경기 1차전.

마린스가 호크스를 11:5로 격파하며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부산 마린스 올해는 다르다!! 35년 만의 우승이 가까워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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