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107화 (107/305)

107화. VS MLB?(5)

[마린스 애슬레틱스와의 연습 경기에서 22:4 패배!!]

“메이저리그 팀과의 경기에서 22:4. 일부 사람들은 이걸 참사라고까지 표현하는데요. 이명철 위원님께서는 이번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개인적으로는 이걸 굳이 참사라는 표현을 쓸 필요까지 있을까? 뭐, 그냥 KBO와 MLB 사이에 존재하던 수준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말씀은 KBO와 MLB가 22:4라는 숫자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그런 말씀이신가요?”

“아뇨, 엄밀히 말하자면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22:4라는 숫자는 물론 충격적입니다만 사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마린스는 작년에 호크스에게 23점 차이로 패배한 적도 있으니 호크스가 애슬레틱스보다 좋은 팀이 되는 겁니까? 그건 아니죠.”

이명철이 고개를 젓고 말을 이어갔다.

“그보다는 투수력의 차이가 실감이 됐다. 뭐 그런 뜻입니다.”

“투수력이요?”

“네, 보시면 아시겠지만 마린스에서 에이스로 내놓은 용병 투수들은 결국 다 메이저 26인 언저리 선수잖습니까. 팀에 따라서는 26인 이내에서 패전 처리조로 올라갈 수도 있는 수준의 투수들이죠. 반면 애슬레틱스의 투수진을 보세요. 처음 나와서 4이닝을 삭제시킨 사이 영 컨텐더 조쉬 앤더슨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 이후의 투수들까지도 전부 쟁쟁하잖습니까. 애슬레틱스에서 2선발인 도널드 터너를 제외하면 상위급 투수들을 전부 다 사용했어요. 솔직히 전 이런 투수진을 상대로 마린스가 4점이나 냈다는 걸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그렇군요.”

“특히 2회와 4회에 최수원 선수. 와, 전 진짜 깜짝 놀랐어요.”

“네, 사실 그건 저도 보고 크게 감탄을 했습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가 사이 영 컨텐더를 상대로 첫 타석, 그것도 초구에 홈런이라니. 과연 마린스에서 20억이나 계약금을 내줄만한 선수다. 뭐 그런 느낌이었어요.”

“첫 타석 홈런도 홈런이지만 두 번째 타석에 그 외야 플라이가 더 대박이었습니다. 사실 첫 타석은 커터를 노리고 들어간 게 제대로 맞은 거거든요. 하지만 두 번째 타석은 달라요. 잠깐만 이 영상 좀 재생해주시죠.”

4회 초.

최수원의 두 번째 타석이 화면에 크게 잡혔다.

“자, 여기를 보시면 최수원 선수는 이번에도 커터를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방망이를 휘두르죠. 근데 포심이에요. 이건 어쩔 수 없는 거거든요. 그냥 빗맞는 거고, 운 나쁘면 범타, 운 좋으면 파울, 그보다 운이 더 좋으면 법력으로 만들어낸 안타가 되는 건데. 이거 보이시죠. 최수원 선수. 여기서 그 순간에 겨드랑이를 더 조이고 손목을 틀어요.”

-딱!!

“사실 이러면 공에 힘을 싣기 굉장히 어렵거든요. 근데 이게 워닝트랙까지 갑니다. 와, 전 진짜 여기서 소름이 돋았어요. 과장 조금 보태자면 배리 본즈가 배트 멈췄다가 휘둘렀는데 그게 담장 넘어가는 거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최수원 선수가 아마 지금 프로필상 사이즈가 190에 89킬로죠? 증량을 좀 하긴 했겠지만 그래도 절대 95킬로는 안 넘어 보이거든요. 그런데 저기서 조금만 더 증량해서 만약 힘이 더 붙는다? 그리고 경험이 조금 쌓인다? 장담합니다. 이 선수 무조건 MVP 가능합니다.”

“와, 정말 최수원 선수를 높게 평가하시네요. 이제 1년 차인 선수를 MVP 후보로까지 꼽으시다니요.”

사회자의 말에 이명철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뭔가 제 말을 오해하신 것 같은데요. 전 KBO의 MVP를 이야기한 게 아닙니다.”

“네?”

─랜디혼슨: 이명철 드디어 회까닥 한 듯. KBO도 안 뛴 고졸을 무슨 MLB MVP감이라네 ㅋㅋㅋㅋㅋㅋ

─졸스신: 좆크보빠들 므릅 무시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그래도 조쉬 앤더슨 상대로 솔로포 날렸잖아. 그게 어디야.

─랜디혼슨: 소집일 이제 일주일 지나서 작년에 106마일까지 나오던 투수가 97마일로 던진 공 홈런 친 거? 솔직히 9마일 차이면 아예 다른 투수임.

─기러기별똥별우영우해체해: 뭔 개소리들이야. 이명철 MLB 빠돌이인 거 전 세계 사람이 다 아는데.

─랜디혼슨: 그래서 지금 이제 고등학교 졸업한 애가 좆크보도 안뛰었는데 므릅 MVP감이라는 소리가 말이 된다고?

─최동수원: 아니, 누가 지금 당장 MVP감이래? 힘 좀 붙고 경험 좀 쌓이면 이라는 말은 그냥 그만한 포텐셜이 있다는 소리잖아. 당장 미국 본토에서 명전이 최소치라는 소리 듣는 알렉산더 맥도웰도 자기 라이벌로 최수원 꼽는데.

─랜디혼슨: 명전이 최소치 소리 듣던 애들이 어디 한 둘임? 알렉산더 맥도웰 작년에 타율 0.074인데?

─최동수원: 와, 이제 우리 수원이 까려고 미국 최고의 유망주가 9월 확장에 지친 상태로 잠깐 올라와서 부진했던 것까지 실력이라고 우기네.

22:4라는 결과. 그것은 마린스 프런트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처참한 결과였다. 기본적으로 그들이 26인이니 40인이니 제한을 건 것은 애슬레틱스가 제대로 된 주전을 내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스타팅 멤버 위주로 팀을 구성할 줄이야.

그래도 마린스 입장에서 다행이었던 것은 마린스 팬들은 자기 팀이 18점 차이로 패배한 것정도에는 그리 크게 화를 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애당초 마린스는 KBO에서도 23점 차이로 지는 팀이다. 당장 작년에도 서울 브레이브스한테 17점을 내주고 영봉패 했던 경험이 있었다. 헌데 메이저리그 팀에게 18점 차이?

“그래도 4점이나 냈네.”

“이번 시즌은 기대해볼 만하겠어. 딜튼이 좀 불안하긴 한데, 최민혁이도 그렇고 백하민이도 그렇고 공이 참 좋더라고. 거의 디에고 로드리게스만큼 던지는 것 같더라니까.”

“최수원이는 또 어떻고. 방망이 시원하게 돌리는 거 봤지? 게다가 갑자기 대뜸 마운드 올라가서 공 던지는데 그게 또 대박이야. 역시 1차 드래프트 폐지되고 좀 제대로 된 녀석들이 팀에 모이는구만.”

마린스 팬들은 18점이라는 점수에 절망하기보다 무려 메이저 팀을 상대로 3.2이닝 합계 7실점으로 막아낸 세 명의 젊은 투수들에게서 마린스의 희망을 찾아냈다. 게다가 아직 데뷔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탈 KBO급이라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20억짜리 유망주 최수원까지.

황린보다 타는 점이 낮은 마린스 팬들의 행복회로가 다시금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타오르는 행복회로의 어딘가.

“크흠······. 1조 5천억원? 그건 좀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충분히 완판될 겁니다. 이번 마린스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니, 완판이야 당연히 되겠지. 하지만 이거 전부 다 적용되면 이자율이 무려 7.1% 아닌가. 이 정도면 광고효과 포함해도 적자 같은데······.”

아무리 기준금리 3.5%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자율 7.1%는 쉽지 않은 수치다.

“행장님? 7.1%는 정규시즌 우승 0.6%, 포스트시즌 진출 0.2%, 포스트시즌 우승 0.3%. 통합우승 추가 0.2%. MVP 0.1%까지 다 포함한 최고 이자율입니다. 참고로 작년에 최고 이자율은 7%였는데 이자율 5.6%였고요.”

“아니, 그거야 작년 이야기고. 올해는 느낌이 다르다니까?”

“행장님 느낌은 매년······. 아니, 아닙니다. 아무튼 저렇게 되면 아마 은행 수익률은 상당히 떨어지겠습니다만 어차피 꾸준히 누적된 수익률을 생각하면 유소년 발전기금을 내고도 상당합니다. 저거 다 완판된다고 해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손익분기점 근처도 가본 적이 없는 걸로 유명한 부산은행의 ‘가을 야구 정기 예·적금’. 많은 이들은 그것을 부산은행의 합법적인 사기행각이라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알겠네. 그러면 1조 5천억으로 가지. 아, 그리고 알지?”

“네, 행장님 구좌 가장 먼저 열어두겠습니다.”

부산은행에서 월급을 받는 월급쟁이 행장 곽준환.

그는 매년 행복회로를 활활 불사르며 직장에서 출시하는 ‘가을 야구 정기 예·적금’에 한도액까지 투자하는 진정한 마린스 팬이었다.

***

연습 경기가 끝나고 팀의 분위기가 한 순간에 쇄신되어 다들 열정이 불타올랐다든지 아니면 깊은 실망감이 팀 내에 감도는 일 따위는 없었다.

“역시, 20억. 너 오늘 장난 아니더라. 크, 오늘 같은 날에 진짜 한 잔 해야 하는데. 한국이 아닌게 진짜 아쉽네.”

“아, 저 아직 생일 안 지나서 한국에서도 못 마십니다.”

“아니, 그거야 형이 알아서 할 일이고. 그리고 형이 어? 부산 바닥에서 지금 10년째 이러고 있는데 너 술자리 한 번 못 데려가겠냐?”

이정훈은 오늘도 역시 펍으로 향했다. 그나마 자중한 부분은 경기 패배한 날에 술 마시다 기자들 눈에 띄기라도 하면 욕 꽤 먹는다며 평소처럼 애들을 잔뜩 끌고 가는 대신 윙맨으로 이주혁 하나만 데리고 펍으로 갔다는 점 정도다.

이규만과 서경준은 자기를 따르는 애들 넷을 데리고 또 밖으로 나갔다.

술과 달리 야식은 기자들 눈에 띄어도 별 상관 없기 때문이겠지. 뭐, 스트레스가 쌓이면 먹는 걸로 풀고, 좋은 일이 있으면 먹는 걸로 축하하는 사람들이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술 마시고 여자 만나러 가는 것보다는 낫긴 하다.

오늘 경기에서 우리는 투수를 정말 한계까지 다 사용했다.

9이닝 동안 22점을 내줬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물론 그나마 22점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도 애틀레틱스에서 5회 이후로 선수들을 대거 교체해준 덕분이었다.

“확실히 메이저의 벽이 높긴 높더라.”

“에이, 그래도 형은 1.1이닝 1실점으로 끝냈잖아요. 저를 봐요. 0.2이닝 동안 3실점이나 한 거.”

“그거야 수원이 넌 주전 멤버들. 그것도 상위 타순 상대로 던졌고, 난 선수들 대량으로 교체된 이후에 던졌으니까 그렇지. 엄밀히 말하자면 난 0.1이닝만 진짜 메이저급 선수들 상대해본 거고 이후로는 40인 로스터 왔다갔다 하는 수준 선수들 상대한 거지.”

“하민 형, 민혁 선배가 그런 말 들으면 울어요. 민혁 선배는 같은 타선 상대로 0.2이닝 3실점 했잖아요.”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고 했던가?

양반 되기는 그른 최민혁이 불쑥 나타나 우리 테이블에 식판을 내려놨다.

“내가 울긴 왜 우냐. 그건 솔직히 수비 문제였는데.”

“아, 민혁 선배.”

“물론 좀 충격적이기는 하더라. 속구가 조금 몰린 감이 있긴 했는데, 그래도 너무 쉽게 뻥뻥 날려대는게 어휴······. 자신감이 아주 확 떨어지더라니까.”

“아무래도 리그끼리 구속 차이가 있으니까요. 한국에서야 150이 강속구지 솔직히 여기 애들한테 93마일은 KBO로 치면 141km정도? 뭐 체감상 그 정도일 테니까요.”

“내 슬라이더는 잘 안 먹히더라고. 수원이 네 커브는 그래도 꽤 먹히는 것 같던데. 마지막까지 한 종류는 안 쓰는 것 같던데?”

“네, 미숙한 애는 괜히 던졌다가 얻어 맞을 것 같은 느낌이라서요.”

“하민이 너는 고속 슬라이더 그거 꽤 쏠쏠하게 먹히던 것 같은데.”

“네, 근데 그것도 조금만 몰리면 여지없더라고요.”

“나도 한 번 던져봤는데 이게 연습 때처럼 잘 안되더라고. 깊숙이 잡는다고 잡았는데······. 괜찮으면 이따가 자세 다시 한 번만 좀 잡아줘.”

“네. 그러시죠.”

여기까지는 평소와 크게 다를 것도 없는 대화였다.

“얘들아 나도 좀 껴도 되냐?”

“명훈 선배?”

작년 6승 11패로 팀 내 토종 투수 가운데 최다승을 거뒀던 한명훈이 불쑥 등장했다.

“선배 그런데 규만 선배님이랑 같이 외식하러 나가신 거 아니었어요?”

“외식은 아니고, 이번엔 테이크 아웃이야.”

-쿵

한명훈만이 아니었다.

이규만, 서경준, 곽재영 등을 필두로 한 팀 내 최대 파벌. 그러니까 일명 성골.

그들이 우리 테이블에 나타났다.

산더미 같은 인앤아웃 버거와 함께.

“좋은 거 우리끼리만 먹기 좀 그래서. 오늘 다들 고생했는데 좀 나눠 먹어야지.”

“어······.”

한국으로 귀국까지 남은 시간은 사흘.

시범경기가 시작되기 까지 닷새가 남은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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