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VS MLB?(2)
여러모로 참으로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축구와 달리 야구는 각국 프로리그간의 교류전 같은 것이 흔치 않았다. 가장 대중적인 교류전라고 해봐야 한일 관계가 지금처럼 경색되기 이전에 벌어졌던 오키나와 리그. 그리고 이벤트전 형식이 강한 미일 올스타전 정도다.
MLB 사무국은 오래전부터 야구의 세계화를 이야기해왔다. 물론 가능할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야기는 계속하고 있고, 그 가운데 한 가지 방안이 최근 애리조나에 모이기 시작한 KBO 구단들을 캑터스 리그에 합류시키는 방안이었다.
물론 각 구단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사실 MLB구단들 입장에서 AAA급도 되지 못하는 수준의 팀과 연습 경기는 시간 낭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애리조나에 있던 기자들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덕분에 가장 먼저 이 사실을 보도한 고려일보를 제외한 나머지 신문의 특파원들은 데스크에서 너희는 미국까지 가서 대체 뭘 하는 거냐고 된통 깨졌다.
“아니, 마린스는 무슨 메이저팀이랑 갑자기 연습 경기야? 계속 자체 청백전만 하다가 말이야.”
“야, 말도 마라. 난 마린스 프런트에서 조만간 외부팀이랑 연습경기 깜짝 발표할꺼라고 슬쩍 찔러 줬었는데, 다른 구단들에서는 마린스랑 연습 경기 일정 없다고 그러고, 그래서 기껏해봐야 NCAA 디비전 1팀 정도 되겠지 생각했다가 에휴······.”
애리조나주 메사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안경을 쓴 중년의 기자 둘이 투덜댔다.
“근데 이거 역시 제임스 콜 감독이 힘을 좀 써준 거겠지?”
“글쎄, 말년에 마린스에서 못 볼 꼴 꽤 보고 갔는데······. 그래도 애정이 좀 남아 있었나? 근데 콜 감독 어떻게 메이저에서 다시 감독을 하고 있는 거야? 난 마린스에서 그 꼴로 쫓겨날 때 커리어 완전 끝장난 줄 알았는데.”
“콜 감독 원래 오클랜드 쪽에 라인이 좀 두터웠잖아. 게다가 능력도 있는 편이고. 곧바로 오클랜드에서 작전코치로 들어와서 1년 만에 감독 자리 따냈어.”
“대단하네······. 마린스 있을 때는 그냥 성격 지랄 맞다는 느낌뿐이었는데 그래도 능력이 상당하긴 했나봐?”
“그러니까 마린스에서 감독을 2년 350만 달러나 주고 데리고 온 거잖아.”
“에? 350만 달러면 40억? 마린스가 감독한테 돈을 그렇게까지 썼다고? 역시 메이저 감독인건가?”
“아냐, 메이저 감독도 그렇게까진 안 줘. 메이저 초임이 보통 한 80만쯤 될걸? 년 175만이면 그래도 년 차 좀 되는 감독이나 받음 직한 돈이지.”
“그러면 이건 인정이다. 돈을 그렇게 받고 10위랑 9위 하고 갔으니 아무리 말년에 못 볼 꼴 보고 갔다고 해도 이 정도 힘은 써줘야지.”
***
“안돼······, 안돼!!!”
비명과 함께 잠에서 깼다. 끔찍한 악몽 탓일까? 제임스 콜의 등이 온통 땀으로 축축했다.
5년 전 그날의 악몽이었다.
당시 그는 총 세 가지의 오퍼 가운데 가장 큰돈을 주는 곳을 선택했었다. 2년 350만 달러에 생활비까지 지원받는 조건이었다. 당시에는 그게 이처럼 끔찍한 악몽으로 남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마린스에서 2년. 그는 스트레스성 탈모를 얻었고 그게 치료되는 데는 무려 2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심지어 아직도 여전히 한국에 가던 당시의 풍성함은 완전히 되찾지 못했다.
“망할······.”
시원한 물을 한 잔 벌컥 들이킨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마린스를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모를까. 불과 3년 전에 그가 감독으로 재임했던 팀인데.
그 사이 천지가 개벽하는 변화가 있지 않았던 이상, 아니 천지가 개벽하는 변화가 있었다고 해도 저 지층 너머 심연에 위치한 마린스가 정상적인 팀이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MLB와 KBO. 그리고 마린스 프런트와 애슬레틱스 프런트간의 협상에 의거하여 총 출전 선수 가운데 절반 이상은 작년 기준 40인 로스터 이내의 선수로 해야 하며 또 그 절반은 26인 로스터 이내의 선수로 해야 한다.
이걸 참······. 마린스의 프런트 놈들.
분명 유능하긴 유능한데······.
“멍청한 마린스 놈들 같으니.”
분명 협상 자체는 참 잘했다. 하지만 이 마린스 프런트 놈들은 대체 자기 팀의 실력을 뭐 어느 정도로 생각하는 걸까?
물론 그들이 삼 주가량 먼저 훈련에 들어간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의미 없다.
제임스 콜은 마린스의 감독에 부임하고 스프링 트레이닝을 2월 초에 한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그렇게 모여든 선수들의 몸 상태에 더 크게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프로가 저 정도로 몸이 엉망이 돼서 훈련에 합류한다고?
메이저의 스프링 트레이닝은 2월 중순 이후에 열린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최소한의 컨디셔닝을 끝낸 상태로 나타난다. 마냥 푹 퍼진 몸을 끌고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린스가 삼 주 먼저 훈련에 들어갔다고 해도 솔직히 말하면 몸 상태에는 큰 차이 없을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마린스는 여기 모인 애슬레틱스 메이저 캠프 61명의 선수들 가운데 하위 20명으로 선수단을 구성해도 이길 확률이 8할쯤 된다. 아니, 저기 바로 옆에 있는 마이너 캠프에서 상위 20명을 뽑아도 마린스와 10번 싸우면 8번은 이길 수 있다.
하물며 40인 명단에 포함된 선수로 절반 이상? 그리고 그 가운데 절반은 26인 이내로?
보통 KBO에 용병으로 가는 선수들은 KBO 올스타급 성적을 낸다. 그게 바로 26인 외 40인 언저리 선수들이다.
그 이상의 선수들?
당연히 KBO를 기준으로는 MVP를 노려볼만한 선수들이다.
“충격요법이라도 주겠다. 뭐 그런 생각인 건가?”
만약 그런 생각이라면 마린스 프런트는 큰 실수를 한 셈이다.
마린스 선수단은 리그에서 3할 승률이 깨져도 그리 큰 충격을 받지 않는 단단한 멘탈을 가지고 있다. 메이저 팀에게 대패한다고 충격을 받을리 만무하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제임스 콜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그래, 지금 마린스 생각을 해서 뭘 하겠는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악몽까지 꾸게 만드는 저 망할 팀을 철저하게 부숴주면 그만이다.
총 64명.
그 가운데 3명을 근처 피치 파크로 내려보냈으니 이제는 61명.
그 가운데 베스트 멤버를 몇 명씩이나 쓸 생각도 없다.
그도 그럴것이 고작 한 경기다.
압도적인 격의 차이를 느끼게 하는 데는 딱 한 사람이면 충분하리라.
조쉬 앤더슨.
25세.
올해 첫 연봉 협상 자격을 얻은 그는 무려 550만 달러라는 거액에 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그 금액이 과하다고 이야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무려 아메리칸리그 사이 영 3위.
메이저 최정상급 투수가 마린스와의 경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이 지금 보고 계시는 이곳은 바로 호호캄 스타디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스프링 트레이닝이 진행 중인 곳입니다.]
[바로 오늘 프로야구구단 부산 마린스와 메이저리그 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경기가 벌어질 곳이기도 합니다.]
[정말 흥분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KBO가 1982년에 창립된 이후 메이저리그 구단과 경기를 치른 것은 처음 아닙니까?]
[맞습니다. 올스타 단위의 경기는 한 차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구단 대 구단으로 붙는 건 사상 최초죠. 제가 알기로는 이는 일본으로 범위를 넓혀봐도 마찬가지로 알고 있습니다. 올스타 단위의 교류전은 있었지만 이렇게 구단 대 구단. 단독으로 경기를 가져가는 것은 사상 최초인 셈이죠.]
[자랑스럽습니다. 부산 마린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사실 메이저리그 하면 사실상 세계 최고의 리그 아니겠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그런 리그의 팀과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KBO가 이만큼이나 발전했다. 뭐 그런 걸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오랜 기간 KBO를 지켜봤던 팬분들에게는 참 감회가 새로운 순간 아닐까요? 80년대 일본의 2군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듣던 시절부터 고작 45년. 마침내 KBO의 구단이 미국에서 메이저리그 구단과 1:1로 연습경기를 하게 됐습니다.]
[게다가 오늘 상대 팀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선발 투수는 조쉬 앤더슨!!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는 팬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올해 25살의 젊은 투수로 작년 아메리칸리그 사이 영 상 3위. 그러니까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주는 우리나라로 치면 최동원상 같은 상에서 3등을 차지한 투수입니다. 메이저리그 전체를 통틀어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최정상급 에이스 투수죠.]
[전 개인적으로 여기서 또 주목하고 싶은 부분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감독이 바로 3년 전까지 마린스의 감독이었던 제임스 콜 감독이라는 점입니다. 메이저리그의 그 누구보다 마린스의 전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제임스 콜 감독이 팀의 에이스 투수인 조쉬 앤더슨 선수를 선택했어요. 전 거기에 뭔가 의미가 있지 않나. 뭐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 이제 슬슬 경기장 정리가 시작되는군요. 그러면 잠시 광고 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잠깐의 휴식시간.
헤드셋을 내려놓은 캐스터가 해설자에게 물었다.
“형님, 이거 경기가 제대로 되긴 될까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쉬 앤더슨이면 급이 너무 높은데······. 이러다가 퍼펙트게임 같은 거라도 나오면······.”
“아냐, 그렇게까지 나오진 않을 거야.”
“하긴. 이규만이면 그래도 국제전에서 날아다녔던 타자고, 노형욱도 현재 리그 탑급 타자니까. 그 두 사람은 해볼 만하겠죠?”
“글쎄, 그보다 제임스 콜이 생각이 있으면 연습 경기에 조쉬 앤더슨을 완봉 시키지는 않겠지. 아무리 퍼펙트 중이라고 해도. 아직 2월 말이고. 선수들 몸도 안 풀렸잖아. 해봐야 한 3, 4이닝? 60개는 안 넘기지 않을까?”
“아, 그런 의미에서 퍼펙트는 안 나올거라고······.”
“당연하지. 기본적으로 리그 수준 차가 있잖아. 솔직히 작년 우승팀인 돌핀스가 MLB에서 뛰어도 3할 힘들어. KBO 올스타 모여가야 MLB에서 간신히 3할 할까. 근데 마린스는 KBO에서 2할 하는 팀이잖아. 경기 같은 경기라도 되려면 돌핀스랑 했어야지. 왜 하필 마린스가······.”
“역시 제임스 콜이 힘을 좀 쓴 게 아닐까요?”
“글쎄, 만약 제임스 콜이 힘을 쓴 거라면 이거 내가 보기엔 선의가 아니라 원한이야.”
“그 정도에요?”
“어 내가 볼 때 10점차 이내로 패배하면 마린스가 분발한 거라고 본다. 지금 선수 명단 좀 봐봐. 거의 절반 이상이 주전급 멤버고 그 외에도 루키급 없이 AAA에서 구른 노장들 위주잖아. 얘들 KBO 오잖아? 죄다 골글급 선수야.”
“미치겠네. 이거 진짜 해설을 어떻게 해야하나······.”
***
“제임스, 이걸로 이제 빚진 거 없는 거야. 오케이?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이제 네가 나한테 빚진 거라고 봐야 한다고.”
“사무국 쪽에서도 이것저것 잔뜩 받은 거 잘 알고 있는데 빚은 무슨 빚이야. 그냥 우리 사이에 이제 아무것도 안 남은 것 정도로 하자고.”
“내가 좀 손해본 느낌이지만······. 그래, 뭐 아무튼. 근데 정말 그 친구가 그 정도야? 이렇게 대대적으로 쇼케이스를 벌이고 싶을 만큼?”
“당연하지. 내가 너니까 미리 알려주는 건데 오클랜드도 돈 아껴두는 게 좋을 거야. 내후년, 아니 어쩌면 내년에 역대 최고의 유망주가 진짜 헐값에 등장할 테니까 말이야.”
“하여간 허풍은······.”
“내 말이 허풍인지 아닌지는 오늘 경기를 보면 알게 되겠지.”
경기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