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96화 (96/305)

96화. 봄(1)

“반응은 좀 어때?”

“긍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팀의 패배.

아니, 팀의 압도적 패배. 2승 10패. 비록 프로야구 팬 대부분이 교육리그를 챙겨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 그래도 가뜩이나 정규시즌 성적이 안 좋던 차에, 2년 연속 1픽을 가져와 놓고 2승 10패로 압도적 패배를 당했다. 굳이 교육리그 경기를 챙겨보지 않는 팬이라도 인터넷을 떠도는 결과만으로도 분노하기 딱 좋은 성적이었다.

덕분에 바빠진 것은 구단의 홍보팀이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 성난 여론을 조금이라도 돌려야 하는 상황에서 최수원의 훈훈한 영상은 딱 좋은 화제였다.

본래 최수원에 대한 여론은 계약을 전후로 해서 확 나빠졌었다. 특히 20억이라는 부분에서 그러했다. 하지만 5.1이닝 무실점 11탈삼진. 그리고 2홈런을 기록한 순간 그런 이야기는 완벽히 쏙 들어갔다. 특히 압권인 부분은 그가 내려가자마자 동점에 심지어 역전패까지 당했다는 부분이었다.

물론 한 경기 한 경기 성적으로 퇴물이라느니, 라이징 스타라느니 일희일비하는 것이 팬들의 속성이다. 하지만 다행인 부분은 적어도 내년 시범 경기 전까지는 경기 자체가 없다는 점이었다. 20억짜리 신인이 터무니 없는 활약을 보여주고 그 이후로 경기 자체가 없다? 홍보팀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노다지다. 심지어 마지막 팬서비스까지 완벽하다니 더할 나위 없다.

“좀 더 쭉쭉 뿌리고. 특히 요즘 그 인터넷 방송 하는 애들 위주로 알지?”

“네, 안그래도 편파 중계 하는 친구들 위주로 해서 쫙 돌렸습니다. 특히 그 BJ봉민인가? 그 친구는 최수원 인터뷰 혹시 가능하냐고 묻는데 어떻게 할까요?”

“BJ봉민?”

“아, 저희 마린스 경기 방송 하는 친구 중에서 구독자가 제일 많은 친구인데······.”

“나도 알아. 그 고등학교까지 야구 하다가 지금은 BJ하는 걔. 흐음······. 근데 걔는 소문도 좀 별로고 방송이 지저분하지 않나?”

“그래도 구독자가 요즘 거의 10만이 다 돼가서······. 편파 중계 하는 친구들 가운데서는 전구단 통틀어서 탑클래스입니다.”

“그거야 우리 마린스가 전구단 가운데 인기도로는 탑클래스니까 그런 거지. 최수원 선수 생긴 것도 멀끔하니 깔끔하잖아. 괜히 그런 곳 나가서 지저분한 이미지 만들지 말고 좀 깨끗한 곳으로 알아보자고.”

“스읍······. 근데 이게 원체 인터넷 방송쪽 BJ들이 그런 이미지가 드물어서······. 특히 편파 중계는 좀 자극적인 게 잘 나가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자자, 앓는 소리 그만하고. 그 드문 걸 찾아내는 게 월급 받는 너희들이 할 일이지. 안 그래?”

프로야구 구단 부산 마린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극한의 업무 난이도를 자랑하는 홍보팀 직원들이 부디 내년에는 제발 이런 거 말고 좀 정상적인 구단 홍보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품은 채 일단 움직이기 시작했다.

***

“자, 뽕하!! 우리 사랑하는 구독자 형님들!! 다들 야구 시즌도 끝나고 적적했지?”

─거포이주혁: 이주혁 오늘 4타석 4타수 4홈런 장전 중

─17+1깝주혁: 이 새끼는 경기도 없는데 또 여기서 이러고 있네.

“원래는 이번 교육리그 결과도 좀 분석하고. 내년 시즌 유망주들 기대치. 그리고 어? 알잖아. 우리 내년에 돌아올 10억 5천만짜리 유망주 최민혁!! 최민혁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하고. 그리고 이번 윈터리그 FA는 또 어떨지. 그런 이야기들을 좀 하려고 했었는. 데!!!”

스냅백을 쓴 뚱뚱한 남자가 자신의 얼굴로 향해있던 카메라를 슬쩍 옆으로 돌렸다.

─8888577: 어? 야구장이네? 어디지?

─최강동원: 상동은 아닌데. 어느 구단 2군 구장인가?

─느그가프로가: 고등학교?

“뭐야, 형님들. 내 최신 영상 안 본 거야? 아니면 감이 떨어진건가?”

─최강동원: 최신 영상? 그거 우리 수원이가 팬서비스 해주는 영상 아니었어?

─느그가프로가: 중앙고? 설마 최수원 찾아서 서울에 고등학교 또 간 거임? 올, 뽕민이 프론데.

─가을마린스: ㄴㄴ 저거 중앙고 아닌데.

[사직야가다 님이 2,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저거 동호대잖아.

“오, 형님. 후원 고마워. 역시 예리하네. 운동장만 보고 동호대인 걸 바로 맞춰버리네.”

─최강동원: 동호대는 왜? 동호대에 괜찮은 선수 있는 건가?

“동호대야 괜찮은 선수들 제법 있지.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진짜 대박 첩보를 하나 입수했거든. 그게 무엇이냐!!”

BJ봉민이 카메라를 돌려 다시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한순간 크게 훅 들어온 커다란 얼굴이 심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영상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은 그것이 익숙했는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봉민이 다음에 할 말이 무엇인지에 집중할 뿐이다.

“바로바로, 최. 수. 원.”

[최강동원 님이 2,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최수원? 여기서 갑자기 우리 수원이가 왜 나와?

“다들 알지? 내가 최수원이랑 인연 깊은 거. 어? 걔가 아직 고2 때. 지금처럼 전국에 알려지지 않았을 때. 내가 경기 딱 보러 가서? 어? 쟤는 마수원이다. 딱 찍었던 거. 오늘 내가 들은 첩보에 따르자면 우리 마수원이 바로 여기 동호대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는 거야.”

[안경에이스 님이 5,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수원이가 동호대에서 훈련을 뛴다고? 아니, 구단 놔두고 굳이 왜 대학에서?

“사실 나도 그 부분은 좀 궁금하긴 해.”

[느그가프로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궁금은 개뿔. 마린스 코치 놈들 무능한 건 마린스 프런트 빼고 전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인데. 수원이가 왜 야구 잘하나 했더니 애가 선택을 잘하네.

“자자, 아무튼 그래서 내가 오늘은 우리 마수원이가 과연 무슨 훈련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혹시 기회가 된다면 살짝 인터뷰까지 한 번 시도해보려고 해. 사실 구단 쪽에도 슬쩍 요청을 넣긴 했는데 왜, 그 있잖아. 신인 선수들 괜히 방송 타고 하면 사람들이 안 좋게 보고 그러는 거. 그래서 그런 건지 좀 곤란하다고 그러더라고.”

커뮤니티들을 통해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일까?

그의 방송에 사람들이 유입되는 속도가 제법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화룡점정을 찍은 순간은 마침내 최수원이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뻐엉!!

스마트폰 카메라로는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 투구 영상.

BJ 봉민이라는 사내가 호들갑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최수원은 자신이 고등학생 때까지는 포수를 했다면서 공을 받아본다는 BJ 봉민에게 간단하게 몇 개 공을 던졌다. 미트를 대고만 있어도 공을 넣어줬다는 호들갑과 함께 시뻘겋게 부풀어 오른 손바닥을 보여주는 것으로 방송이 끝났다.

“씹······.”

그래, 방송은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그건 끝이 아니었다. 영상 자체가 편집되어 유튜브에 올라갔고 조회수는 BJ 봉민의 평균적인 조회수를 아득하게 넘어갔다. 화제는 언제나 다시 화제를 불러오는 것일까?

“안녕하세요. 베이스볼 투나잇. 저는 조효정.”

“저는 박영주입니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손님을 모셨는데요. 아쉽게도 한참 훈련에 열중하시는 터라 스튜디오에는 모시지 못했고, 특별히 일일 특파원을 훈련하고 계시는 장소로 보냈습니다.”

비록 미디어가 TV에서 인터넷으로 점차 넘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TV는 강력한 매체였다. 특히 야구같이 오래된 스포츠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 가운데 스포츠채널의 야구 전문쇼인 베이스볼 투나잇은 콧대가 높기로 유명한 쇼였는데, 놀랍게도 최수원은 그 쇼에 직접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그 쇼에서 리포터까지 한 명을 파견 보내는 배려까지 받아 가며 TV쇼에 출연을 했다.

최정식 코치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니, 자기 말을 대놓고 안 듣는 녀석이 별다른 패널티도 없이 오히려 잘 나간다? 이래서야 팀의 다른 선수들이 대체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이며, 팀의 질서는 얼마나 또 흐트러질 것인가.

“이런데 내가 안 미치고 배겨?”

“그러게요. 혼자 잘 났다고 설치는 놈 치고 오래 가는 놈 못 봤는데. 애가 싸가지가 없네.”

“그러니까. 박 기자. 잘 좀 부탁해. 엉?”

“근데 최 코치님. 스읍······. 이게······. 좀 어렵겠는데?”

“아니, 대체 왜? 뭐가 문젠데? 최근 최수원이 꽤 주목받고 있잖아. 여기서 조금 다른 시점의 기사 내면 트래픽 엄청난 거 아니야?”

“아니, 그건 그런데. 요즘은 또 분위기가 좀 달라. 괜히 지금 한참 이런 상황에서 나 혼자 그런 기사 쓰잖아? 사람들이 내 이름 두고두고 기억해둔다니까. 게다가 요즘은 회사 분위기도 많이 다르고······. 지금 마린스 홍보팀에서 이 악물고 최수원 밀어주고 있는데, 괜히 지금 그런 기사로 초 치면 이거 두고두고 찍힌다니까.”

“그래서? 뭔가 잘못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차피 사장이고 단장이고 구단에 평생 뼈 안 묻어. 박 기자나 나랑은 다르다고. 10년만 지나 봐라. 마린스에 누가 남아있나.”

“그야 물론 최 코치님이 남아있겠지.”

최정식 코치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소주를 한잔 들이킨 후 안주를 우물거렸다.

“게다가 사람들이 이름 두고두고 기억해서 뭐? 어차피 기사야 트래픽만 나오면 그만 아니야? 결국 정보를 얼마나 잘 가져오느냐 문제인데. 인터넷에 악플 다는 애들이 정보 줄거야? 아니잖아. 결국 박 기자 정보는 내가 가져 오는 거 아니야. 안 그래?”

“최 코치님. 맞아. 맞는데. 나도 좀 살자. 게다가 어차피 지금은 이런 기사 위에 올려봐야 통과가 안 된다니까?”

박 기자가 최정식 코치의 빈 잔에 소주를 채워 넣었다.

“아무튼간에 최 코치님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 마. 알잖아. 어차피 이거 지금 분위기 전환용이라는 거. 그래봐야 신인이야. 지금이야 전부 칭찬 일색이지만, 이거 결국 다 부메랑이다. 한 경기만 부진해 봐. 지금 높게 띄운 만큼 더 세게 떨어지는 거? 일도 아니야. 내가 그땐 진짜 힘 팍 줄 테니까. 어?”

“그럴까?”

“그렇다니까. 아무리 대형신인이니 뭐니 해도 결국 고등학생이고, 신인이야. 이렇게 시즌 시작하기도 전에 허파에 바람 잔뜩 넣는다? 장담하는데 이거 절대 감당 못 한다.”

***

최수원이라는 이름이 야구판을 가득 메운 것은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결국 겨울 야구의 꽃은 대형 FA였다. 총액 80억이니 100억이니 하는 선수들의 이야기가 스포츠 기사란을 가득 채웠다.

“휘유······. 이제 한숨 돌렸네요.”

“그러니까. 설마 백강호가 진짜 메이저 진출 포기하고 KBO에 남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덕분에 이제 교육리그 2승 10패 이야기는 쏙 들어갔잖아요.”

“근데 솔직히 나라도 그 돈이면 KBO에 남겠다.”

“왜요. 그래도 브레이브스에서 2년 500만 달러 불렀잖아요. 그 정도면 해볼 만한 거 아닌가? 연 32억인데?”

“거기 물가 생각하면 생활비 단위가 다르잖아. 게다가 여기선 슈퍼스타인데 거기 가면 그냥 외국인 용병이고. 비슷한 금액이면 갈 이유가 없지.”

“그런가? 그나저나 팀장님. 우리 팀은 FA 누구 데리고 온다. 뭐 그런 거 없대요? 솔직히 이번에 최민혁 돌아오고, 백하민 선발 전환 성공하고. 최수원이 진짜 기대치만큼 터져주고 하면 투수진 되게 빵빵해질 텐데. 용병만 잘 뽑고, 센터 라인 조금만 보강하고 타자 FA 하나 정도만 제대로 데리고 오면 해볼만 한 거 아닌가?”

“야, 용병 잘 뽑고, 센터라인 보강하고 타자 FA 제대로 지르면 못해볼 팀이 세상에 어딨······.”

“······.”

잠깐의 침묵.

두 사람의 머릿속에 KBO를 대표하는 두 개 구단의 이름이 스쳤다. 특히 그중 한 팀은 직장이었던지라 차마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아무튼 이번에는 아직까지 특별히 이야기 나온 건 없어.”

“쩝······. 백강호 110억이면 솔직히 우리도 데려올 만했던 거 같은데.”

“야, 우리도 지명타자는 차고 넘친다. 차라리 타격 좀 못하더라도 센터 라인 보강이 우선이겠지. 아무튼 허튼소리 그만하고 일이나 하자. 이번에 쓸 홍보자료는 다 만들었지?”

대형 FA.

보상 선수.

그리고 트레이드.

12월과 1월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그리고 마침내 2월 1일. 날씨는 아직 추운 겨울이었다. 하지만 그 추운 날씨보다 한 걸음 빠르게 야구의 봄이 시작됐다.

[‘목표는 우승’ 부산 마린스 스프링 캠프 돌입!!]

마지막 우승 이후 35년.

벌써 서른다섯 번째 비슷한 제목의 기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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