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20억(3)
“가자.”
“네.”
마린스와의 계약이 체결된 직후 아버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뭐, 예전에도 비슷했다. 그때는 그런 아버지의 표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아버지의 저런 표정에 ‘그렇게 투자를 했는데 계약금이 1억이 안 되냐?’ 그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철도 없었고, 생각도 짧았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아버지는 그냥 나와 떨어지는 게 싫은 거다. 하긴, 한 7, 8년 키운 강아지가 집을 떠날 때도 기분이 이상해지는 게 사람인데 자기 피를 이은 자식이 18년 만에 집을 떠난다는데 기분이 싱숭생숭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장성한 아들이 아버지의 품을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렇기에 내가 아버지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모습은 아버지의 품을 떠날 준비가 끝났다는 모습일 것이다.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온 곳은 한 비스포크 양복점이었다.
입단식에 정장을 입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회귀 전에는 아버지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터라 촌스럽게 맞춤은 무슨 맞춤이냐고 내 계약금으로 백화점에서 알아서 사겠노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여기가 내가 항상 옷을 맞춰온 가게다.”
낡은 간판.
하지만 그 낡음이 영락했다기보다는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듯한 세련된 가게였다. 건물 자체는 최근에 리모델링을 했는지 깔끔했기에 더 그런 느낌을 받는다. 회귀하기 전에는 미국 진출이 결정 난 이후에야 아버지를 따라 여기에 왔었다.
“최대표님 어서 오십쇼. 아, 이쪽이 그 소문이 자자한 아드님이군요.”
문을 열자 머리가 희끗희끗 새어가는 노신사가 우리 둘을 맞이했다.
이전에는 본 적이 없는 전대 사장님이었다.
“부끄럽습니다. 이번에 졸업이라 슬슬 정장이 필요할 듯해서 데리고 왔습니다. 잘 어울리는 놈으로 부탁드립니다.”
머리가 희끗희끗 새어가는 노신사가 아버지와 인사를 나누더니 줄자를 들고 와서 나의 몸 여기 저기를 재었다. 그 옆에 그 노신사를 닮은, 내가 알고 있는 사장님이 수첩을 들고 그분이 말하는 숫자를 받아 적는다.
“어디 보자. 몸이 아주 훌륭하네요?”
“하하. 그렇습니까? 뭐, 우리 수원이가 운동을 오래 하긴 했죠.”
“아니, 이건 단순히 그냥 운동을 오래 해서 되는 몸이 아닙니다. 사실 전문적으로 운동한 선수들은 오히려 옷 태는 좀 안 좋은 경우가 많아요. 아무래도 몸이 너무 커지니까. 그런데 아드님은 팔다리도 길쭉길쭉해서 비율도 딱 좋고. 이거 옷 만드는 맛이 좀 나겠어요.”
“이거 오늘 립서비스가 조금 과하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아버지의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아무래도 옷 디자인은 여기 제 아들이랑 상의하는 게 더 좋을 겁니다. 만드는 거야 뭐 제가 오래 했으니 한다고 해도, 아무래도 요즘 스타일이나 그런 건 또 달라서요. 얘가 작년까지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했어요.”
“오, 이탈리아요?”
“네, 야구는 그 미국이 유명한 것처럼 정장은 또 이탈리아에 나폴리가 유명합니다.”
두 아버지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의 절반 이상이 아들 자랑이었던지라 옆에서 듣고 있기가 참으로 민망했다. 그리고 그것은 조만간 가게를 물려받을 이분도 마찬가지였는지 얼굴이 슬쩍 붉게 달아올랐다.
“이번에 전체 1번으로 부산에 간다고 들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아, 감사합니다.”
“옷은 최대한 편안하게 가도록 하겠습니다. 몸에 라인이 워낙 좋아서 그렇게만 해도 맵시가 확 살아날 겁니다. 특히 어깨가 아주 좋네요. 아마 기성복으로 가셨으면 오히려 어깨가 좀 갑갑했을 겁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옷의 형태에 대한 자세한 상의가 끝나갈 무렵.
내가 살짝 목소리를 낮췄다.
“저기 그런데요······.”
“네. 말씀하시죠.”
***
입단식.
대기 장소에 모인 얼굴들이 눈에 익었다.
결국 프로에 오는 선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어느 정도 두각을 드러낸 선수일 수밖에 없다. 물론 전국대회 단골팀이라고 해도 모든 선수를 상대해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건너 건너 익숙한 얼굴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눈에 익은 녀석이 소곤소곤 말을 걸어왔다.
‘와······. 이거 좀 쫄리는데? 안 그러냐 수원아?’
다름아닌 쪼유였다.
그랬다.
이 녀석 놀랍게도 2라운드 전체 1번으로 드래프트에 뽑혔다. 아니, 사실 놀랄 일 까지는 아닌가? 뭐, 본래도 3라운드로 뽑혔던 녀석이긴 했으니까. 수비가 되는 포수란 공격력에 장애가 있어도 그 정도 가치를 갖는 법이다.
물론 녀석의 경우 3라운드로 뽑혔던 것은 어디까지나 타격 연습에서는 뻥뻥 날려대는 것을 본 스카우트들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2라운드 전체 1번으로 뽑힌 것은 바뀐 타격폼으로 그 ‘가능성’이 어느정도 싹을 틔웠다는 판단. 그리고1번 픽을 가진 팀이 마린스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긴 공을 받을 수 있는 포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는 팀이었으니까.
“자, 다들 여기 각자 유니폼들 받아 가라. 이름 마킹 된 거 확인 잘하고.”
아버지가 맞춰주신 정장 자켓을 잘 벗어서 옆에 개어 놓았다.
여기 모인 아이들의 복장은 모두 동일 했다. 넥타이까지 모두 착용한 정장에 구두. 하지만 그 태가 완전히 달랐다. 단순히 내 몸이 길쭉하고 보기 좋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사실 운동선수들은 기성복이 옷 태가 나기 쉽지가 않다. 물론 고교선수들은 프로선수들처럼 심각할 정도로 몸이 크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좀 미묘할 수밖에 없다.
셔츠의 경우 다들 어깨에 맞췄더니 허리가 너무 펑퍼짐하다든지, 팔이 좀 짤뚝 하다든지했고, 바지의 경우는 그보다 더해서 허벅지가 터지려고 한다든지, 허리에 주름이 너무 많이 잡힌다든지 하는 식의 문제가 있었는데 나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2027 드래프트 패치가 붙은 유니폼을 기존에 입고 있던 셔츠 위에 걸쳤다.
그리고 라커룸에서 빠져나와 그라운드로 향했다.
짧은 길이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함께 걷는 아이들 가운데 누군가는 이 짧은 길에 도착하기 위해 참으로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또 누군가는 오늘 걸은 이 길을 다시는 걷지 못하겠지.
그라운드 위에서 프런트 직원이 마이크를 쥐고 뭐라뭐라 떠들었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었고 사실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홈플레이트 뒤 편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신인 선수의 가족들이었다. 정확히는 그 가운데 유일하게 홀로 앉아 있는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표정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 조금 화난 것 같은 눈동자.
주르륵 일렬로 늘어서서 각자 입단 소감을 발표했다.
“내년에 마린스 꼭 우승시키고 싶습니다.”
나의 소감에 다음 차례인 입단 반지 수여를 위해 대기하던 전상익 단장의 표정이 조금 묘해졌다. 뭐, 우승이 목표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내 포스팅 조건이 우승인 걸 생각하면 1년 만에 우승해도 좀 곤란하긴 하겠지.
조유진을 비롯해서 다른 녀석들도 뭐라뭐라 떠들었다.
시구와 시타. 그리고 다시 실내로 돌아와 뒤에 포토월을 깔고 간단한 인터뷰까지. 제법 길었던 행사가 끝났다.
“고생했다.”
“고생은요. 아버지는 괜찮으세요? 오늘 이렇게 회사 빠져도?”
“오늘 같은 날은 좀 안 괜찮아도 어쩔 수 없지.”
행사를 끝내고 다시 부산역으로 가는 길.
택시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야기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뭐,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잠깐의 침묵.
그리고 그 침묵을 깨트린 것은 앞에서 고개를 갸웃하며 운전하던 택시 기사님이었다.
“저기요. 죄송한데요. 혹시 최수원 선수 아입니까?”
“네, 제가 최수원 맞습니다.”
“맞네!! 마, 가다마이를 입으가 몬 알아볼 뻔했네. 오늘 입단식 했나보네요.”
“네.”
“옆에는 아버님인교? 크, 억수로 자랑스럽겠심더. 마, 야구도 잘해뿌고, 생긴 것도 이리 훤칠하니 안그렇심니까?”
“부족한 아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은 무슨. 부족한 건 아드님이 아이라 마린스지요. 마 이 새끼들은 하여간 야구만 잘하면 되는 놈들이 야구를 못 해. 내가 진짜 억수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드님 그 세계대회 나간 거 죄다 찾아봤다 안 캅니까.”
무뚝뚝하게 앉아 있던 아버지의 콧망울이 또 조금 넓어지셨다.
참, 이렇게 쉬운 것을 예전에는 대체 왜 못알아 봤던 것인지.
“근데 아드님이랑 옷을 맞춰 입으셨나 보네요. 보기 억수로 좋네요.”
“아, 네. 그게 참······. 입단 기념으로 제가 옷이나 한 벌 맞춰주겠다고 평소 다니던 가게에 데리고 갔는데 글쎄, 이 녀석이 저 모르게 제 옷을 자기 돈으로 맞췄다지 뭡니까? 아니, 돈 좀 벌었다고 벌써부터 그 큰 돈을 그렇게 턱턱 써버리면 대체 어쩔 생각인지. 그렇잖습니까. 야구선수가 계약금 많이 받았다고 어디 평생 많이 받는다는 보장이 있답니까? 최저연봉 받고 몇 년을 뛸 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럴 때마다 헐어 쓰라고 있는 게 계약금인데 그걸 애비 옷 사는 데나 낭비를 해버리고.”
“어휴, 마 그래도 억수로 좋겠네요. 돈 벌자마자 제일 먼저 쓴 돈이 아버지 가다마이라니. 참 요즘 아들 같지 않네요.”
아버지가 자신의 정장 옷깃을 괜스레 한 번 척 털어냈다.
아으,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았다. 물론 내가 칭찬 듣는 걸 좋아하긴 한다만 그래도 면전에다 대고 이런 자식 자랑이라니.
“어이코, 부산역 다 왔십니다.”
“감사합니다. 여기 택시비.”
“어휴, 됐심다. 좋은 일로 오싰는데 택시비는 무신. 그냥 마 여기 싸인이나 하나 해주이소.”
“싸인도 물론 해드려야죠. 택시비도 받으시고요.”
“아이, 참 괜찮다니까네.”
“나중에 저 말고 수원이만 태웠을 때 서비스해주시고. 오늘은 그냥 받아주세요.”
그 모습은 참 뭐라고 해야 할까?
아버지의 웃는 모습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깟 정장 하나에 저렇게 신이 나신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그래서 참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지만 꾹 눌러 참았다. 그것은 18년이나 남자 혼자서 아이를 키워낸 아버지에 대한 내 나름의 예의였다.
***
마린스의 2군 코치.
증량 성애자 최정식이 콧김을 내뿜었다.
“네? 곧바로 훈련에 참가를 안 한다고요?”
“본래 계획했던 훈련이 있다고 하더군요.”
“아니, 단장님. 지금 그걸 믿으신 겁니까? 계획해둔 훈련이라뇨. 고딩들 뻔한 거 아닙니까? 한 7, 8년 훈련만 했겠다. 드래프트되는 순간 뭐라도 이룬 것 같아서 그냥 그대로 풀어지는데, 그거 미리미리 조이지 않으면 진짜 큰일 납니다. 게다가 훈련도 그래요. 솔직히 대한민국에서 우리보다 더 훈련 잘 시켜주는 곳이 어딨습니까.”
일단 그런 곳이 확실히 여덟 개는 있는 것 같다는 목소리가 전단장의 목 끝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그가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그 말을 집어삼켰다.
엄밀히 따지자면 전상익은 굴러온 돌. 최정식은 선수 시절 포함해서 마린스에만 20년째 몸담고 있는 박힌 돌이다.
아직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이야기를 뱉을 타이밍이 아니었다.
“최 코치님도 아시다시피 그건 저희가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요. 계약은 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기간은 내년 2월부터 시작이니까요. 무임금 무노동은 너무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야 그렇습니다만 관행이라는 게 있잖습니까. 그런 식으로 따지면 바로 훈련 참가하는 다른 애들은 뭐 다 바보 병신이랍니까?”
“자자, 코치님. 진정하시고. 일단 좀 지켜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