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규칙(5)
최경식이 받아든 서류를 검토했다.
그는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 서류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과연 이것이 가능한가? 하는 가능성의 타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매우 짧았다. 이내 그 이성의 자리를 대신한 것은 이것이 가능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었다.
최근 그의 아들은 다시 미국으로 떠날 준비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기말고사가 끝나는 대로 방학식도 하기 전에 미국으로 가서 개학 이후인 3월 초순까지 미국에 있겠다고 이야기했다. 그 뉴욕의 피칭 랩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필요한 비용은 상당했지만, 사실 그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뿐인 자식의 성공을 위한 돈이 아까운 아비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을까.
다만 마음에 걸리는 문제는 따로 있었다.
영어는 언제 그렇게 공부를 한 것인지. 다른 과목 성적은 모두 엉망진창이 돼가는 와중에 영어 시험은 꾸준히 80, 90점을 유지하는 모습에서 그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MLB.
세계 최고의 괴물들이 모여있다는 그곳.
최근 수원이 보여준 모습을 생각한다면 그가 실력 적인 문제로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하는 것은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었다. 단순히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기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투수만 하던 아들에게 타자로써 그만한 재능이 있을 줄이야.
당장 미국에서 태어났더라면 드래프트 전체 1번 감이라는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물론 메이저리그 데뷔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드래프트 1라운드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가능성이 4할이 넘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어린아이를 혼자 미국에?
그것도 지금처럼 몇 달을 갔다 오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과연 괜찮을까?
학교에서 공부하는 대신 야구공을 손에 쥐고 자라났다. 그 공부라는 것은 물론 진학을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기초적인 상식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무려 12년 동안 학업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모자라서 4년 동안 대학이라는 유사 사회를 경험한 아이들도 고전하는 것이 사회다. 하물며 한국도 아닌, 문화 자체가 완전히 다른 미국에서 그 어린 녀석이 대체 어떻게 혼자 생활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마이너의 눈물 젖은 빵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익숙한 이야기였다. 물론 최경식이 따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최근 10여 년 사이 그 대우가 상당히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경기 한 번 하기 위해 털털거리는 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에서 심하면 열 시간씩 이동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게다가 만약 부상이라도 덜커덕 찾아온다면?
미국에 직행한 만큼 KBO 복귀는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KBO는 MLB 직행 선수를 배려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 역시 이익단체의 연합이고, 그들 입장에서는 괜찮은 자원이 KBO 대신 다른 리그를 선택하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군 문제와 2년간의 유예기간. 어려운 문제다.
물론 그렇다고 먹고 사는 부분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최경식 자신이 회사를 정리하면 그래도 작은 건물 한두 개 정도는 물려줄 수 있을 거고, 거기에 똑 부러지는 며느리만 하나 들이면 재산 간수야 어렵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평생 야구만 하고 살아온 녀석이 그 야구를 마음껏 하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괴로울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KBO에서 7년을 뛰고 미국에 가는 편이 리스크는 적은데 돌아오는 것은 너무 크다.
MLB에 무턱대고 갔을 때 장점이라고는 빨라 봐야 3, 4년 먼저 데뷔해서 그만한 누적을 쌓을 수 있다는 가능성 정도뿐이다.
대체 세상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그런 길을 택하는 것을 그대로 지켜볼 수 있을까.
“어, 그래. 수원아, 아빠다. 오늘 저녁에 이야기 좀 하자.”
***
진우 선배와의 약속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전국 대회 우승.
운이 없었다.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솔직히 3학년들이 전부 빠진 이번 전국체전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체 무슨 마가 낀 건지, 1차전에서 대뜸 경하고를 만나버리더니 2차전에서는 경기도 대표인 신원고를 만났다.
그래, 이전에 청룡기에서 준결승에서 경하고 만나고 결승에서 천남고 만난 건 걔들이 각자 시드를 받았던 학교니까 그랬었다고 치자.
시드교도 없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 후보들을 연달아 만나는 건 그냥 운이 더럽게 없었다고밖에는 말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건 1차전에서 우리에게 패배한 경하고도, 2차전에서 우리 이기고 3차전에서 슬램덩크 엔딩을 맞이한 신원고에게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서태웅 같은 선수 하나 하늘에서 뚝 안 떨어지려나?”
“엉? 서태웅? 그게 누군데?”
“있어. 슬램덩크라고 옛날 만화에 나오는 명문고에서 스카웃 제의 무시하고 그냥 집 가까운 학교에 진학한 졸라 짱쎈 신입생.”
“수원이 너처럼?”
“아······. 그러네. 그러면 난 강백호를 찾아야 하는 건데······.”
“강백호? 그건 또 누군데? 그 만화에 나오는 다른 캐릭터냐?”
조유진이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스읍······.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삼단분리타법의 주인공을 강백호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됐고, 코치님은 뭐라셔?”
“한 번 해볼 만한 것 같다고는 하시던데······. 야 근데 그거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내가 인터넷 찾아보니까 사람들 놀림 장난 아니던데······.”
“어이구, 그걸 신경 쓰는 인간 타격폼이 삼단분리냐?”
“아니, 그건 그런데. 뭔가 다른 방법이······.”
“야, 이미 한 번 비슷한 길을 걸었던 사람이 있잖아. 그 사람이라고 다른 방법 안 찾아봤겠냐? 게다가 시간이 없잖아. 시간이. 물론 우리가 아직 창창한 나이인 건 맞는데, 우린 일반인이랑 달라. 제도권 애들이야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가고, 군대 갔다가, 또 복학해서 생활하고. 한 칠팔 년 정도 더 방황해도 괜찮은데 우린 아니야. 올해 놓치잖아? 이제 야구랑은 평생 빠이빠이다.”
“아니, 꼭 그건 아니지. 대학도 있고······.”
“병영 선배처럼?”
조유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 이번에 드래프트에서 대졸 선수 몇이나 뽑혔는지 아냐?”
“좀 뽑히지 않았어? 그래도 한 스무 명은 뽑힌 것 같던데.”
“어. 열아홉 명. 근데 그중에서 3라운드 이내는 딱 한 명에 그것도 3라운드 28번이야. 근데 그 형도 2년 전에도 9라운드에 드래프트 됐다가 그냥 얼리드래프트 노리고 대학 갔던 형이거든.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우리나라는 미국이랑 달라. 거긴 하위 라운드 받고 마이너 구르느니 대학 가서 2년 하고 얼리로 나와서 마이너 빠르게 스킵하고 빅리그 가는 루트도 괜찮은데, 우리나라는 아니라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프로 못 가면 거의 끝이라고 봐야 해.”
“······.”
“너 수비는 나쁘지 않으니까, 게다가 솔직히 달리기도 꽤 빠르고 연습 때 뻥뻥 치는 거 생각하면 툴 보고 프로에서 하위 라운드로 뽑아갈 만은 하겠지. 근데 그거 아냐? 그 선수도 그 방법 찾기 전까지 10년을 넘게 고생했다. 그리고 간신히 찾은 정답이 그거야.”
솔직히 말하자면 조유진의 툴은 매우 아까웠다.
녀석이 연습에서 뻥뻥 날리는 공만 보면 얘는 무조건 거포형 포수로 키워볼 만한 자질이 엿보인다. 블로킹하는 거 보면 반사신경도 괜찮고, 발도 제법 빨랐다. 그러니까 아마 회귀 이전의 삶에서도 무려 3라운드로 드래프트에 뽑혔겠지.
하지만 녀석은 결국 실패한다.
뭐, 사람에 따라서는 10년이나 프로 1군 백업 포수로 프로 생활했으니 나름의 성공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막창집에서 엉엉 울던 녀석의 얼굴을 생각해보면 나는 도저히 녀석의 프로 생활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아무튼 프로에서 10년이나 구르는 동안 고쳐지지 않았다는 말은 실전에서 나오는 녀석의 저 삼단분리 타법은 거의 고치기 불가능한 불치병이라는 뜻이다. 그런 와중에 다행스러운 점은 KBO에서 뛰었던 프로선수 가운데 녀석과 비슷했던 불치병을 12년 차에 치료해서 말년의 3년 정도를 제법 알차게 불태웠던 선수가 하나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뭐 세이버 매트릭스 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진다느니 모양새가 우스꽝스럽다느니. 일단 다 프로에서 살아남아야 들을 수 있는 이야기야. 그리고 솔직히······. 우리도 졸업 전에 우승 한 번은 해야지.”
“우승? 전국대회?”
“어.”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전국대회 우승? 수원이 너는 그런 빠이팅 넘치는 열혈 캐릭터 아니잖아.”
“아니, 그냥 진우 선배랑 얼떨결에 약속을 해버려서. 뭔가 그 선배 말은 좀 들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잖냐.”
“하긴, 진우 선배가 참 사람 좋았지······.”
“아무튼 우승 하려면 그래도 좀 사람 같은 타자가 두셋은 더 있어야 하고, 투수도 적어도 병영 선배보다는 나은 투수로 한둘 정도는 있어야잖냐. 투수야 뭐 제법 던지는 신입들 둘 정도 들어온다고 하니까 그거 좀 기대해본다지만 타자는 알잖아. 바로 어제까지 알미늄 쓰던 애들이 갑자기 나무 쓰는데 답 없는 거. 결국 니가 좀 해줘야돼.”
“알겠다. 알겠어. 내가 어? 이번 겨울 완전 특훈한다.”
“그래, 쪼유. 우리 내년엔 진짜 일 한 번 제대로 내보자. 드래프트야 그렇다 치더라도, 적어도 동기 중에 대학 못 가는 애는 없게 해주자고.”
***
“일찍 왔구나.”
“네, 차가 안 막혀서요.”
약간 어색한 공기.
하지만 이상하지는 않았다. 나와 아버지가 한 공간에 있을 때는 항상 이런 공기가 흘렀으니까.
“자, 일단 먹자.”
“네.”
몇 가지 음식을 입에 넣는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이 복잡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예상이 됐다.
아마 7년 차였던가? 내가 미국에 포스팅으로 진출할 거라는 뉴스를 TV로 보고 나를 불렀을 때 지금과 비슷한 눈빛이었던 것 같다. 당시 아버지는 나에게 미국은 무슨 미국이냐며 KBO에서 미국에 포스팅으로 진출한 선수들을 예로 들어가며 나를 말리셨었다.
물론 당시의 나는 아버지의 만류에 굉장히 크게 화를 내고 자리를 박찼었다. 당시 나는 아버지가 나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부당하게 비난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것이 그저 하나뿐인 아들의 모험을 불안해하는 아버지의 걱정임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그렇다면 역시 MLB 진출을 만류하려는 건가?
하지만 만약 MLB대신 KBO에서 뛰라는 제안이라면 이번에도 나는 아버지의 말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번에는 크게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게 제임스 쪽에서 제안이 하나 들어왔다.”
제임스?
내 예상과는 달리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KBO에 남으라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제임스 코퍼레이션은 나의 미국 진출을 돕는 에이전시다. 만약 내가 한국에 남는다면 그들은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었다.
“제안이요?”
“그래, 너의 미국 진출 방법에 관한 제안인데 이 애비가 생각하기에는 그 가능성은 차치하고 제안 자체는 썩 나쁘지 않아 보이더구나.”
“그게 무슨 제안인데요?”
설마 NPB인가?
내가 분명 싫다고 거절했는데 굳이 법적 후견인인 아버지께 또 제안을 건넨 거라면 난 기꺼이 제임스 코퍼레이션과의 계약을 해지할 마음이 있다.
하지만 제임스 코퍼레이션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건넨 제안은 NPB가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쩍 던져놨던 떡밥.
‘비슷한 조건으로 한국에서 1, 2년 정도 뛰고 가는 거라면 몰라도요.’
제임스 코퍼레이션이 그 떡밥을 덥썩 물었다.
“내년에 있을 한미선수계약협정에 약간의 개정이 생길 수 있도록 한 번 힘을 써보겠다더구나. 그 대신 미국 진출할 때까지 꼭 자신들과의 계약을 유지했으면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