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70화 (70/305)

70화. 규칙(1)

투수는 160km/h에 달하는 공을 던져 18.44미터 떨어진 0.3제곱미터 남짓한 공간에 집어넣어야 한다.

그리고 타자는 그런 공을 42인치 길이에 지름 3.75인치짜리 방망이로 때려 맞춰야 한다.

야수는 또 어떠한가. 100마일에 가까운 속도의 타구, 그 넓은 그라운드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공을 13인치도 안 되는 가죽 글러브로 받아내야 한다.

“결국 야구에서 포지션의 분화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투수와 타자. 내야수와 외야수. 선발과 불펜. 스킬의 문제도 있지만 각 포지션마다 우선시 되는 능력치가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죠. 특히 투수와 타자는 완전히 다른 종목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잠시 말을 멈춘 윌리엄 워싱턴이 최수원의 단단한 이두를 꾹 눌렀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조금 달라지긴 합니다만, 당장 이 이두근만 보더라도 알 수 있죠. 투수의 피칭 메커니즘은 주로 밀어내는 힘 쪽입니다. 최수원 선수의 이두근과 삼두근의 밸런스는 투수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죠.”

확실히 지난 5개월.

수원은 조규혁과 함께 ‘타자의 몸’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근육량이 3kg 정도 증가했다. 당시 조규혁이 최수원을 평가하기를 몸 망치기 딱 좋은 스윙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었고 그건 사실이었다. 지금 최수원의 몸은 그 스윙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육체라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최수원 선수가 보통의 선수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야구는 체급도 없으니 적정 중량 안에서 몸을 구성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사람의 몸은 엄연히 타고난 한계치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심지어 피칭이나 타격은 스킬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고 그건 근육의 크기 못지않게 관절의 가동범위 등도 아주 밀접한 영향을 주죠. 게다가 야구는 그 특성상 1년에 162경기. 못해도 140경기는 출전을 해야 합니다. 지구력을 위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지방도 당연히 필요하고요.”

윌리엄 워싱턴이 말을 이어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투수와 타자의 차이가 장거리 주자와 단거리 주자의 차이만큼 극단적이지는 않다는 겁니다. 어쨌거나 타자건 투수건 순간적인 폭발력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니까요.”

데카슬론의 선수는 초인이다. 백 미터를 달리고, 멀리 뛰고 높이 뛰며 포환과 원반, 창, 해머를 던지고 허들을 넘고 장대높이뛰기까지 수행한다. 그 어떤 백 미터 선수도 그들보다 멀리 뛰거나 멀리 던질 수 없고, 그 어떤 높이 뛰기 선수도 그들보다 빠르게 달리거나 멀리 던질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백 미터 선수보다 느리고, 높이 뛰기 선수보다 낮게 뛰며, 던지기 종목 선수들보다 멀리 던지지 못한다. 투타 겸업 역시 그와 비슷하다.

“하지만 데카슬론 세계 챔피언 정도 되면 각 종목을 어지간한 전문선수만큼 잘 할 수 있지 않나요? 게다가 열 개나 해야하는 데카슬론과 달리 야구는 투수와 타자 딱 둘뿐이잖아요.”

“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두가지를 병행한다는 건 하나에 집중하는 것보다 당연히 못할 수밖에 없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만약 오타니 쇼헤이가 타자에 집중했다면 60홈런에 도전할만한 타자였으리라고 봅니다.”

“어······, 음······. 그러면 저 그냥 투수 포기할까요?”

“물론!! 저는 최수원 선수의 위대한 도전에 경의를 표하며 그것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저 이게 그만큼 어려운 도전이다. 하지만 원래 위대한 기록은 어렵기에 가치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어차피 야수도 수비를 하잖습니까. 수비 훈련 대신 피칭 훈련이라고 생각하면 될 문제지요. 하하하하하. 자자, 최수원 선수. 어서 이리 오시죠.”

윌리엄이 빠르게 태블릿을 내밀었다.

“제가 생각한 훈련 플랜입니다. 증량 프로그램과 함께 현재 부족한 부분의 근력 운동을 보강할 겁니다. 그리고 피칭폼 역시 조금 손을 봐야 하는데 특히 스트라이드 폭을 좀 조정해보죠.”

“스트라이드 폭이요?”

“네, 최수원 선수의 균형감각과 유연성이라면 지금보다 6인치 정도 더 내딛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종종 정해진 것보다 조금씩 더 내딛는 경향이 있는데 어차피 그렇게 할 거라면 애초에 균형을 잃지 않는 최대치까지 내딛어 보고 릴리즈 포인트를 일정하게 맞춰보는 작업을 진행하죠. 아, 물론 스트라이드 말고도 손 볼 부분은 많습니다.”

윌리엄의 말이 길게 이어졌다.

부상의 위험. 그리고 현재 몸의 밸런스. 부족한 근력. 구속에 집착한 나머지 너무 정직해진 피칭폼. 디셉션의 필요성까지.

최수원과 백하민.

그들이 그 모든 것들을 익히기에 한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하지만 좋은 선생과 좋은 학생. 최고의 기술과 훌륭한 재능, 그리고 열정이 만들어낸 화학효과는 그 짧은 시간이 무색하리만큼 강렬했다.

한 달의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

-쾅!!!

“야, 강라온. 지금 그게 무슨 태도야!!”

“······.”

“대답 안 하냐?”

“······.”

“이 새끼가 근데?”

클럽 하우스의 분위기가 살벌했다.

당연한 일이다. 승리는 언제나 옳았고, 패배는 언제나 틀렸다.

세 번을 싸워 한 번 이기고, 한 번 지고 나머지 한 번에 시즌의 성패가 결정 나는 것이 야구라면 그들이 하는 것은 분명 야구가 아니었다.

이번 시즌 그들이 위닝 시리즈를 가져온 것은 고작 두 번. 스윕 승은 한차례도 없었고 반대로 스윕 패는 무려 아홉 번을 당했다.

“야야, 경준아 됐다. 그만해라. 라온이도 오늘 자기가 못 친 거 화나서 그런 건데 뭐 그런 걸로 애를 쥐잡듯이 잡으려고 그러냐.”

험악한 분위기. 팀의 최고참인 이규만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이규만의 이번 시즌 성적은 0.222/0.296/0.418. wRC+ 101.

그의 올해 나이가 40세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크게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4년 총액 80억을 받는 계약의 두 번째 해라는 점. 그의 포지션이 지명타자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이규만이 강라온을 향해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강라온. 너도 인마. 야구가 잘할 때가 있으면 못할 때도 있는 거지 뭐 그런 걸로 화를 내고 그러냐. 우리 프로잖아. 돈 받고 시합 뛰는 프로. 일은 그냥 일일 뿐이야. 프로답게 하자. 어? 일에 너무 스트레스받고 그렇게 열 올리지 말고 릴렉스하게 가자고. 왜 그런 말도 있잖아. 타자는 원래 열 번 중에 일곱 번을 패배하는 직업이라고. 패배했을 때 멘탈을 관리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타자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야.”

“크, 규만 선배님. 역시 명언 제조기. 훌륭하십니다.”

“훌륭은 무슨. 강라온. 너도 내 말 알아 들었지?”

“······네.”

마지못해 나온 것이 분명한 불퉁한 목소리.

처음 강라온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던 서경준이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이 새끼가 근데?”

“자자, 이제 그만들 하고. 얼른 씻고 정리하고 나가자. 내일 모처럼 쉬는 날인데 저녁에 곱창이나 먹고 몸보신 좀 해줘야지.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다들 그렇게 죽상 하지 말고 어?”

“크, 역시 규만 선배님. 최고십니다!!”

이규만이 자신에게 엄지를 치켜드는 서경준을 바라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싯팔.’

저것들은 대체 제정신들이긴 한 걸까?

게임에서 이렇게 지고 웃음이 나온다고? 동네 피시방에서 전자오락만 져도 화가 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프로답게 하자고? 일에 감정 개입시키고 너무 열을 내지 말라고?

“죄송합니다. 전 속이 좀 안 좋아서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 저 저 싸가지가?”

“야, 경준아. 됐다. 됐어. 그냥 내버려 둬라.”

***

9월의 끄트머리.

-딱!!!

높게 치솟은 타구가 외야를 시원하게 갈랐다.

2타점 적시타.

“······.”

박 감독이 미간을 찌푸렸다. 최근 일주일에 두 번씩 실행한 연습게임에서 벌써 3연패였다.

3학년들이 모두 은퇴한 지금 전국 모든 고등학교의 주전력은 1학년과 2학년이라고 볼 수 있었고 중앙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포지션은 그래도 그럭저럭 꾸려나갈 만했다. 당장 포수와 유격수가 애당초 2학년이었고 우익수로 뛰었던 박경석도 충분히 중견수 수비를 볼만했다.

문제는 투수였다.

에이스인 최수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팀의 두 번째 선발과 세 번째 선발이 모조리 사라졌는데 기존 일학년들은······.

“고한결이랑 박유준이는 좀 어때? 전학은 잘 했고? 입학하면 바로 써먹을 수 있겠어?”

“일단 둘 다 원광중으로 전학은 무사히 잘 끝냈고, 공 자체는 꽤 괜찮습니다. 둘 다 병영이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진우만큼은 할 것으로 보입니다.”

“후, 어렵군. 어려워. 차라리 후반기 왕중왕전이 아니라 전반기 왕중왕전에서 우리가 그만큼 했었으면 조금 더 쉬웠을 것을.”

통상적으로 중학교 야구부 선수가 고등학교 입학을 내정하는 시기는 빠르면 3, 4월. 늦어도 5, 6월이다.

지방 학교의 경우 진학이 결정된 인근 중학교에 9월까지 전학을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2015년 이전에는 고등학교 진학에 관한 법률로 인하여 그것이 강제됐었다. 물론 현재에 와서는 관련법이 개정되어 그럴 필요가 없어지긴 했지만, 이런 종류의 관습이라는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지라, 여전히 9월은 중학교 야구부 학생들의 전학이 가장 바쁘게 일어나는 시기였다.

중앙고가 이번에 데리고 온 선수 가운데 가장 무게감 있는 선수는 백솔중의 고한결과 연호중의 박유준이었다. 두 사람 모두 투수로 최수원 이후 비게 될 중앙고의 에이스 자리를 채우기 위해 1년 전부터 매우 공들여 영입한 인재들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매우 아쉽다. 그들은 장기적으로 주말 리그의 패권을 다툴만한 재능들이긴 했지만, 당장 내년 전국 단위 대회에서 최수원의 뒤를 받칠만한 투수인가를 묻는다면 그건 아니기 때문이다.

전국 대회 우승.

최근 최수원이 보여준 포스를 생각한다면 결코 꿈이 아니다.

안병영 정도 되는 투수가 둘 정도만 더 있다면······.

‘아, 그 정도로는 힘들려나?’

***

야근.

그리고 또 야근.

벤자민 팔머의 눈 밑이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보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어렵겠는데요? WBSC U-18대회가 두 달만 일찍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이게 너무 늦었어요. 이미 올해 국제 아마추어 계약은 얼추 다 견적이 나왔고, 내년 계약에서 뛰어들만한 팀은 열일곱 개밖에 안 되는데, 그중에서 최고구간도 여섯 개 팀밖에 안 돼요.”

“그러면 그 여섯 개 가운데 하나로 하면 되겠네.”

“투타 겸업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면서요. 솔직히 지금 빅마켓 구단은 그거 영 회의적인 거 다 아시잖아요. 기껏해야 탬파베이랑 신시내티, 볼티모어, 오클랜드, 피츠버그 정도인데 걔들은 죄다 이미 나가리고요.”

“그래서. 포기할 거야? 우린 지금 제 2의 오타니 쇼헤이를 데리고 있는 거라고. 너희 작은 할아버지 말씀 기억 안 나?”

“납니다. 그런데 오타니도 NPB에서 몇 년 담금질하면서 자기 기량을 증명했으니 전 구단 상대로 쇼 케이스 해보라고 할 수 있었던 거잖아요. 그 와중에 몇몇 구단은 그 증명 못 믿었었고요.”

“대신 오타니 때는 전례가 없었지만, 최수원에게는 오타니라는 전례가 있지.”

“미치겠네, 진짜. 아니, 왜 KBO는 포스팅이 NPB랑 이렇게 다른 거랍니까? 솔직히 마음만 같아서는 딱 1년, 아니면 2년 정도 KBO 1군 무대에서 뛰는 걸로 마이너 갈음하고, 국제유망주 슬롯 머니 풀로 당겨서 곧바로 메이저 데뷔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만 되면 최수원 선수 본인도 계약금 이중으로 수령할 수 있고요. 아니, 잠깐만. 보스. 우리 그냥 최수원 선수 일본에 2년 정도 보내는 건 어떻습니까?”

***

“그건 싫은데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