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69화 (69/305)

69화. 결점(6)

“어,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부분이요?”

제임스 코퍼레이션에서는 나에게 벤자민 팔머라는 젊은 사내를 매니저로 붙여줬다. 자기 말로는 자신이 뉴욕 대학을 나온 인재라고 그러는데 인재는 커녕 운전하는 꼴을 봐서는 뉴욕에서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 어려울 만큼 어설픈 인물이었다.

“네, 아무래도 최수원 선수는 드래프트가 아닌 국제 아마추어 계약으로 들어가게 될 테니 다른 드래프트 선수들과는 달리 일종의 선택권이라는 게 있잖아요. 물론 가장 기본은 금액적인 부분이겠지만 비슷한 금액이라면 그래도 선호하는 게 다를 테니까요. 지역적인 부분이나, 구단의 정책 방향, 하다못해 내셔널리그인지 아메리칸리그인지. 뭐 그런 부분들요.”

오늘도 뉴욕의 거리는 언제나처럼 꽉 막혔다.

하지만 벤자민이 나에게 건넨 말은 단순히 그 막히는 길에 던지는 가벼운 주제가 아님은 확실했다. 기본적으로 제임스 코퍼레이션은 미국 회사다. 그리고 야구는 축구와 달리 세계화가 좀 덜 된 스포츠다.

에이전트에 관련된 규약도 국가별로 다르고, 특히 한국의 경우는 굳이 미국의 회사가 지사를 낼 가치가 없을 정도로 그 시장이 작고 협소하며 규정 역시 에이전시에 너무 불리하다. 에이전트 라이센스 하나당 커버 가능한 선수는 세 명에 불과하며, 여럿이 모여 회사를 만들어도 최대 열다섯 명 이상을 커버할 수 없다. 규모의 경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즉, 제임스 코퍼레이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미국에 보내야만 하고 이 어설픈 매니저는 대화 속에서 자신의 속내를 숨기는 법을 전혀 몰랐다.

“그거라면 투타 겸업이요.”

“아, 투타 겸업 말씀이시군요.”

“네, 타자로 공을 치는 것만큼 투수로 공을 던지는 것도 재밌거든요. 뭐 나름 재능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뉴욕에서 생돈 쓰면서 이러고 있는 거지만요.”

“네······.”

그가 뭐라 말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솔직히 지금 내 타격과 투구의 격차는 상당히 크다. 타격은 당장 빅리그에 데뷔해도 괜찮을 만큼 훌륭하지만, 피칭은 글쎄······. 싱글A에서 더블A 정도? 속구는 더블A에서도 중상위권은 될 것 같은데 브레이킹 볼이 너무 부실하고 오프스피드피치가 장착이 안 됐으니 여러모로 빅리그 데뷔까지는 적어도 2, 3년은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 혹시 야수로 수비를 조금 더 익혀 볼 생각은 없습니까? 그러니까 투수로 나오지 않을 때 지명 타자뿐 아니라 야수 포지션까지 소화를 할 수 있게 되면 아무래도 옵션이 그만큼 늘어나는 거니까요.”

“글쎄요. 지금도 3루 수비나 외야 수비는 어느 정도 연습을 하고 있긴 한데 아무래도 선발로 뛰면서 타석에 서고, 심지어 야수로 수비까지 보는 건 체력적으로 가능할까 싶네요.”

“아, 그렇군요.”

벤자민이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게 내가 의도한 대로였다.

***

“일단 리스트를 좀 뽑아보자고. 내년 계약 보너스 풀 상황이 어떻게 되지?”

2017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유망주 계약은 다른 사치세 제도와 별 차이 없는 소프트캡이었다. 그렇기에 돈 많은 구단이 약간의 페널티를 지불하고라도 좋은 유망주를 쓸어가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문제가 단순히 그것만이었다면 CBA(Collective Bargaining Agreement)에서 개정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번의 슬롯머니가 800만 달러 남짓했다. 하지만 이름 높던 국제유망주들의 경우 4년 혹은 5년에 3, 4천만 달러짜리 계약을 따냈는데 이것은 그들이 느끼기에 매우 심각한 역차별이었다. 800만 달러를 받고 입단하여 마이너에서 최소 1, 2년. 그리고 이후로도 3년은 최저 연봉을 받아야 하는 그들에 비해 너무 후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2017년 이후 현재까지 국제 아마추어 유망주 계약의 보너스 풀은 하드캡으로 결정됐다.

그리고 그 룰에 적용받았던 가장 유명한 예는 오타니 쇼헤이의 사례였다. 그의 구단이었던 닛폰햄 파이터즈가 받은 포스팅피는 2천만 달러였으나 정작 본인은 계약금은 고작 231만 5천 달러에 최저 연봉으로 메이저에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올해 국제유망주 보너스 풀을 초과할 것으로 보이는 팀이 여덟 개입니다. 게다가 작년 초과분의 패널티를 내야 하는 팀도 아직 세 팀이고. 탬파베이는 재작년 페널티가 내년까지입니다.”

“많기도 하군. 아니, 누가 봐도 역대 최대어급 국제유망주가 딱 나왔는데 그런 짓을 한단 말이야?”

“CBB(Competitive Balance Round B)와 CBA(Competitive Balance Round A)에 속하지 못했던 팀들은 어차피 액수에서 밀릴 거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국제유망주 보너스 풀을 초과했을 때 최대 페널티는 간단했다. 막대한 벌금. 그리고 초과한 액수에 따라 다년간 계약 선수의 1인당 계약금액을 30만 달러 이하로 제약당하는 것.

“그러면 일단 후보는 열여덟 팀인가?”

“거기에 레인저스랑 매리너스도 아마 힘들 겁니다. 이번 겨울, 카일 뮬러와 대런 라이트에게 비딩 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탬파베이가 QO를 안 날릴 이유가 없는 선수들이로군. 그렇게 되면 총액이 레인저스는 390만 매리너스는 440만 달러 정도 되는 건가?”

“네, 적지 않은 금액이긴 합니다만 스완 정도의 사이즈에게는 ‘고작’이라고 해야겠죠.”

올해 국제 아마추어 유망주 계약에서 가장 높은 금액을 받았던 선수는 도미니카 출신의 나르시소 곤잘레스로 497만5천 달러에 사인했다. 제임스가 생각할 때 최수원은 무조건 그 이상의 금액을 받을 수 있는 선수다.

제임스는 개인적으로 최수원이 국제 아마추어 유망주 계약에 하드캡이 도입된 이후 최고액을 경신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투타 겸업입니다.”

“투타 겸업에 대한 의지가 그렇게 강한가?”

“네. 벤자민이 말하기를 최우선으로 고려할만한 상황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골치 아프군······.”

국제유망주의 보너스 풀은 구단 간에 거래도 막혀있다.

드래프트의 슬롯머니가 단순히 그 금액으로 볼 것이 아닌 것처럼 국제유망주의 보너스 풀 역시 500만 달러가 단순한 500만 달러가 아니라는 뜻이다.

타자로는 메이저에 즉전감으로 추측되는 유망주.

하지만 본인이 투타 겸업에 대해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고 그 피칭 능력을 고려하면 현재로써는 지명 타자로밖에 사용할 수 없는 선수다.

“최소한 마이너에서 3년입니다. 어쩌면 그 이상도 굴러야 하고요.”

“뭐, 그거야 선수 본인도 각오를 한 부분이겠지. 조건이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원하는 팀이 널렸어. 최대한 그의 조건을 들어줄 만한 팀을 찾아보자고.”

“네.”

***

“백하민 선수를 보고 있으면 제가 참 좋아하던 선수가 생각이 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머리만 좀 기르면 참 좋을 것 같단 말이죠.”

수원이 옆 방에서 몸에 센서를 잔뜩 부착한 채 윌리엄 워싱턴과 피칭을 조금씩 수정하는 사이, 백하민은 잭 워싱턴과 함께 동적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날.

백하민은 윌리엄의 말을 곧바로 알아듣지 못한 채 멍청하게 그를 따라 웃었다. 하지만 수원의 통역을 들었을 때는 차마 그 웃음을 유지할 수 없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당분간 공을 던지지 말라뇨? 제가 비싼 돈 주고 여기 온 건 공을 잘 던지러 온 겁니다. 근데 그냥 안 던지고 쉬라고요?”

“진정하시고 이유부터 들어보세요.”

2007년

메이저리그에 혜성과 같이 나타난 불꽃과 같은 투수가 있었다. 데뷔 첫해 붙박이 선발로 자리매김을 한 그는 2008년과 2009년에 2년 연속 탈삼진왕을 차지하며 사이 영을 수상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0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우승까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마지막으로 우승했던 것은 1954년. 무려 56년 전 일이었다.

약을 먹고 야구의 신에 도전했던 약마 배리 본즈조차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우승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의 불꽃 같은 공은 56년의 무관을 깨트리고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의 이름은 팀 린스컴.

거대한 불꽃처럼 한순간에 타오르고 스러져버린 위대한 투수였다.

“팀 린스컴이요?”

백하민은 그저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팀 린스컴이라는 이름을 알기에 너무 어렸던 탓이다.

당장 팀 린스컴이 처음 메이저에서 공을 던진 2007년에 그는 이제 막 태어난 아기였을 뿐이었고, 팀 린스컴이 자신의 커리어를 불태웠던 그 시기에 백하민은 이제 막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꼬맹이였을 뿐이니까.

“하지만 하민이 형은 인버티드-W가 아니잖아요.”

인버티드-W?

팀 린스컴이라는 단어에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던 백하민이었다. 하지만 인버티드-W라는 말에는 불현듯 무언가 생각이 났다.

“인버티드-W라고? 아!! 알겠다. 팀 린스컴. 그 인버티드-W 투구폼 때문에 데드암 와서 빠르게 커리어 마감한 투수 맞지?”

“네, 지금 윌리엄이 말하기를 형이 그 팀 린스컴을 닮았다고 그러네요.”

“응? 내가? 하지만 난 팔꿈치를 그렇게까지 높게 들지 않는걸. 인버티드-W는커녕 V나 L도 아니잖아.”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윌리엄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들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아들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버티드-W라는 말만으로도 대충 무슨 말을 하는지는 유추할 수 있었다.

“팀 린스컴의 문제를 조금 잘못 알고 계신 것 같군요. 인버티드-W라는 자세는 사실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 물론 거기서 파생되는 팔의 움직임이 잘못된 자세로 이어질 확률이 높긴 하지만, 그 자체만 보자면 큰 문제는 없습니다. 게다가 제가 말하고 싶은 팀 린스컴과 백하민 선수의 공통점은 피칭폼 쪽이 아닙니다.”

“그러면요?”

“지극히 올드스쿨적인 훈련. 그리고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사이즈, 그런 사이즈에서 나오는 빠른 속구와 너무 많은 투구 수입니다.”

2000년대 후반.

고작 20년도 채 되지 않은 과거였지만 야구계는 참으로 놀라운 속도로 변했다. 어쩌면 그 20년간의 변화는 1930년대 이후 2000년대까지 70년간의 변화보다 더 크고 격렬할지도 몰랐다.

“저는 종종 팀 린스컴이 10년만 더 늦게 태어나서 조금만 더 현대적인 방법으로 훈련을 받았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해봤습니다. 물론 그랬더라면 짝수 해의 기적은 시작도 되지 않았겠고 어쩌면 롱토스 프로그램의 폐해가 알려지기까지 더 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었을테지만요.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저는 백하민 선수에게 대단히 큰 관심이 갑니다.”

“이거 너무 노골적으로 고객 차별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 최수원 선수도 충분히 신경 쓰고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최수원이 날이 서지 않은 단단하고 거대한 검이라면, 백하민은 손잡이와 칼집이 없는 대단히 날카로운 칼과 같다고.

“나쁜 건 아닙니다. 사람이 100마일에 가까운 공을 그 작은 존 안에 집어넣는다는 건 당연히 몸을 쥐어 짜내야 하는 거니까요. 다만 백하민 선수의 경우는 닷새 간격의 등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 이내의 손상이 아닐 뿐이죠. 주말리그라고 했나요? 아주 좋은 제도였습니다. 일주일에 한 경기. 105구 미만이라니. 만약 지금 이대로 프로에 가서 4일 혹은 5일 간격으로 등판을 거듭한다면 장담하건대 롱런은 불가능할 겁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백하민은 그 대단히 날카로운 칼날을 보호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같은 시간.

가진 것이라고는 오직 ‘툴’밖에 없는 재능 덩어리 역시 그 몸에 어울리는 ‘기술’이라는 것을 새겨넣었다.

“아실 겁니다. 사실 야구는 대단히 이상한 스포츠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 최수원 선수는 그러한 야구에서 그 이상함이 가장 극대화되는 부분을 해내려고 하고 있다는 점도요.”

최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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